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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 달리다] 조미향
1. 진석집 거실 다양한 색상의 나무 조각 맞추기로 만들어져 가는 집 한 채가 보인다. 진석모(65세)와 금주(27세), 조각 맞추기에 한창이다. 금주 자, 마지막 한 개! 진석모, 천천히 한 조각을 들어 정확한 자리에 끼워 맞춘다. 근사한 집 한 채가 완성된다. 금주 (박수 짝짝 치며) 네. 잘 하셨어요. 약간 몸이 불편해 보이는 진석모, 웃으며 고개 끄덕끄덕한다. 금주, 바닥에 있던 주황색 작은 고무공을 들어 통통 튀긴다. 금주 항상 이걸 쥐고 손 운동 하세요. (공을 손에 쥐었다 폈다 하며) 이렇게 요! 진석모, 작은 고무공을 쥐었다 폈다 한다. 금주 자, 그럼 이번엔 숫자놀이 해 볼게요. 아드님 생일! 진석모 4월 9일! 금주 더하기! 진석모 (공 내려놓고 계산하며) 십 삼! 금주 따님 생일! 더하기! 진석모 9월 6일! 십 오! 금주 따님 집 비밀번호! 진석모 일 육 팔 사! 가만있자 일에다 육 더하고 팔 더하고… 2. 진경 아파트
금주와 영식, 아파트 대문 앞에 서 있다. 금주, 심호흡 한번 한다. 금주 (천천히 비밀번호 누르며) 일 육 팔 사! 스르르 열리는 현관문. 서로 손바닥을 부딪치며 하이 파이브하는 금주와 영식. 3. 진경 아파트 거실 금주와 영식, 재빨리 각자 주머니에서 하얀 목장갑을 꺼내 낀다. 영식, 잽싸게 노트북 연결선을 빼고 DVD 플레이어, 벽에 걸린 평면 TV등도 챙긴다. 금주는 장식장 서랍을 열어 귀금속함을 꺼낸다.
4. 장물 창고 넓다란 책상위에 귀금속함, 노트북 컴퓨터, DVD 플레이어, 평면 TV 등이 올려져 있다. 장물애비, 다이아 반지 꺼내 꼼꼼하게 살펴본다. 그 앞에서 긴장한 얼굴로 바라보고 있는 금주와 영식. 장물애비, 수표 몇 장을 내민다. 5. 거리
금주, 수표를 정확하게 반으로 나눠 영식에게 넘긴다. 금주 나, 간다. 담에 보자. 영식 어디 가서 소주나 한잔 때려! 금주 (영식 머리 탁 때리며) 짜식이 꼬박꼬박 반말이야! 금주, 수표에 살짝 입을 맞춘 후 달려간다. 영식, 헤어짐이 아쉬운 듯, 금주의 뒷모습을 애틋하게 바라본다. 금주, 영식의 시선 아랑곳 않고 힘차게 거리를 달려간다. 그 위로 타이틀 그녀, 달리다 6. 진경집 거실 진경집 거실, 이미 도난을 당한 후라 휑댕그레 하다. 진석, 말없이 소파에 앉아있다. 진경 미쳐! 내가 미친다구! 세상에 비밀번호 말하라구 넙죽 얘기하는 노인네 가 어딨니? 진석 경찰에 신고할게. 진경 신고하면 뭐해? 그 년 이름이구 주소구 다 가짠데! 진석 … 진경 (소리 지르며) 그 다이아 반지, 어떤 건 줄 알기나 해? 진석 알아. 진경 노인네 너무 오래 사는 거 축복 아냐! 걸핏하면 쓰러지고…부러지고… 아주 내가 기함을 해. 진석 (화가 나 버럭) 누나! 무슨 말을 그렇게 해? 진경 (덩달아 소리 버럭) 왜 소리는 지르고 그래? 7. 진석모 방 진석모, 한 손으로 아픈 다리를 주무르고 있다. 진석, 맞은 편에 앉아있다. 진석 괜찮아요. 다 해결 됐어요. 진석모 …진석 컴퓨터는 원래 바꾸려고 했대요. 반지는… 진석모 나가봐라. 진석 그 여자 꼭 찾아 낼게요. 진석모 찾지마라. 진석 왜요? 진석모 본성이 나쁜 앤, 아니다. 진석 (약간 언짢아져) 엄마! 진석모 오죽하면 그런 생각을 다 해 냈겠니? 불쌍하게 생각해라.
8. 디자인 학원 외경 @@ 그래픽 디자인 학원이라는 간판 보인다.
9. 강의실 칠판에 ‘패키지 디자인 실습’이라고 적혀있다. 태일, 앞에서 열심히 강의중이다. 학생들 각자 매킨토시 컴퓨터로, 작은 음료수 병을 디자인하고 있다. 야구모자 눌러쓴 금주, 어린 학생들 틈에 끼어 열심히 실습중이다. 태일 자. 일러스트에서 각 박스면을 설정하고 심볼마크와 그림, 글자를 구성해 주세요.
학생들, 작업하느라 분주하다. 태일 쿼크 익스프레스에서 도큐멘트를 설정해 주세요. 그림상자를 그린 다음 일러스트와 포토샵 이미지를 불러옵니다. 10. 학원 앞 학원생들, 삼삼오오 빠져 나온다.
금주, 나오는데 누군가 금주의 모자를 휙 벗긴다. 금주, 깜짝 놀라 돌아본다. 영식 (반가워) 잘 지냈어? 금주, 모자 뺏어서 다시 눌러 쓴다. 영식 (디자인책 만지며) 이런거 배우면 밥이 나와? 술이 나와? 금주 밥은 안 나와두 밥 맛은 나게 만들어. 영식 노인정에 물건 팔러 갔다가 따끈한 정보 하나 건졌어. 금주 이번이 마지막이다. 영식 우리, 이제 겨우 두 번 했어. 아저씨 빚은 어쩌려구? 금주 급한 불은 대충 껐어. 이런 일…정말 싫어. 영식 큰 걸루 세 탕만 뛰고 끝내자. 금주, 기가 막혀 바라본다. 영식 그러면 우리 둘이 조그만 가게 하나 차릴수 있어. 금주 내가 왜 너랑 가겔 차려?
영식 (진지하게) 우리 같이 살자! 금주씨! 금주 (눈 부릅뜨며) 누나!
영식, 지지 않고 바라본다. 금주 나…그 사람 한 번 찾아보고 싶어. 영식 미쳤어? 남산에서 김서방 찾기지! 금주 그래두 찾아볼래. 영식 그래서 어쩔건데? 그 사람이 금주씨 마음, 덥석 받아주기라도 한대? 금주 간다. 금주, 가던 길 간다. 영식, 안타깝게 금주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11 아파트 앞 대형 평수의 아파트 촌이다. 단정한 옷차림의 금주 걸어간다. 그 위로 영식 (E) 서초동 황 여사 하면 알부자루 소문이 자자해. 하루에 큰 거 열 장 은 캐쉬루 땡길수 있대. 얼마전에 뇌졸증이
와서 한 번 쓰러졌어. 12. 엘리베이터 땡 하면 문 열리면 금주 나온다. 그 위로 영식 (E) 돈은 많지만 믿을만한 자식놈은 한 명두 없대. 치매방지도 하고 말 벗도 할겸 젊은 간병인이 필요하대. 13. 황여사 방 고급스런 보료에 앉아있는 황여사. 그 앞에 공손하게 앉아있는 금주. 영식 (E) 피카소 그림을 무지 좋아하고 생선은 은대구 찜만 먹는대. 황여사 그래, 경력은 좀 있구?
