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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광주대교구 꾸르실리스따 원문보기 글쓴이: 이선정스테파노
2024년 10월 12일 토요일
[(녹) 연중 제27주간 토요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오늘 전례
[백] 복되신 동정 마리아
말씀의 초대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와 하나 되는 세례를 받은 여러분은 다 그리스도를 입었고, 예수님 안에서 하나라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낳아 젖을 먹인 여인보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여러분은 모두 믿음으로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갈라티아서 말씀입니다. 3,22-29
형제 여러분, 22 성경은 모든 것을 죄 아래 가두어 놓았습니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
믿는 이들이 약속을 받게 되었습니다.
23 믿음이 오기 전에는 우리가 율법 아래 갇혀,
믿음이 계시될 때까지 율법의 감시를 받아 왔습니다.
24 그리하여 율법은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게 되도록,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 우리의 감시자 노릇을 하였습니다.
25 그러나 믿음이 온 뒤로 우리는 더 이상 감시자 아래 있지 않습니다.
26 여러분은 모두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믿음으로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27 그리스도와 하나 되는 세례를 받은 여러분은 다 그리스도를 입었습니다.
28 그래서 유다인도 그리스인도 없고,
종도 자유인도 없으며, 남자도 여자도 없습니다.
여러분은 모두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나입니다.
29 여러분이 그리스도께 속한다면,
여러분이야말로 아브라함의 후손이며 약속에 따른 상속자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선생님을 배었던 모태는 행복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27-28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27 말씀을 하고 계실 때에
군중 속에서 어떤 여자가 목소리를 높여,
“선생님을 배었던 모태와 선생님께 젖을 먹인 가슴은 행복합니다.” 하고
예수님께 말하였다.
28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바오로 사도는 믿음이 오기 전에 율법이 “감시자” 노릇을 하였다고 말합니다(갈라 3,24 참조). 『200주년 신약 성서』에서는 같은 단어를 “후견인”으로 옮깁니다. ‘파이다고고스’라는 이 그리스 말 낱말은 어원적으로는 ‘파이스’ 곧 아이에게, ‘아고고스’ 곧 길을 안내하는 사람을 뜻합니다. 그리스와 로마에서는 상류층의 사람들이 믿을 만한 종에게 아이의 생활을 돌보고 가르치는 일을 맡겼고, 그 일을 하던 사람을 이렇게 불렀습니다.
이들은 교사 또는 스승과는 달랐으며, 어느 정도 나이가 될 때까지 바른 생활을 가르치며 훈육하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어린 아들은 종보다 신분이 높지만 감시자인 종에게 교육을 받습니다. 성인이 되었을 때 자유인으로서 올바로 살 수 있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가 성인이 되었을 때는 종인 감시자에게 매여 있지 않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율법이 있었던 것도, 우리에게 율법이 절대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 (3,24) 준비가 필요하였기 때문입니다.
오늘 제1독서에 나온 낱말들로 표현하여 본다면, 율법은 한편으로는 “죄”가 무엇인지를 알게 하여 주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약속”을 주었습니다. 우리가 무엇에서 해방되어야 하는지를 알게 하면서 거기에서 벗어나게 되리라는 약속도 주었던 것입니다. 어린아이였던 우리가 성인이 되었을 때, 참으로 성숙해졌다면 우리에게는 감시자가 필요하지 않아야 합니다. 제멋대로가 아니라, 감시자가 없어도 자유를 사용하여 사랑으로 서로 섬겨야 하기 때문입니다(5,13 참조). 거기에 이르지 못하였다면 그것은 아직도 감시가 필요한 미성년자라는 뜻일 것입니다.(안소근 실비아 수녀)
하느님께서 슬퍼하실 나와 그를 분리하고 배척하는 행위!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사도 바오로의 신앙 여정을 정말이지 특별합니다. 베드로 사도와 함께 초대 교회를 이끈 최고 책임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을 자신의 눈으로 직접 뵙지도 못했던 사람이었습니다. 또한 그분으로부터 직접 선발된 직제자도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심이후 사도로서 그의 모습은 열두 제자 못지않게 예수님의 가르침에 충실했습니다. 복음 선포를 향한 열정을 생각한다면, 그 어떤 사도도 그를 따라가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제자는 말 마디 그대로 스승을 따르는 사람입니다. 스승의 가치관과 삶의 궤적, 스승의 사고방식과 행동 양식, 지향점 등등 그 모든 것을 자신의 것으로 여기고 충실히 추종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면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사람이 바오로 사도였습니다. 오늘 갈라티아서 말씀에서 그런 바오로 사도의 모습을 잘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와 하나 되는 세례를 받은 여러분은 다 그리스도를 입었습니다. 그래서 유다인도 그리스인도 없고, 종도 자유인도 없으며, 남자와 여자도 없습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나입니다.”(갈라 3, 27-28)
위 말씀은 수난 직전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셨던 그 행동과 일맥상통합니다. 스승이며 주인이신 예수님께서 제자요 종인 사도들의 발을 씻어주시고 그 발에 입맞춤하셨습니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 너희는 나의 벗, 즉 친구이다.
