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단031318 그리아니하실지라도 231004 수요
다니엘3:13-18
13. ○느부갓네살 왕이 노하고 분하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끌어오라 말하매 드디어 그 사람들을 왕의 앞으로 끌어온지라
14. 느부갓네살이 그들에게 물어 이르되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야 너희가 내 신을 섬기지 아니하며 내가 세운 금 신상에게 절하지 아니한다 하니 사실이냐
15. 이제라도 너희가 준비하였다가 나팔과 피리와 수금과 삼현금과 양금과 생황과 및 모든 악기 소리를 들을 때 내가 만든 신상 앞에 엎드려 절하면 좋거니와 너희가 만일 절하지 아니하면 즉시 너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 던져 넣을 것이니 능히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낼 신이 누구이겠느냐 하니
16.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왕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17.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18.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아멘
지난주 수요예배 성경과 말씀
성경 : 에스겔
-에스겔서의 기록 동기와 배경
에스겔 선지자는 유다 백성이 두 차례에 걸쳐 바벨론 포로로 잡혀간(B. C. 605. 597년) 때로부터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인 B.C.593년에 선지자로서의 소명을 받았습니다(1 : 1).
에스겔서는 저자 에스겔이 하나님으로부터 계시를 받고 환상을 본 B.C.593년으로부터 B.C.571년까지 약 22년간을 그 직접적인 역사적 배경으로 하여 쓰여졌습니다.
이 시기는 북왕국 이스라엘이 앗수르에 멸망한 B.C.722년으로부터 130여 년이 흐른 시기로 에스겔서의 내용을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하여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살펴봅시다.
여호와 신앙을 버리고 음란한 가나안 우상을 섬기던 북왕국 이스라엘은 B.C.722년 당시 중근동의 최강국이었던 앗수르에의해 멸망하였습니다.
그러나 강성하였던 앗수르도 B.C.612년 바벨론 왕 나보폴라살(Nabopolasar)에 의해 멸망하였고, 바벨론은 중근동의 새로운 강자로 부상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바벨론 왕 나보폴라살의 아들인 느부갓네살(Nebuchadnezzar ll)은 B.C.605년 애굽 왕 바로 느고(Pharaoh Necho ll)를 유프라테스 유역의 갈그미스에서 패퇴시킴으로써(렘 46 1. 2) 명실상부하게 바벨론은 중근동의 패권을 장악하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국제 정치의 혼란기에 유다는 역사의 주관자이신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지하기 보다는 강대국을 의지함으로써 활로를 찾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유다의 지도자들은 국제 정치에 대한 감각이 없었으며 대외 정책에는 일관성이 없었으므로 오히려 이러한 혼란스러운 정책으로 인하여 멸망을 촉진시키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앗수르를 돕기 위해애 굽과 교전하던 중 므깃도 전투에서 전사한 요시야(대 하 35 : 20-24) 이후 그의 아들 여호아하스 역시 애굽의 볼모로 잡혀가 죽임을 당하였습니다(렘 22 . 10-12). =>여호아하스(둘째)-여호야김(장남)-여호야긴(손주)-시드기야(셋째)
그후 애굽의 도움으로 왕위에 오른 여호야김은 처음에는 애굽에 조공을 바쳤으나(왕하 23 : 31-36) 바벨론의 느부갓네 살의 세력이 커지자 바벨론을 섬겼으며 다시 정책을 바꾸어 바벨론에 반역을 꾀하였습니다(왕하 24 : 1).
-1차포로 서기전605년,
뒤를 이어 왕이 된 여호야긴은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보복을 받아 자신은 물론 백성, 방백, 용사, 공장(工匠), 대장장이 등 많은 사람들이 포로로 잡혀갔고, 에스겔도 이때 바벨론으로 가게 되었습니다(왕하 24'14-16)
-서기전 597년 2차 포로
또한 유다의 마지막 왕 시드기야는 처음에는 친바벨론 정책을 펼쳤으나 후에 바벨론을 배척하고 애굽과 동맹을 맺음으로 바벨론의 침략을 야기케 되어 결국 B.C.586년 예루살렘이 멸망하게 되는 결정적 계기를 제공하였습니다(렘 39 : 1-3),
-서기전586년 3차 포로(완전 멸망)
이처럼 유다 말기의 왕들은 국제 정치에 어두웠을 뿐 아니라 우유부단하고 주관이 뚜렷하지 못함으로 인하여 나라를 빼앗기는 큰 과오를 범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남왕국 유다 멸망의 더욱 근본적이며 결정적인 원인은 여호와 유일 신앙의 퇴조와 도덕의 타락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즉 유다 멸망의 직접적인 원인 제공자는 남 ․북 왕조 역사상 가장 오랜기간인 55년간이나 유다를 통치하면서(B.C.697-642년) 바알 ․아세라 등과 일월성신(日月星辰)을 섬김으로써 국내에 우상 숭배를 조장하고 자신의 아들을 우상의 희생 제물로까지 바쳤을 뿐 아니라 무죄한 자의 피를 많이 흘리는 악정을 편 므낫세였습니다(왕하 21 : 1-16).