금주 간병인 교육 1년 받았고 암 병동에서 6개월 근무했어요. 그 담에 치 매 (당황해 얼른 말 바꾸며) 아니, 알츠하이머 병 환자들을 간병 했어요. 황여사 노인네들하고 생활하면 답답할텐데 스트레스는 어떻게 풀지?
금주, 가방에서 피카소 화집을 꺼낸다.
금주 하루 일 마치면 잠들기 전에 꼭 이 화집을 봐요. 마음이 편안해 지거 든요. 황여사 (대번에 호감 보이며) 어머나! 피카소를 좋아하나 봐! 금주 나이 들어도 평생 청춘의 열정을 잃지 않는 화가죠. 제가 어머님들한테 바라는 모습이예요. 황여사 (호감 더욱 드러내며 끄덕끄덕) 얼굴도 이쁜데 애인은 없어? 금주 아직은 친구들 만나는게 더 재밌어요. 맛있는 것도 먹으러 다니구요. 황여사 뭘 좋아하지? 금주 은대구찜이요. 황여사 호오…영미씨, 미식가구나. 황여사,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14. 유경 화장품 외경 유경 화장품이라고 적힌 세련된 느낌의 로고 보인다. 15 유경 화장품 패키지 디자인 팀
천정부터 내려오는 긴 줄에 ‘패키지 디자인팀’ 이라고 적힌 팻말 매달려 있다. 한쪽 벽을 차지하고 있는 장식장에는 로션, 스킨등 기초 화장품 용기들과 영양크림, 에센스 등의 기눙성 화장품 병들이 보기좋게 전시되어 있다. 진석, 통화중이고 지영과 수연은 매킨토시 컴퓨터로 디자인 작업을 하고 있다. 진석 심부름센터에 맡겼어. 곧 찾아낼거 같아. 지영, 스킨 병이 그려진 디자인 보드 들고 가까이 온다. 진석 그래. 알았어. 누나. 다시 전화할게.
지영 내년 봄 상품 패키지 시안이예요. 진석 (디자인 보드 보며) 포장이 너무 요란한 거 아닌가? 지영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일단 케이스가 예쁜 화장품을 사요. 진석 그게 심각한 문제인 거 같아. 지영 아직까지 우리 소비자들은 포장을 중시해요. 진석 우리가 여성들의 구매패턴을 올바르게 리드해 보는 건 어때? 지영 (애교스런 미소) 서 대리님! 그런 건 제발 좀 대기업에게 맡겨 주세요. 진석 (미소) 지영 (작은 목소리로 ) 저녁에 시간 있으세요? 진석의 핸드폰벨 울린다. 진석 서진석입니다. 네? 찾았다구요? 진석, 제스쳐로 지영에게 안 된다는 표시를 한다. 지영, 실망하는 표정이다. 16. 인사동 갤러리 추상화 계열의 그림이 전시되어 있다. 금주와 황여사, 그림을 감상하고 있다. 17. 갤러리 앞
진석, 갤러리 앞에 비스듬이 서 있다. 금주와 황여사, 나온다. 진석 (다가가) 정 금주씨! 잠깐 나 좀 볼래요?
금주, 진석을 알아보고 당황한다. 진석 모르겠어요? 나, 서교동 김 숙자 여사 장남인데요. 금주 알아요. 잠깐만요. 황 여사님좀 모셔다 드리고요. 진석 (팔을 확 잡으며) 어딜 도망 가려구? 황여사 (놀라) 영미씨! 이 사람 누구야? 진석 (비웃듯) 영미? 금주 (황여사 보며 차근차근하게) 제가 돈을 좀 빌려 썼거든요. 이자를 적게 줬더니 화가 많이 났네요. 황여사 젊은이! 그러는게 아냐. 왜 사지 멀쩡한 사람이 사채놀이를 해?
진석, 기막혀 바라본다. 금주, 흐트러짐 없이 차분하게 행동하고 있다. 황여사의 자가용, 스르르 앞으로 다가온다. 금주, 황여사를 자가용에 태워준다.
금주 아무 염려 마세요. 내일 전화 드리겠습니다. 황여사 그래요. 영미씨. 힘 내요! 진석, 기막혀 이 모든 광경을 바라본다. 자가용 떠나자 금주, 태도 돌변해 껌을 꺼내 질겅질겅 씹는다.
금주 (상처난 손등 문지르며) 아침부터 고양이가 할키더니 하루종일 재수가 없네.
진석 (열 받아) 뭐? 금주 신경 꺼요. 댁보고 한 소리 아니니까. 진석 너 진짜 질 나쁜 인간이구나. 금주 너무 그러지 마요. 갚아주면 될 거 아녜요? 진석 말로 해선 안되겠군. 당장 경찰서 가자! 금주 잘 됐네요. 나, 어차피 며칠후면 월셋방에서두 쫓겨 나거든요.
금주, 껄렁하게 껌 씹으며 앞으로 걸어간다. 18. 카페 진석, 금주의 손을 거칠게 끌고 들어온다.
금주 아, 이거 놔요. 갚으면 될 거 아녜요. 갚는다구요! 진석, 금주를 털썩 자리에 앉힌다. 진석 세상에 사기칠 사람이 없어 힘없는 노인네를 속여? 금주 우리도 마구잡이로 그러는 거 아니예요! 룰이 있어요. 먹고 살만한 사 람들한테만 잠깐 실례 한다구요! 진석 먹고 살만한 사람? 니 눈엔 그렇게 보여? 우리 누나, 그 집 사는데 10년 걸렸어. 월급쟁이 남편 만나 한푼 두푼 아껴서 서울에 처음 장만한 집이 야! 금주 (찔끔) 진석 넌 돈만 가져간 게 아냐! 남의 소중한 추억까지 다 훔쳐갔어! 금주 (한풀 꺽여) 무슨…소리예요? 진석 그 반지, 어떤 건 줄 알아? 한 부부가 10년을 잘 살아낸 기념으로 큰맘 먹고 장만한 거야. 내일이 결혼기념일 이라구!
금주 당황한 표정이다.
진석 꿀 먹었어? 뭐라고 말 좀 해 봐! 금주 미안해요. 몰랐어요. 금주, 갑자기 핸드폰 번호 누른다. 금주 아저씨? 나, 금주예요! 그 다이어 넘겼어? 아니, 일이 좀 생겨서. 내가 지금 그리로 갈게요. 그래요. 네. 네. 진석, 금주가 하는 행동을 감시하듯 지켜보고 있다. 금주 (일어서며) 찾아다 줄게요. 진석 (금주 손 턱 잡으며) 널 어떻게 믿어?금주 (차분하게) 도둑질은 했어두 거짓말은 안해요. 진석의 핸드폰 벨 울린다. 진석, 그제서야 잡은 손을 놓는다.
진석 여보세요. (놀라며) 네? 어머니가요? 호흡곤란 증세는 없죠? 일단 자리 에 눕혀 드리세요. 네. 지금 바로 들어 갈게요. 금주 (걱정돼서) 왜요? 어머니한테 무슨 일 생겼어요? 진석 넌 반지나 찾아와! 금주 어머니, 운동 거르시면 절대 안돼요! 진석 (소리 지르며) 니가 상관할 일 아니야! 금주 (더 크게) 잘못하면 뇌졸증 걸리세요! 하루도 빼먹지 말고 운동 시키라 구요! 진석 !