이 얼마나 놀라운 말씀인지요. 하느님의 외아들, 만왕의 왕, 인류의 구세주이신 예수님께서 보잘것없는 제자들, 그리고 오늘 우리를 향해서 친구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느님과 내가 친구 사이라니, 이보다 더 은혜롭고 감사한 일이 이 세상에 다시 또 있을까요?
물론 이런 예수님의 말씀, 그리고 사도 바오로의 가르침은 당시 사람들, 특히 고위층 인사들에게는 도무지 용납할 수 없는 말씀이었을 것입니다.
더 이상 주인과 노예 사이에 차별이 없다니, 주인으로서 충격이었을 것입니다. 예수님 시대 당시 유다 사회 안에서 남자는 하늘이요 여자는 땅이었는데, 예수님께서 더 이상 그게 아니라니, 남자들 모두 충격이었을 것입니다.
너무나도 당연히 예수님과 바오로 사도에게는 돌팔매질과 욕설, 매질과 십자가 죽음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우리 시대 하느님께서 참으로 슬퍼하실 일이 하나 있으니, 나와 다른 그를 배척하는 것입니다. 나보다 가난한 그, 나보다 못 배운 그, 이런저런 이유로 상처투성이요 비정상적으로 보이는 그를 나와 분리하고 배척하는 행동입니다.
세례를 통해 또 다른 그리스도가 된 우리는 더 이상 그 누군가를 차별대우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자녀들, 제자들, 아랫사람들을 세상 절친한 벗으로 여겨야 마땅합니다.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본당 교우들과 함께 ‘야구장’엘 다녀왔습니다. 돔구장이기에 더운 날씨임에도 안에는 시원하고 쾌적했습니다. 지난번에는 주일하교 학생들과 갔었고, 이번에는 어른들과 함께 갔습니다. 텍사스 레인저스는 지난번에는 3 : 2 로 이겼고, 이번에는 2 : 0 으로 이겼습니다. 홈팀이 이기는 경기는 경기장을 찾은 관중에게는 기분 좋은 일입니다. 부주임 신부님과 저는 사제복을 입고 갔습니다. 교우 한 분이 제게 ‘신부님은 야구장 갈 때도 사제복 입으세요?’라고 물었습니다. ‘다른 옷들이 없는 건 아니지만, 사제복이 편해서 입고 다닙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요즘은 사제복도 기능성 사제복이 있어서 땀 흡수도 잘 되고, 금세 마르기도 해서 좋습니다. 예전에 이런 글을 읽었습니다. 눈이 먼 소경이 어두운 밤에 등불을 들고 다녔습니다. 사람들이 소경에게 ‘당신은 볼 수 없는데 왜 등불을 들고 다닙니까?’ 그러자 소경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사람들이 캄캄한 밤에 등불을 보면 제가 있는 걸 알고, 피해 할 겁니다.’ 제게 사제복도 그런 의미가 있습니다. ‘사제는 하느님을 위해서 봉헌된 사람이고, 사제는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하는 사람이고, 사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따르는 사람입니다.’라는 걸 알려 드리는 의미도 있고, 저도 그렇게 살겠다고 다짐하는 의미도 있습니다.
