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너드 코페트 (Leonard Koppett) 는 언론인으로 드물게 명예의 전당에 입성을 한 사람입니다. 우리나라에는 코페트의 저서가 몇 개 안되지만, <야구란
무엇인가 (The New Thinking Fan's Guide to Baseball)> 번역되어 출시되었습니다. 이 책의 역자는 한국 야구사에 관련하여 실질적인 산증인이라 할 수
있는 이종남 현 스포츠 서울 야구 부장입니다. 아마, 야구에 관한 개론서도
미미한 현실에 안타까운 나머지 손수 이 책만큼은 꼭 번역할 필요성을 느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한 판단일 듯 합니다.
이 책에서 꽤 논쟁거리를 유발하는 사안이 있는데, 바로 야구 선수와 기자간의 관계에 대해 코페트의 날카로운 해석이 남아 있어, 발췌하고자 합니다.
약간 길수도 있지만, 읽어보면 동감하는 부분이 쏠쏠할 것입니다.
신문 기자와 칼럼니스트는 선수들고 구단 관계자, 그리고 대부분의 야구팬들에게 국외자요 천적(天敵)으로 비쳐지고 있다. 신문기자들이란 <어두운 구석> 이나 파헤치려고 눈에 불을 켜고 덤벼들고, 야구 관계자들에게 멍청한 (실은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이나 퍼부어대고, 구단이 잘돼 가는 꼴을 보지 못하고, 어떤 사건이 터지면 그 내막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구단은 보안 유지에 각별히 신경쓴다), <신문을 팔아먹기 위해> 일부러 뭐든지 시끄럽게 만드는 사람들로 보인다 (이게 얼마나 어쳐구니없는 오해인지는 나중에 설명하겠다). 대부분의 선수들은 기자를
상대할 때 자기 뒤에 누군가 보호자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느낀다. 그리고 혹시 자신이 한 말이 잘못 인용될까
봐 두려워한다. (실은 <곧이곧대로> 인용되는 것을 더 두려워한다).
이 정도는 귀여운 축에 속합니다. 다음 장으로 넘어 갈까요?
방송 아나운서에게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오만 방자함>도 신문기자들의 기본 속성처럼 굳어져 있다. 그러나 신문 기자들도 이제는 그런 태도를 버려야 할 때가 됐다고 자각하고 있다. 기자는 자기가 지식 계급에 속한다고
자부하고 있으며 (적어도 자기가 상대하는 선수에 비한다면 그게 과히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어떤 사안의 무게를 재고 의심하고 캐묻고, 공사(公私)를 구별할 줄 알면서 일단 틀렸다 싶으면 가차없이 비판하려 들고, 사물을 단편적으로 보는 일반인에 비해 다각적으로 많은 것을 알려고 하고, 팬들처럼 감정에 휩싸이지 않으려고 하고, 재치 있고 영리하고 글재주가 있고 정확하고 빠르고 정직하고 회사에 충직하고 용감하고(자칭), 그러면서
예의를 갖추거나 남에게 곰살맞게 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는 게 기자라는 족속이다. 그리고 그들은 남을 존경하는 일이 거의 없다.
물론 임의로 코페트의 저작을 짜집기 한 부분도 없지 않지만, 같은 기자 출신으로 이렇게까지 피력한 것을 보면
잘못된 관행에 대한 자기 반성을 포함한다고 생각할 수 있을 듯 합니다.
먼저 이 책을 독파한 사람으로 전체적인 요지를 짤막하게 읊조린다면, 야구 선수와 기자들간의 관계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선수의 연봉에 비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고 있는 기자의 염세적인 비관자세가 문제의 효시가
된다고 합니다.
아차차, 이세돌 얘기를 할려고 했는데 서론이 너무 긴 듯 하네요.
이세돌 파문
이제 한 6개월 남짓 흘렀을까요? LG 세계기왕전에 이창호와 이세돌이 붙었습니다. 항간의
혹자는 이세돌을 보고 드디어 이창호의 아성을 깰 수 있는 적수가 나타났다며 호들갑이
대단했지요.
