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생경 동화(133화)
불꽃의 전생
김영순
나무가 우거져 숲이 무성한 산림지대가 있습니다. 이 산림지대를 호수물이 감싸고 있는데, 맑고 깊은 이 호수에는 이무기가 살고 있습니다.
이무기는 맑고 깊은 호수물 속에서 용이 되어 극락정토에 가려고 날마다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 이무기에게는 커다란 근심걱정이 하나 생겼습니다. 그 걱정거리는 다름이 아니라 호수가의 산림지대에 흰불나방이 산불처럼 번져, 무성하던 숲을 갉아먹고 있는 것입니다. 특히 호수가의 큰 나무에까지 흰불나방이 번져 그 무성한 가지와 잎을 모두 갉아먹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무기는 용이 되려고 지금 아미타불에게 기도를 올리고 있습니다.
‘아미타불이 살고 있는 극락정토는 괴로움이 없고 안락하여 자유로운 세상이다. 그 극락정토는 이 세상에서 서쪽으로 10만억 불토를 지난 곳에 있는데, 내 마음이 이렇게 어지럽고 시끌시끌하니, 내 기도소리가 아미타불의 귀에까지 전달될 수가 있겠는가?’
이무기의 마음은 흰불나방들 때문에 그렇게 어지럽고 시끄럽습니다. 흰불나방 때문에 이무기가 그렇게 근심걱정을 하고 있을 때, 호수가의 큰 나무로 찌르레기 한 마리가 날아왔습니다.
그런데 이 찌르레기의 등은 갈색이고 머리는 검은데, 비둘기보다는 몸통이 더 크고 온 몸에서 자주 빛 광채가 나고 있습니다. 한눈에 보아도 예사 찌르레기는 아니었습니다.
이무기가 알고 있기에는 사람들은 찌르레기를 ‘구관조’라 부르는데, 구관조의 몸통은 비둘기만하고 털빛은 검은데, 사람의 말을 잘 흉내 낸다 하여 사람들은 집에서 애완 새로 기르기도 한답니다. 특히 찌르레기들은 흰불나방을 잘 잡아먹는 유익한 새라 사람들은 더욱 좋아합니다.
“구관조대왕님, 대왕님의 옥체에서 자주 빛 광채가 납니다.”
이무기는 이 찌르레기가 예사내기는 아닌 것 같아 최고의 공대말을 씁니다.
“방금 나를 대왕님이라 불렀소?”
찌르레기는 이무기의 말을 잘못 들은 것 같아 되물어봅니다.
“구관조대왕님이시여, 이 이무기의 딱한 사정을 들어주실 것 같아 한 번만 도와주십시오. 하고 이렇게 애원합니다.”
“내게 뭘 도와달라는 것입니까?”
“구관조대왕님께서도 보시는 바와 같이 이 호수 주변의 숲이 흰불나방의 퍼짐으로 산림이 모두 말라죽고 있습니다. 원컨대 흰불나방을 모조리 잡아주면 그 은혜는 이 몸이 평생을 잊지 않고 갚겠습니다.”
이무기는 임금님의 앞에 충성을 맹세하는 충신처럼 머리를 조아립니다.
“숲을 살리는 일이라면 이 새가 앞장서겠습니다. 조금만 기다려주십시오.”
찌르레기도 숲이 푸르러야 새들이 푸른 숲에서 즐겁게 살 수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자주 빛 광채가 나는 찌르레기는 호수주변의 숲으로, 벌레를 잘 잡는 산새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이 숲에는 흰불나방이 산불처럼 번지고 있소. 산새들은 이 숲에 와서 벌레들을 잡아주시오.”
산새들이 좋아하는 벌레가 많이 생겨났다는 소식을 들은 그들은, 호수가 숲속으로 구름처럼 떼를 지어 몰려왔습니다.
“숲에서 사는 우리 산새들은 나무가 없는 곳에서는 살 수 없습니다. 우리들은 흰불나방을 모두 잡아 죽어가는 나무들을 다시 살려냅시다. 호수속의 이무기님은 나와 약속을 했소.”
“무얼 약속했다는 말이오?”