물론 므낫세 이후 요시야 왕이 이방 우상을 파괴하고 성전을 수리하며 율법서를 발견하고 대대적인 신앙 개혁 운동을 펼쳤으나 므깃도에서 애굽과의 전투 중에 전사함으로써 여호와 신앙 회복의 불씨를 살리지 못하였습니다(왕하22 : 1
-23 : 30) .
그후 여호아하스 시대부터 다시 유다는 종교 혼합주의 양상으로 치달았으며 시드기야는 '애굽을 의지하지 말라'는 예레미야의 경고를 끝까지 거절하는 불신앙을 보임으로써 결국 바벨론에 멸망당하고 말았습니다(대하 36 : 12).
따라서 유다 지역은 완전히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식민지가 되었고 많은 사람들은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 갔으며 에스겔도 그 가운데 한 사람이었습니다. 당시 포로민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은 유프라테스 강과 연결되는 그발 강의 닙푸르(Nippur) 근처에 정착한 듯합니다.
아마 그들은 유프라테스강과 연결되는 운하를 건설하는 대규모 공사에 동원되었을 것입니다.
에스겔도 이 지역에 거주하였으며, 여기서 하나님의 계시를 받고 자기 동족들에게 얼마 있지 않아 있을 유다와 예루살렘의 완전한 멸망 및 뒤이어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에 의해 일어날 이스라엘의 정치적 ․ 종교적 회복을 예언한 것입니다.
이제 이러한 배경하에서 쓰여진 본서의 신학적 집필 동기를 살펴보도록 합시다.
에스겔이 처음 예언을 시작한 B.C.593년은 이미 바벨론에 의한 제 1차 포로(B.C.605년), 제 2차 포로(B.C.597년) 사건이있었고 예루살렘 성전까지 초토화되는 제 3차 포로(B.C.586년) 사건보다는 조금 앞서는 시기였습니다.
당시 바벨론은 앗수르를 완전히 제압하고 중근동 전체의 패권을 장악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유다는 풍전등화의 위기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유다 백성들 가운데는 하나님 임재의 상징이었던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은 결코 이방인의 수중에 넘어가지 않는다는 그릇된 낙관주의 풍조가 조장되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기 보다는 여전히 우상을 숭배하며 죄가운데 지냈습니다.
그리고 유다 지역에 남아있던 사람들 가운데는 자기들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보호를 받는 반면 바벨론에 잡혀간 자들은 그들의 죄에 대해 징벌받은 죄인이라는 잘못된 영적 우월감조차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상황 가운데서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을 통하여 유다의 멸망과 회복에 관련된 미래의 일을 미리 보여주심으로 자신이 전지 전능하신 창조주이시며 역사의 섭리자되심을 드러내셨습니다. 즉 에스겔은 먼저 유다와 예루살렘의 완전한 멸망을 예언하였습니다.
이는 당시 유다 사람들이 가졌던 잘못된 선민사상을 분쇄하는 것으로써 죄를 범하고 회개치 않는 자는 누구나 할 것 없이 멸망받을 것이라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원리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따라서 당시 유다 백성들이 바벨른에 포로로 잡힌 것은 그들의 범죄로 인한 당연한 결과이므로 이를 거부할 것이 아니라 겸손히 수용하며 마땅히 이러한 징계를 신앙 회복의 기회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본서를 통하여 보여주고자 하는 보다 중요한 하나님의 계시는 이스라엘의 회복이다. 즉 본서는 하나님께서는 범죄한 자를 철저히 징계하시는 공의로우신 분이심과 동시에 한번 택한 자를 끝까지 돌보시는 신실한 분이시며, 잘못을 뉘우치는 자를 회복시켜 주시는 자비로운 분이심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처럼 역사의 주관자이신 전지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범죄한 유다와 더불어 패역한 열방을 징계하시되 그 가운데서 택한 민족인 유다 백성은 회복시키실 것이 약속되어 있는 것입니다.
