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四書三經(사서삼경)의 공부 순서와 구성 체계
들어가는 말
유학경전공부의 필독서인 四書三經체계가 완성된 것은 南宋時代 朱熹(이하 朱子)에 의해서이다. 朱子는 『禮記』 편명의 하나였던 中庸편과 大學편을 떼어내 각각 한 권의 책으로 엮고, 두 책의 서문에 그 이유를 밝혔는데 공히 “맹자가 돌아가신 뒤에 도의 전함을 잃으면서 이단의 말이 날로 새롭고 달로 성하면서 老佛의 도가 나오는데 이르러서는 곧 더욱 이치에 가까워 크게 참을 어지럽혔기 때문에 이를 바로잡고, 국가가 백성을 교화하고 배우는 자가 몸을 닦고 사람을 다스리는 방법에 도움이 되고자 했노라.”는 취지를 폈다. 그리고 주자는 사사삼경에 性理學的 관점에서 주석을 달았는데, 정쟁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리면서 『서경』에 주석을 달 여유가 없게 되자 제자인 蔡沈에게 그 주석을 맡기고 세상을 마친다.
우리나라에는 고려 말기에 성리학이 전해지면서 조선조의 유학은 기본적으로 주자를 필두로 한 성리학자들의 주석에 의거한 것이었고, 조선후기에 이르러 宋時烈같은 학자는 주자의 해석을 벗어난 학설을 ‘斯文亂賊’이라 하면서 정치탄압의 한 명분으로 삼기도 했다. 현대사회 들어서도 우리나라에서 유학을 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주자의 해석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이제 이를 벗어나 다양한 시각으로 경전을 해석해 볼 필요가 있다. 일단은 유학공부의 공통이 되는 사서삼경을 공맹 당시의 원론적 입장을 살펴보면서 漢 唐시기의 鄭玄과 孔穎達의 해석과 송대 성리학자들의 해석과 아울러 현대적 관점에서 재조명할 필요가 있다. 『家苑 유학경전 易解 총서』를 펴내는 이유이기도 하다.
특히 여기에 『대학』과 『중용』을 해석함에 ‘正義本’과 ‘章句本’을 나란히 놓고 필요에 따라 家苑의 ‘講說’를 덧붙인 까닭은 ‘성리학적 관점’이 어떤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며 시대에 따른 학문적 해석을 재조명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중용』과 『대학』은 간결한 문장으로 공자의 통치철학이 담긴 『周易』 十翼傳과 體用表裏를 이루기 때문에 그 중요성을 강조하여 『庸學』이라고도 한다. 여기에 펼쳐진 『庸學』의 재조명 과정을 통해 유학이 이 시대를 바르게 이끌어가는 철학으로 자리매김하는데 큰 도움이 되기를 기대한다.
공부 순서와 구성 체계
四書의 공부 순서에 관련해 주자는 「讀中庸法」에서 『대학』 → 『논어』 → 『맹자』 → 『중용』 순으로 권유하고 있다. 이는 이해의 수월성 측면에서 권유한 내용이고, 조선시대에 성립된 사서삼경의 공부 순서는 대체로 『대학』 → 『중용』 → 『맹자』 → 『논어』 → 『시경』 → 『서경』 → 『주역』이다.
옛날과 달리 요즘은 유학체계에 의한 교육과정이 아니므로 이 순서를 지켜 공부하기는 어렵다. 유학과 공자와 관련한 이해가 전제되어야 하므로 먼저 『논어』를 공부한 뒤에 나머지 순서에 의거해 공부하는 편이 낫다. 四書의 경우 그래야만이 孔子와 曾子와 子思와 孟子로 이어지는 도맥을 일목요연하게 살펴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주역』은 萬學의 帝王인 만큼 앞의 공부가 전제되지 않고는 이해하기가 어렵다는 점을 강조한다.
儒學經典은 性과 善과 道의 실천 학문
유학의 목표는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성품을 그대로 이어서 善을 행하여 세상에 道를 밝히는 것이다. 그 내용이 周易 계사상전 제5장에 있는 “一陰一陽之謂道니 繼之者 善也요 成之者 性也라(한 번 음하고 한 번 양함을 도라고 하니, 잇는 것은 선이고 이루는 것은 성이라)”이다. 敎와 學이라는 글자에 표현되었듯이, 가르치고 배우는 과정은 모두 爻와 效와 孝이고, 그것은 인간관계 속에서 구현되므로 관계의 사귐(交)을 중시하며, 이것을 구체화한 것이 人倫의 도이다. 이를 익혀 깨달으며(覺) 늙어가는(老) 과정이 유학의 인간관이며 철학관이며, 경전의 가르침이다. 天地의 體用인 德業이 성대한 덕업(盛德大業)이라면, 聖人은 天地의 德業을 본받아 이를 높이고 넓히는 ‘崇德廣業’하시는 분이고, 君子는 성인을 따라 덕에 나아가고 맡은바 일을 닦는 이른바 ‘進德修業’할 따름이다.
