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반(道伴)
잘못을 일러주고 꾸짖어주는 지혜로운 이를 만난다면 땅에 묻힌 금 항아리를 알려주는 사람처럼 가까이하라.
그를 가까이하면 나아갈 뿐 물러서지 않으리라.
<법구경 78번> 게송입니다.
또 <행복경>에서는 “어리석은 친구를 만나지 않는 것이 첫 번째 행복이고, 지혜로운 친구를 만나는 것이 두 번째 행복이다.” 라고 하고 있습니다.
불가에서는 친구를 도반(道伴)이라고 합니다. '진리를 구하는 길동무'라는 뜻이지요. 그러지 못한 사이라면 차라리 혼자서 가라고 부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초기 경전인 <숫타니파타>에 있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가르침이 바로 그것입니다. 여기서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것은 인간의 모든 욕망과 집착에서 벗어나 깨달음을 얻기 위해 뿔이 하나뿐인 코뿔소처럼 우직하고 묵묵히 정진(精進)하라는 뜻일 것입니다. 그러나 함께 그 길을 가는 도반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법정 스님은 친구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주변에 나쁜 친구를 가려내기 전에 나 자신이 과연남에게 좋은 친구가 되고 있는지 스스로 물어봐야 합니다. 허물을 밖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가 좋은 친구를 만날 수 있는 그런 바탕이 준비되어 있는가, 아닌가를 스스로 물어야 합니다. 좋은 친구란, 나를 속속들이 잘 알고, 나를 받아주고 세상에선 다 내치더라도 나를 이해해 주는 마음의 벗입니다. 좋은 친구란 서로의 부족하고 모자람을 채워주는 것입니다. 온전한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다 부족합니다. 그것을 내 친구가 채워 줍니다. 좋은 친구는 먼 데 있는 게 아니라 바로 가까이 있습니다. 그 친구가 지닌 좋은 요소, 좋은 향기를 내가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라고 했습니다.
행복경에서 사천왕이 부처님에게 행복이 도대체 무엇인지 질문했을 때, 부처님은 37가지 행복을 설명합니다. 그 37 가지 행복 중에서 맨 처음에 어떤 친구 또는 동료를 만나는가에 행복이 달려있다고 했습니다. 우리네 인생살이가 그렇습니다.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 행불행이 결정되기도 합니다. 어떤 남편 어떤 아내를 만나는가에 따라, 어떤 자식을 만나는가에 따라 인생의 행불행이 결정되기도 합니다. 어떤 직장 상사를 만나는가에 따라, 어떤 직장 동료를 만나는가에 따라 사회생활의 행불행이 결정되기도 합니다.
불교 수행의 길은 만만치 않습니다. 어떤 도반을 만나는가에 따라 가는 길이 달라집니다. 하지만 대체로 유유상종이라고 자기가 추구하는 길을 함께 가는 사람들끼리 어울리기 마련입니다. 학습은 학승끼리, 포교승은 포교승끼리, 권승은 권승끼리, 수행승는 수행승끼리 어울립니다. 같은 길을 가지 않으면 도반이라고 부르기 힘듭니다. 물론 행자 도반, 강원 도반, 선방 도반 등으로 부르기는 하지만 모두가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진짜 도반은 아닌 것입니다. 행복경에서 언급한 친구는 물론 도반을 말합니다. 정신적인 성숙을 향해 나아가는 동료, 함께 도를 닦는 친구, 함께 불교 공부하는 친구를 말합니다. 절에 다니는 신도들을 보면 여기서도 추구하는 바에 따라 끼리끼리 모입니다. 교리를 좋아하는 분들은 교리 공부 모임에 기도 좋아하는 분들은 기도 모임에, 수행 좋아하는 분들은 수행 모임에 들어가 선행 생활을 합니다. 다 추구하는 바가 다르니까 뭐라 할 수는 없지만, 옆에서 보기엔 안타까운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불교 공부에서는 이 도반을 만나는 것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바르고 올바로 깨달으신 부처님이 현존한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우리는 그런 복은 타고나지 못했습니다. 부처님은 아니더라도 아라한이라도 아니면 수다원이라도 만난다면 행복경에 맨 처음에 등장하는 진짜 행복, 아니 크나큰 행운이 되겠지요.
<상윳따 니까야>에서 아닌다가 말했습니다. "부처님이시어, 좋은 도반을 만나는 것이 도의 절반입니다." 부처님이 답하십니다. "아난다여, 그렇게 말하지 마라. 좋은 도반을 만나는 것이 도의 전부이니라." 여기서 말하는 도반은 나를 이끌어줄 선지식, 스승을 말합니다. 스승을 잘 만나면 도를 깨닫는 것은 떼놓은 당상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디서 참 스승을 찾을 것인가? 요즘 유튜브에는 많은 스승이 등장합니다. 세상은 바야흐로 스승 범람 시대입니다. 인생 코치를 하는 스승, 교리를 가르치는 스승, 이런저런 수행을 가르치는 스승, 다양한 스승들이 자신의 경험과 지혜를 전합니다. 도를 매달았다는 분들도 있고, 또 그들의 말이 모두 그럴듯하게 들립니다. 물론 그중에는 위장 도인도 있겠고 진짜 도인도 있겠지요.
그런데 어떤 분이 진짜 스승일까요? 세상은 의외로 어리석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말도 되지도 않는 사람의 말을 추종하면서 시간과 돈을 낭비하기도 합니다. 뭐, 세상은 원래 요지경이기는 하지만, 정신적인 성숙을 향해 나아가는, 오직 진리만이 현존해야 할 그런 길에서도 만만치가 않아 보입니다.
잠자는 토끼 곁을 숨죽이고 살금살금 되어가는 거북이는 결코 좋은 도반, 좋은 친구라고 할 수 없습니다. 좋은 친구와 도반은 자신의 이익을 내려놓을 줄 아는 사람입니다. 나의 이익을 내려놓고 공존의 삶을 살아가는 것 그것이 부처님 가르침의 본질입니다. 더불어 함께 공존의 삶을 사는 것 그것이 좋은 도반이라 하겠습니다. 이 세상 두두물물이 도반 아닌 것이 없습니다. 좋은 도반을 찾으려하지 말고 내가 먼저 좋은 도반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 모두 서로서로 좋은 도반이 되어 더불어 행복한 세상을 이루어 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