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열흘쯤 전인가요, 여느 날처럼 토성 길을 걷고 있는데,
몽촌토성 동쪽에 서 있던 목책이 , 그러니까 시사편찬위원회 건너편에 서 있던 목책이 몽땅 뽑혀져 나가고,
그 대신 흙이 다 파 헤쳐진 목책 자리 위의 토성길에 현수막이 하나 걸린 것을 보았습니다.
< 몽촌토성 내 목책 재설치 공사 >.
발주자는 송파구청, 시공자는 (주)서울나무병원, 기간은 10.19 ~ 12.17(60일간).
반가운 마음에다 기대 반 걱정 반 섞어서 현수막에 적혀 있는 유현범 현장소장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 동안 이 곳 목책을 놓고 제기된 민원의 주된 내용은 목책의 맨 꼭대기 형태였습니다.
적군이 목책을 쉽게 넘어오지 못하게 막으려면 목책의 끝 부분이 창 끝처럼 날카로워야 하는데,
기존의 목책은 나무를 한 줄로 세워 놓고 검술의 명인[名人]이 단칼로 목을 벤 듯 윗면이 한결같이 평평하여,
목책의 기능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세운 것이라는 비난(?)을 받아 온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기대가 컸지만 역시나 실망,
현장소장의 답변은 새로 제작되는 목책도 이전의 것처럼 윗 부분이 평평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내 이야기를 한참 듣고 있던 그 분은,
목책을 제작 중인 곳에 알아봐서 가능하다면 '연필 깎을 때처럼" (그 분의 표현입니다.) 심 모양을 뾰죽하게 해 보겠다는
친절한 대답을 들려주어 "기차는 떠났지만 혹시나" 하는 한 가닥 기대가 남았습니다.


목책 위를 지나 42.9 m, 망월봉에 오른 나는 깜짝 놀랐습니다.
자귀나무와 오리나무 사이에 서 있는 나무들의 가지가 반 이상 베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아차산과, 풍납토성이 있는 극동아파트의 모습이 한 눈에 들어왔습니다.
몽촌토성 해설의 하이라이트는 망월봉인데,
망월봉에서 북쪽을 향해 바라보면 아차산이 보이고, 아차산과 몽촌토성 사이에는 한강과 풍납토성이 있고,
풍납토성의 동쪽 성벽 끝은 여기 망월봉에서 내려다보면 겨우 700m 남짓한 거리,
따라서 왕성인 풍납토성을 지키는 몽촌토성을 해설하려면 아차산과 풍납토성이 잘 보여야 하는데,
지금까지 나무가지들에 가려 보이지 않던 아차산과 풍납토성이 이제사 제 모습을 뚜렷이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이틀전, 망월봉에 올랐다가 아차산 쪽을 가리는 나무들이 너무 답답하여 올림픽공원 수목담당자에게 전화해서
"가지치기"를 부탁했었는데 불과 하루만에 작은 바램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앞으로 망월봉에 올라 아차산을 바라보며 몽촌토성에 대해 해설할 선생님들의 밝은 표정이 떠올라 흐뭇했습니다.
나의 감사 전화를 받은 그 분(정산덕부장)은 내년에 새 가지가 나고 잎이 피어도 시야를 가리지 않도록 가지를 최대한
낮춰 내려쳤다는 배려의 말까지 해 주어 고마웠습니다.
평소 개인적 친분으로 잘 알고 지내는 사이지만, 좋은 인연이 좋은 결과로 나타난 것 같아 많이 기뻤습니다.


그로부터 닷새 후, 목책 한 쪽이 세워졌습니다.
윗 부분은 모두 평평하고, 앞에 쌓아놓은 다른 목책들로 모두 평평했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1.8 m 간격으로 큰 기둥을 박고, 사이사이에 작은 기둥을 세웠다는 발굴결과를 지켜서,
큰 기둥 1 + 작은 기둥 7 + 큰 기둥1 + 큰 기둥 1 + 작은 기둥 7 + 큰 기둥1 로 세워 놓았다는 사실입니다.
좋은 쪽으로 생각하면, 그래도 목책[木柵]이니까 우리말로 '통나무울', 통나무를 썼으니 고맙기도 합니다.
경비를 아낀다고 통나무 대신 시멘트로 만든 가짜 기둥을 세워 놓은 것을 가정하면 끔찍하기까지 하니까요.
또, 어느 문헌에도 목책의 상세한 형태에 대한 기록이 없으니까,
창 끝 모양의 목책을 주장하는 우리들도 어쩌면 '막가파'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


사실은 현장소장과 통화를 한 사흘 후 , 발주자인 송파구청 문화체육관광과 담당자에게 전화를 했었습니다.
이제까지 목책에 대한 민원이 많았는데, 민원을 무시하면서 재설치공사를 한다면 앞으로 더 많은 민원이 나올 것이라는 다소 협박성(?)^^^ 어조로 재고를 요청했습니다.
송파구청 답변은 문화재청에서 지시한 대로 예전과 똑같게 목책을 만들어 설치할 뿐이라는 명료한 내용이었습니다.
관청의 생리를 잘 아는 나로서는 더 이상 대화를 나눌 필요성을 못 느꼈습니다.
다만 문화재청 주무부서에 나같은 사람들의 민원이 많다는 전화만 한 번 해 달라는 부탁을 하고 전화를 끊었었습니다.
월요일인 오늘 아침은 겨울 날씨답지 않게 포근해서 토성길 걷는데 땀이 났습니다.
동쪽 목책은 한 쪽을 세운 지가 닷새가 지났는데 웬일인지 진척이 없습니다.
북쪽 목책은 아직 뽑지도 않았고,
여름에 열렸던 산수유 빨간 열매가 단풍처럼 꽃처럼 목책 주변을 붉게 물들이고 있습니다.
통나무 목책이니까 현장소장의 표현처럼 지금이라도 끝을 연필처럼 깎으면 좋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혹시 나의 협박성 민원이 통해 목책 끝을 수정하는 절차가 진행 중인 것은 아닌지 하는 헛된 희망을 가슴에 품고,
2.3 Km 토성길을 걸어 남문으로 내려왔습니다. (11.28) ****
* 남문 쪽의 토끼굴과 토끼
첫댓글 몽촌토성의 크고 작은 변화들이 다음 방문할때 새롭게 다가오겠네요. 선생님의 상세한 정보 감사합니다. 오늘도 좋은일 가득하세요~~
토성 상황을 듣고 궁금하던 차였는데 자세한 소식을 주셨네요. 감사합니다^^ 그리고 망월봉에 올라 주변을 자세히 정찰해 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몽촌토성을 비롯한 우리 문화재에 관한 선생님의 애정이 절절히 느껴지네요.
선생님들, 댓글 달아주셔서 고맙습니다.
연필 같이 깎아 놓은 목책 샘플이나마 서게 된 것도 우리 모두의 관심 덕분이라 생각하면서 좋은 결과 기다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