꾀꼬리가 노랑 꽁지깃을 깝죽이며 고운 소리로 물어봅니다.
“숲속의 흰불나방을 모두 잡아주면 우리 산새들이 호수 가에서 자유롭게 살 수 있게 해 주겠다고 단단히 약속했소.”
“그 욕심꾸러기 이무기가 웬일로 그런 약속을 했을까요?”
산비둘기들은 이무기의 약속을 못 믿겠다. 고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이무기도 흰불나방이 산불처럼 번져가니까 마음이 급했던 모양이오.”
산까치는 그 길고 까만 꽁지깃을 깝작거립니다.
“우리는 밑져봐야 본전이오. 욕심 많은 이무기가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 해도, 우리는 매일 벌레를 배불리 먹을 수 있으니까 손해 볼 건 없는 일이오.”
메추라기들은 짧은 꽁지깃을 치켜 올리고 부지런히 벌레들을 잡고 있습니다. 그렇게 산새들은 호수 주변의 숲속에 모여 흰불나방 소탕작전에 나섰습니다. 그들은 숲속을 이 잡듯이 휩쓸어 흰불나방을 죄다 잡아 없애고 있었습니다.
산새들은 자주 빛 광채가 나는 찌르레기의 말을 잘 따라주었습니다. 그리하여 숲속에 번지던 흰불나방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습니다.
산새들은 호수가의 큰 나무로 몰려들었습니다. 그렇게 한 곳으로 많은 산새들이 몰려들게 되자 큰 나무의 주변은 자연스럽게 산새들의 짹짹이는 소리로 시끄럽게 되었습니다.
호수가의 큰 나무에서 산새들이 떼로 몰려들어, 떠들어 대니까 화가 난 이무기가 호수물 밖으로 몸을 내놓고 짜증을 부립니다.
“조용히 하지 못할까? 짹짹이는 소리에 정신이 흩어져서 기도를 할 수가 없다는 말이 닷! 좀 조용히 해!”
이무기는 성을 내며 버럭버럭 큰소리를 칩니다.
“또 한 번만 떠들어봐라. 모조리 내쫓고 말테니까! 떠들지 마!”
“흰불나방을 잡아주면 우리 산새들을 호수가에서 자유롭게 살 수 있도록 해준다고 약속하더니, 뭐 이제 와서 시끄럽다고 떠나라하니 이게 말이 되오?”
산비둘기들이 이무기 앞에 반기를 들고 나섰습니다. 산까치들도 들고 일어났습니다. 꾀꼬리며 메추라기, 콩새와 찌르레기들도 모두 들고 일어났습니다.
“우리는 이 숲속에 산새들의 나라를 세웁시다. 새 나라의 임금님도 뽑아 튼튼한 나라를 세웁시다. 이무기가 우리 산새들을 무시하지 못하도록 독립된 새 나라를 세웁시다.”
산새들은 드디어 새의 나라를 세우고, 새 나라의 임금님으로 자주 빛 광채가 나는 찌르레기를 뽑았습니다.
새 나라의 새 임금으로 뽑힌 자주 빛 광채가 나는 찌르레기대왕은 새 나라의 새 율법을 만들었습니다. 새 율법은 단 세 가지뿐입니다.
첫째는 탐욕을 버려라.
둘째는 성내지 말라.
셋째는 슬기롭게 살아라.
새 임금은 숲속에 산새들을 모아놓고, 새 나라의 율법을 설교합니다.
“첫째 탐욕을 버려라. 먹는 욕심을 버리지 못하면 새의 몸뚱이는 뚱뚱해진다. 몸이 뚱뚱한 새는 체중이 무거워 하늘을 날지 못한다. 날지 못하는 짐승은 새가 아니다. 옛날에는 타조보다 더 큰 새들도 하늘을 훨훨 날아다녔다. 그런데 타조는 먹는 욕심이 지나치게 많더니 결국 하늘을 날지 못하고, 땅에서 멧돼지처럼 뛰어 다닌다. 새가 날지 못하는 것은 무척 불행한 일이다.
