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6일. 한국의 탄생화와 부부 사랑 / 자작나무
- 순백의 겨울엔 순결한 자작나무 숲으로 가자
[슬픔에는 거짓이 없다 어찌 삶으로 울지 않은 사람이 있겠느냐
오래오래 우리나라 여자야말로 울음이었다 스스로 달래어 온 울음이었다
자작나무는 저희들끼리건만 찾아든 나까지 하나가 된다
누구나 다 여기 오지 못해도 여기에 온 것이나 다름없이
자작나무는 오지 못한 사람 하나하나와도 함께인 양 아름답다 ]
- 고은. 자작나무 숲으로 가서 중에서
고은 시인의 시의 일부입니다. 시인은 하얀 겨울, 하얀 자작나무 숲에서 삶의 근원적 슬픔과 그 슬픔을 위로하는 대자연의 포용에 대해 노래하고 싶었나 봅니다.
요즘같은 겨울의 탄생화로는 겨울에도 푸른 잎을 가진 상록수가 많습니다. 특히 잎이 넓은 상록활엽수로는 제주도와 남부지방에 방에 사는 상록수들을 많이 소개하였습니다. 오늘 한국의 탄생화는 반대로 북에서 온 나무입니다. 아름다운 꽃이 피는시기도 아니고, 겨울에 푸른 잎이나 인상적인 열매를 매달고 있는 것도 아니지만, 거추장스런 잎들을 모두 벗어 던지고 오직 순백의 나신으로 하얀 겨울과 어울리는 나무, 하얀 나무 껍질이 인상적인 [자작나무]와 [백두산자작나무], [만주자작나무], [좀자작나무] 등 `자작나무`의 이름을 가진 나무들이 오늘의 주인공입니다. 자작나무는 가을이면 낙엽이 지는 낙엽활엽수입니다. 자연의 이치로만 따지면 잎을 하루라도 더 잡고 있을 수 있는 따뜻한 남쪽지방을 더 좋아해야 하지만, 자작나무는 왠지 추운 북쪽지방을 더 좋아합니다. 자작나무가 자생하는 곳은 북한과 만주를 넘어 시베리아 벌판을 지나 북유럽까지 이어지는의 광활한 대지입니다. 우리나라 북한 땅이 자작나무가 자생할 수 있는 남방한계선이라 합니다. 우리나라 중부 이남에서 자라는 자작나무는 사람이 식재한 나무라고 보셔도 무방할 듯합니다.
인제 원대리에도 20년전에 식재한 자작나무 약 50만그루로 조성된 남한 최대의 자작나무숲이 하얀 겨울을 즐기려는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습니다. 겨울에 인제를 방문할 계획이 있으시면 꼭 들러보시라 권해드립니다.
자작나무가 이렇게 추운 지방에서 버티며 살 수 있는 것은 나무 몸통을 겹겹이 둘러 싼 하얀 껍질 때문입니다. 자작나무 껍질은 마치 종이처럼 잘벗겨지는데 풍부한 지방질로 이루어져 있어 냉기를 보호하여 준답니다. 이 지방질 덕분에 껍질이 잘 썩지 않아 종이가 귀하던 시절에는 종이 대용으로 사용하기도 하고, 땔감에 불 붙이는 불쏘시개 용도로도 사용했는데 불에 탈 때 `자작 자작` 소리를 낸다하여 [자작나무]란 이름을 얻게 되었습니다.
옛사람들은 자작나무를 ‘화(樺)’라 하고 껍질은 ‘화피(樺皮)’라 했는데, 결혼식 때 `화촉을 밝힌다`는 말의 엉원은 자작나무 껍질입니다.
경주 천마총에서 자작나무 껍질에 그린 `천마도`와 `서조도`가 발견되었는데, 천년의 세월에서도 그림이 지워지지 않고 잘 보존되어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였답니다.
자작나무의 꽃말은 [당신을 기다립니다]입니다. 자작나무가 기다리는 것은 아마도 따뜻한 봄일 것입니다. 겨울의 한복판을 지나는 세상도 이제부터는 봄을 향해 한발 한발 나아갑니다. 혹시 삶의 여정에서 현재 겨울을 걷고 계신분이 있다면 자작나무가 기다리는 봄이 멀지 않듯이 당신의 봄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하얀 자작나무가 주는 경건한 희망을 고은 시인의 시로 마무리합니다.
[강렬한 이 경건성! 이것은 나 한 사람에게가 아니라
온 세상을 향해 말하는 것을 내 벅찬 가슴은 벌써 알고 있다
사람들도 자기가 모든 낱낱 중의 하나임을 깨달을 때가 온다
나는 어린 시절에 이미 늙어버렸다. 여기 와서 나는 또 태어나야 한다
그래서 이제 나는 자작나무의 천부적인 겨울과 함께
깨물어 먹고 싶은 어여쁨에 들떠 남의 어린 외동으로 자라난다]
- 고은. 자작나무 숲으로 가서 중에서
https://youtu.be/2-VOD3CQ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