기왕전 대국 첫 날, 점심시간에 때 맞추어 친구와 내기까지 걸면서 TV 눈치 안보며 볼 수
있는 음식점을 향해 부리나케 달려갔습니다. '엇, 이창호가 지네?' 오호! 그냥 지는 것도
아니더구먼요. 아예 대마가 한 뭉터기로 잡혀가지고 거의 이창호가 돌 던지는 분위기였습니다. 대국시간이 기껏 해봤자 4시간 정도 지난 것으로 기억합니다만, 천하의 이창호가
이렇게 처참하게 지는 바둑은 난생 처음일 것입니다. 그 다음날 대국도 완패.. 스코어
2:0 시쳇말로 이세돌이 스윕하기 일보직전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 그 후로 3개월이 지나고 이창호가 3:2로 대역전승을 거두며, 루키 이세돌의 반란은 정권을 탈취하는데 실패했습니다. 그리고 긴 슬럼프...
이세돌은 기왕전에 앞서기 전에 핸디캡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이른바 월간 바둑 정용진 편집장이 터트린 이른바
'이세돌, 공인의 자세에 대하여 알려주마' 펀치입니다. 한참 논란이 되었던 정용진 칼럼 글을 마지막 부분이 이렇습니다.
공인의 자세와 언행
기자는 십수년간 바둑지를 만들어오면서 아직까지 해설료 액수를 놓고 4인방 스타들과 눈살을 찌푸린 적이 단
한번도 없다. 적다 생각되면 'NO'하면 그만인 것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그런 가시를 한명도 보지 못했다. 편집부가 예뻐서가 아니라 독자들의 '알권리'를 먼저 생각하는 배려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자기 몸값에 대한 정당한 평가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잇을 수잇다. 그러나 그방법이 틀렸다면 이는 공인으로서 분명 되새겨 봐야 한다. 이 글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이세돌 3단은 그 진의에 대한 명확한 해명이 없었다.
승부세계의 속성이 강자가 목소리를 내고 강자에게 관대하긴 하지만 아직 그 위치와 나이를 생각할 때다, 중극
속담에 버릇이란 처음엔 기미줄 같은 것이지만 순식간에 끊기 힘든 동아줄이 된다고 했다.
사진촬영 거부 때도 그러했지만 이번에도 형 이상훈 3단이 동생이 '펑크'를 내던 그날 편집부를 찾아와 대신 사과했다. 이 점을 생각하면 이상훈 3단에게는 실로 미안한 마음이다. 그러나 언제까지 형이 동생을 대신해 사과하고 다닐 것인가. 우리나이로 19세면 자기 앞가림과 행동에 대해 충분히 책임져야 할 연령이 된 것이다. 더욱이 타이틀 보유자에 MVP로까지 선정된 몸이면 여간한 공인이 아닌것이다.
누구 못지 않게 이세돌 3단과 같은 기재를 아끼고 '광을 내줘야'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기에, 혹여 이 칼럼이
누워 침뱉기가 되지나 않을까. 나이 어린 스타에게 깊은 상처만 주는 건 아닐까 여러날 고민했음을 밝힌다. 그러나 걸어온 길보다 걸어가야 할 길이 구만리인 이세돌 3단이기에 '경솔한 글'이었다고 기자가 비난을 듣는 한이 이더라도 바둑언론의'뺨 한대'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판단했다. 사카다의 뺨을 때렸던 사람은 프로기사도 아닌, 옆에서 복기검토를 지켜보던 [기도]지 편집장, 아마추어 기사 야스나가 하지메씨였다.
쉽게 말해서, 바둑계의 불소불위의 권력을 지니고 있는 정용진님께서 손자뻘 되는 이세돌에게 빰 한대 날릴테니
잔말하지 말고 새겨 들어라는 그런 거 겠죠. 중요한 사실은 정용진의 행동경위가 참 비겁했다는 것입니다.
