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노예들이 세운 자유의 나라, 라이베리아
도와야 하는 나라로 알려진 아프리카. 하지만 세계적인 경제예측 전문기관인 글로벌 인사이트(Global Insight)는 아프리카가 2010~2020년 동안 5.8%의 경제성장률(연평균)로 전 세계에서 아시아 지역 다음으로 빠른 성장세를 실현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또한 2010년 IMF(International Monetary Fund)는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경제규모가 8,800억 달러(2009년)에서 1.5조(2015년) 달러로 성장할 것으로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우리재단에서도 아프리카 지역을 돕는 후원자의 수가 매년 증가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지는 만큼 성장하고 있는 아프리카. 밀알복지재단은 ‘이슈 인 아프리카’ 연재를 통해 이슈가 되고 있는 국가를 선정하여 아프리카의 희망과 기회, 가능성에 대해 소개하고자 합니다.
자유의 나라, 라이베리아
라이베리아는 해방과 자유를 뜻하는 라틴어 Liber에서 비롯된 이름으로, ‘자유의 나라’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중서부 아프리카 대서양 연안에 위치하고 있으며, 시에라리온과 코트디부아르, 기니비사우와 인접해 있다. 국토면적은 약 111㎢으로 한반도의 1/2 크기밖에 되지 않은 작은 나라지만 철광석, 금, 다이아몬드 등 풍부한 천연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총 인구는 429만명이다. (2013, 세계은행).
미국에서 온 ‘고독한 별’
▲ 성조기(오른쪽)와 흡사한 라이베리아 국기 '고독한 별'(왼쪽).
라이베리아는 19세기 미국에서 해방된 노예들이 1847년 건국한 아프리카 최초의 흑인 공화국으로 아프리카에서 가장 역사가 오래된 공화국이다. 19세기 초, 미국은 일부 노예들을 해방시키며 이들을 아프리카로 이주시켰고 이들이 라이베리아를 건국했다. 이는 라이베리아의 국기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라이베리아 국기 ‘고독한 별’은 미국의 성조기와 매우 흡사하다. 심지어 수도 몬로비아(Monrovia)는 라이베리아 설립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제임스 먼로(James Monroe)’의 이름에서 가져왔다.
한눈으로 보는 라이베리아 정치
라이베리아를 설립한 미국계 이민자(아메리코-라이베리안)들은 국가 운영의 주도권을 쥐고 있었다. 문제는 이들이 매우 소수라는 점에 있었다. 당시 라이베리아의 인구 95%가 토착민이었으나, 권력을 쥐고 있었던 이들은 미국계 이민자였다. 이들은 영어를 쓰고 문명화 된 자신들이 토착민들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했고, 신분제를 도입하여 토착민들을 노예로 삼았다.
1970년대 중반 이후 라이베리아의 경제를 책임지던 고무와 철광석 가격이 떨어지면서 갈등은 심화되었다. 결국 1980년 토착민계 ‘새뮤얼 도’가 쿠데타를 일으켜 대통령으로 집권한 뒤 미국계 이민자들을 학살하면서 내전이 시작되었다. 이후 토착민들과 미국계 이민자들이 서로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전쟁은 1997년까지 진행되었다. 미국계 찰스테일러가 대통령이 되며 1차 내전이 종식되는 듯 했으나, 찰스테일러 대통령이 시에라리온의 다이아몬드 광산 이득을 독점하는 등 욕심을 내면서 제2차 라이베리아 내전이 발생하게 됐다. 이 기간 동안 20만 명이 사망하고 75만 명의 난민이 발생했다.
아프리카 최초의 여성 대통령, 평화를 불러오다
▲ 아프리카 최초의 여성 대통령, 엘런 존슨 설리프 (출처 one.org)
끝없을 것 같던 라이베리아 내전을 끝내는 데 큰 역할을 한 것은 여성들이었다. 라이베리아 최초의 여성 대통령인 엘런 존슨 설리프는 내전 당시 ‘평화를 위한 라이베리아 여성 대중행동'을 조직하여 여성들의 시위참여를 독려했고 결국 비폭력적인 방법으로 내전종식을 이끌어냈다. 2011년, 엘런 존슨 설리프는 함께 평화운동을 이끌었던 레이마 그보위, 타와쿨 카르만과 함께 노벨 평화상 공동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라이베리아에 심겨진 한 알의 밀알
“라이베리아의 청소년들이 교육을 받지 못한 채 맨발로 거리를 다니고 있었습니다. 내전으로 학교가 파괴되고 가족을 잃은 아이들은 배고픔 속에서 길거리를 헤매고 있었어요.
소년병들은 적이 누구인지 알지도 못한 채 자신의 키만 한 총을 들고 목표 없이 총을 쏘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들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교육 밖에 답이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 조형섭 프로젝트 매니저
1987년부터 라이베리아 현지에서 소년병들을 전쟁터가 아닌 학교로 이끌던 조형섭 프로젝트 매니저(이하 조형섭 매니저)가 처음 건물도 없는 학교 문을 열자 500명이 넘는 학생들이 모였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내전으로 폐허가 된 마을에서 그들을 가르칠 건물이 없었다.
▲ 라이베리아 그레이스 학교의 수업시간
▲ 라이베리아 그레이스 학교의 하교시간
아이들은 나무 밑 공터에 모여 집에서 직접 가져온 의자에 앉아 ‘학생’이 되기 시작했다. 비가 오면 해산 했다가 해가 뜨면 다시 모여 수업을 진행했다. 어려운 형편 속에서 그들은 배움의 끈을 놓지 않았다. 조형섭 매니저는 아이들이 밝은 미래로 가는 길은 오로지 ‘교육’ 밖에 없다는 생각에 라이베리아에서 학교를 짓기 시작했다.
▲ 태양광 랜턴 아래에서 책을 읽는 아이들. 밀알복지재단은 '라이팅 칠드런' 캠페인을 통해 한국의 후원자들이 선물한 태양광 랜턴을 2013년부터 현재까지 라이베리아에만 총 1,029개를 보급했다.
또한 한국 후원자들이 보내온 태양광 랜턴은 전력시설을 갖추지 못한 지역에 보급해 전기 없이 살아가는 지역주민들에게 희망을 전달하고 있다. 또한 최근에는 에볼라 바이러스로 고통받고 있는 라이베리안들을 돕고자 현지직원을 통해 긴급구호 활동도 진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