1. 孔子의 말씀을 체계적으로 정리한『論語』
‘반부논어(半部論語)’라는 말이 있다. 北宋의 개국공신으로 재상을 지낸 조보(趙普)가 태종(太宗)에게 논어한 권을 두고 “반 권으로 천하를 평정하는 것을 도왔고, 이제 반 권으로 폐하가 태평성대를 이루도록 보필하겠다(昔以其半輔太祖定天下하고 今欲以其半輔陛下致太平이리라).”고 한 말에서 나왔다. 『논어』는 읽는 이의 인격수양과 자기계발을 위한 지침서로써 오늘날까지 널리 읽히는 글이다. 글이 단문이라 쉽게 읽힌다는 측면이 있어 애독되는 듯하다. 하지만 문장의 전체 구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면 『논어』를 공부했다고 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程子는 “『논어』를 다 읽고 나서 전혀 아무런 일이 없는 자도 있고, 다 읽은 뒤에 그 중 한 두 구절을 얻어 좋아하는 자도 있으며, 다 읽고 나서 알고는 좋아하는 자가 있으며, 다 읽은 뒤에는 자신도 모르게 바로 손발을 들썩이며 춤을 추는 자가 있느니라(讀論語에 有讀了全然無事者하고 有讀了後其中得一兩句喜者하며 有讀了後知好之者하며 有讀了後直有不知手之舞之足之蹈之者라).”고 했다. ‘三不亦乎’로 시작해 ‘三不知三無也’로 마치는 『논어』는 ‘사람으로서 군자가 되기 위해서는 공부를 해야 하지 않겠는가?’로 권유하여 ‘공부하여 앎이 없다면 군자가 되지 못하고 세상을 經綸하지 못함’을 분명히 했다.
이를 이어받아 맹자는 양혜왕의 ‘亦將有以利吾國乎(또한 인의만이 있을 뿐입니다.)’의 물음에 ‘亦有仁義而已矣(또한 인의만이 있을 뿐입니다.)’로 답하고, 덧붙여 ‘未有仁而遺其親者也며 未有義而後其君者也니이다(또한 인이 있으면서 그 어버이를 버릴 자 있지 아니하며, 의가 있으면서 그 인군을 뒤에 할 자 있지 않나이다.)’라고 하면서 세상을 경륜하는 군자는 仁義를 바탕으로 삼아야 함을 명시했다.
참고로 공자가 지은 『주역』의 십익전(十翼傳) 가운데 384爻에 붙인 小象傳에서 두 군데, 내괘에서 외괘로 나가는 세 번째 효를 제외하고 모두 ‘決定辭 也’를 붙였다. ‘執語 矣’와 ‘語隱 乎’로 마치는 두 곳은 革命해야 한다는 澤火革卦 九三爻의 “象曰革言三就어니 又何之矣리오(상에 가로대, 고친다는 말이 세 번 나아갔거니 또한 어디를 가리오)”와 혁명하여 새로운 세상을 건설하고 모두가 나서서 도와야 한다는 水地比卦 六三爻의 “象曰比之匪人이 不亦傷乎아(상에 가로대, 돕는데 사람이 아니니 또한 다치지 않겠는가)”이다. 논어는 공자의 親炙弟子(친자제자)와 再傳弟子(재전제자)들이 정리한 글로, 공자의 말씀과 제자들과의 문답, 위정자들과의 문답뿐만 아니라 공자의 一擧手一投足은 물론 親炙제자들의 어록과 친자제자와 문인들과의 문답까지 담겨져 있다. 총20편으로 구성되었는데, 그 내용은 매우 체계적으로 아래와 같은 측면에서 각 편의 내용을 읽어나가면, 논어의 뜻이 분명해진다. 춘추시대 말기의 시대적 상황을 염두에 두고 그 내용을 일별해보면 다음과 같다.