19살의 이세돌은 외딴 섬 버금도에서 태어나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이상훈 친형의 손을 잡고 갓 서울로 상경했습니다. 그리고, 바둑계에 뛰어들면서 어린 나이에 프로라는 비정함을 목격해야 했구요. 물론 같은 프로기사인 이상훈의 보살핌도 있었지만, 이세돌의 바둑은 생존을 위한 바둑, 젊은 치기의 바둑이라고 평하기에는 조금
어른스럽지요. 결정적으로 정용진과 이세돌의 트러블이 생긴 이유는 사적인 자리에서 이세돌이 같은 프로로 대접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공인과 프로의 딜레마에서 이세돌은 방황하게 된 것입니다.
박찬호 담당 기자분들에게
불철주야 박찬호의 일거수 일투족을 취재하기 위해 얼마나 힘이 드셨겠습니까. 게다가 얼마 안 있으면, 이사
갈 지도 모르는데, 자식들의 학교 수속 준비하랴, 복덕방에서 집 한채 공시해야 할테고, 마음이 심란하시겠지요.
물론 그동안의 노고를 메이저리그 팬으로서 왜 치하하지 않겠느냐만은.. 단, 한 가지 팬으로서 몇 자 놓습니다. 팬들은 잠자리에 들기 전에 배개닢 위해 펼친 '오늘의 반성' 그런 글이 아니라, 야구장에서 담당 기자님들의 먼지 더미에서 갓 올려낸 생생한 기사를 읽기를 원합니다. 예, 괘심하기는 하죠. 같은 동지라고 생각했는데
뒤에서 헛방귀나 끼고 있으면, 배신감도 느끼실 테죠. 하지만, 팬으로서 그러한 가십의 진위를 알 수가 없습니다. 왜냐구요? 어차피 2중 3중으로 정보가 왜곡되었을테고, 코페트가 말한 것처럼 <오만 방자함>의 기본 속성을
무시하고 그냥 읽어라 하신다면, 숫체 눈 코 입 다 가리시지 그러셨어요.
으례 하는 말로 공인의 자세를 보여달라고 합디다. 그런데 한 가지 잊으신 점은 스타들에게는 잣대를 올가지면서, 뒤집어 놓으면 기자분들에게는 공인에 대한 면책특권이라도 생기셨나 봅니다.
비단 앞서 정용진 커넥션을 빗된 것은 아니지만, 100만 바둑애호가들에게 정용진 필증은 대단한 효력을 발휘합니다. 박찬호 담당 기자분들의 필증도 만만치 않습니다. 그래서 그것이 문제가 되는 거죠. 박찬호나 이세돌은
기자들에게 대응할 수 있는 미디어가 없습니다. 꿀먹은 벙어리가 되야하는게 현실이며, 그것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이세돌의 바둑복기표를 보면서 일언반구 이세돌의 스캔들을 찾아낼 수 없죠. 흰돌과 바둑돌밖에 뭐가 있겠습니까?
예전처럼 무지막지한 이세돌의 기풍을 찾아 볼 기회가 넉넉치 않습니다. 19살 상처가 아물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지만, 사람은 조건반사적인 동물이라 그 고통에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하지만, 아직은 창창한 앞날이 기달리기에 다시 좋은 모습으로 이세돌은 돌아 올 것입니다.
박찬호 담당 기자님, 박찬호를 이세돌로 만들지 말아주세요. 정중하게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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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참고로 이글이 쓰여진 시기가 2001년 12월경입니다. 글쓴분을 개인적으로 몰라서 바둑에 대해서 얼마나 아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그냥 괜찮은 글이라 생각해서 퍼왔습니다.
박찬호님이 얼마나 겸손하고 성실한 분인지 여러분들은 상상하기 힘들 것입니다. 한국 최초의 메이저리거로서 얼마나 선행을 많이 하고... 역설적으로 얼마나 욕을 많이 먹는지 모를것입니다. 그러지 마세요. 그대가 찬호님이라면 그 정도의 반도 못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