19. 진석방 진석, 침대에 누워 자고 있다. 핸드폰 벨 울린다. 진석, 더듬더듬 불을 켠다. 시계는 새벽 두시 반을 가르키고 있다. 진석 (잠이 덜 깨 핸드폰 받으며) 여보세요. 금주 (E) 정금주예요. 진석 (이제는 존대말로) 이 밤중에 무슨 일이죠? 금주 (E) 잠깐 문 좀 열어 주세요! 진석 뭐라구요? 금주 (E) 나, 현관 앞에 있어요. 20. 진석집 앞 진석, 현관 문 열면 금주가 서 있다. 금주 (반지 케이스 내밀며) 자요!
진석 이걸 꼭 오밤중에 갖다줘야 되요? 금주 내일이 결혼 기념일이라면서요? 남의 추억에 먹칠할 생각 없어요.
진석, 어이가 없어 피식 웃는다.
금주 나, 신고할 거예요? 진석 생각해 볼게요. 금주, 걱정스러운 듯 바라본다. 진석 다신 이런 짓 안한다고 약속해요! 약속하면 신고 안할게요. 금주 약속할게요. 진석 가 봐요! 금주 고마워요. (쇼핑백 건네며) 이거 받으세요! 진석, 쇼핑백 열어보면 죠깅화가 나온다. 금주 쿠션 들어간 운동화예요. 어머니한텐 걷기운동이 만병통치 약이거든요. 산책할 때 신으라고 하세요. 진석 (비웃듯) 이거 뭐죠? 또 연극합니까? 금주, 원망스런 눈으로 본다. 진석, 아차 싶지만. 금주 나, 비웃는 거 상관없어요. 대신, 꼭 전해 드리세요. 저, 어머니한테 천벌 받을 짓 했어요. 친딸처럼 아껴 주셨거든요. 금주, 인사 꾸벅하고 돌아서 간다. 진석, 느낌으로 본다. 21. 진석집 거실 진석모, 운동화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진경, 다이아 반지를 받아들고 입이 딱 벌어진다. 진경 세상에! 그 간병인 기집애 맞지? 진석, 대답하려는데 진석모 하지 말라고 슬쩍 고개를 가로 젓는다. 진석 (얼버무리며) 그 여자두 협박을 받았었나봐. 그래서 마지못해. 진경 협박은 무슨 놈의 협박! 다 한 통속이지! 하여간 엄마나 너나 물러 터져 서 탈이야. 진석모 됐다. 그만해라. 진경 엄마두 참! 어려운 사람들 도와주면 복이 쌓인다구? 이게 복이야? 재 앙이지! 진석모 다리 맛사지 해주는 거 단 한 번도 건성으로 한 적 없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산책도 빼 먹은 적 없었어. 왠만한 자식새끼보다낫다. 진석모, 한쪽 다리를 약간 절며 방으로 들어간다. 진경 너두 조심해. 착해 빠져 가지구…어디가서 된통 당하지 말고… 진석 (웃으며) 한 번 좀 당해주면 어때? 이 아름다운 세상에 태어난 기념으 로… 진경 얘가 또 큰일날 소리 하네. 너 대체 왜 그래? 지난번엔 불쌍한 아저씨 돕는다고 다 터진 생선을 몇 박스씩 사고… 22. 금주집금주, 학원갈 차림으로 대문열고 나온다. 형사, 다가온다. 형사 정금주씨 맞죠? 금주 (불안한) 그런데요. 형사 도봉 경찰서 김준철 형삽니다. 잠깐 같이 가야겠습니다. 금주 무슨 일이죠? 형사 신고가 들어 왔어요. 금주 !
23. 유경 화장품 회의실 패키지 팀장 이은경을 비롯, 진석, 지영, 수연 등등이 회의중이다. 테이블 위에는 기초 라인, 기능성 라인 등 다양한 종류의 화장품 용기들이 가득 올려져 있다. 팀장 이번 시즌은 피 터지는 전쟁터야. (화장품 하나 만지작거리며) 내년 봄 제품에 회사 사활이 걸려 있어. 진석 겨울 제품 디자인엔 거품이 좀 많았던거 같습니다. 이번 패키지 작업은 장식성보다 실용성을 부각시켰으면 해요. 수연 이번엔 부재료도 씸플한 소재로 갔으면 좋겠어요. 팀장 일단 디자인 뽑아봐. 런칭까지 두 달 남았어. 지영 팀장님. 저희, 사람 부족해요. 매일 야근인데도 아직 기초 라인, 못 끝냈 어요. 팀장 걱정 마. 디자인 학원에 연락해 놨어. 인턴 한 명 채용할거야. 서 대리! 어떻게 됐어? 진석 네. 내일 학원 가서 포트폴리오 좀 보려고요. 팀장 그래. 좋아. 모두 수고!회의 끝나고 사람들, 흩어진다. 진석, 핸드폰 벨 울린다. 진석 네. 금주 (E) (화가 나서) 당신 뭐예요? 왜 약속 안 지켜요? 진석 (놀라) 정금주씨? 24. 진석집 진경과 진석, 진석모 앉아있다. 진경 미쳤어? 내가 왜 고소를 취하해? 진석 반지, 돌려 받았잖아? 진경 그런 기집앤, 콩밥 좀 먹어야 정신차려! 진석 누나! 진경 너 제 정신이야? 편들걸 편들어야지. 진석 잊어 버렸어? 엄마, 다시 걸을수 있게된 거 어쨌든 그 여자 덕분이야. 진경 그건 그거고 도둑질은 범죄야. 진석 이번 한 번만 봐줘. 다신 그런 짓 안한대. 진경 진석아! 진경모 고소 취하해라. 진경 엄마까지 대체 왜들 그래? 동정할게 따로 있지. 진경모 정말 불쌍한 애다. 아버지가 죽으면서 빚만 잔뜩 남겼어. 진경 참 내! 아버지 빚을 왜 딸이 갚어? 진경모 너 같으면 꿈도 못 꿀 일이겠지. 진경 엄마! 진경모 죽은 아버지, 욕 먹는거 싫다고 그 빚을 지가 갚고 있다. 모자라도 한참 모자른 앤가 부다. 진석 ! 진경모, 일어나 절뚝거리며 들어간다. 25. 경찰서앞 금주와 진석, 걸어나오고 있다.
