2000년 11월 11일 현재 인구 10,000명이 넘는 최씨 본관의 가세(家勢)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통계청 자료에는 월성최씨가 따로 4,191가구 13,463명이 있는 것으로 되어 있으나, 월성최씨는 경주최씨 최진립(崔震立)을 시조로 하고 있는 가문이므로 경주최씨에 합쳤으나, 수성최씨와 수원최씨는 시조 사이 연관성을 알 수 없어 분리하였다.
또 실제는 급제하였으나 방목(榜目)에 누락된 사람도 있고, 본관이 잘못 기재된 경우도 없지 않지만, 일일이 검증하지 못하고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자료를 그대로 인용하였다.
또한 문과나 무과 급제자가 생원시, 진사시에, 또 생원시 합격자가 진사시에 합격한 경우에는 당연히 중복 계수 되었다.
문과 급제자는 <고려열조등과록>이나 <국조방목> 같은 통합방목이 있어서 자료를 일관되게 파악할 수 있으나, <무과방목>이나 <사마방목>은 조선시대 전체를 아우르는 통합방목이 없고, 당해 연도 방목만 있어서 실제 합격자를 모두 파악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따라서 무과, 생원, 진사는 계수된 인원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되어 자료로서 가치가 떨어진다고 하겠다.그런대로 신뢰성이 보장되는 문과 급제자만을 분석해 보면, 우선 급제자 총원에서 전주최씨 126명, 해주최씨 62명, 경주최씨 54명, 강릉최씨 41명, 삭녕최씨 37명 순으로 많다.
하지만 본관의 크기를 무시한 단순 집계는 무의미하므로, 인구 10,000명당 문과 급제자를 분석하면 수원최씨가 인구는 13,156명에 불과한데, 고려 9명과 조선 19명을 배출하여 합계 28명으로 인구 10,000명당 21.28명 급제자가 나와서 가장 높고, 경주최씨가 인구는 990,283명으로 가장 많은데, 고려 9명과 조선 45명으로 합계 54명을 배출하여 인구 10,000명 당 0.55명밖에 급제자를 내지 못하였다.
전주최씨 또한 392,548명 인구에 고려 18명, 조선 108명, 합계 126명으로 인구 10,000명당 3.21명 급제자를 배출하였다.
많은 인구로 인해 급제자 비율이 떨어진 원인으로 추정된다.
수성최씨는 인구는 51,780명으로 수원최씨의 4배에 이르지만 고려 급제자는 한 명도 없고, 조선에서만 4명을 배출, 인구 10,000명당 급제자가 0.77명에 불과하다.
수원과 수성은 같은 지명이므로 착오가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두 본관을 합하면 인구 64,936명에 급제자 42명으로 인구 10,000명당 4.93명이 된다.
특히 동주최씨는 인구 11,699명에 고려 14명, 조선 3명, 합계 17명을 배출하여, 인구 10,000명 당 급제자 14.53명을 배출, 수원최씨에 이어서 두 번째를 기록하고 있는데, 그 중 14명이 고려에서 급제자이고, 조선에서 급제자는 겨우 3명에 불과하다.
초창기 고려의 수도 철원을 관향으로 하는 동주최씨는 고려 건국에 참여한 귀족가문 이었으나 고려 말 최영이 역적으로 몰려 죽고 조선이 건국되면서 가문이 몰락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인구 10,000명 당 급제자는 다음과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