본서는 이처럼 포로 귀환을 약속하되 정치적인 회복보다는 성전과 예배 의식의 회복에 더 큰 강조점을 둠으로써 택한 백성이 하나님과 더불어 교류하며 하나님이 원하시는 구속사의 주역으로서의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할 사명이 있음을 암시합니다.
그러나 본서는 단순한 이스라엘의 포로 귀환과 선민으로서의 회복만을 예언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실로 구약 이스라엘이 예표하는 바 신약 시대의 영적 이스라엘인 성도들이 신약 시대에 경험하게 될 하나님 나라의 영광과 더 나아가서는 그리스도의 재림 이후 경험하게 될 새 하늘과 새 땅에서 하나님과 교제하는 가운데 경험하게 될 미래의 영광을 예언함으로써 모든 성도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충실한 營을 살 수 있도록 격려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본서는 좁게는 범죄한 유다 백성들이 향후 겪게 될 예루살렘의 멸망과 바벨론 포로 생활을 예언함으로써 죄에 대한 경각심을 가지게 하고,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의 은혜로 이스라엘이 회복될 것을 예언함으로써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선민으로서 성결된 삶을 살게 하기 위해 쓰여졌습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본서는 전지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시작되는 신약교회의 영광스러운 양상과
그리스도의 재림하신 이후에 전개될 새 하늘과 새 땅의 도래를 보여주심으로 구속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깊은 신뢰를 갖게 하기 위해 쓰여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2. 지난 주 수요예배 말씀 에스겔3:16-21, 파수꾼의 사명
하나님은 에스겔의 사명을 늘 깨어 경계하며 미리 위험을 알려야 할 파수꾼에 비유함으로 오늘날 이 사회 속에서 에스겔과 같이 영적 파수꾼의 사명을 감당해야 할 성도들의 책임이 막중함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교훈 정리(3)
첫째, 구원얻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복음의 파수꾼이다.
-그리스도인이 됐다는 것은 이미 구원받았고, 생명을 얻었다는 것으로 우리는 사는 길을 알기 때문입니다.
->사는 길을 아는 사람이 그 길을 사람들에게 알려 주는 것은 인지상정입니다.
특효약으로 치료받은 사람이 같은 환자에게 특효약을 소개하는 것은 자연스런 일!!
=>더구나 주님은 우리에게 파수군의 사명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불러서 파수꾼의 사명을 주셨지만 나는 사명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되고, 생명의 구원을 얻는 순간, 주님의 나의 주님으로 고백하는 순간, 우리는 이미 파수군이다. 성령의 감동이 바로 부르심이다. 성령의 감동이 없는 사람은 부르심을 받지 않은 사람=>성도가 아닙니다!!
=>우리가 사명자임을 한시도 잊지 말고 삽시다
둘째, 파수군이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면 다 죽는다
-나만 책망받고, 나만 죽는 것이 아닙니다 다 죽습니다
*성루의 파수꾼이 파수를 보지 않고 있다면 그 성은 언제 적군에 함락될지 모릅니다...
우리는 하나님앞에서 엄중한 책임을 져야 합니다
=>나도 살고, 우리 모두가 사는 길, 내가 파수꾼의 사명을 잘 감당함에 있다는 것을 압시다
오늘의 성경과 말씀
1.오늘의 성경 : 다니엘
1) 제목
히브리 원전은 본서의 주인공이자 저자의 이름인 ‘다니엘’을 그대로 본서 제목으로 썼습니다.
이에 따라 영어 성경들과 한글 개역 성경에서도 각각 Daniel ’과 ‘다니엘’을 제목으로 정하였습니다.
‘다니엘’은 ‘하나님은 나의 심판자이시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어 하나님께서 전(全)역사의 주관자로서 결국 당신이 태하신 자들의 구원으로 귀결되도록 전 역사를 통하여 열국의 흥망성쇠 및 그 궁극적 심판을 주도하실 것임을 보여주는 본서의 내용과도 잘 부합됩니다.