진석 증거가 없어서 형사상으로도 문제는 없대요. 금주 (싸늘한) 진석 설렁탕이라도 한그릇 먹고 갈래요? 금주 (화가 나) 생각해 보니까 내가 불쌍해요? 한 대 치고 약 발라 주는 거예 요? 진석 어쩔수가 없었어요. 금주 그만 가 볼게요. 진석 (막아서며) 금주씨. 금주, 무시하고 확 지나치는데 책이 떨어진다. @@ 디자인학원 로고가 붙은 책이다. 진석 (금주 디자인 책 주워주며) 이 학원 다녀요? 금주 왜요? 진석 친구놈이 하는 학원이예요. 금주, 인사 꾸벅하고 돌아서 간다. 진석, 뒷모습 바라본다. 26. 디자인 학원 (다른날) 금주와 학생들, 수업을 듣고 있다. 태일 색채 계획을 미리 세우지 않은 패키지는 실패할 확률이 높습니다. 사전 에 소비자 반응 테스트를 실시해야 안정된 패키지 작업을 할 수가 있는 거죠. 27. 학원 진석, 사무실에 앉아 캔 음료를 마시고 있다. 유리문 너머로 학생들이 우르르 빠져 나가는 모습 보인다. 그 중에 금주 모습 보인다. 진석, 금주가 나가는 모습을 바라본다. 태일, 들어온다. 태일 많이 기다렸냐? 진석 저, 여자 여기 다니지 얼마나 됐어? 태일 정금주? 1년 됐어. 진석 그래? 태일 안 그래두 정 금주 추천할려구 했다. 진도가 제일 빨라. 하나 가르치면 다섯 개 이상은 척척 해내. 진석 경력은? 태일 실력은 빵빵하지. 일러스트도 잘하고 포토샵도 아주 뛰어나. 진석 왜 취업 안 시켜? 태일 대기업 보내면 꼭 면접에서 떨어 트리대. 그깟 졸업장이 뭐 대수라고! 검정고시 성적은 우수해! 진석, 바라본다. 태일 애는 정말 쓸만한데 좀 안됐어. 서울 올라와 별별 아르바이트를 다하는 것 같더라고… 진석 ! 태일 (서가에 꽂힌 포트폴리오를 꺼내 주며) 포트폴리오야. 진석, 한 장씩 스케치북을 펼쳐본다. 진석의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퍼진다. 태일 바닷가 출신이라 그런지 스케일이 아주 커. 불루 칼라 뽑아내는 것도 예 술이야! 28. 금주방 현관과 실내가 문 하나로 바로 연결된 초라한 단칸방이다. 금주, 밥상을 들고와 바닥에 내려 놓는다. 밥상 위에는 가득 푼 고봉밥과 먹음직스런 된장찌개가 보글보글 끓고 있다. 금주 밥 한 술 푹 떠서 먹는데, 요란한 현관 벨소리 들린다. 금주 (우물거리며) 에이씨. 누구야! 금주 문 열면 진석이다. 금주, 쏘아본다. 금주 이번엔 또 뭐예요? 진석 잠깐 들어가도 되요? 금주 싫어요. 용건만 얘기하세요. 진석 몇 살이예요? 금주 (빈정거리듯) 백 살이요. 진석 고향이 어디예요? 금주 (계속 삐딱선이다.) 달나라요! 진석 다른 가족들은 어디 살아요? 금주 바닷속 용궁에서 토끼 간 먹고 있어요. 됐죠? 금주, 진석 무시하고 들어와 앉아 밥 먹기 시작한다. 진석 정금주씨!금주 나, 뭐 먹을 때 말 시키는 사람, 제일 싫어해요. 진석 밥 좀 줄래요? 어쩌다 보니 점심, 저녁 다 굶었어요. 금주, 어이없어 바라본다. (점프) 공기에 거의 고봉밥이 올라와 있다. 진석, 기막혀 바라본다. 진석 이걸…다…먹으라고요? 금주 난 세상에서 제일 싫은 사람이 밥 쪼금 떠 주는 사람이예요. 죽이고 싶 도록 미워요. 진석, 천천히 젓가락으로 깨작깨작 먹기 시작한다. 금주, 진석의 젓가락 뺏어 밥상에 탁 내려놓고 수저를 쥐어준다. 금주, 시범이라도 보이듯 수저로 밥을 푹푹 떠서 먹는다. 금주 밥은 이렇게 먹는 거예요. 알았어요? 금주, 찌개를 푹푹 떠서 먹는다. 진석, 기세에 눌려 밥을 먹기 시작한다. (점프) 찌그러진 양은 공기(혹은 스탠 공기)의 커피에 모락모락 김이 오른다. 진석, 얼굴 약간 찡그린다. 금주 커피잔 같은거 안 키워요. 그냥 마셔요. 진석 (한 모급 마시며 다시 얼굴 찡그림) 대체 설탕을 얼마나 넣은거죠? 금주 두 숟갈이요. 난, 쓴 커피 못 마셔요. 진석 난 블랙인데… 금주 (커피 그릇 뺏으며) 관둬요. 내가 곱배기로 마실테니… 진석 (다시 뺏으며) 아니…뭐…안 마시겠단 게 아니고… 금주 마시겠단 거예요? 안 마시겠단 거예요? 진석 (한모금 마시며) 나름대로 맛있네요. 금주, 그제서야 씨익 웃는다. 진석 어때요? 생각 있어요? 금주 잘 나가는 회사에서 왜 나같은 앨 쓰겠다는 거죠? 진석 정식사원 아니구 인턴이예요. 금주 월급은요? 진석 정식 사원의 70프로예요. 야근수당은 100프로 줄거구요! 29. 금주집 대문앞 진석과 금주, 나온다. 영식, 저 쪽에서 어슬렁거리며 걸어온다. 영식, 쏘아보듯 두 사람을 바라본다. 금주 (놀라) 언제 왔니? 영식, 누구냐는 식으로 진석을 본다. 금주 (당황) 서교동 김 여사님 아들이야. 영식 왜 또 신고하려구요? 금주 고…고향 동생이예요. 진석 (악수 청하며) 서 진석입니다.영식 됐시다. 영식, 대문 밀고 들어가 버린다. 금주, 진석에게 미안하다. 30. 금주방 금주, 얼굴 표정 편치 않다.
금주 왠 일이니? 영식 밥 있어? 금주 없어. 영식 밥 넉넉하게 하잖아? 금주 그렇게 됐어. 영식 저 새끼 준거야? 금주 말 조심해. 영식 (쪽지 내밀며) 다음 일꺼리야. 금주 이제 그만 할래. 영식 왜? 금주 이제 이런 짓 안하기로 약속했어. 영식 누구랑? 저 새끼랑? 금주 서 진석씨 회사에 적당한 자리가 있대. 내가 진짜 하고 싶었던 일이야. 영식 밸두 없어? 거길 기어 들어가게… 금주 영식아! 영식 저 새끼, 예수 그리스도야? 부처님이야? 지 누나 집 털어간 도둑년한데 일자릴 주게. 금주 꺼져! 영식 저 딴 새낄 믿어? 저 자식, 그냥 호기심에 한번 도와주는 거야. 깔끔한 서울년들만 보다가, 심심하니까 장난 한 번 치고 싶은 거라구! 금주 꺼지라구! 영식, 천천히 문 열고 나간다. 금주, 마음 아프게 바라본다. 31. 유경 화장품 회의실 이 팀장과 수연, 지영이 커피를 마시고 있다. 수연 괜찮은 사람, 뽑았다면서요? 팀장 (흐뭇한 미소) 응. 포트폴리오부터 예사롭지가 않아. 수연 (지영 보며) 서 대리님이 적극 추천하셨대.
지영, 왠지 썩 유쾌하지가 않다. 문 열리고 진석과 금주, 들어온다. 팀장 어서 와요. 금주씨. 같은 방 식구들한테 인사부터 하지. 금주 정금주라고 합니다. 잘 부탁 드리겠습니다. 진석 @@ 디자인 김 태일 원장이 추천한 원생입니다. 그래픽 과정, 오토 캐드 과정 모두 이수했구요. 팀장 수연씨! 수연씨 옆에 자리 마련해 줘. 수연 네. 지영 어느 미대 출신이죠? 금주 (기 죽지 않고) 검정고시 출신인데요. 지영 (기막히다는 듯) 실무 경험은 좀 있나요? 금주 다른 업종에서 일했는데요. 지영 어떤 일이죠? 금주 간병인이요. 지영, 비웃듯 풋하고 웃는다. 금주 (전혀 개의치 않고) 똥 색깔만 봐도 어디가 아픈지 척척 알아내요. 지영, 기막히다. 진석, 그런 금주보며 빙그레 미소 짓는다. 32. 패키지 디자인 팀 모두들 자리에서 열심히 작업중이다. 금주, 캡(뚜껑)이 사각인 에센스 병을 스케치한 디자인 보드 들고 진석 자리로 다가간다. 금주 작업 됐거든요. 진석 용기 캡이 약간 무거워 보이네요. 이렇게 되면 소비자 클레임이 자주 들 어와요. 금주 아! 진석 용기 캡을 라운드 처리해 봐요. 한결 부드러워질 거예요. 금주 아…그렇게 하면 되겠구나. 금주, 자리로 와서 다시 작업을 한다. 진석, 그런 금주를 다정하게 바라본다. 33. 패키지 디자인팀 모두들 퇴근하고 금주 혼자 남아 작업하고 있다. 사무실 한 쪽 구석의 CD 데크에서 음악이 흐르고 있다. 살짝 문 열리고 진석, 들어온다. 금주, 눈치 못 채고 계속 작업한다. 진석, 금주 앞으로 사발면 두 개를 내민다. 금주 언제 왔어요?