오늘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율법은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게 되도록,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 우리의 감시자 노릇을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와 하나 되는 세례를 받은 여러분은 다 그리스도를 입었습니다. 그래서 유다인도 그리스인도 없고, 종도 자유인도 없으며, 남자도 여자도 없습니다. 여러분은 모두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나입니다.” 그리스도와 하나 되는 세례를 받은 우리는 모두 다 그리스도를 입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리스도를 입었다는 것은 저처럼 사제복을 입는 것도 의미가 있습니다. 손에 묵주 반지를 끼는 것도 의미가 있습니다. 차에 묵주를 걸거나, 십자가를 다는 것도 의미가 있습니다. 집에 십자가 고상을 다는 것도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입는다는 진정한 의미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가르침대로 사는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율법을 뛰어넘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청출어람(靑出於藍)’이라는 말처럼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은 유대인의 율법을 뛰어넘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벗이 오리를 가자고 하면 십리까지 가주는 사람입니다. 겉옷을 빌려달라고 하면 속옷까지 빌려주는 사람입니다. 왼뺨을 때리면 오른뺨까지 내어 주는 사람입니다. 본인의 십자가는 물론 이웃의 십자가도 기꺼이 지고 가는 사람입니다. 밤을 새워서라도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아 나서는 사람입니다.
기차는 연결된 객차가 많아도 늘 같은 방향으로 가기 마련입니다. 목적지가 같기 때문입니다. 피부가 다르고, 성별이 다르고, 문화가 다르고, 재능이 다르고, 자라온 환경이 다를지라도 우리는 신앙 안에서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가야 할 목적지가 같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가야 할 목적지는 하느님과 함께하는 영원한 생명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행복의 조건은 뭔가를 채우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행복의 조건은 원하는 것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행복의 조건은 건강한 모습으로 오래 사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것들은 마치 ‘바벨탑’과 같습니다. 바닷물을 마시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행복의 조건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것입니다. 단순한 가족의 틀을 벗어버리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세례를 받으면서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한 가족이 되었습니다. 성이 다르고, 직업도 다르고, 환경도 다르지만, 우리를 모두 한 가족이 되게 하는 것은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성직자들이 ‘하느님의 보다 큰 영광’을 삶의 우선순위로 정한다면 좋겠습니다. 주님께서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을 삶의 우선순위로 정하면 좋겠습니다. 복음의 말씀을 묵상하고, 그것을 삶 속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노력하면 좋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실천하는 사제들이 더욱 행복할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이 삶으로 드러나는 신앙인들은 참으로 행복할 것입니다.’
<행복한 만남>
상지종 베르나르도 신부님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루카 11,28)
뭇사람들이
그 사람의 어머니를
안쓰러워했다네
하나밖에 없는
다 큰 아들이
제 앞가림도 못하고
천덕꾸러기 사람들과
어울리고
말 한마디 행동 하나
잘난 사람들에게는
눈엣가시니
저러다 일 나겠네
저러다 일 나겠어
그 사람이야
그렇다 치고
어머니는
무슨 죄가 있나
뭇사람들이
그 사람의 어머니를
불행하다했다네
비난과 동정을 오가는
뭇사람들의 목소리를 뚫고
한 여자가 외쳤다네
선생님을 배었던 모태와
선생님께 젖을 먹인 가슴은
행복합니다
선생님이 계시니
선생님의 어머니는
참으로 행복합니다
바로 제가
선생님의 어머니라면
얼마나 행복할까요
많은 사람들의
곱지 않은 눈길에
휘둘리지 않고
그 여자만은
그 사람을
제대로 보았다네
이 여자를 만난
그 사람은
얼마나 기뻤을까
나의 어머니를
행복하다하신
당신이 오히려 행복합니다
나를
나로 보는
당신이 오히려 행복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당신이 오히려 행복합니다
이 사람을 만난
그 여자는
얼마나 기뻤을까
그날 그렇게
세상에 둘도 없는
행복한 만남이 있었다네
오늘의 성인
성 에드윈 (Edwin)
신분 : 왕, 순교자
활동지역 : 노섬 브리아 (Northumbria)
활동연도 : +633년
같은이름
노섬브리아의 국왕 성 에드윈은 627년 부활절에 요크(York)에서 세례를 받았다. 그가 자신의 지원으로 건설된 유서 깊은 성 베드로(Petrus)의 목조 노섬브리아의 국왕 성 에드윈은 627년 부활절에 요크(York)에서 세례를 받았다. 그가 자신의 지원으로 건설된 유서 깊은 성 베드로(Petrus)의 목조 성당에서 영세했다는 사실은 잉글랜드(England) 교회의 초석이 되었음을 뜻할 만큼 중요하였다. 왕의 영세로 인하여 귀족과 백성들은 앞을 다투어 교리를 배우고 세례를 받았다. 물론 수많은 개종자들이 순식간에 생김으로 인하여 준비가 덜 된 사람도 있고 또 형식적으로 세례를 받은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러나 이 나라에서 하느님을 섬기고 봉사하는 기틀이 마련되었다.
