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5회 산과 산성 답사는 충북 영동군 영동읍 부용리에 있는 금성산의 금성산성이었습니다.
해발 고도가 채 300m도 되지 않는 금성산 정상은 민간인 묘가 넓게 자리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서 사유지임이 분명하고,
주변에는 산성에 관한 표지판도 흔적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주위 전망은 사뭇 좋아서 별로 높지 않은 정상임에도 사계가 훤한 것이 산성 입지조건을 만족시키는 곳이었습니다.
추풍령을 넘어온 신라군이 옥천쪽으로 가거나 아니면 대왕산성이 있는 양산방면으로 빠져 나가서 금산 제원이나 영국사쪽으로 나갈 수 있는 세거리길을 감제할 수 잇는 지리적 요지이기도 합니다.
향교가 있는 곳의 뒷쪽 산에서는 토성과 토석 혼축의 산성터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와편과 토기편도 찾아 볼수 있었고, 토성위로는 예외없이 예비군 개인진지가 구축되어 있어 예나 지금이나 요긴하게 쓰이고 있슴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토성의 회곽도 지형도 확인할 수 있고, 더우기 금산 제원의 자지성에서 보았던 강돌처럼 생긴
하천변의 둥글둥글한 돌들을 발견할 수 있기도 했습니다. 아마도 임진왜란시의 석전용으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추정해봅니다.
읍성으로 추정되는 토성 뒤로는 금성산 줄기가 이어지고 북쪽 계곡안에는 금성사가 있었습니다.
금성산성이라는 이름이 나왔을 금성산에는 어느곳에도 산성의 흔적은 찾을 수 가 없고, 다만 무성한 칡넝쿨과 잡목에 가려 짐작조차 하기 어려웠습니다.산성에 대한 자료를 얻기 위해 찾아간 읍사무소에서도, (문화원은 닫혀져 있고), 군의 문화체육과에서도 별 성과없이 다만 해설사에게서 얻은 몇토막 이야기뿐 오가는 현지인도 모르는 곳이었습니다.
지리적인 이름들 금성산, 역말, 수문통골, 성안골, 서낭당 등의 이름과 지형적인 특성 그리고 품관사가 성밖에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더듬거리며 답사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금성사가 품관사일 것 이라는 성지기의 예상이 현지에 가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백제 최후의 전투에서 죽은 품일의 아들 관창의 넋을 기리기 위해 세웠다는 품관사터를 확인 할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답사의 보람은 어느 정도 거둔 느낌이었습니다.
사진 몇 장으로 답사 행적을 함께 나눕니다.
편의를 위해 성지기가 앞서 올린 산성 자료를 이곳에 다시 싣습니다.
금성산성(錦城山城-영동읍 부용동)
군지에는 기록이 없으나 「조선보물고적자료」, 「전국유적목록」등에 “永同邑 芙蓉里 私有 城名不詳 西方約二百五十間 在山頂”이라고 나타나 있다. 「한국의 성곽과 봉수」에서는 “작곡부락(昨谷部落-어제실) 서방 약 540미터 지점의 석성으로 둘레 약 450미터이며 대부분 붕괴된 상태다. 성 가운데에는 항상 마르지 않는 샘이 있었으나 주인이 명당이라 하여 메우고 묘를 썼다. 주위에서 쇠붙이와 기와 조각이 출토된다.”고 한 「문화유적총람」의 내용을 그대로 인용했다. 성의 정상에서는 읍성은 물론 영동읍내와 그 일대를 지나는 철도, 고속도로, 4번 국도 등 모든 교통로가 다 감지되며 서쪽으로 나아가는 양산 방면의 19번 국도와 68번 지방도도 지켜 볼 수 있어 치소로서의 읍성과 이 성의 또 다른 축조 목적을 암시해 준다. 이런 관계는 대부분 읍성들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된다. 성의 내부에서 삼국시대 토기 조각이 발견됐고, 남서쪽 기슭에 고분군이 있다. 대체적으로 6세기 경 이후 변방지역 성 주변의 고분들은 중앙에서 파견된 지배층과 관련된 것이 많다고 조효식은 이야기한다.
< 대전에서 옥천을 거쳐 심천에 이르면 이곳이 요충지임을 알 수 있게 하는 것 . 산과 강들이 만나서 길목을 만든다.
일당백의 요충지임을 증명하는 전적비와 부근의 형세를 알 수 있는 안내도>
<지픈내가 심천(深川)으로 표기된 곳을 지나면 영동읍내가 나오고, 영동읍사무소에서 바라본 금성산(우측 봉우리)>
<영동은 감으로 유명한 곳 가로수가 온통 감나무이고, 감이 주렁주렁이지만 대추도 함께 영글어 가고 있다.>
<영동 읍성이 있는 영동 향교 : 입구 안뜰에는 200년된 은행나무가 은행을 매달고 서있다.>
<향교 대성전 뒤쪽으로 토성이 둘러싸고 있다.>
<향교 뒷담으로 따라 올라가면 토성의 회곽도처럼 난 곳으로 밭이 이어지고 그 끝에서부터 산위로는 경사가 심해진다>
<토성 위에서 서북쪽 금성산 아래쪽으로 보이는 절 하나 - 아마도 품관사와 관계있는 절일 것이라는 추측을 해본다.>
<마침내 만나는 토석 혼축의 성 흔적>
<토성의 흔적이 확연하게 드러나는 곳으로 따라서 예비군 개인 진지가 일정 간격으로 구축되어 있고, 향교 쪽으로는 대지터로 보이는 평탄지가 여러 곳 보인다.>
<비탈진 토성 아래로 헤집고 찾아 간 곳 그곳은 금성사(錦城寺)>
<현재의 금성사가 옛날의 품관사 터에 다시 지은 절이요, 품관사가 황산벌 전투에서 전사한 품일장군의 아들 관창의 넋을 기리기 위해 지은 절임을 말해주고 있다.>
<성(城)자가 들어 있는 금성산에는 분명 산성이 있어야 할터인데 , 정작 산성은 보이지 않고 이름으로만 남아있는 산성을 찾아 산행한다. >
<금성산 등산 안내지도 : 산성이 통상 자리하고 양 옆으로 산들을 날개처럼 달고 있어 마치 이(而)자의 안쪽에 있는 형상이기가 일쑤이다.>
<금성산 정상에서 내려다 본 영동읍 시가지, 추풍령에서 온 길과 옥천, 무주 금산 방면으로 가는 길들과 주변 산세를 바라본다.>
<금성산 줄기 너머의 산세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