진석 배 고프면 일 못한다면서요? 금주 안 그래두 라면 먹구 싶었는데… 진석 힘들지 않아요? 금주 아뇨. 재밌어요. 진석 재밌어요? 금주 이렇게 큰 사무실에서 음악 들으며 일하니까 너무너무 신나요! 천장이 높으니까 음악이 아주 쿵쿵 울려요! 기분 좋아요!
진석, 어린애처럼 기뻐하는 금주의 모습보며 미소를 짓는다. 34. 회의실 팀장, 진석, 금주, 지영, 수연 등이 회의중이다. 금주, 둥그런 에센스 병 디자인이 그려진 보드를 팀장에게 준다. 팀장 이 제품 컨셉좀 설명해줄 수 있나? 금주 기존의 에센스 병들을 보면 좀 답답한 느낌이 들었어요. 그래서 역동 적인 이미지를 만들어 봤어요. 로고 패턴도 블루와 골드로 하모니를 주 고 메인 칼라도 펄감이 살아있는 느낌을 주도록 해 봤어요. 팀장 다른 사람 의견은 어때? 수연 느낌 좋은데요. 기존의 패키지와는 확실히 차별화가 되네요.지영 (차가운) 한 번은 눈에 반짝 띄겠지만 그 이상은 아닐거 같은데요. 진석 아니요. 그렇진 않아요. 블루에는 질리지 않는 편안함이 있습니다. 지영, 뾰루퉁하다. 직원, 들어온다. 직원 서대리님! 급한 전환데요! 진석 지금 회의중이니 조금 이따 받을게요. 직원 저기…어머님이 쓰러지셨대요.
진석, 얼굴 파래지며 나간다. 금주, 멍하니 바라본다. 35. 병원 입원실 진석모, 누워있다. 그 앞에 진경, 진석 서 있다. 진석 피곤할텐데 그만 들어가. 누나! 진경 그래. 나, 정아 학원 가 봐야돼. 36. 병원 로비 진석과 진경, 자판기 커피를 마시고 있다. 약간 떨어진 곳에서 바라보는 금주. 금주, 진석 모르게 얼른 입원실 쪽으로 걸어간다. 37. 입원실 금주, 천천히 들어온다. 진석모, 여전히 잠들어 있다. 금주, 진석모 침대앞 의자에 앉는다. 금주 (혼잣말)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정말 죄송해요. (진석모 손 잡으며) 왜 운동 게을리 하셨어요? 금주, 백에서 주황색 고무공(씬 1의 고무공)을 꺼낸다. 진석모의 손에 가만이 고무공을 쥐어준다. 금주 손 운동도 빼먹지 말고 하세요. 금주, 나가려다가 다시 와 앉는다. 금주 아프지 마시구요. 금주, 나간다. 천천히 눈을 뜨는 진석모, 손에 쥐어진 주황색 고무공을 본다. 진석모,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짓는다. 38. 병원 마당 진석, 병원으로 들어가는 길이다. 금주, 반대편 쪽으로 저만치 가고 있다. 진석 (놀라 보며) 금주씨. 금주, 그저 손 흔들어 보인다. 금주, 달려간다. 진석, 금주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39. 진석집 거실
벨소리 들린다. 진석 문 열면 금주다.
진석 (놀라) 왠 일이예요? 금주 잠깐 들어가도 되요? 40. 진석모 방 예전처럼 나무 조각 맞추기를 하고있는 금주와 진석모. 금주 (한 조각 맞추며) 저 많이 욕하셨죠? 진석모 (밉지않게 흘겨보며) 왜, 귀가 가려웠어? 금주 정말 죄송해요. 진석모 그렇게 정 들게 해놓고 훌쩍 떠나가 버리면 어떡해? 금주, 겸연쩍은 미소 짓는다. 진석모 이제 다신 그런 짓 하지 마. 아무리 사는게 힘들어도 남의 물건 탐내는 건, 나쁜 짓이야. 금주 이제 다신 안 그럴게요. 진석모 아버지가 알면 얼마나 마음 아프시겠어? 금주 네. 진석모 아버지 제사가 겨울이라 그러지 않았나? 금주 네. 이달 말이예요. 진석모 또 마음 쓸쓸해 지겠구먼. 금주 이젠 많이 괜찮아졌어요. 진석모 참, 찾는다는 사람은 어떻게 됐어? 금주 아직 못 찾았어요. 진석모 서울이 좀 넓어야지. 금주 그러게요. 진석모 그 사람 찾아서 어쩌려구? 금주 뭘 어쩌겠단 생각은 없어요. 우리 아빠를 도와준 사람이니까 그냥 꼭 한 번 만나보고 싶어요. 고맙단 얘기도 하고 싶구요. 진석모, 웃으며 고개 끄덕끄덕한다. 금주 아무리 귀찮아도 꼭 산책 하세요. 어머니처럼 혈관이 좁은 분들은 운동 많이 하셔야 되요.
진석모 알았어. 금주 생선을 통 안 드셨던데…그럼 안되요. 제가 얘기 했잖아요. 흰 살 생선 많이 드셔야 한다구요. 진석모 (인자하게 웃으며) 알아. 알아. 또 잔소리!
41. 진석집 거실 금주와 진석, 커피를 마시고 있다. 금주, 백에서 종이를 꺼낸다. 금주 맨발로 걸으면 혈액순환이 아주 잘되거든요. 서울시내에 지압공원이 몇 군데 있어요. 여기, 약도하고 주소예요. 가끔 어머니 모시고 가서 신발벗 고 걸으세요. 진석, 종이를 받는다. 금주, 이번엔 야광단추를 몇 개 꺼낸다.
금주 불 좀 꺼 볼래요? 진석 네? 금주, 일어서서 스위치 탁 내린다. 어둠속에서 파랗게 빛나는 야광단추. 금주 야광 단추예요. 잠옷에 달아 드리세요. 밤에 화장실 가실 때 아주 좋아 요. 금주, 다시 불을 켠다. 진석 (감동해 물끄러미 바라보며) 고마워요. 금주 (웃으며) 실은 이거 새거, 아니예요. 아빠 옷에 달아드렸던 거예요. 진석 아버지도 불편하셨어요? 금주 한쪽에 마비가 오고나서 밤에 자주 넘어졌어요. 그래서 이 단추를 개발 했어요. 진석 (금주의 손에서 단추를 받아들고) 금주씨, 참 착한 딸이네요. 진석, 단추를 만지작거린다.
42. 금주집 마당 금주, 옥상 위 마당에 다라이 펼쳐놓고 발로 밟으며 이불빨래를 하고 있다. 진석, 불쑥 나타난다. 진석 날도 좋은데 뭐해요?
