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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반경 (S12:23)
Upanisa-sutta
3. 비구들이여, 알고 보는 자는(*1) 번뇌들이 멸진한다(*2)고 나는 말하고,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자는 번뇌들이 멸진하지 않는다고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을 알고 무엇을 보는 자에게 번뇌들이 멸진하는가?
‘이것이 물질[色]이다. 이것이 물질의 일어남이다. 이것이 물질의 사라짐이다.
이것이 느낌[受]이다. 이것이 느낌의 일어남이다. 이것이 느낌의 사라짐이다.
이것이 인식[想]이다. 이것이 인식의 일어남이다. 이것이 인식의 사라짐이다.
이것이 심리현상[行]이다. 이것이 심리현상의 일어남이다. 이것이 심리현상의 사라짐이다.
이것이 알음알이[識]이다. 이것이 알음알이의 일어남이다. 이것이 알음알이의 사라짐이다.’라고
이와 같이 알고 이와 같이 보는 자에게 번뇌들은 멸진한다.
4. “비구들이여, [번뇌들의] 멸진에 대한 멸진의 지혜(*3)는
기반이 있는 것이지(*4) 기반이 없는 것이 아니라고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멸진의 지혜 기반인가?
해탈(*5)이라고 말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해탈도 기반이 있는 것이지 기반이 없는 것이 아니라고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해탈의 기반인가?
탐욕의 빛바램(*6)이라고 말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탐욕의 빛바램도 기반이 있는 것이지 기반이 없는 것이 아니라고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탐욕의 빛바램의 기반인가?
염오(*7)이라고 말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염오도 기반이 있는 것이지 기반이 없는 것이 아니라고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염오의 기반인가?
있는 그대로 알고 봄[如實知見](*8)이라고 말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있는 그대로 알고 봄도 기반이 있는 것이지
기반이 없는 것이 아니라고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있는 그대로 알고 봄의 기반인가?
삼매(*9)이라고 말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삼매도 기반이 있는 것이지 기반이 없는 것이 아니라고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삼매의 기반인가?
행복(*10)이라고 말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행복도 기반이 있는 것이지 기반이 없는 것이 아니라고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행복의 기반인가?
고요함[輕安](*11)이라고 말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고요함도 기반이 있는 것이지 기반이 없는 것이 아니라고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고요함의 기반인가?
희열(*12)이라고 말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희열도 기반이 있는 것이지 기반이 없는 것이 아니라고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희열의 기반인가?
환희(*13)라고 말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환희도 기반이 있는 것이지 기반이 없는 것이 아니라고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환희의 기반인가?
믿음(*14)라고 말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믿음도 기반이 있는 것이지 기반이 없는 것이 아니라고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믿음의 기반인가?
괴로움(*15)라고 말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괴로움도 기반이 있는 것이지 기반이 없는 것이 아니라고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괴로움의 기반인가?
태어남(*16)라고 말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태어남도 기반이 있는 것이지 기반이 없는 것이 아니라고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태어남의 기반인가?
존재(*17)라고 말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존재도 기반이 있는 것이지 기반이 없는 것이 아니라고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존재의 기반인가?
취착이라고 말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취착도 기반이 있는 것이지 기반이 없는 것이 아니라고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취착의 기반인가?
갈애라고 말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갈애도 기반이 있는 것이지 기반이 없는 것이 아니라고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갈애의 기반인가?
느낌이라고 말해야 한다.
… 감각접촉이라고 말해야 한다.
… 여섯 감각장소라고 말해야 한다.
… 정신·물질이라고 말해야 한다.
… 알음알이라고 말해야 한다.
… 의도적 행위들이라고 말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의도적 행위들도 기반이 있는 것이지 기반이 없는 것이 아니라고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의도적 행위들의 기반인가?
무명이라고 말해야 한다.”
5.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무명을 기반으로 의도적 행위들이,
의도적 행위들을 기반으로 알음알이가, 알음알이를 기반으로 정신·물질이,
정신·물질을 기반으로 여섯 감각장소가, 여섯 감각장소를 기반으로 감각접촉이,
감각접촉을 기반으로 느낌이, 느낌을 기반으로 갈애가,
갈애를 기반으로 취착이, 취착을 기반으로 존재가,
존재를 기반으로 태어남이, 태어남을 기반으로 괴로움이,
괴로움을 기반으로 믿음이,
믿음을 기반으로 환희가,
환희를 기반으로 희열이,
희열을 기반으로 고요함이,
고요함을 기반으로 행복이,
행복을 기반으로 삼매가,
삼매를 기반으로 있는 그대로 알고 봄이,
있는 그대로 알고 봄을 기반으로 염오가,
염오를 기반으로 탐욕의 빛바램이,
탐욕의 빛바램을 기반으로 해탈이,
해탈을 기반으로 멸진의 지혜가 있다.”