군자는 모름지기 배우고 때로 익혀서[제1편 學而],
德으로 정치를 하고[제2편 爲政],
政事의 잘잘못은 禮樂으로 나타나는데[제3편 八佾],
교화가 잘 되면 마을사람들까지 어질게 되고[제4편 里仁],
개개인도 어진 덕에 나아가[제5편 公冶長],
덕을 갖추면 비록 미천한 출신이나 반드시 등용될 것이다[제6편 雍也].
그러므로 공자는 모름지기 성인의 도에 나아가 배울 것을 중시했으며, 인군으로서 성인의 도에 나아가 정사를 두면 덕 있는 자가 버려질 일은 없다. 당시는 이미 聖人의 도가 무너졌기에 덕 있는 자라도 발탁되지 쓰이지 못했기에 공자와 같은 聖人도 창작(創作)은 하지 못하고 찬술(贊術)만 할 뿐이었다[제7편 述而].
성인이 가신 지 5백여 년이 넘었지만 철환주유를 하고 돌아온 공자가 후세를 위해 詩書를 정리하시고 易을 다듬고, 『춘추』를 지으시며, 역사의 뒤안길에 묻힐 뻔했던 태백과 같은 聖人을 드러내었고[제8편 泰伯],
간혹 옛 성현의 지극하신 도를 그리워했다.[제9편 子罕].
이미 세상의 도는 무너졌지만 공자는 성인의 도를 실천하셨다. 공자는 어느 곳에 계시든 군자의 풍모와 언행을 잃지 않으셨고[제10편 鄕黨],
겉으로 드러나는 禮樂의 사치스러움과 화려함을 추구하는 당대의 ‘군자’라는 사람들보다는 차라리 촌스럽다는 소리를 들을지언정 질박하면서도 내면의 덕을 중시했던 앞서간 인물들을 그리워했다[제11편 先進].
공자의 가르침을 충실히 따랐던 제자들이 바로 先進的이었으며, 德行으로 대표적인 인물이 안연이었고[제12편 顔淵], 政事의 선진적 인물은 자로였다[제13편 子路].
나라의 도가 점점 쇠미해지고 仁의 개념마저 혼란스러워지자 제자들은 공자와의 문답을 통해 仁을 정립하고자 했으나[제14편 憲問],
점차 强兵策을 통해 富國과 천하통일을 꾀하는 자들이 많아졌으니[제15편 衛靈公],
맹자가 갈파했듯이 “왕께서 ‘무엇으로써 내 나라를 이롭게 하려는고?’ 하시면, 대부는 ‘무엇으로써 내 집을 이롭게 하려는고?’라고 말하며, 선비와 뭇 사람들은 ‘무엇으로써 내 몸을 이롭게 하려는고?’라고 하여 위아래가 서로 利를 다투면 나라가 위태로워질 것입니다. 만승의 나라에서 그 군주를 죽이는 자는 반드시 천승의 집이요, 천승의 나라에서 그 군주를 죽이는 자는 반드시 백승의 집이니, 만이 천을 취하며 천이 백을 취함이 많지 않은 것이 아니건마는 진실로 義를 뒤로 하고 利를 먼저 한다면, 빼앗지 아니하고는 만족하지 못할 것입니다(양혜왕상편 제1장).”고 했듯이 제후들이 强兵의 無道한 정치를 일삼자 그 아래인 대부들이 제후를 능멸하고[제16편 季氏],
대부의 家臣들마저 下剋上을 일으키고[제17편 陽貨], 공자와 같은 성인이 세상을 떠나자 그나마 남아있던 현인들마저 무리들이 뿔뿔이 흩어졌다[제18편 微子].
세상의 도가 끊길 것을 우려한 『논어』의 편집자들은 공자의 도를 제자들이 이어 받아 전한다는 뜻을 분명히 하고 각자가 배운 바의 도를 되새기며[제19편 子張],
언젠가 다시 요순과 하은주 삼대의 삼왕 시대를 일으켜 세울 군자가 나타나기를 기다리며 공자의 ‘三不知三無也’로 글을 맺었다[제20편 堯曰].