2) 저자와 기록 연대
본서는 본서 자체의 내증(8 : 1, 15 ; 9 : 2, 20 ; 10 : 2 ; 12 : 11) 및 탈무드 둥 유대 전승의 외증(外證) 등에 의해 B. C. 586- 539년 사이의 포로시대 및 그 전후에 실로 포로시대의 걸출한 신앙영웅으로 활약하였던 다니엘의 저작이라는 견해가 정통적으로 인정되어져 왔습니다.
이제 본서의 저작 연대를 더욱 좁게 추정해 보자면 다니엘이 가장 마지막으로 받은 묵시가 소위 힛데겔 강가의 묵시(제 10-12장)인데 이것이 주어진 시기가 B.C.536년으로 명시된 것으로 볼 때 본서의 기록 시기는 B.C.536년에서 그의 사망 연대인 B.C.530년 사이로 판단됩니다.
3) 집필 동기와 배경
다니엘서는 정확히 말하자면 B. C. 586- 539년 사이의 포로시대 및 B.C.538년에 이르러 소위 포로 귀환이 갓 허락된 시대 곧 귀환시대 (B. C. 538 - 400) 초기라는 실로 격변하던 과도기적 역사 상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소위 바벨론 포수 초기에 선민 이스라엘은 절대 초월자요 유일하신 참 신으로 믿어오던 여호와의 성전이 위치했던 성도 예루살렘은 무너지고 왕과 제사장들을 위시한 많은 귀족이 죽음을 당하거나 이방인들의 노예가 되었고 숱한 백성들도 바벨론 제국의 식민 정책에 따라 제국의 수도인 바벨론 근경으로 포로로 끌려가는 큰 시련을 겪어야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부터는 이처럼 곳곳에 흩어전 선민 이스라엘은 특별한 개인적 경우를 제외한다면 바벨론, 메대-바사 과도제국 등으로 이어가며 제국의 체제와 지배자들은 변했으나 특별한 정치적 위협없이 그런대로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오히려 때로는 대제국을 일정 수준 안에서 무리없이 유지하려는 각제국의 식민 정책에 따라 보호내지 우대까지 받으며 이방 문화에 급속히 동화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서서히 선민 이스라엘로서의 정체성 (Identity) 을 상실해 가고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포로 귀환이 허락되었을 때에도 이것이 그 옛날 하나님이 숱한 션지자들을 통해 주산 회복 약속의 성취라는 감격은 극히 일부 사람에게만 국한되었고 그저 우연한 정치적 환경 변화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더욱 많은 형편이었습니다.
한편 이 당시 오직 여호와만을 절대 초월자요 유일한 참 신으로서 믿고 섬기는 이스라엘 민족을 제외한 근동와 모든 민족들은 그 스스로 또 저절로 존재하고 있는 우주에는 숱한 신이 있어서 각지역과 민족에 따라 신들이 각각 다를 수밖에 없고 어떠한 신들을 얼마나 잘 섬기는가에 따라 각민족이나 개인의 운명이 좌우된다는 다신교 사상에 젖어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이제 야처럼 미묘한 격변기에 처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음 두 가지의 극단적 오류에 빠져들 위협이 있었습니다.
그 하나는 하나님께서 이제 급기야 이스라엘을 더 이상 당신의 선민으로 여기지 않으신다는 것이었습니다.
즉 하나님 당신 자신은 절대 유일신이지만 선민 이스라엘이 끝없이 그분께 패역한 결과 마침내 저주를 받아 급기야 선민의 지위를 영원히 상실했다고 생각하는 오류였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북이스라엘과 남유다 왕국의 멸망은 일개 민족 국가의 멸망이라는 관점에서 받아들일 수 있는 단순한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두 왕국의 멸방을 하나님과 그의 택하신 백성이라는 관계의 철폐, 아울러 다윗 언약, 즉 하나님께서 다윗 가문의 왕권을 영원히 보존하시겠다는 약속(삼하 7: 11-16) 을 파기하는 증거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따라서 두 왕국의 멸방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었어서 더할 수 없이 절망스러운 일이었던 것입니다.
