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태인 성당 모습>
함께 걷는 길(8)
* 2008.1.3(목요일, 약 24Km, 7시간 소요)
* 신태인 --> 화호 삼거리 --> 부령 --> 김제 시청앞
<화호 삼거리, 잊지못할 자장면의 추억을 만들었다.>
새해 들어 처음으로 길을 나선다. 길동무와 함께 며칠 간 휴가를 얻어 신태인에
도착, 지난 번에 걷다가 그만 둔 곳에서 힘찬 새해 첫 걸음을 뗀다. 세밑에 많은
눈이 내려 아직 2차선 도로 옆에 쌓여 있는 눈 때문에 여간 걷기가 불편하다. 맞
은 편에서 차량이 오면 아예 눈이 쌓인 갓길로 피해 있다가 걷곤 한다.
<정읍과 김제의 경계에 들어선다.>
걷기 힘들어 하는 길동무의 애원에 속아 옆길로 들어섰다가 중간에 길이 끊겨 들
판 수로 옆의 힘든 눈쌓인 벌판을 헤메기도 하였다. 그래도 새해 들어 처음으로
나선 길이라 우리 둘은 서로에게 기운을 북돋아 주면서 앞으로 나아간다. 마을이
나타나 마을로 들어섰다. 마을 안길을 걸으면서 고드름이 맺힌 농가를 지나칠 때
는 또 어린 시절로 돌아가 얼음 지팡이를 들고 즐거운 시간을 갖기도 한다.
<검은 볏집 뭉치와 흰눈이 뒤덮힌 김제 만경의 너른 들>
위험하고 힘들어도 우리는 다시 2차선 포장도로로 접어든다. 낭만적이고 편한 길
을 가려다눈 속에서 진땀을 뺀 이후라서 길동무도 아무 저항없이 포장도로를 걷
는다. 화호리에 이르니 점심시간이 된다. 조그만 촌락 면 소재지에 자리잡은 자장
면집에서 우리 둘은 태어나 가장 맛있는 자장면을 먹는다. 화호리의 '정일 반점'
에서 먹었던 자장면 보통 한 그릇은 아마 우리가 어린 시절 부모님 따라 도회지에
나가 맛보았던 자장면 맛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을 것이다. 우린 두고 두고
화호리의 자장면을 잊지 못할 것이다.
<볏집 뭉치와 겨울 '징게맹갱 외에밋들' 풍경>
우리는 지금 23번 국도를 따라 가고 있다. 김제 방향을 향해 반듯하게 뻗은 도로
를 따라 걷다가 왼쪽으로 '조정래 아리랑 문학관'에 들른다. 우리 전래의 소나무가
품위있게 양쪽으로 서 있고 아담하게 지어진 문학관에는 안내인이 새해 첫 방문객
이라고 우리 둘을 맞아 준다. 왜 이곳에 조정래 작가의 문학관이 들어서 있을까 궁
금했는데 와서 보니 소설 '아리랑'의 이야기가 이곳 김제 평야에서 시작된 이유에
서였음을 알 수 있었다.
<이 들판이 녹색으로 황색으로 변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면서 걷고 또 걷는다.>
내 키보다 높이 쌓여 있는 조정래님의 육필 원고와 아리랑의 시대별 해설을 둘러
보고 우리는 또 풍요로워서 서러웠던 땅 '김제'를 온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정말
넓다고 감탄하며 연신 사진도 찍고 혀도 내두르며 걸어왔던 지금까지의 평야가
소설 아리랑에서의 줄거리를 생각하니 왠지 숙연해지고 역사의 무게로 해서 괜히
감상에 빠져 걸어야 했다.
<조정래님의 소설 '아리랑' 문학관>
문학관을 빠져 나와 길을 걷는데 자꾸 작가 조정래님이 인터뷰에서 했다는 말이 뇌
리를 떠나지 않는다. "군산은 김제의 쌀을 실어내기 위한 부속무대다. 그런 가운데
신작로를 개설하고 전국 최초의 도로인 전군도로가 생겨났다. 쌀을 실어내기 위해
만든 끔찍한 도로다. 즉 수탈의 도로인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 모두가 전군가도를
달리면서 눈물을 흘려야 한다. 수탈이 이뤄낸 피눈물나는 도로이며, 일본인들이 일
본을 상징하는 사쿠라 벚꽃을 심지 않았는가? 벚꽃 축제를 단순히 축제로만 즐겨
서는 안된다."
<청해진 유민 벽골군 이주기념탑>
Rich, but sorrowful land 'Gimje'
'Sinjakro' and 'Honam Railroad' appeared in modern history by military and
economic invasion of Japanare not the up-to-date civilazation, but a spearhead
for exploitation. The novel 'Arirang' set Gimje and Gimje people as the main
stage and witnesses to the suffering of the period. The reason is that Gimje had
to be plundered of their abundance thoroughly.
<청해진 유민 이주에 관한 설명>
김제와 김제 사람들이 시대의 아픔을 증언하는 소설 아리랑의 주무대와 주인공
으로 부각된 동기는 풍요로웠기 때문에 철저히 수탈당할 수밖에 없었던 아픈 이유
때문이다.
<길가의 철쭉잎에 서리가 햇빛에 포근히 빛나고 있다.>
나는 김제시에서 발간한 '벽골제'라는 팜플렛에서 아리랑 문학관에 관하여 소개한
위의 대목을 읽으면서 지평선의 고장 김제가 얼마나 힘든 과거를 가지고 있는가에
대하여 가슴으로 느낄 수 있었다. 또 벽골제를 쌓기 위하여 장보고가 잡혀 죽고
그와 함께 완도해상을 주름잡았던 청해진의 유민들이 이곳에 강제 이주되어 노역
에 시달리며 삶을 유지해야 했다는 아픈 상처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황금사철(?)에도 서리가 빛나고...>
문학관을 나서자 그 반대편엔 수리민속유물전시관이 자리잡고 있었다. 멀리서
커다란 용같은 구조물이 있어서 사진만 한 장 당겨서 찍고 그냥 지나친다. 아리랑
문학관에서 우리들의 흥겹던 여행 감성이 그냥 시들해져버리고 만 것이다. 우리는
부지런히 걸었다. 몸에서 열이 나면 다시 가라앉았던 느낌이 다시 회복되리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었다.
<김제 시내에 들어섰다.>
김제 시청 앞까지 걸었다가 우리는 다시 돌아와 숙소에 들었다. 오늘 일정은 여기
서 마무리하기로 했다. 저녁은 시내의 '곰돌이네 게장백반' 집에서 먹었다.
김제에서는 알려진 집이었다. 시래기가 충분히 들어있는 민물 새우탕이 별미였다.
무뚝뚝한 주인장 여인네의 표정에도 불구하고 음식맛으로 하여 충분히 멋있는 그
식당만의 속내깊은 특유한 정으로 대체하여 느낄 수 있었다.
(다음 까페 '마음의 고향, 후곡')
<곰돌이네집 게장백반집>
* 곰돌이네 게장백반 063-546-1238, 5,000원(김제시 요촌동, 우체국 옆 효자원
앞골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