거듭 강조한다면, 『논어』를 공부할 때 위에서 정리한 내용을 전제로 반드시 각 편의 첫 장과 마지막 장의 뜻이 首尾一貫됨을 보아야 하고, 『논어』의 맨 첫 장인 “子曰學而時習之면 不亦說乎아 有朋이 自遠方來면 不亦樂乎아 人不知而不慍이면 不亦君子乎아”와 마지막 장인 “子曰不知命이면 無以爲君子也요 不知禮면 無以立也요 不知言이면 無以知人也니라”는 내용이 一以貫之됨을 보아야 제대로 공부했다고 할 수 있다. 곧 첫 장의 문장에 語隱 ‘乎’를 써서 은미한 가운데 상대의 동의를 구하면서 공부의 길로 인도하고, 끝 문장에 決定辭인 ‘也’를 써서 군자의 도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했다. 『논어』 전체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배워야 사람을 안다(學而知人也)’이다.
첫 문장과 끝 문장을 연결한 내용으로, 배워야 사람을 아는 지혜로운 군자가 되어 세상을 경륜할 수 있다는 뜻이다. 안연이 “夫子 循循然善誘人하사 博我以文하시고 約我以禮하시니라(부자께서 순순히 사람을 잘 인도하사 나를 넓게 하되 글로써 하시고, 나를 간략히 하되 예로써 하시니라. - 자한편 제10장)”고 했듯이 『논어』를 다 읽고 나면 博文約禮할 줄 알아야 참으로 공부했다고 할 수 있다.
2. 止於至善의 『大學』
『대학』은 공자의 제자인 曾子가 지은 것으로 알려졌다. 공자로부터 노둔하다(參也魯 - 『논어』 선진편 제17장)는 평가를 받은 증자이기는 하지만 『대학』을 통해 공자의 도를 일목요연하게 전하고 있다. 제1장에서 “大學之道는 在明明德하며 在親民하며 在止於至善이니라(대학의 도는 밝은 덕을 밝히는데 있으며, 백성들과 친함에 있으며, 지극한 선에 그침에 있느니라.)”고 하여 大學의 道인 三綱領을 밝히고, 끝 장은 “此謂國不以利爲利요 以義爲利也니라(이를 일러 국가는 이를 이로움으로 삼지 않고 의를 이로움으로 삼는다고 하니라.)”라 하여 국가는 義理를 추구해야 한다고 했다.
곧 至善의 사회는 이끗을 추구하는 사회가 아닌 의리를 추구하는 사회로, 백성을 다스리는 지도자는 먼저 스스로 내면의 밝은 덕을 닦아 이를 세상에 밝혀야 백성과 친할 수 있고 백성을 새롭게 하여 함께 至善한 사회를 이룰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대학』의 안에는 삼강령을 실현하기 위해 군자가 행할 八條目(格物 致知 誠意 正心 修身 齊家 治國 平天下)을 심층적으로 다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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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대학』은 주자가 『예기』에서 떼어 내면서 錯簡되었다고 보고 그 순서를 바꿔놓았다. 이후 많은 학자들이 『대학』의 문장 순서를 여러 각도로 정리했는데, 여기서는 본래 한나라 때 『예기』 속에 정리된 古本 『大學』과 주자의 장구본을 별도로 정리했고, 끝에 古本의 글귀를 그대로 따르되 易의 이치인 三八木道와 十數와 四時와 八卦와 二十四節氣의 순으로 재정리한 ‘也山錯簡攷正本’을 古本과 章句本과 함께 비교표를 만들어 붙여놓았다.
3. 至誠如神의 中庸
대학이 ‘착할 善’으로 대표된다면 중용의 핵심은 ‘정성 誠’으로 압축된다.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성품을 그대로 이어가는 것이 善이라 하였고, 그 선으로 나아가는 것이 길(道)이다. 길은 사람이 다니지 않으면 금세 잡풀로 뒤덮이기에 위정자는 사람들이 그 목적지에 쉽게 다다를 수 있도록 거기에 이르는 길을 쉼 없이 닦아줘야 한다. 그러므로 제1장에서 “天命之謂性이오 率性之謂道요 脩道之謂教니라(하늘이 명한 것을 성품이라 이르고, 성품을 따르는 것을 도라 이르고, 도를 닦는 것을 가르침이라 이르니라.)”고 했고, 제20장에서 애공과 공자의 문답 속에 五達道와 三達德을 제시하며 九經大法의 통치철학을 펼쳤다. 하늘이 쉼 없이 운행하며 만물을 기르듯 위정자는 하늘처럼 쉼 없는 정성(至誠無息- 제26장)으로 교화해야 하니, 바로 “지극한 정성은 신과 같다(至誠如神- 제24장).”는 것이다.
