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듯 아닌듯한 연속된 삶에서 아닌듯 같은 일상에서 탈피하고자 이시절에 어느 누구 보다도 가까운 사이가 되어 버린 "산" 이라는 친구를 만나러 떠난다.
성주.합천에 걸쳐 있으며 고려팔만대장경을 소유한 해인사를 품고 있는 낮익은 가야산(1430)이다.
일기예보상 흐림으로 비가 올듯 말듯 한데 가을의 문턱은 벌써 넘었는지 바람과 함께 날이 차다.
고령으로 접어드니 들판은 황금빛이고 벌써 잘려져 드러누운 벼들도 있다. 같은듯 아닌듯한 세월의 반복이 얼만큼인가~~
역시 국립공원 이구나를 실감한 날이었다. 내 생각과는 달리 정상부의 어마 어마한 대 암릉지대에 놀랐고 만물상의 만물의 형상에 감탄할 뿐이었다.
이전 만물상과 용두골로 해서 몇 차례 오른산인데 해인사쪽으로 해서 오른것은 20여년전 딱 한번인데 오늘은 그곳으로 오르는 추억의 산행이다.
요번산행은 원점회귀가 아닌 해인사에서 시작 정상을 찍고 만물상을 거쳐 백운동으로 하산하는 코스인데 문제는 차량회수 였다.
고령덕곡을 지날 무렵 콜택시에 전화 요금을 물어 보니 이만오천인데 내가 깍아 달라 하니 이만삼천원 까지 해준다네. 왜 그리 비사냐 하고 나중에 전화 한다 하고 끊음.
버스를 탈수 있으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버스를 타기로 하고 1시간반 만에 백운동주차장에 도착하니 산행철이어서 인지 산의 명성이 입소문을 탄것인지 차량이 꽤나 많다.
그런데 이곳을 통과하여 해인사로 가는 버스가 있으리라 생각 했는데 없다네. 할수 없이 다시 콜에 전화해 이만삼천에 좀 태워 달라니 못오겠다고 한다.(다른 콜에 전화 하니 전부 이만오천)
황당한 마음에 오늘 산행은 어떻게 할까 고민하면서 요금 문제를 생각해보니 완전 배짱이다. 아마도 이곳을 지나치는 버스가 없으니 자기들 맘데로 하는것 같다. 해인사까지 13키로 정도이고 길도 무난한 편인데 다른 지방의 경우를 보면 비싸다는 생각은 지울수 없다.
번개처럼 스치는 생각. 백운동주차장에는 각지역에서 온 산행버스가 있는데 산객을 여기서 하차 시키고 해인사로 가서 대기하는 버스가 많다. 그래서 그걸 타기로 하고 주차장 출구에서 거의1시간을 기다리니 경북 버스가 나오네. 손을 드니 세우는데 해인사 가느냐고 하니 그렇다고 하여 좀태워 달라니 태워주네.
포항에서 온 차량인데(유진산악회) 여기서 일부 내려주고 나머지는 해인사 가서 계곡에서 논다네(일명 계곡조). 버스 1시간 기다리고 이만오천을 세이브함.
해인사 주차장에 하차하여 본격산행이다. 낯선듯 아닌듯 긴 세월동안 이곳도 많이 변했다. 없던 시설물도 많이 생겼고 해인사 들어가는 길에 아스팔트 도로도 설치되어 있으며 외국인 관광객도 있고 사람이 많다. 무서운 세월앞에는 자연도 변해 가는구나를 실감한다.
해인사 지나자 바로 토신골 들머리가 있다. 계곡 따라 쭉 이어지는 편안한길인데 평지로 걷다 정상2키로 남은 지점부터는 다소 가파르다. 바람도 새도 바위도 나무도 다 친구처럼 생각하며 걷는다. 다소 흐린 날씨에 바람이 불어 잠바까지 걸치고 걷는데 중턱무렵 부터는 그래도 땀이 꽤나 쏟아진다.
이쪽 등로는 길지만 다소 완만하며 만물상쪽 등로는 가파르다. 이쪽은 계곡산행이 쭉 이어지는데 숲으로 우거져 조망은 전혀 없고 단풍도 아직은 익지 않았다.
어느덧 안내판이 석조여래좌상 50 m라고 되어 있다. 멀면 가지 않으려 했는데 가까이 있어 등로 오른쪽으로 잠시 가니 석조여래 좌상이 홀로 외롭게 서있다. 긴 세월 산 정상부에서 얼마나 많은 산객을 맞았을까? 오늘 나도 그중 한사람인가?
여래좌상 지나 철계단을 오르면 거대한 암릉이 눈앞에 서면서 어두운 터널은 끝이 나고 모든 산야가 눈앞에 펼쳐진다. 이곳 부터는 산 정상지대로 가야산의 진면목이 시작된다. 여기저기 단체로 온 산꾼들이 많다. 그리고 계곡과 달리 단풍도 물이 들어 가고 있다.
