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그 사람 지금 어디 있소?
남순(84세) 할머니가 처음 이곳에 오셨을 때가 생각이 난다. 노래와 춤이 없으면 하루도 못산다는 할머니를 위해 우리 식구들은 얼마나 애를 썼던가! 원내 노래방에서는 거의 매일 노래와 춤이 이어졌다. 오죽했으면 천혜경로원 1등 가수 연순 할아버지가 이런 말을 했을까?
“원장님, 오늘은 노래방 하루 쉬면 안되겄소?”
드라이브를 또 무척 좋아한다는 할머니를 위해 며칠이 멀다 하고 야외로 차를 몰았다. 또한 할머니를 심심치 않게 하기위해 똑같은 얘기일망정 수없이 얘기를 나누었다. 그런데 할머니는 건망증이 너무 심해 바로 어제 야외로 나들이를 다녀왔는데도 그런 사실을 거짓말처럼 잊어버린다.
“할머니, 어제 우리 식구들이랑 보성 녹차밭에 다녀오셨지요. 재미있으셨어요?”
“언제 내가 보성 녹차밭 갔다고 그러시오?”
더 이상 말해봤자였다.
그러나 세월이 약이라고 안절부절 못하던 할머니가 이제는 완전히 우리 식구가 되었다.
얼마 전 남순 할머니가 우리 식구들 여럿이 있는 가운데 노래를 부르게 되었다. 곡명은 ‘산장의 여인’
♪ 아무도 날 찾는 이 없는 외로운 이 산장에 ♬
노래가 끝나고 “종현씨!” 하고 애절한 듯한 목소리를 흉내 내면서 크게 불러보았다.
“어쩌고 우리 서방님 이름을 다 아시오?”
할머니는 놀랍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제가 왜 몰라요? 남순 할머니하고 종현씨하고 연애할 때 영산포 뚝이랑 다리를 걸으셨잖아요?”
할머니로부터 들어서 알고 있는 사실을 마치 그 당시 그 현장을 생생히 보았던 사람처럼 얘기했다.
“워매~ 원장님은 별것을 다 아시오!”
“남순 할머니 아버지가 약방을 하셨고, 약방은 영산포 다리 건너서 요짝으로 쭉 가면 나오잖아요.”
“아, 그래요. 맞아요.”
할머니는 흥미로운 듯 흘러간 옛 얘기에 빠져들었다.
“서방님은 의과대학생이었고 할머니는 전여고에 다니셨고요. 그때는 웃고녀라고 했다지요. 할머니는 미술반장이었고, 생활관에 계셨지요?”
“원장님은 어찌고 그렇게 내 과거를 귀신같이 잘 아시오?”
“할머니 친구 혜림씨가 종현씨를 소개시켜 준 것도 저는 다 알아요.”
“어찌고 우리 친구이름까지 다 아시오?”
“종현씨가 남순씨를 보러 생활관에도 찾아왔었지요?”
아마 할머니는 이 순간 나를 귀신 아니면 점쟁이로 보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요. 우리 아버지가 엄청 유난히도 엄해서 남자하고 만난다는 것은 생각도 못했어요. 그래서 혜림이하고 그 사람하고 셋이서 몇 번 만났어요. 지금 같으면 아무렇지도 않았을 텐데 그때는 남자하고 여자하고 둘이서 걷기만 해도 남의 눈치를 봤어요.”
“종현씨가 보고 싶지 않으세요?”
“보고 싶지요. 근디 그 사람 지금 어디 있소?”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켰더니 할머니는 살며시 웃으며 고개만 끄덕인다.
아~ 누가 그 아름다운 날을 가져다 줄 것이냐, 저 첫사랑의 날을.
첫댓글 풍문으로만 들었는데...ㅋ오늘도 단풍놀이 가셨다구요? 할머니도 그렇지만, 뜻 받드시는 원장님,부원장님께서도 정말 대단하세요^^;;
👍
본인은 행복하시지만 곁에있는 가족이나 동료,그리고 직원들의 마음은
심난할 때가많지요.
마음은 아주 착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