교화는 위정자가 스스로 덕을 닦아 한결같은 정성으로 이루어야지 지위에 따른 명령이나 위엄만 갖고는 불가하기에 끝에 다시 공자의 말씀과 시를 인용하여 “子曰聲色之於以化民에 末也라하시니라 詩曰德輶如毛라하니 毛猶有倫이어니와 上天之載 無聲無臭아 至矣니라(공자 가라사대, “소리와 낯빛으로 백성을 교화함에 말단이라.”하시니라. 시에 이르기를 “덕의 가볍기가 터럭과 같다.”하니, 터럭은 오히려 비교할 수 있거니와 상천의 일은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다고 함이여! 지극하니라.)”고 했다.
4. 王道政治를 제시한『孟子』
[이 내용은 졸저 『맹자역해』 서문을 인용한 글이다.]
http://blog.naver.com/pondfire/220477037675
5. 思無邪의 『詩經』
[이 글은 졸저 『詩經講解』의 서문을 인용했다.]
http://blog.naver.com/pondfire/220477037997
6. 允執厥中의 통치학,『서경』
『書經』은 흔히 『尙書』라고 부르는 책이름으로, 공자가 二帝三王의 治天下之大經大法을 편찬한 글이다. 즉 천하를 잘 다스린 요순과 삼대(夏 殷 周)의 시조인 우임금과 탕임금과 무왕이 세상을 다스린 큰 벼리와 큰 법을 다룬 글이다. 한편 예전에 위정자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익혀야 할 글이었기에 『書經』을 모르고서는 옛날 유교문화권의 정치는 물론 유학경전을 논할 수 없고, 오늘날의 정치를 바로세우기 위해서도 마땅히 공부해야 할 글이기도 하다.
『書經』은 『詩經』과 합하여 詩書로도 부르는데, 『詩經』을 공부하여 ‘사무사(思無邪: 생각에 간사함이 없음)’로서 ‘바름(正)’을 먼저 익혀야 『書經』의 ‘敬’에 이를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書經』은 여타의 유학경전보다도 진시황제의 분서갱유 속에서 가장 많은 피해를 본 책으로 『千字文』에 漆書壁經으로 일컬어지며, 금문과 고문의 논쟁을 가장 많은 불러일으키는 책이기도 하다.
크게는 진시황제의 분서갱유를 피해 벽 속에 감춰져 있다가 발견된 『古文尙書』와 漢나라 효문제 때 복생(伏生, 秦나라 때의 박사)이 암송했던 글이 조착(曹錯)에게 전해져 편찬된 『今文尙書』가 있으며, 僞古文 등 여러 편이 존재하는데 오늘날 우리가 공부하는 『書經』은 今文과 古文을 아우르는 책이다. 그 『서경』의 첫머리에 天道를 공경히 받들어 백성들을 위해 그 뜻을 펴려고 했던 요임금의 통치를 “曰若稽古帝堯한대 曰放勳이시니 欽明文思 安安하시며 允恭克讓하사 光被四表하시며 格于上下하시니라(아아, 옛날 요임금을 상고하건대 널리 크게 공을 이루셨으니, 공경하고 밝고 문채 나고 생각함이 편안하시며, 진실로 공손하고 능히 사양하시어 빛남이 사방을 입히시며, 상하에까지 이르셨느니라.)”고 요약하는데 먼저 그 편제를 살펴본다.