금주, 놀라 바라본다. 진석 놀러 안 갈래요? 금주 빨래하잖아요. 진석 그러니까 이것만 끝내면 시간 있다는 거죠? 진석, 갑자기 바지를 걷고 양말을 벗더니 빨래 다라이 안으로 들어간다. 이불을 밟으며 빨래를 하는 진석. 금주, 기막혀 바라본다. 43. 금주집 앞 영식, 금주집으로 들어 가려는데 진석의 차가 서 있다. 영식, ‘에이, 씨’하며 발로 힘껏 타이어를 찬다. 영식, 돌아서 걸어간다. 걷다가 문득 멈칫해 고개 갸웃하며 뒤돌아서 진석의 차를 본다. 클로즈업되는 차 번호판. 서울 XX-XXXX 놀란 영식, 들고있던 사과봉지를 떨어 트린다. 데굴데굴 구르는 빨간 사과들.
44. 인터 컷 네모난 양은 도시락 통이 보인다. 바닷물 위로 둥둥 떠내려가는 도시락. 45. 금주집 앞
영식, 힘없이 돌아서 걸어간다. 바닥에 그대로 떨어져 있는 사과 알들. 46. 국도 금주, 보조석에 앉아 사과를 껍질째 아삭아삭 먹고 있다. 진석, 운전 중이다. 진석 가고 싶은데 있으면 빨리 말해봐요! 금주 하! 거 참…뭐 먹을땐 말 시키지 말라 그랬죠! 진석 그만 좀 먹고 얘기해 봐요! 어디 가 보고 싶어요? 금주 없어요. 진석 어서요! 금주 좀 먼 곳인데…47. 바닷가 푸른 바다를 끼고 따라가는 강원도 7번 국도. 진석과 금주, 해안도로를 달리고 있다. 48. 바닷가 바닷가 근처에 허름한 집 한 채가 있다. 마당엔 노란색, 보라색 소국 등 소박한 들꽃이 군데군데 심어져 있다. 그 앞으로 천천히 들어오는 진석의 차. 두 사람, 차에서 내린다. 진석 누구 집이예요?
금주 (장난) 기억 안 나요? 우리 부모님, 용궁에 있다 그랬잖아요? 49. 금주 시골집 방안 초라하지만 그런대로 깔끔한 방이다. 앉은뱅이 책상 책꽂이엔 몇 권의 책들이 꽂혀있고 책상위엔 금주와 아버지의 작은 사진 액자가 놓여있다. 활짝 웃는 두 부녀의 사진이 유난히 다정해 보인다. 책상위 벽에는 어린 금주가 크레용으로 그린 그림이 액자로 걸려있다. 푸른 바다위에 고기잡이배를 타고있는 아버지의 모습이다. 진석 정말 아늑한 보금자리네요. 금주 완벽했죠. 진석 (사진 보며) 이상하다. 아버지 얼굴이 낯익어요. 금주 울 아빠, 그런 말 많이 들으세요. 진석 그런가? (바다 그림보며) 금주씨가 그린 거예요? 금주 초등학교 3학년 때요. 진석 와, 느낌 좋다. 금주 이래뵈도 큰 상 받은 거예요. 울 아빠가 제일 좋아했던 그림이예요. (점프) 스탠 공기잔에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커피가 보인다. 진석, 마신다. 금주 아빠랑 배를 타고 고기 잡으러 간 적이 있었어요. 따로 커피잔을 챙겨가 기 귀찮아 밥그릇에다 커피를 마셨어요. 처음엔 좀 그랬는데 나중엔 이 렇게 먹어야 커피가 맛있어요. 진석, 미소 띤 얼굴로 바라본다.
금주 2년 전에 돌아 가셨어요. 제일 친한 친구한테 사기 당해 배도 날아가 고 땅도 날아가고…그 때 깨달었어요. 세상은 정직하게 살면 바보되는 곳이란걸. 짐 싸서 바로 서울로 올라갔죠! 그담엔…(웃으며) 에이, 말 못 해요. 진석, 애틋하게 금주를 바라본다.
금주 방이 좀 춥죠? 진석 괜찮아요. (커피 공기잔 아래에 손대며) 여기 대 봐요. 따듯하니까 정말 좋은데요. (손 내밀며) 자, 내 손 한번 만져봐요! 금주 싫어요. 진석 (공기 내려놓고 손 내밀며) 자! 어서요! 금주, 진석의 손바닥을 살짝 만져봤다가 다시 손 뺀다. 진석 (그 손 잡으며) 금주씨. 무거운 짐 있으면 나도 같이 들어줄게요. 금주 그러지 않아도 되요. 진석 내가 그러고 싶어요. 금주 ! 50. 해안도로 진석과 금주, 다시 서울로 오는 길이다. 금주 아! 배 고파! 진석 거기 열어봐요! 금주, 앞쪽의 데크 열면 노란색 작은 쵸코렛 바가 가득 담긴 작은 유리병이 나온다.
금주 (입이 크게 벌어져) 이거, 나 주는 거예요? 진석 그럼요. 금주씨 주려고 일부러 산 거예요. 금주, 흐뭇해 유리병을 끌어 안는다. 진석 다음주 스케쥴은 뭐죠? 금주 1주일 내내 야근이죠. 뭐! 진석 야근 끝나면 과천 미술관에 갈래요? 금주 싫어요. 진석 왜요? 금주 왜 내가 애인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죠? 진석 없으니까! 금주 운명 같은 거 믿어본 적 있어요? 진석 글쎄…뭐…별루요…금주씬? 금주 꼭 한 번은 믿어보고 싶어요. 진석 뭐, 천생연분이라도 만나고 싶은 모양이죠? 금주 (미소) 네. 51. 디자인팀 금주, 혼자 야근하며 열심히 작업중이다. 금주, 서랍에서 진석이 준 초코렛 든 유리병을 꺼낸다.하나 까서 입에 넣으며 미소를 짓는다. 가만이 유리병을 쓰다듬어보는 금주. 문 열리고 영식, 불쑥 들어온다. 영식 열심히네. 혼자서 야근도 하고… 금주 (놀라며) 어떻게 들어…왔어? 영식 몰랐어? 나, 열쇠 따는 거 전문이잖아. 금주 영식아! 영식 왜, 쪽 팔려? 내가 이런데 오니까… 금주 왜 또 그래? 영식 내일, 큰 껀 있어. 이번 한번만 도와줘. 금주 싫어. 영식 마지막이야. 금주 나가줄래? 영식 이런 데 다니니까 나같은 놈은 사람같지 않지? 하긴, 아저씬 금주씨가 이런 회사 다니길 원했었지. 근데 어떡하냐? 금주씨, 여기 안 어울려. 금주, 쏘아본다.영식, 역시 매섭게 바라본다. 52. 창고 장물애비의 창고에 비싼 물건들이 가득 놓여있다. 남자, 돈을 세서 영식에게 넘긴다. 영식, 흐뭇한 미소. 53. 진석방 진석, 옷 갈아입고 있다. 핸드폰 울린다. 진석 네. 진경 (E) 얘, 티브이 좀 켜 봐. 진석 왜? 진경 (E) 아무래도 그것들 짓인거 같아. 진석, TV를 켠다. 티브이에서 뉴스가 흐르고 있다. 화면에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고있는 영식의 얼굴이 보인다. 진석, 표정 굳어진다. 아나운서 어제 오후 다섯시 경 마포구 공덕동에 최 모씨가 침입해 집안에 있던 귀 금속 및 현금 팔백만원을 훔쳐 달아났습니다. 경찰은 추적 끝에 하루만 에 최 모씨를 체포했으며 도주한 일행을 찾고 있습니다. 도주한 범인은 20대 여성으로 서울 근교에 은신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진석, 얼굴이 점차 굳어진다. 54. 회의실 금주, 통화중이고 진석 들어온다. 금주 돈 부쳤어요. 백 삼십만원이요. 이자는 다음 번에 드릴게요. 금주, 전화 끊는다. 진석 (차가운) 무슨 비밀전화라도 되요? 회의실에서 몰래 하게. 금주 몰래 한거 아닌데… 진석, 냉랭한 얼굴로 바라본다.