6. “비구들이여, 예를 들면 이러하다.
산꼭대기에 억수같이 비가 내리면 경사진 곳을 따라 빗물이 흘러내려서
산의 협곡과 계곡과 지류를 가득 채운다.
협곡과 계곡과 지류를 가득 채우고는 다시 작은 못을 가득 채운다.
작은 못을 가득 채우고는 다시 큰 못을 가득 채운다.
큰 못을 가득 채우고는 다시 작은 강을 가득 채운다.
작은 강을 가득 채우고는 다시 큰 강을 가득 채운다.
큰 강을 가득 채우고는 다시 바다와 대해를 가득 채운다.
비구들이여, 그와 같이 무명을 기반으로 의도적 행위들이,
의도적 행위들을 기반으로 알음알이가, …
탐욕의 빛바램을 기반으로 해탈이,
해탈을 기반으로 멸진의 지혜가 있다.”
(*1) “‘알고 보는 자(jānato passato)'에서
아는 자와 보는 자는 단어는 다르지만 뜻은 하나이다(ekatthāni).
지혜의 특징을 취해서 사람을 지칭한 것이 아는 자이니, 지혜는 아는 특징을 가졌기 때문이다.
지혜에서 생긴 것이 보는 것이다. 지혜에서 보는 것이 생기기 때문이다.
지혜를 구족한 인간은 마치 눈을 가진 사람이 눈으로 형색들을 보는 것처럼
지혜를 통해서 드러난 법들을 보기 때문이다.(SA.ⅱ.52)
사문 전통에서 jānāti-passati 구문은 그들이 터득한 이치나 지혜나 경지를 표현한 것으로,
직접알고 직접 본 것을 표현하는 술어로 정착된 것이다.
(*2) “‘번뇌들의 멸진(āsavānaṃ khaya)'이란 아라한과를 말한다.(SAⅱ.53)
(*3) “‘멸진에 대한 멸진의 지혜(khayasmiṃ khaye-ñāṇa)'란
번뇌의 멸진이라 불리는(āsava-kkhaya-saṅkhāta) 아라한과를 증득하였을 때 [생기는]
반조의 지혜(paccavekkhana-ñāṇa)이다.
이것은 아라한과라 불리는 멸진이 첫 번째로 생긴 뒤에
그 다음에 일어나기 때문에(paccha uppannattā)멸진의 지혜라 불리는 것이다.”(SAⅱ.53)
(*4) “‘기반이 있다(saupanisaṃ)'란 원인이 있고(sakāraṇaṃ),
조건이 있다(sappaccayaṃ)는 뜻이다.”(SAⅱ.53)
“결실이 여기에 의지하기 때문에 원인(kāraṇa)이 바로 기반이다
(upanisīdati phalaṃ etthā ti kāraṇaṃ upanisā)"(SATⅱ.55)
(*5) “여기서 ‘해탈(vimutti)'이란 아라한과의 해탈을 말한다.
이것은 그 [소멸의 지혜]의 강하게 의지하는 조건으로 조건이 된다.
아래에 나타나는 것들도 모두 이 [강하게 의지하는] 조건이 된다고 알아야 한다.”(SAⅱ.53)
(*6) “‘탐욕의 빛바램(離慾, virāga]'이란 도(magga)를 말한다.
이것은 오염원(kilesa)들에 대한 탐욕이 빛바래고 던져버릴 때 생기기 때문에
탐욕의 빛바램이라 불린다.”(SAⅱ.53)
(*7) “‘염오(nibbidā)'란 염오의 지혜를 말하는데 이것으로 강한 위빳사나를 드러내고 있다.