한편 또 다른 두번째의 오류는 아예 여호와 하나님 자체가 절대 초월자로서 유일신이신 것이 아니라 다만 여러 신들의 하나에 그것도 지금 당장 자신들을 지배하고 있는 이방 만족들이 섬기는 신들보다 더욱 열등한 한 신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오류였습니다.
바로 이런 사대 상황에서 포로시대의 걸출한 신앙영웅 다니엘 등이 여호와 절대 신앙의 지조를 사수하려는 와중에서 끝없이 극한 시련을 당해야 했으나 언제나 궁극적으로는 모든 시련이 하나님의 역동적 개업으로 오히려 더욱 더 큰 승리와 영광의 전환점으로 반전됨으로 해서 평생에 걸쳐 포로 출신이라는 한겨 를 극복하고 영 • 육간에 위대한 삶을 살았던 역동적 사건들이 이어졌습니다.
또 다니엘을 통하여 초월적 자존자요 창조주로서 전역사에 대해 주권을 홀로이 가지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바 선민의 종말론적 구원과 승리를 위하여 진행되어 가는 구속사의 전개 과정이라는 웅대한 주제를 대제국들의 흥망사를 중심으로 해서 다양한 측면과 관점에서 다중적으로 보여주는 놀라운 묵시들이 주어졌습니다.
이들 곧 다니엘을 중심한 사건과 묵시들은 모두 다 앞서 말한 양대 오류의 가능성을 극복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즉 선민 이스라엘이 그 국권을 상실하고 또 끝없이 포로나 속국의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이 선민 이스라엘을 영원히 버리셨거나 , 여호와 하나님이 이방신들보다 무능하셔서가 아님을 확인케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이는 다만 끝없이 패역하던 자신들을 향한 일시적 징계일 뿐야며 하나님은 곧 자신들을 회복하사 선만을 중심으로 완전한 종말론적 평화와 승리가 오는 그 날까지 자신들은 물론 지금 당장 자신들을 지배하고 있는 대제국들의 역사까지 주관 섭리해 주실 것이라는 원대하고도 성숙한 역사 인식을 갖게 해주었습니다.
한편 이제 다니엘의 말년인 B.C 538년에 이르러 바사 제국 초대 황제 고레스(Cyrus, B. C. 8-530)가 이스라엘 포로의 귀환 허가 조서를 공포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이제 이스라엘 출신의 많은 포로들이 고토(故土)로 돌아가 다시금 옛 땅의 주도세력이 되는 것이 허락되었다. 그러나 물론 아직 완전한 독립국가 체제를 회복할 수 있게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리하여 다니엘은 성령의 영감으로 포로시대의 연장선에 있는 이런 미묘한 상황에 처한 선민 이스라엘의 후예들에게 과거 자신이 평생에 걸쳐 체험한 역동적 사건들과 하나님이 자신에게 직 • 간접으로 주신 대묵시들을 후대에 기록 전수하고자 본서를 기록하였습니다.
즉 선민의 후예들이 그 어떤 상황하에서도 역사의 겉모습만을 보고 일희일비를 거듭할 것이 아니라 역사의 이면에 있는 실체 곧 절대 초월자로서 전 역사를 주관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존재와 사역 그리고 선민의 종말론적 승리와 구원을 위해 일직선으로 진행되는 역사의 목적과 그 기본 전개의 틀, 그리고 그 어떤 상황에도 불구한 선민 지위의 불변성을 확신하고 여호와 안에서 선민의 축복과 평안을 온전히 누리게 해주고자 본서를 기록했던 것입니다.
참고로 밝히자면 상호 동일하게 포로시대 또는 포로 귀환 시대를 배경으로 주어지고 기록된 양대 대선지서인 에스겔서와 다니엘서는 양자 모두 선민의 회복 및 종말론적 구원과 승리를 말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같으나 에스겔서가 주로 성전을 중심으로 한 선민 자신들의 종교적 회복을, 다니엘서는 이방 대제국들에 대한 선민의 정치적 회복과 승리에 치중하고 있는 점에서 서로 상보적 관계에 있다 하겠습니다.
