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 子曰 黙而識之 學而不厭 誨人不倦 何有於我哉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묵묵히 마음속에 새기며, 배우면서 싫어하지 않으며, 남을 가르치는 데 게으르지 않는 것, 이들 중에 그 무엇이 나에게 있겠는가.”라고 하셨다.
識記也 黙識謂不言而存諸心也 一說識知也 不言而心解也 前說近是 何有於我 言何者能有於我也 三者已非聖人之極至 而猶不敢當 則謙而又謙之辭也. 識은 기억하는 것이다. 默識는 말을 하지 않고 마음에 그것을 보존하는 것을 말한다. 일설에 識은 아는 것이며, 말을 하지 않고도 마음으로 이해하는 것이라고 한다. 앞 설이 옳은 것 같다. ‘나에게 무엇이 있겠는가?’라는 것은 어떤 것이 나에게 있을 수 있겠느냐고 말한 것이다. 이 세 가지는 이미 성인의 지극한 경지가 아님에도 오히려 감히 감당할 수 없다고 하였으니, 겸손하고 또 겸손한 말이다.
朱子曰 非是聽人說後記得 是得於心 自不能忘 拳拳服膺而勿失也 주자가 말하길, “남이 말하는 것을 들은 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터득한 것이라면, 저절로 잊을 수 없으니, 마음에 새겨 잃어버리지 않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雙峯饒氏曰 默識與道聽塗說者相反 道聽塗說 更不復留爲身心受用 默識 則其所得者深 而所存者固矣 詩云 中心藏之 何日忘之 易曰 黙而成之 不言而信 存乎德行 皆是此意 쌍봉요씨가 말하길, “默識은 道聽塗說이란 것과 더불어 서로 반대가 되니, 길에서 듣고 길에서 말해버리면, 더이상 남지 않아서 몸과 마음에 의해 받아들여 사용되지 않고, 묵묵히 기억하면, 그 터득한 바가 깊고 보존된 바가 굳센 것이다. 시경에 이르길, ‘마음 가운데에 숨기면 어느 날에 그것을 잊으리요?’라고 하였고, 주역에 이르길, ‘묵묵히 그것을 이루어 말하지 않고 믿는 것은 덕행에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모두 다 이 뜻이다.”라고 하였다.
勿軒熊氏曰 先言默識者 聖門之學以沈潛淵黙爲本 물헌웅씨가 말하길, “默識을 먼저 말한 것은 聖門의 학문이 沈潛과 淵黙을 근본으로 하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
2 | 新安陳氏曰 不言而存諸心者 其功實 不言而心解者 其意玄 신안진씨가 말하길, “말하지 않고 마음에 보존하는 것 그 공효가 신실하고, 말하지 않고 마음으로 이해하는 것은 그 뜻이 현묘하다.”라고 하였다.
朱子曰 黙而識之 至誨人不倦 是三者 雖非聖人之極至 在學者亦難 如平時講貫方能記得 或因人提撕方能存得 若黙而識之 乃不言而存諸心 非心與理契 安能如此 學不厭 在學者久亦易厭 視人與己 若無干涉 誨之 安能不倦 此三者 亦須是心無間斷 方能如此 又曰 今學者 須是將此三句 時時省察 我還能黙識否 我學還不厭否 我敎還不倦否 如此乃好 주자가 말하길, “묵묵히 기억한다는 것부터 남 깨우쳐주기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는 것까지 이 세 가지는 비록 성인의 지극함이 아닐지라도, 배우는 자에 있어서도 역시 어려운 것이다. 예컨대 평소에 익힘이 꿰어져 있어야 비로소 기억할 수 있는 것고, 혹시라도 남이 일깨워 주어야만 비로소 보존할 수 있는 것이다. 만약 묵묵이 그것을 기억하는 것이라면 오히려 말하지 않고서도 마음에 보존할 수 있으니, 마음이 이치와 합치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면, 어찌 이와 같이할 수 있겠는가? 배움에 싫증내지 않는다고 하였는데, 배우는 자에게 있어서는 오래되면 역시 싫증 나기가 쉬운 법이다. 남을 자신과 더불어 아무런 간섭이 없는 것처럼 본다면, 깨우쳐주기에 어찌 게을리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 세 가지는 역시 반드시 마음에 중간에 끊김이 없어야만, 비로소 이와 같이 할 수가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또 말하길, “지금 배우는 자들은 반드시 이 세 구절을 가지고 수시로 성찰해야 한다. 나는 아직도 묵묵히 기억할 수 있는가? 나는 배움에 여전히 싫증내지 않는가? 나는 가르침에 여전히 게으르지 않는가? 이렇게 해야만, 마침내 좋은 것이다.”라고 하였다.
黙而識之 便是得之於心 學不厭 便是更加講貫 誨不倦 便是施於人也 묵묵히 기억하는 것은 곧바로 마음에서 터득하는 것이고, 배우기에 싫증내지 않는 것은 곧바로 더욱 익혀서 꿰는 것이며, 깨우쳐주기에 게을리하지 않는 것은 곧바로 남에게 베푸는 것이다.
問何有於我哉 曰 此語難說 聖人是自謙 言我不曾有此數者 聖人常有慊然不足之意 衆人雖見他是仁之至熟義之至精 他只管自見得有欠闕處 누군가 ‘何有於我哉’에 대하여 물었다. 말하길, “이 말은 참 설명하기가 곤란하다. 성인께서 스스로 겸손하여 ‘나는 일찍이 이러한 몇 가지를 갖고 있지 않았다’고 말한 것이다. 성인께서는 항상 흡족하지 않다는 뜻을 가지고 있었는데, 뭇사람들은 비록 성인께서 仁의 지극한 원숙함이고 義의 지극한 정밀함인 것을 알아보았지만, 성인께서는 그저 부족하고 모자라는 부분이 있다고 스스로 아셨던 것이다.”라고 하였다.
此必因人稱聖人有此 聖人以謙辭承之 記者失却上一節 只做聖人自話記了 이것은 틀림없이 사람들이 성인께서 이러한 것을 가지고 있다고 칭찬한 것으로 인해서, 성인께서 겸사로 그것을 이어받은 것이다. 그런데 기록하는 사람이 위의 한 절을 잃어버리고 단지 성인께서 스스로 하신 말씀만 기록한 것이다.
南軒張氏曰 默識非言意所可及 蓋森然於不覩不聞之中者也 在己則學不厭 施諸人則敎不倦 成己成物之不息也 此亦是作知識說 남헌장씨가 말하길, “默識은 뜻이 미치는 바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대체로 보지 않고 듣지 않는 가운데에 죽 늘어서 있는 것이다. 나에게 있어서는 곧 배우기를 싫증내지 않고, 남에게 베푸는 것이라면, 곧 가르치기를 게을리 하지 않으니, 자신을 이루고 남을 이루어줌이 그치지 않는 것이다. 이것 역시 知識으로 삼아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雲峯胡氏曰 學貴自得 故在默識自得而不自以爲得 故學而不厭 自得而必欲人之同得 故敎而不倦 운봉호씨가 말하길, “배움에 있어 自得을 귀하게 여기기 때문에, 默識에 있어서 自得하지만, 스스로는 터득하였다고 여기지 않기 때문에 배우되 싫증을 내지 않는 것이다. 自得하면 반드시 남도 함께 터득하기를 바라기 때문에, 가르침을 게을리하지 않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