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메이저 마라톤 뛸 때마다 꼭 한 번씩은 운전자나 보행자가 교통경찰하고 실랑이를 벌이는 것을 봤다. “지들 좋아서 하는 운동인데 왜 내 갈 길은 막고 그러나” 하는 짜증이다. 이해한다. 데모와 시가행진 서울의 교통지옥 역사도 몇 십 년이다. 이젠 시위가 없어도 그냥 차가 많아서 허구 헌 날 막히며 사는 것이 우리 삶이다.
뉴욕이나 보스톤도 평소에 막히기는 마찬가지다. 뛰는 사람이 누구라도 상관없이 참가자에게 무조건 박수를 치며 응원해주는 신나는 축제의 하루가 서울에서는 불가능할까? 동아, 조선, 중앙이 경쟁하지 말고 합심하여 일년에 한 번, 개천절 공휴일이나 도시가 텅 비는 추석 연휴 중 하루, 멋지게 코리아 마라톤 대회를 개최하여 손기정 선수의 모국이라는 자부심을 살려줄 수 없을까? 신문사 관두고 ING 뉴욕 마라톤이나 JAL 호놀룰루 마라톤처럼 대기업에게 기회를 줘도 된다. 역사도 짧은 동경 마라톤이 세계 메이저로 부상할 야심전략을 펼치고 있다. 글로벌 마케팅을 잘해서 올해 외국 일반 참가자도 많았고 내년에 더 멋지게 개최한다고 난리다. 배가 아프다. 코리아 마케팅에 서울 마라톤대회와 손기정 스토리를 활용하면 좋겠다. 인터넷 강국, 휴대폰 명국, 잘 뛰며 잘 노는 따뜻한 마음의 나라, 코리아!
외국 마라톤 대회를 여덟 번 뛰었다. 시민들의 호응을 보고 번번히 감동했다. 대회 기간 중 관광객이 몇 명이고 외화소득이 얼마인가 종종 기사로 나온다. 글로벌 시대 21세기 부가가치 산업이 마라톤 대회 아닌가. 잘만 하면 실속 있는 국가 마케팅 이다.
이순금씨가 해외마라톤 참가에 불을 댕겼다. 그래서 한 번 비교해보고 싶어졌다. 로스엔젤레스 마라톤도 뛰었지만 서울에서 뛰는 거랑 별 차이가 없었기에 제외하고, 규모, 명성, 진행에서 수준급 3개를 비교해봤다. 다음에 단체로 가게되면 좋겠다. 계주 지니, 부탁해!
호놀룰루:
캄캄한 새벽에 축복기도와 불꽃놀이로 시작하여 검푸른 새벽 하늘이 검은 새 떼의 비행으로 밝아오는 때, 조용히 달리는 맛이 명상 수준이다. 다이아몬드 헤드 길을 달리며 아래로 태평양이 넘실대고 서핑하는 멋쟁이들이 물개처럼 앉아 높은 파도를 기다리는 것을 보는 것도 이 마라톤에서만 가능한 경치다. 완주 후 와이키키 바다로 첨벙 뛰어들어 땀으로 쌓인 소금기를 털어내면 회복이 아주 빠른 것도 호놀룰루의 장점이다. 문제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일본인들이 대거 참가하므로 미국 마라톤 뛰고 있는지 간간히 점검해야 한다. 구불구불 왕복 코스가 다소 지루하고, 더위가 심해 기록을 내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천천히 걷는 완주자가 많고 노년층이나 목발 주자, 외발 주자 등 경이로운 달림이들이 8시간 이상 더위를 지켜내는 장면을 보면 숙연해진다.
뉴욕:
시민들의 호응이 열렬해서 조용한 순간은 꿈꿀 수 없다. 규모가 알아줄 만큼 큰 대회이며 뉴욕 시 5개 구와 각종 다리를 다 통과하도록 코스를 잘 정했다. 주로에 라이브밴드가 많아서 힙합, 록큰롤 및 라틴음악까지 즐길 수 있지만 응원 함성이 워낙 커서 42.195 전구간이 시끌 벅적하다. 유럽에서 참가하는 달림이 단체가 많고 각각 유니폼을 입거나 국기를 달고 뛴다. 달리는 나도 명실공히 세계 마라톤을 뛰는 코스모폴리탄이라는 자부심을 갖게 한다. 11월 첫 일요일, 뉴욕 센트럴 파크의 가을 속으로 피니쉬라인을 향하여 달릴 때 대도시 안에서 화려한 단풍 구경을 하는 즐거움이 별미다. 대회 전날 유엔빌딩 앞에서 프렌드십 런도 국제행사로 손색이 없다. 대회 당일 출발 전 3~4시간을 추위에 떠는 것이 특징 겸 단점이고, 완주 후 도시 속 교통체증에서 시달린 후에야 호텔로 돌아와 샤워를 할 수 있다는 것도 아쉬운 점이다. 비싼 방값 때문에 맨하탄에 묵으며 완주 샤워 후 한가로이 산책을 하며 즐기는 호사를 누릴 수가 없으니까. 혹시 맨하탄에 친구가 있다면 강 건너 뉴저지에 묵는 아쉬움을 피할 수 있을텐데.
보스톤:
가장 역사가 오래되고 유명한 마라톤인데 의외로 소박하고 정겹다. 주로도 처음부터 끝까지 뉴잉글랜드 타운의 지방도로로 지나치게 넓지않고, 응원도 시끌벅적하거나 너무 요란하지 않아서 좋다. 월요일까지 공휴일인 봄날 잔치의 꽃이 마라톤 대회라는 것은 시민들의 따뜻한 반응으로 알 수 있다. 시내 북쪽 이태리 식당이 밀집한 곳에서 대회 전날 스파게티 먹으며 탄수화물 로딩을 할 생각이면 예약을 서둘러야 한다. 야구와 마라톤 얘기로 엄청나게 붐비는 그 곳에서 축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하프지점에서 여대생들에게 뽀뽀를 하며 뛰는 것이 특징이다. LA 마라톤에서는 “달림이한테 무료 서비스” 라는 알 수 없는 광고를 들고 소파에 앉아 응원하던 상업적 미녀가 있었다. 그래서 보스톤에서도 달림이에게 공짜로 키스를 해주는 여자들이 있나 보다 라고 짐작했었다. 그게 아니라 달림이가 키스할 권리를 갖고 있다는, 말하자면 주자들을 한층 존경해주는 웰슬리 여대생들의 재미난 응원방식이다. 유서 깊은 마라톤은 역시 다르다고 하면 분석이 지나치다고 욕먹으려나? 아무튼 권하는 바, 공짜 마일리지 티켓은 4월에 보스톤 행으로 끊으시라. 후회는 절대로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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