진석 물어볼 말이 있는데 정직하게 대답해 줄래요? 금주 … 진석 최영식인가 하는 그 친구, 구속됐어요. 금주 … 진석 공범이 있다고 하더군요. 금주, 입술 꽉 깨문다. 진석 어떻게 된거예요? 금주 뭐가요? 진석 금주씨! 금주 마음대로 생각하세요. 진석 대체 왜 그래요? 돈 필요해요? 금주, 화가 나 바라본다. 진석 돈 필요하면 나한테 말해! 남의 것 탐내지 말고! 금주, 수치심으로 벌벌 떨며 바라본다. 55. 금주방 금주, 대충 짐을 꾸린다. 금주, 서랍장을 열어 아버지 혼자 환하게 웃고있는 사진 액자를 꺼낸다.
금주 (사진 보며) 아빠. 나, 이제 그 사람 그만 찾을래. 서울 싫어졌어. 서울사 람은 더 싫어졌어. 사진액자를 짐가방 안에 넣는다. 56. 경찰서
진석, 형사와 얘기중이다. 형사 곧 성동 구치소로 이송될 거예요. 진석 잠깐이면 됩니다. 57. 경찰서 한 켠 영식, 앉아있다. 진석 나, 누군지 알죠? 영식, 티껍다는 듯 바라본다. 진석 물어볼 게 있어요. 영식, 외면하기 시작한다. 진석 그날…거기…금주도 있었어요? 영식 (차갑게) 그래서 너같은 먹물 새끼들은 안된다는 거야! 진석, 바라본다. 영식 겉으론 좋아하는 척 하면서 뒷구멍으론 사람을 캐고다녀? 진석, 멍하니 바라본다. 영식 내가 사정사정 했는데 금주씨, 싫다고 했어. 알아? 진석, 멍하니 바라본다. 영식 너같은 자식들, 진짜 오바이트 쏠려!
58. 영동 고속도로 주문진 이정표 보인다. 진석, 착잡한 얼굴로 운전을 하고 있다. 59. 바닷가 금주, 바닷가에 혼자 앉아있다. 천천히 다가오는 진석.금주, 일어나 가 버린다. 60. 금주 시골집 금주와 진석 앉아있다. 진석 미안해요.
금주 뭐가요? 사람 취급 안 한거요? 도둑으로 몰아 부친거요? 진석 금주씨. 금주 서진석씨한테 도둑질은 얼마나 끔찍한 범죄겠어요? 난요. 당신하고 달 라요. 그동안 남의 물건 슬쩍 하면서 별로 죄의식, 없었어요. 그저 잘먹 고 잘사는 사람들 돈, 잠시만 빌려쓰는 거라고 아주 쉽게 생각했어요. 진석 … 금주 나도 영식이 따라 한 껀 하고 싶었어요. 그 놈의 지긋지긋한 빚 좀 정리 하고 싶어서요. 그런데…그럴 수가 없었어요. 진석씨랑 약속 했잖아요. 다신 이런 짓 안하기로. 진석, 금주의 손을 잡는다. 금주, 손을 뿌리친다. 금주 안녕히 가세요. 진석 금주씨. 내가 잘못했어요. 이러지 말고 같이 올라가요. 금주 싫어요.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당신은 날 끊임없이 의심할거잖아요.
진석, 미안해 바라본다. 61. 금주집 앞 진석의 차, 서서히 출발한다. 그제서야 방문 열고 밖으로 나오는 금주. 왠지 서운하다. 금주, 집 앞에 앉아있다. 무릎세워 얼굴 파묻고 오래도록 앉아있는 금주. 주위가 어둑어둑해진다. 62. 바닷가 금주, 어두워진 바닷가를 혼자 걷고 있다. 바닷가 저 쪽에 진석의 차가 그대로 서 있다. 차 발견하고 놀라는 금주. 진석, 차에서 내려 천천히 걸어온다. 금주 (놀라) 안 올라 갔어요? 진석 진심으로 사과할게요. 정말 미안해요. 금주 … 진석 나도 몰랐어요. 내가 이렇게 옹졸한 놈인줄…미안해요. 금주씨. 금주 나도 진석씨처럼 한번은 용서해 줄게요. 두 번은 싫어요. 진석 고마워요. 금주 어두운데서 혼자 뭐하고 있었어요? 진석 혼자 있지 않았어요. (야광단추 꺼내 손바닥에 보이며) 같이 있었어요.
어두운 바닷가에서 푸르게 빛나는 단추. 금주, 뭉클해 바라본다. 진석, 금주를 안는다. 63. 패키지 디자인 팀 사람들 일하고 있다. 문 열리고 금주, 들어온다. 팀장 (반가워) 정금주씨! 어떻게 된거야? 금주 죄송해요. 팀장님. 잠깐 가출했었어요. 지영 여기가 무슨 놀이턴줄 알아요? 금주 (씩씩하게) 그런줄 알았어요. 이제부터 일터루 생각하려구요. 지영, 기가 막혀 바라본다. 진석, 밝게 웃는다. 64. 패키지 디자인 팀 (몽타쥬) 디자인팀의 바쁜 일상이 보여준다. 팀장과 진석, 테이블 위에 한가득 놓인 화장품 용기들을 꼼꼼하게 검토하며 토론중이다. 지영, 컴퓨터로 패키지 디자인 작업을 하고 있다. 금주, 스케치북에 용기 디자인을 그린다. 수연, 디자인관련 서적을 잔뜩 품에 안고 들어온다. 65. 거리
노란 은행잎이 물든 거리. 진석과 금주, 걷고 있다.
진석 같이 가고 싶은데가 있어요.
금주 어딘데요? 진석, 큰길가 옆에 있는 화려한 보석가게를 가리킨다. 진석 귀고리 하나 사주고 싶어서요. 금주 프로포즈예요? 진석 비슷해요. 금주 왜 자꾸 내가 애인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죠? 진석 없잖아요! 금주 나…실은 찾고 싶은 사람, 있어요. 진석 첫사랑? 금주, 웃는다. 진석 내가 제일 잘하는 게 뭔 줄 알아요? 기다리는 거예요. 금주 하나두 안 멋있어요. 진석 귀고리 받아 줬으면 좋겠어요. 금주 미안해요. 나…받을 수 없어요. 진석 (실망해) 금주씨. 금주 나 이만 가 볼게요. 가 볼데가 있어요. 진석, 많이 실망한 표정이다. 금주, 앞서서 걸어가면 진석, 안타까워 뒷모습 바라본다.
66. 구치소 면회실 수의를 입은 영식, 작은 유리 창구 문을 사이에 두고 금주와 앉아있다. 영식 (틱틱거리며) 왠 일이야? 금주 겨울 내복좀 사 왔어. 영식 됐어. 금주 까불지 말고. 영식 빨리 가! 나, 졸려! 잘거야! 금주 (통장 보여주며) 첫 월급이야. 니 이름으로 했어. 영식 사람 열 받게 하지 말고 어서 가. 금주 알았어. 그만 가 볼게. 몸 조심해. 금주, 뒤돌아서 간다. 영식, 안타깝게 바라본다. 영식 (뒷모습에 대고) 잠깐만! 할 말이 있어. 금주 ? 영식 금주씨가 찾고있는 남자 말야. 금주 (놀라움으로) 뭐? 영식 내가 아는 사람이야. 67. 거리 헉헉대며 달려가는 금주.