4) 다니엘서의 내용 전개
① 다니엘 생애의 대사건과 간접적 묵시들(1-6장)
② 다니엘이 직접받은 대 묵시들(7-12장)
2. 오늘의 말씀 다니엘 3:13-18,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다니엘서 3장는 여호와 절대 산양을 사수하던 다니엘의 세 친구의 풀무불 처형 사건으로 느부갓네살왕이 금신상을 만들어 세우고 모든 백성들에게 절하도록 명령을 내렸으나 그중에 다니엘의 세친구가 절하지 아니한다 하여 고발되어 왕앞에 끌려가 심문을 받게 되었고 신앙의 지조를 굽히지 아니함으로 풀무불에 던져지지만 하나님의 보호하심으로 멀쩡히 살아나오게 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천하에 드러낸 위대한 하나님 신앙의 승리 이야기입니다.
그 중에서 오늘 말씀은 왕 앞에 끌려온 그 세 친구가, 다시 한번 기회를 주어 이제라도 금신상에게 절하면 풀무불 형벌을 면케 해 줄 것이라는 왕의 제의마저 거부하고, 왕 앞에서 풀무불 속에서 죽을지라도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기겠다는 놀라운 신앙 지조를 피력한 사실을 기록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본문 해설
13. ○느부갓네살 왕이 노하고 분하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끌어오라 말하매 드디어 그 사람들을 왕의 앞으로 끌어온지라
갈대아인들의 참소는 성공하였다.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금신 상에게 절하게 함으로써 자기의 절대 권력을 과시하고자 했던 느부갓네살은 자기가 세운 금신상에 절하지 않은 자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노발대발 하였습니다.
14. 느부갓네살이 그들에게 물어 이르되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야 너희가 내 신을 섬기지 아니하며 내가 세운 금 신상에게 절하지 아니한다 하니 사실이냐
6절에서 느부갓네살은 금신상에 절하지 않는 자는 누구든지 즉시 불에 태워 죽이도록 명령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도 사드락과 메삭과 아뱃느고가 왕의 심문을 받은 것은 그 세 사람이 재판 없이 처형되기에는 그 지위가 너무 높았고 더욱이 왕이 가장 신임하는 다니엘의 친구였기 때문이었을 것이입니다.
또한 이 세 사람은 모든 정사를 처리함에 았어 남다른 능력과 신실성으로 주위 사람들에게 좋은 정평을 얻었을 것이므로 (1 : 17-20) 이들이 왕의 명령을 거역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할지라도 한 번 정도 확인하고자 했던 것이 당연합니다.
여기서 ‘사실이냐’는 말은 ‘고의적으로’라는 뜻입니다.
즉 왕은 세 사람이 금신상에 절하지 않은 것이 고의에 의한 것인지 아닌지를 확인하고자 했습니다.
이것은 왕이 세 사람에게 호의를 가지고 있었으며, 세 사람을 매우 조심스럽게 대하고 있었음을 나타냅니다.
이는 예외적으로 왕이 세 사람에게 우상에게 경배하여 목숨을 건질 수 있는 기회를 재차 주고 있다는 데에서도 분명히 드러납니다(15절).
이로 볼 때 느부갓네살은 온 나라를 우상 숭배에 빠뜨리는 잘못된 정열을 가지고 있기도 하였으나 또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에게 필요한 인물을 함부로 죽이지 않는 정치적 지혜를 지닌 지배자의 면모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15. 이제라도 너희가 준비하였다가 나팔과 피리와 수금과 삼현금과 양금과 생황과 및 모든 악기 소리를 들을 때 내가 만든 신상 앞에 엎드려 절하면 좋거니와 너희가 만일 절하지 아니하면 즉시 너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 던져 넣을 것이니 능히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낼 신이 누구이겠느냐 하니
▶이제라도 너희가 준비하였다가 나팔과 피리와 수금과 삼현금과 양금과 생황과 및 모든 악기 소리를 들을 때 내가 만든 신상 앞에 엎드려 절하면 좋거니와
본 구절은 신상 경배를 위한 낙성식이 여러 날 지속되었거나 아 니면 낙성식이 끝난 뒤에도 수사로 신상 경배 예식이 행해졌음을 보여줍니다.