예전 오르막을 꽤나 올랐다는 희미한 기억 밖에 없는데 그전에 없던 철계단들이 많이 설치되어 있다. 다소 가파르게 철계단을 올라 능선을 넘어 가면 신천지가 전개된다. 가야산 정상부의 거대한 암릉군이 마치 신선이 노니는 곳 인양 눈 앞에 펼쳐진다. 어마 어마 하다.
여기 저기 산을 많이 다녔는데 거기에 비하면 이산은 과히 군계일학이다. 급이 다르다고 해야 하나 멍하니 서서 한참을 보았다. 예전엔 이정도라고는 생각도 않았는데 정상포함 주변 암릉군이 수만평은 될듯 하다
정상주변엔 부딪힐 정도로 산객이 많다. 인증삿후 그 옆쪽 200 미터 건너편 칠불봉으로 가서 점심을 한다.
가야산의 만물상을 안주삼아 한잔술에 취하고 떠가는 구름을 보며 삶을 회상한다. 산행중 가장 편안한 시간이다.
칠불봉에서 만물상쪽으로 하산길은 상당히 가파르다. 허지만 온 시야가 트여 있고 멋진 암릉과 소나무는 힘이 든줄 모른다. (산행내내 숨이 차거나 힘듬을 느끼지 못함).
큰 어려움 없이 서성재에 도착한다. 몇 사람이 때늦은 점심을 하고 있다. 이산은 단체로 온 팀이 많아 산행내내 사람없어 적적한 것도 없고 도시옆의 산처럼 엄청 붐빈다. 서성재 부터는 몇번인가 산행한 코스다.
서성재에서 한 5분정도 가파르게 오르면 상아덤이다. 만물상이 시작되는 곳이며 또 한번의 신세계가 펼쳐진다.
말그대로 만물의 형상을 돌로 만들어 놓은듯 온갖 모습의 바위들이 산재해 있다. 또한 주변 좌우측 능선의 기암괴석들 또한 눈요기 꺼리다. 하산 내내 온세상이 눈에 들어오는 조망은 덤이다.
설악 공룡능선 비해서도 손색이 없다. 미니 공룡능선 이랄까. 자연이 만들어 낸 기기묘묘한 작품앞에 한없이 작아지는 느낌이다.
지형적으로는 내려가는 길이라 대체적으로 내리막길이지만 세번 정도 내렸다 봉우리쪽으로 다시 올라야 한다. 허나 크게 힘들지는 않다. 다만 입구 600 미터 남은 상태에서는 급경사 나무 계단길이다. 이코스는 무릎 보호 차원에서, 내려가기 보다 오르는 산행을 해야 하는곳이다.
역시 멋진곳인가. 사람이 많다. 아마도 최근래 산행중에 등산객이 이만큼 많은것은 처음인거 같다.
스틱에 의존 하면서 무릎에 무리가 가지 않게 천천히 조심스럽게 내려간다. 문득 옛생각이 난다. 언젠가 처음으로 이쪽길로 하산 했는데 중간지점부터 무릎이 아파 기다시피 겨우 내려 왔는데 그것으로 인해 한 2년여 산에 가지를 못했다
만물을 구경하며 내려오다 보면 지루할 사이도 없이 입구가 나타난다. 몸과 마음이 새롭게 태어나는 듯한 아주 즐거운 산행이었다. 식사 시간 포함 5시간35분이 소요 되었다.
이곳저곳 큰산, 자그만 산도 다녔지만 이산은 격이 다른것 같다. 그전에 왔을때는 이렇게 놀라지는 않았다. 산은 다 저런가 생각했는데 내가 다닌 다른산들과 비교해 보니 이산의 진면목을 비로소 알게되는것 같다.
산이라고 다같은 산이 아니다? 산에도 급이 있고 품격이 있는가? 국립공원이 그냥 국립공원이 아닌것 같다. 여러가지 기준이 있겠지만 산행을 하는 우리에겐 지형.산세 등이 최우선 아닐까. 그리고 잘 정비된 등로와 안내판은 편안한 산행을 도와준다. 가야산은 거대한 암릉군 하나만으로도 국립의 자격이 있는것 같다.
특히나 암릉을 최우선으로 생각 하는 나에게는 가야산 정상의 거대한 암릉군과 만물상의 오묘한 바위들은 너무 멋있고 누구나가 감탄하며, 찾고 싶은곳이며 그것 하나 만으로도 자격이 넘친다.
20여년만의 해인사 계곡길의 추억산행은 그시절을 회상하며 지난 세월 만큼이나 변한 새로운 모습에 놀랐고 전혀 힘들지 않고 편안하며 산행내내 세상만사 잊고 잠념하나 없이 즐겁게 산행한 하루로 남을거 같다. 다시 가고 또 가고 싶은 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