금주 (E) 어떻게…그럴 수가 있어? 영식 (E) 그동안 나도 정말 힘들었어. 미안해. 68. 금주 시골집 (회상) 얼굴 한쪽이 멍든 금주 아버지 모습 보인다. 금주, 아버지의 얼굴에 연고를 발라주고 있다. 한쪽 옆에는 간단한 술상이 차려져 있고 영식도 앉아 있다. 금주 이게 뭐야! 대체 어떤 놈이 아빠 얼굴을 이렇게 만들었어? 아버지 아, 글쎄. 넘어진거라니까. 영식 아저씨! 솔직하게 말씀하세요. 그거, 넘어진 상처 아니예요. 아버지 (소주 한잔 따라 달게 마신후) 오늘 아주 기분이 최고다! 금주 (화가 나) 아빠! 정말 말 안할거야? 서울가서 무슨 일 있었어? 아버지 서울내기들, 깍쟁이라지만 좋은 사람도 아주 많아. 영식 아저씨. 어서 말씀해 보세요. 1센티만 더 다쳤으면 장님 될 뻔 했다구요. 아버지 그래 맞다. 나, 오늘 장님 될 뻔 했다. 근데 아주 좋은 사람 만나서 도움 도 받고 생선 다 팔았다. 쨔잔! 아버지, 빈 도시락 통을 들어 보인다. 금주 이게 뭐예요? 아버지 우리 금주 선물! 아버지, 열어 보이면 빈 도시락에 종이가 한 장 들어있다. 금주 종이 꺼내면 서울 XX-XXXX 차 번호가 적혀있다. 금주 에! 이게 뭐야? 차 번호잖아. 아버지 사람, 아주 진국이야. 우리 금주 신랑감 삼았으면 딱 좋을 청년이야! 영식, 얼굴 일그러진다. 금주 서울 남자가 뭐 나 좋다고 하나? 아버지 그래서 다음번엔 싱싱한 생선 갖다주고 좀 더 친해 지려고… 금주 말도 안돼! 아버지 안되긴! 사람 인연은 다 그렇게 만들어 가는거야. 아주 작은 것부터 차 곡차곡 쌓아가는 거라구! 영식 금주씨가 왜 서울에 가요? 아는 사람 아무도 없는데 가서 어떻게 살라 구요? 아버지 영식아. (벽에 걸린 씬 49의 바다 그림 가져오며) 우리 금주가 도지사 상 은거야. 미술학원 한번 다닌 적 없었어. 우리 딸네미, 이 동네서 썩히긴 너무 아까워. 영식 (화가 나) 뭐가 어때서요? 여기두 괜찮은 사람, 얼마나 많은데요. 아버지 아니야. 나, 우리 금주 서울가서 좋은데 취직하고 착한 사람 만나 결혼하 는 거 꼭 보고 싶어. 영식, 화가 나 소주를 원샷한다. 69. 금주 시골집 비어있는 방. 살며시 문 열리고 영식 들어온다. 책상 위에 도시락이 얌전히 놓여있다. 영식, 도시락 들고 방을 빠져 나온다. 70. 바다 영식, 도시락을 들고 바다 앞에 서 있다. 도시락 열고 종이를 꺼낸다. 영식, 그 종이는 손에 들고 도시락은 바다로 흘려 보낸다. 멀리멀리 흘러가는 도시락. 영식, 입 앙다물고 손에 든 종이를 바라본다. 71. 거리(현재) 금주, 그 종이 들고 숨가쁘게 달려가고 있다. 72. 진석 아파트 앞 공터 (과거) 트럭에 생선 실은채 팔고있는 아버지.
아버지 자! 왔어요! 왔어! 강원도 주문진에서 생선이 왔어요! 어서들 와서 구 경 하세요! 아주 싱싱한 생물이예요. 다른 트럭 한 대가 서서히 가까이 온다. 트럭에서 껄렁해 보이는 두 명의 사내가 내린다. 남자1 당신, 뭐야? 어디서 굴러왔어? 아버지 주문진에서 왔어요. 물건은 최상품이예요. 남자2 촌 아저씨가 뭘 모르시네. 여긴 우리 구역이야. 아버지 이번 한 번만 봐 주세요. 남자1 서울말 못 알아 들어? 꺼지라구! 아버지 죄송합니다. 딱 한시간만 팔다 가겠습니다. 남자2 이 새끼가 대낮부터 혈압 오르게 하네! 당장 못 치워?
두 명의 남자, 트럭의 스티로폼 생선상자를 밖으로 마구 던진다. 아버지 아이구. 이거 왜 이러십니까? 한 번만 봐 주세요. 남자1 (상자를 발로 짓이기며) 그러니까 말로 할 때 새겨 들어야지. 아버지 (만류하며) 제발 이러지들 마세요!
남자1, 만류하는 아버지를 한 대 퍽 친다. 아버지 다시 일어서면 남자2 다시 세게 친다. 아버지, 악착같이 덤벼들면 남자 2명, 아버지를 거의 짓이겨 놓는다. 그것도 모자라 생선 상자들을 발로 짓뭉갠다. 스티로폼이 부서져 엉망이 되는 생선상자. 빵빵 하는 클랙션 소리 들린다. 진석의 차다. 진석, 차에서 내린다. 남자들, 얼른 트럭 몰고 달아나 버린다.
진석 (달려와) 아저씨. 괜찮으세요? 아버지. 얼굴이 완전히 멍 투성이다. 진석, 손수건 꺼내 아버지의 피묻은 얼굴을 닦아준다.
아버지 고맙습니다. 진석 큰일 날 뻔 했어요. 아버지 이제 괜찮습니다. 바쁘실텐데 어서 가 보세요. 아버지, 아픈 몸으로도 주섬주섬 생선상자를 챙긴다. 진석, 안스럽게 바라보다가 자기 차로 간다. 진석, 트렁크를 열어 청테이프를 꺼내 들고온다. 진석, 입으로 청테이프 끊어 부서진 스티로폼 상자를 붙인다. 아버지 아이구. 이거 고맙습니다. 진석 힘드시죠? 아버지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진석 이거 한짝만 주세요. 아버지 다 부서졌는데요. 진석 상자만 부서졌지, 생선은 멀쩡하잖아요. 아버지 그래도… 진석 물건은 믿을만 한거죠? 아버지 도와주신 것만도 감사합니다. 안 사주셔도 됩니다. 진석 그러지말고 다섯짝 주세요. 회사 사람들한테 선물 하게요. 아버지 네? 진석 저희 직원들, 다이어트한다고 고기 대신 생선만 먹거든요. 아버지 선생님. 정말 안 그러셔도 됩니다.
진석, 말없이 청테이프로 스티로폼 상자를 붙인다. 아버지, 뭉클해져서 바라본다. 진석 (청테이프 붙여진 상자 다섯짝 포개며) 이렇게 다섯짝 가져갈게요. (돈을 주고) 그럼 수고하십시오. 아버지, 고마워 어쩔줄을 모른다. 진석 (돌아보며) 기운 내시구요! 진석의 차, 서서히 출발한다. 아버지, 90도 각도로 인사한다. 그러다 허둥지둥 연필 꺼내 종이에 진석의 차 번호를 적는다. 그리고 운전석에 있던 빈 도시락 꺼내 살며시 넣는다. 도시락 통 보며 씨익 미소를 짓는 아버지. 73. 거리 금주, 차번호가 쓰인 종이 들고 헉헉대며 달려가고 있다. 저 앞에 걸어가고 있는 진석 보인다. 금주, 더욱 힘을 내서 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