부엉이도 옛날에는 벼슬이 무척 높은 새였다. 그런데 욕심이 많아 뇌물을 받아먹고, 마음까지 더러운 탐관오리가 되어, 결국 벼슬자리에서 쫓겨났다. 쫓겨난 부엉이는 낮에는 부끄러워 다니지 못하고, 천길 바위절벽의 작은 동굴에 숨어 외롭게 살아간단다.
둘째 성내지 말라. 우리 산새들은 보살처럼 중생을 사랑하라. 내가 먼저 중생을 사랑하면 중생도 나를 사랑한다. 그러나 먼저 성을 내면 중생들도 성을 낸다. 옛날에 걸핏하면 입에서 불을 내뿜으며 성을 버럭버럭 내던 불새가 있었단다. 그런데 이 불새는 결국 제 몸을 자기 불길로 불태우고 이 세상에서 영원히 자취를 감추었단다.
셋째 우리 새 나라의 백성들은 슬기롭게 살아가자. 우리 주변을 깨끗하게 청소하는 것도 슬기로운 생활이다. 그리고 우리들은 편안하게 앉아있을 곳과 떠나야 할 시간을 알아서 미련 없이 떠나는 것도 슬기로운 생활이다.”
새 임금님은 오늘도 호수가의 큰 나무에서 산새들을 모아놓고 새 율법을 설교했습니다.
그러나 새 율법을 지키지 않는 새들도 많았습니다. 특히 깜깜한 밤에는 새 율법을 지키지 않는 산새들이 많았습니다.
큰 나무는 나뭇가지가 호수물 위로 뻗어있기 때문에, 밤이면 산새들은 나뭇가지에 앉아서 물위에 몰래 똥을 떨어뜨렸습니다.
호수속의 이무기는 이제 그런 산새들이 얄밉고 귀찮아졌습니다. 얄미운 산새들을 멀리 내쫓고 싶어졌습니다.
“이제 물에서 불을 피워 큰 나무를 불태워 이 귀찮은 산새들을 모두 내쫓아버리자.”
산새들이 나뭇가지에 모여 모두 잠자는 한밤중에 이무기는 노여움을 참지 못하고, 먼저 가마솥의 물처럼 호수 물을 팔팔 끓였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연기를 피우고는 다시 큰 나무의 높이만큼 빨간 불꽃을 피워 올렸습니다.
새의 나라 새 임금님은 한밤중에 호수 물에서 불꽃이 활활 피워 오르는 것을 보았습니다.
“오오, 우리 산새백성들이여, 저 불꽃은 우리의 큰 나무를 태우고, 우리 산새들을 모두 불태워 죽이려고 합니다. 이제 우리는 다른 곳으로 얼른 옮겨가야 합니다.”
슬기로운 새임금님은 게송을 읊습니다.
평화로운 산새나라에 적군이 있는 듯
물 한복판에서 불꽃이 타 오른다
이제 이 큰 나무는 우리가 살 곳이 아니다.
이 호수는 무섭구나. 우리 모두 떠나자.
새 임금님은 이렇게 경고하고는 산새들을 데리고 다른 곳으로 날아갔습니다. 그러나 새 임금님의 경고를 듣지 않고 큰 나무에 그대로 있던 산새들은 다 타죽었습니다.
그리고 이무기도 펄펄 끓는 물에 몸뚱이가 삶아져서, 결국 뱀탕이 되고 말았습니다.
*생각키우기
부처님께서는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은 세상을 어지럽게 만드는 3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불꽃의 전생 이야기’(본생경 133화)의 용왕(이무기)도 성을 내어 불을 내뿜어서 새들을 불태워 죽이더니, 결국 자기 자신도 멸망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욕심을 버리고 평화로운 마음으로 이웃을 사랑하며, 지혜를 배워 슬기롭게 삽시다.
*김영순 약력
1934년 충남서천군한산에서 태어났고, 196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동화가 당선되다. 동화집 <늦동이>,<고구려의 왕자>,<우차꾼의 아들>,등 33권을 냈으며, 제1회 민족동화문학상, 제12회 방정환문학상 등을 받았고, 한국문인협회, 한국아동문학인협회,한국불교아동문학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