제1권 虞書(二典 三謨)
제1편 堯典 제2편 舜典 제3편 大禹謨 제4편 臯陶謨 제5편 益稷
제2권 夏書
제1편 禹貢 제2편 甘誓 제3편 五子之歌 제4편 胤征
제3권 商書
제1편 湯誓 제2편 仲虺之誥 제3편 湯誥 제4편 伊訓 제5편 太甲上 제6편 太甲中 제7편 太甲下 제8편 咸有一德 제9편 盤庚上 제10편 盤庚中 제11편 盤庚下 제12편 說命上 제13편 說命中 제14편 說命下 제15편 高宗肜日 제16편 西伯戡黎 제17편 微子
제4권 周書
제1편 泰誓上 제2편 泰誓中 제3편 泰誓下 제4편 牧誓 제5편 武成 제6편 洪範 제7편 旅獒 제8편 金縢 제9편 大誥 제10편 微子之命 제11편 康誥 제12편 酒誥 제13편 梓材 제14편 召誥 제15편 洛誥 제16편 多士 제17편 無逸 제18편 君奭 제19편 蔡仲之命 제20편 多方 제21편 立政 제22편 周官 제23편 君陳 제24편 顧命 제25편 康王之誥 제26편 畢命 제27편 君牙 제28편 冏命 제29편 呂刑 제30편 文侯之命 제31편 費誓 제32편 秦誓
위와 같이 요순과 하은주 삼대 삼왕의 정사(政事)와 패망의 정사를 아울러 기록한 『서경』은 성인의 도를 이어받지 못하면 반드시 망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서경』은 왕도정치의 바름으로 表象되며, 유학의 근간(根幹)이자 후대 왕들이 본받아야 할 典範으로 도맥의 전수를 밝힌 글이기도 하다. 요임금이 순임금에게 禪位를 할 때에 “咨爾舜아 天之曆數 在爾躬하니 允執厥中하라 四海困窮하면 天祿이 永終하리라(아, 순이여. 하늘의 역수가 그대 몸에 있으니 진실로 그 중을 잡아라. 사해가 곤궁하면 하늘의 녹이 길이 끝나리라. - 『논어』 요왈편 제1장)”고 하면서 ‘允執厥中’을 강조했고, 순임금이 禹에게 선양을 할 때에는 다시 세 마디를 더 보태어 “人心은 惟危하고 道心은 惟微하니 惟精惟一하여서 允執厥中하리라(인심은 오직 위태롭고, 도심은 오직 미미하니, 오직 정미롭게 하고 오직 한결같이 하여야 진실로 그 중을 잡으리라. - 虞書 大禹謨편 제15장)”고 했다.
『서경』은 요임금이 “欽若昊天하여 曆象日月星辰하여 敬授人時하시다(광대한 하늘을 공경히 따라서 해와 달과 별의 상을 관찰하며 책력으로 만들어 공경히 사람들에게 때를 주셨다 - 요전편 제3장)”는 뜻에 따라 하늘을 공경하고 사람을 공경한다는 뜻이 핵심이다.
『논어』에 子張이 “십 세 뒤의 일을 알 수 있겠습니까?(子張이 問十世를 可知也잇가)”하고 묻는 내용이 있다.
이에 대해 공자는 “殷因於夏禮하니 所損益을 可知也며 周因於殷 所損益을 可知也니 其或繼周者면 雖百世라도 可知也니라(은나라는 하나라의 예법에서 비롯되었으니 덜어내고 보탠 바를 알 수 있으며, 주나라는 은나라의 예법에서 비롯되었으니 덜어내고 보탠 바를 알 수 있으니 그 혹 주나라를 잇는 자가 있다면 비록 백 세 뒤라도 알 수 있느니라.- 爲政篇 제23장)”고 답한다. 요순과 하은주 삼대의 법도를 어떻게 이어받았느냐에 따라 그 나라의 흥망성쇠를 가히 알 수 있기에, 후대에 爲民정치를 펴고자 했던 위정자들이 『서경』에 나타난 성인의 도를 공경히 받들어 공부하며 바른 정사를 펴고자 하였던 것이다.
7. 萬學의 帝王『周易』
세상에 가장 잘못 알려진 글이 『周易』이다. 그 말이 占書 형태로 쓰여져 있기에 개인의 길흉화복을 점치는 글로만 잘못 알려져 있으나 실은 道德君子로서 여러 가지 상황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돌아보고, ‘或出或處或黙或語(혹 나가기도 하고 혹 처하기도 하고 혹 침묵하기도 하고 혹 말하기도 한다. - 계사상전 제8장)’를 판단하여 행하라는 글이다. 공자 당시에도 『周易』을 점서로만 인식하고 개인의 길흉화복만 점치려는 풍토가 만연하자 “不恒其德이면 或承之羞라하니 子曰不占而已矣니라(그 덕을 항구하게 아니하면 혹 부끄러움을 잇는다 하니 공자 가라사대 점하지 않을 뿐이니라. - 『논어』 자로편 제22장)”이라 하고, 『易經』을 찬술하여 十翼을 달면서 통치철학이자 군자의 수신학문으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세웠다. 그중 문왕의 괘사(卦辭)를 해설한 大象傳에 군자가 體로 삼아야 할 법도를 ‘君子以~’라고 제시했기에 『周易』을 ‘君子以學’이라고도 한다. 이러한 易은 天地自然이 끊임없이 變化하면서도 恒久不變하는 運行秩序 속에 인간의 삶도 그중 하나임을 직시하고, 천지자연의 운행질서를 본받아 가장 조화로운 인간사회를 구현하려는 학문이다.