한편 본절에서 느부갓네살이 사드락, 메삭, 아뱃느고를 회유해 보려 했던 행동은 이 세 사람에 대한 왕의 깊은 신임을 나타내 주고 있으나, 다른 한면으로는 그들의 여호와 신앙의 정절을 빼앗으려 하는 그의 집요함을 나타낸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너희가 만일 절하지 아니하면 즉시 너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 던져 넣을 것이니 능히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낼 신이 누구이겠느냐 하니
-느부갓네살은 회유와 죽음에의 위협을 병행하여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려 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절대 권력자가 어떤 회유책을 제시한 다음 그 회유의 권고를 듣지 아니하면 죽이겠다고 위협하는 것은 고대에 흔히 있던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주목되는 것은 왕이 내리는 벌, 곧 극렬히 타는 풀무불에 던져넣는 형벌에서 사도락, 메삭, 아뱃느고를 살려낼 수 있을 만큼 강한 신은 없다고 한 말 속에서 드러나는 왕의 극단적인 교만입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사드락과 메삭과 아뱃느고의 신, 즉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염두에 두고 ‘어떤 신도 풀무불에서 건져낼 수 없다’고 강변하고 있습니다.
결국 본 사건에서 싸움의 주체는 여호와 하나님과 느부갓네살 왕인 것입니다.
16.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왕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 ‘이 일’이란 왕의 제안, 곧 산상에게 경배하고 목숨을 건지라는 제안을 지칭합니다.
단지 인간의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진 여러 신들을 한꺼번에 섬기는 느부갓네살과 바벨론 관료들의 관점에서는 금신상이라는 또 하나의 경배의 대상을 추가하는 것에 불과한 것으로 별로 대수로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유일하신 하나님, 살아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직접 체험한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에게는 다른 경배의 대상을 둔다는 것이 곧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반역 그 자체였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바벨론 사람들과 자신들과의 이러한 신관에 대한 근본적인 차이점을 익히 알고 있었으므로 그들은 왕의 회유(15절)에 대해 단호히 거부하였던 것입니다.
17.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은 자기의 풀무불에서 어떤 신도 사드락, 메삭, 아뱃느고를 건져 낼 수 없다고 선언하였습니다(15절).
그런데 지금 세사람은 이러한 왕의 선언에 정면으로 도전하고 있습니다.
▶왕의 손에서도 건져 내시리이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왕의 말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전체주의 국가서 왕의 권력은 절대적인 것이라는 일반적인 인식조차 부정하였습니다.
즉 왕의 권력 자체가 세계와 역사의 절대권자이신 여호와로 말미암은 것인 바 하나님이 원하시기만 하면 언제든지 왕의 권세를 폐하실 수도 있음을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2 : 21).
세 사람은 일반적인 정사에 있어서는 왕의 부하로서의 직임을 충실히 감당하였으나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신앙의 문제가 대두되었을 경우 느부갓네살 왕의 부하로서의 직임보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의무를 우선하는 분 명한 판단 기준을 소유하였으며 그러한 기준에 따라 행동의 방향을 정하고 그대로 실천하였습니다.
이처럼 성도는 불신자와의 대인 관계를 포함한 모든 일에 모범되고 성실한 사람이어야 하되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유지하는 것만은 어떠한 힘의 위협이나 유혹 앞에서도 굴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18.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그렇게 아니하실지라도.
본 구절은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가지고 있었던 하나님께 대한 신뢰, 즉 하나님께서 풀무불 속에 던져진 자신들을 구원하시리라는 믿음이 약화되었음을 뜻하지 않습니다.
이들은 이미 17절에서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반드시 구원하시라라는 신앙을 고백했던 바 있습니다.
그러므로 본 구절은 느부갓네살의 생명에 대한 위협 조차도 결코 자신들의 여호와 신앙의 지조를 꺾을 수 없다는 선언임과 동시에 여호와 신앙의 지조를 지키기 위해 순교까지라도 감수하겠다는 그들의 신앙고백인 것이다. 즉 그들은 하나님께 대해 겸손하고 복종하는 확신만을 가지고 있었을 뿐 그 어떤 미신적 기적도 바라지 아니하였습니다.
한 마디로 세 사람은 장차 일이 어찌되든지 자신들을 전적으로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오늘 우리 에게도 이같은 ‘그리 아니하실지라도’의 신앙고백이 있는가?
정리 교훈(3)
첫째, 경건한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시기와 핍박이 있기 마련이다.
둘째, 하나님은 믿음의 사람들이 고난을 당할 때 권능으로 구원하신다.
셋째, 참 믿음의 사람은 고난중에 하나님이 권능으로 구원해 주시지 않는다고 해도 믿음을 떠나지 않는다
->그리아니하실지라도의 신앙으로 삽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