여기서 강한 위빳사나란 [10가지 위빳사나의 지혜 가운데]
④ 공포의 지혜, ⑤ 위험을 관찰하는 지혜, ⑦ 해탈하기를 원하는 지혜,
⑨ 상카라[行]에 대한 평온의 지혜의 네 가지 지혜와 동의어다.”(SAⅱ.53)
(*8) “‘있는 그대로 알고 봄(여실지견, yathā-bhūta-ñāṇa-dassana)'이란
고유성질(sabhāva)대로 아는 것이라 불리는 봄(dhassana)을 말한다.
이것으로 얕은 위빠사나를 드러내고 있다.
얕은 위빠사나는 강한 위빠사나의 조건이 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얕은 위빠사나란 형성된 것들을 한정하는 지혜(saṅkhāra-paricchede ñāṇa),
의심을 제거함에 의한 지혜, 명상의 지혜, 도와 도아님에 대한 지혜의
네 가지 지혜와 동의어이다.”(SAⅱ.53)
(*9) “여기서 ‘삼매(samādhi)'란 [위빳사나의] 기초가 되는 선의 삼매(pādaka-jjhāna-samādhi)이다.
이것은 얕은 위빠사나의 조건이 되기 때문이다.”(SAⅱ.54)
이것은 칠청정 가운데 두 번째인 마음청정(citta-visuddhi)에 해당한다.
(*10) “여기서 ‘행복(sukha)'이란 본삼매(appana) 이전에 나타나는 행복을 말한다.
이것은 [위빠사나의] 기초가 되는 禪의 조건이 되기 때문이다.”(SAⅱ.54)
“본삼매 이전에 나타나는 행복이란 근접삼매와 함께하는 행복이다.”(SAT.ⅱ.56)
(*11) “여기서 고요함[경안, passaddhi]이란
둔감함을 가라앉힘(daratha-paṭippassaddhi)이다.
이것은 본삼매 이전에 나타나는 행복의 조건이 되기 때문이다.”(SAⅱ.54)
“여기서 둔감함(daratha)이란 감각적 욕망 등의
[다섯 가지 장애인] 오염원의 둔감함을 말한다.” (SAT.ⅱ.56)
(*12) “‘희열(pīti)’란
강한 희열(balava-pīti)을 말한다.”(SAⅱ.54)
(*13) “‘환희(pamojja)'란
약한 희열(dubbala-pīti)을 말한다.”(SAⅱ.54)
(*14) “‘믿음(saddhā)'이란 계속적으로 생겨나는 믿음을 말한다.”(SAⅱ.54)
"믿음은 삼보의 덕과 업의 과보를 믿어서 생기는 확신이다.
이것은 자기 자신에게서 한번만이 아니라 계속해서 일어나기 때문에
’계속적으로 생겨나는 믿음‘이라고 설명하고 있다."(SAT.ⅱ.56)
(*15) “‘괴로움(dhkkha)'란
윤회의 괴로움(vaṭṭa-dhkkha)이다.”(SAⅱ.54)
(*16) “‘태어남(jāti)'이란
변화를 수반하는 (sa-vikāra) 오온의 생겨남(khandhajā)이다.”(SAⅱ.54)
(*17) “‘존재(bhava)'란
업의로서의 존재(業有, kamma-bhava)이다.”(SAⅱ.54)
출처 : 각묵스님 옮김 『상윳따니까야』2권 173-180쪽
첫댓글 이 경은 무명에서 출발하여 해탈까지 그 흐름을 설하신 경전입니다.
무명을 기반으로 ⇒ 의도적 행위들이 ⇒ 알음알이가 ⇒ 정신·물질이 ⇒ 여섯 감각장소가 ⇒ 감각접촉이 ⇒느낌 ⇒ 갈애 ⇒ 취착 ⇒ 존재 ⇒태어남 ⇒ 괴로움 ⇒ (이 괴로움을 기반으로) 믿음이 ⇒ 환희 ⇒ 희열이 ⇒ 고요함 ⇒ 행복 ⇒ 삼매 ⇒ 있는 그대로 알고 봄이 ⇒ 염오 ⇒ 탐욕의 빛바램이 ⇒ 해탈이 ⇒ 멸진의 지혜가 있다.
결국 무명을 기반으로 가다보니 괴로움이 있지만 여기서 삼보에 대한 믿음으로 해탈과 멸진의 지혜까지 연결됩니다.
경전 감사히 잘읽고 갑니다
사두 사두 사두 _()_
사두ㅡ사두ㅡ사두
나모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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