인류가 자연현상을 관측하여 일정 법칙이 있음을 알고 農耕생활을 하면서 정착해 이를 記號化하여 담아낸 것이 陰陽 符號인 易의 卦이고, 이를 바탕으로 文明과 文字시대를 열게 되었다. 易은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분류하기도 하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이치에 따른 분류
· 變易(변역)
· 不易(불역)
· 簡易(간이)
②내용과 형식에 따른 분류
· 天易 : 천지자연 그대로의 역으로, 괘 이전부터 존재하는 천지자연의 역
· 書易 : 복희씨의 획으로부터 문왕과 주공과 공자에 의해 글로 쓰인 역
· 人易 : 사람들이 살아가는데 유익한 모든 예법과 제도 등을 담은 역
③시대에 따른 분류
· 上古(夏) 連山易 : 首卦爲艮. 寅月歲首(人生於寅에 근거, 人正의 人統曆)
· 中古(殷) 歸藏易 : 首卦爲坤. 丑月歲首(地闢於丑에 근거, 地正인 地統曆)
· 下古(周) 周易 : 首卦爲乾. 子月歲首(天開於子에 근거, 天正인 天統曆)
④완성과정에 따른 분류
· 畫易(획역) : 복희씨가 龍馬의 등에 있는 그림[河圖]을 보고 우주만물의 생성이치를 깨달아 天地人의 三才의 道를 기본으로 하여 팔괘를 그음.
· 作易 : 은나라 말기 서쪽 제후였던 文王(西伯昌)이 복희팔괘와 夏禹氏 때 출현한 洛書와 앞서 2代의 역을 연구하여 64괘의 순서를 다시 정하여 卦辭를 붙이고, 아들인 주공이 아버지 문왕의 역을 계승하여 384효에 爻辭를 붙였으니 이를 ‘周易經文’이라 함.
· 贊易 : 춘추시대 때 공자가 聖人의道를 이어 韋編三絶 끝에 十翼을 달아 역을 찬술하여 보완하니 이것이 오늘날 우리에게 전해지는 『주역』이다. 『주역』은 네 분 성인의 손을 거쳐 완성되었기에 四聖易이라고도 하고, 문왕과 주공은 부자관계이므로 하나로 합해 三聖易이라고도 한다.
오늘날 전하는 『周易』의 구성을 보면, 크게 문왕과 주공이 쓴 經文과 공자가 쓴 傳文 곧 十翼傳으로 나누어진다. 경문은 다시 문왕이 쓴 64괘(상경 30괘, 하경 34괘)의 卦辭와 주공이 쓴 384효의 爻辭로 구성되어 있다.
傳文인 십익전은 공자의 爲政思想과 철학이 整然하게 녹아있는 글이다. 공자는 『周易』을 찬술하시고 난 뒤 “加我數年하여 五十以學易이면 可以無大過矣리라(나에게 두어 해를 더하여 오십으로써 주역을 배우면 가히 큰 허물이 없으리라 - 『논어』 술이편 제16장)”고 하셨는데, 조금만 더 시간적 여유가 있어 50의 이치로 『周易』을 연구한다면 후천의 대과를 없게 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만큼 『周易』속에는 세상을 經綸하는 이치가 담겨있다는 의미이다.
십익전은 다음과 같다.
① 彖傳 : 문왕의 괘사를 해석
② 象傳 : 괘상을 설명한 大象傳과 효상을 설명한 小象傳이다.
③ 乾卦文言傳 : 첫 번째 괘인 重天乾卦를 부연설명
④ 坤卦文言傳 : 두 번째 괘인 重地坤卦를 부연설명
⑤ 繫辭上傳 : 易道에 대한 총론의 글
⑥ 繫辭下傳 : 易道에 대한 각론의 글로 上傳이 體라면 下傳은 用적인 글
⑦ 說卦傳 : 팔괘의 선후천 배열원리와 각 괘에 대한 설명
⑧ 序卦上傳 : 상경 30괘의 순서를 설명
⑨ 序卦下傳 : 하경 34괘의 순서를 설명
⑩ 雜卦傳 : 64괘를 서괘전의 순서와 관계없이 섞어놓고 설명한 글.
출처 : 「사서삼경 종합입문반」 강의록(2015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