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속의 갈림길에서,
오른쪽을 선택하는 것은 기존의 전통과 제도에 순응하는 것이고,
왼쪽은 나만의 고유한 본성에 따른, 때에 따라서는 기존 사회 질서에 역행하는 길이라 할 때,
이 두 경로에서 서로 배울 것은 있는가?
그렇다. 한 마디로 간단히 말한다면 '공감'이다.
이것은, 나와 다른 길을 가는 사람에게 어떤 투사를 하는 지를 상상하는 능력이기도 하다.
질서에 적응하여 순응하는 삶도 있을 수 있고, 역행하는 삶도 있을 수 있다.
제도 내적 삶이든 제도 외적 삶이든 둘 다 있을 수 있으며,
그 삶이, 꿈과 즉 무의식과 조응하는 지 살펴보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일 것이다.
그것이 조응되지 않을 때, 반복하여 제 길을 돌아볼 것을 촉구한 꿈의 예를 들어보겠다.
오른쪽 길에 순종했던 사람에게 왼쪽 길을 택할 것을 무려 50년을 반복해 나온 꿈이다.
30살 때부터, 꿈에 자기 신발이 없어져 맨발인데, 남편이 자기 신발을 찾으러 가서는 돌아오지 않는 악몽을 반복해 꾸다가,
80살 때 비로소 같이 꿈작업하게 된 마지막 버전은,
남편과 함께 이탈리아를 여행해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마치고
레스토랑 문을 나서니 자기 발에 신발이 없는 것이 눈에 띈다.
레스토랑 안에 신발이 있을 것 같아 남편이 찾으러 들어가서는 밤이 되도록 돌아오지 않는다.
말도 안 통하는 이국에서 불안과 두려움에 떨다 깨는 악몽이다.
30살 때 남편 결정대로 워싱턴으로 이사를 했는데, 자기는 내키지 않았으나 반대 의사조차 말하지 못했다.
그 이후 계속 남편이 모든 결정을 주도했고, 자기는 따르다,
남편이 은퇴하고는 의기소침해져, 이제는 자기에게 모든 결정을 미루고 의지하는 남편이 매우 불편하고 당혹스럽다.
는 것이 여든살 부인의 말이다.
남편의 주도적인 결정에 순응하는 삶에 대해, 꿈은 신발이 없는 맨발을 보여준다.
신발을 신고 어디를 가는 것이 만들어진 제도에 내 발을 맞춰 걷는 오른쪽 길이라면,
맨발은 아무 제약없이 내 본성에 따라 사는 왼쪽 길을 의미할 수 있다.
남편이 찾아 다시 신겨주는 신발은 없으니, 맨발로 걸으라고 꿈은 50년 동안 줄곧 촉구한 셈이다.
그러면서 꿈이 반복될 때는, 아직 내가 그 일을 해 낼 잠재력이 있고, 그것이 내 개성화를 촉진하는 일이기에 그렇다.
이 꿈에서도, 외국 여행을 하면서 레스토랑에 나오니 신발이 없다.
나는 외국 여행도 하고, 레스토랑에서 근사한 식사도 배부르게 먹은 건강한 몸인 것이다.
이렇게 내가 건강하고 충족되어 있으니 이제는 내 발로 내 개성의 삶을 살라는 것이다.
남편의 힘과 제도 안에서 건강하게 사는 50년 내내, 그것과 또 달리 내 본성의 삶을 개성있게 살 책임도 내게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 상대의 방식을 공감하는 투사의 상상 속에 내 안의 투사도 성찰하여
제도 내외를, 안팎 모두가 하나되는 사랑의 삶을 살 책임이 우리 모두에게 있지 않을까!
(제레미 테일러 강의)
첫댓글 어제 꿈모임을 다녀와서 읽으니 더욱 공감가는 내용입니다.근래 꿈에서 반복되는 상황과 이미지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해야겠네요^^
상대의 방식을 공감하는 투사의 상상!!
그 상상 속에 내 안의 투사를 성찰.
내 꿈을 남의 꿈 대하듯 하며 이런 자세로 작업을 해봐야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