성 에드윈은 백성들의 귀감이 되어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였다. 성 베다(Beda)는 그의 인품을 이렇게 기술하였다. “그는 평범한 지혜를 가진 사람이고, 입이 무거우며, 신앙에 따라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이다.” 그는 주요한 성지마다 놋쇠 컵들을 마련하여 순례자들에게 물을 먹게 하도록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이기도 하였다. 또한 그는 영국에 최초로 평화를 안겨 준 인물로 높이 평가받는다.
이토록 훌륭한 왕인 성 에드윈은 17년 동안 재임하다가 633년의 전투에서 무참하게 살해되었다. 이 때문에 잉글랜드에서는 순교자로서 공경을 받는다. 그리고 교황 그레고리우스 13세(Gregorius XIII)가 로마(Roma)의 베네라빌레 성당 벽에 있는 영국 순교자들 속에 그를 포함시키도록 허용하였다.
성 발프리도 (Walfrid)
활동년도 : 634-709년
신분 : 주교
지역 : 요크(York)
같은 이름 : 발프리두스, 발프리드, 빌프리도, 빌프리두스, 빌프리드, 왈프리도, 왈프리두스, 윌프리도, 윌프리두스, 윌프리드
영국의 노섬브리아(Northumbria) 태생인 성 발프리두스(Walfridus, 또는 발프리도)는 린디스파른(Lindisfarne) 수도원에서 교육을 받고, 리옹(Lyon)과 로마(Roma)에서 수년 동안 지냈다. 그는 북부 영국의 켈트족(Celts) 전례를 반대하는 로마 교회의 비타협적인 지지자로서 귀향하였고, 664년의 휘트비(Whitby) 회의에서는 로마파의 승리에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다. 그 후 요크의 주교로 임명되었으나 캔터베리의 성 테오도루스(Theodorus, 9월 19일)로부터 강한 반대를 받아 착좌하지 못하였다.
678년 성 테오도루스가 그와 아무런 의논도 없이 요크 교구를 둘로 나누었을 때, 그는 노섬브리아로 갔다가 국왕 에그프리드에 의하여 체포되었다. 그 후 그는 색슨(Saxon) 지방으로 피신하여 그 지방의 복음화를 위하여 헌신하였다. 성 발프리두스는 당대의 위인이었으며, 유능하고 용기 있는 분으로서 또 정치와 교회 쌍방에서 큰 인물로서 위협적인 존재였다. 그는 빌프리두스(Wilfridus)로도 불린다.
성 세라피노(Seraphinus)
활동년도 : 1540-1604년
신분 : 수사, 증거자
지역 : 아스콜리피체노(Ascoli Piceno)
같은 이름 : 세라피누스, 쎄라피노, 쎄라피누스
이탈리아 몬테그라나로(Montegranaro)에서 어느 가난한 부모에게서 태어난 성 세라피누스(또는 세라피노)는 어릴 때부터 양치기 등으로 생계를 꾸려나갔다. 양친을 잃은 후 그는 맏형 밑에서 일을 했는데, 형은 구두쇠에다 냉혹한 주인이었다. 그래서 그는 16세 때인 1556년에 집을 나와서 카푸친 프란치스코회의 평수사가 되어 1년 후에 서원을 하고 세라피누스라는 수도명을 받았다.
좋은 성품과 열심을 지녔던 성 세라피누스는 급속도로 영웅적인 덕을 닦았다. 밤마다 그는 성체 앞에서 3시간 동안 기도했고 아침 미사 후에야 방으로 갔다. 그는 원장의 허가를 받고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일에 최선을 다했고, 비신자들 가운데에서 노동자들처럼 일을 하였다.
한 번은 그가 로레토(Loreto) 성지로 순례를 가던 중 홍수로 불어난 포덴차 강을 건너지 못할 때 그는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맨땅을 밟고 강을 건넜다고 한다. 또 한 번은 수도원에 있는 배추들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었는데, 받을 사람이 너무나 많아 걱정하면서 돌아와 보니 배추들이 그대로 있어서 계속하여 배추를 날마다 준 적이 있다고 한다. 또한 그는 십자성호로써 병자들을 치유했고, 영을 식별하여 미래를 예견하는 은혜로써 교회 안팎에서 높은 존경과 사랑을 받다가 아스콜리피체노의 수도원에서 선종하여 그곳에 묻혔다. 그는 1767년 7월 16일 교황 클레멘스 13세(Clemens XIII)에 의해 시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