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등산객들의 눈길은 고산준령의 경치가 아닌 턱밑 발 뿌리를 벗어나지 못한다. 흉측하게 큰 달팽이들이 등산로에 널려 있다. 뱀처럼 징그럽지만 꼼짝하지 않아 한 눈 팔다가 밟기 십상이다. 등산화에 깔려 뭉그러진 달팽이는 새들도 먹지 않는다. 시속이 고작 7미터 정도인 주제에 왜 안전한 풀섶에서 트래픽 심한 등산로로 기어 나오는지 모르겠다.
속도와 담쌓고 사는 달팽이와 달리 인간은 본능적으로 스피드 지향적이다. 달팽이보다 수천 배 빠른 속도로(아마도 수없이 많은 달팽이를 밟아 뭉개며) 장장 2,665마일의 산길을 두달 동안 치달은 끝에 미국 서부를 남북으로 종단하는 등산로인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PCT)을 최단시간에 주파한 기록을 세운 청년 이야기가 지난주 주요 언론에 보도됐다.
LA 인근 산타모니카 초급대학의 육상코치인 조쉬 가렛(30)은 지난 6월10일 멕시코 국경을 출발해 8월6일 캐나다 국경에 도착했다. 59일 8시간 14분만이었다. 장거리 등산가 스캇 윌리엄슨이 2011년 세운 64일 11시간 19분을 5일 이상 단축한 신기록이다. 출발 3일만에 화씨 100도의 무더위 속에 탈진해 쓰러진 후 24시간을 쉬고도 이뤄낸 대기록이다.
가렛은 아침 6시부터 하루 평균 45마일을 걸었다. 평지에선 자정을 넘겨 70마일을 걸은 적도 있다. 샌디에이고 남쪽 캄포를 출발해 빅베어, 레이크 타호, Mt. 샤스타, 크레이터 레이크, Mt. 후드, Mt. 아담스, 스노퀄미 패스, 스티븐스 패스, 노스 캐스케이드 국립공원 등 서부 3개주의 7개 국립공원과 25개 국유림을 통과한 후 캐나다 국경에 골인했다.
가렛에 간발 앞서 PCT 종주 신기록을 세운 여성이 있었다. 벨링햄의 헤더 앤더슨(31)이다. 가렛보다 이틀 먼저 출발한 앤더슨의 60일 17시간 신기록은 가렛이 뒤이어 도착하는 바람에 24시간도 지나지 않아 구기록이 됐다. 두 사람 모두 채식주의자인데, 가렛은 유기농식품 전문 수퍼마켓 체인인 홀 후드의 후원을 받았지만 앤더슨은 스폰서가 전무했다.
한국에도 비슷한 사람이 많아졌다. 지난달 해남(전남)에서 고성(강원)까지 622km를 6박7일간 달린 ‘울트라 마라톤’에 보통사람 81명이 참가했다. 식용동물 사육업자들의 잔혹상을 고발하겠다는 가렛이나, 과체중 극복의 결단력을 내세운 앤터슨과 달리 ‘울트라 마라톤’ 참가자들은 명분도, 깰만한 기록도 없이 본인들의 스피드를 즐기며 무작정 달렸단다.
꼭 5년전 믿기 어려운 스피드 하이킹 기록이 나왔다. 레이니어 마운틴 정상을 밟고 내려오는데 고작 4시간46분29초 걸린 리암 오설리반(당시 29세)의 기록이다. 레이니어 등반 전문 안내자인 그는 해발 10,000피트 지점의 베이스캠프(캠프 뮈어)까지 운동화를 신고 1시간 24분31초만에 달려 올라갔다. 나는 7년전 그곳에 가는데 5시간 이상 걸렸었다.
우연이지만 스피드 관련 뉴스들이 최근 잇달아 보도됐다. LA-샌프란시스코 구간을 30분 내에 주파하는 ‘하이퍼 루프’ 계획도 공개됐다. 공기저항이 없는 튜브 속을 최고시속 920마일로 달리는 캡슐형 차량을 전기자동차 회사인 테슬라 모터스가 구상 중이란다. 지금 LA에서 샌프란시스코까지는 비행기로 1시간 15분, 자동차(I-5)로 5시간 30분 소요된다.
육상의 ‘단거리 황제’ 로 불리는 자메이카의 우사인 볼트는 지난 18일 모스크바 세계 육상선수권대회 100m, 200m 및 400m 계주에서 3관왕이 됐다. 2009년 베를린대회에 이어 연속 3관왕의 위업을 이뤘다. 그의 100m 최고기록은 베를린대회에서 세운 9초58이다. 1초에 평균 10m이상을 달린다는 계산이다. 초속 0.2cm인 달팽이에게는 가히 광속이다.
하지만 볼트도 인간이 발 딛고 사는 지구 스피드에 비하면 달팽이다. 지구둘레는 4만75km이다. 자전하는 거리가 시간당 167만m, 초당 464m 꼴이다. 지구가 한번 돌때마다 인간 수명은 24시간 씩 짧아진다. 무서운 속도다. 볼트도, 가렛도, 오설리반도 그 속도를 따라잡지 못한다. 120세를 산 유대인의 영웅 모세도 인간 수명이 “날아간다”고 한탄했다.
08-24-13
첫댓글 인간 수명이 "날아간다" 는 말에 공감합니다. 언제 날라 왔는지 여기까지 와버렸습니다.
축지법을 이용해서 거리를 단축했다고 했는데, 스피드 하이킹, 이나 스피드 달리기를 했나봅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시간이 류수가 아니라 바람이지요. 이 바람의 시간을 내용있게 채우는 데는 달리기나 등산도 좋지만 글을 읽거나 글을 쓰는 일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고작 시속 7미터인 주제에 왜 달팽이가 안전한 풀섶에서 트래픽 심한 등산로로 기어나오는지 그게 제일 궁금합니다. 매우, 심히 궁금하여 두고두고 생각이 날 것 같습니다. 바로 거기에 삶의 비밀, 생의 비밀이 있지 않을까요?
자, 날아가 볼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