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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양산 백학장원 원문보기 글쓴이: hwd
-에디오피아, 희망의 불씨는 꺼지지 않았다
전 세계적으로 볼 때, 커피 생산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대략 2,500만 명 정도 된다. 이들의 대부분은 가족 단위로 1에서 5헥타르 정도의 소규모 농장을 경작하는 중소규모 농부들이다. 세계에서 생산되는 커피의 70%가 경작 면적 10헥타르 미만의 농장에서 생산된다. 2003년 커피 생산에 종사하는 농부들은 모두 합해서 1억 1,900만 포대의 커피를 생산했다.(한 포대에는 원두 60킬로그램이 담긴다)
현재 생산자들이 겪고 있는 정도의 재앙은 다행히도 매우 드문 경우였다. 1980년에서 1990년 사이 국제커피기구에 따르면, 현재 생산 농부에게 지불하는 커피 가격은 1파운드당 1.2달러였다. 그러던 것이 오늘날엔 50센트 밑으로 떨어진 것이다.
94%의 커피는 생산국가에서 ‘녹색 콩’, 다시 말해서 아직 볶지 않은 상태로 수출된다. 따라서 커피를 볶는 과정은 생산국을 벗어나서 진행된다는 말이다. 세계의 커피시장은 오늘날 노엄 촘스키가 ‘거대한 영구적 법인’이라고 명명한 거대 다국적 기업들에 의해서 좌우된다. 이 기업들이 사실상 브라질에서 베트남, 온두라스에서 에티오피아에 이르는 70개국에서 커피를 재배하는 수천만 명 농부들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것이다. 이 거대한 영구 법인들 중 하나가 바로 저 유명한 농가공 식품업체 네슬레다. 세계의 커피시장을 쥐락펴락하는 신흥 봉건제후들의 수는 날로 줄어든다. 이들 봉건제후들 사이에 인정사정 볼 것 없는 처절한 전쟁이 끊임없이 벌어지면서 강자가 약자를 잡아먹음으로써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기 때문이다.
기아와 영양 결핍, 아메바성 질병, 결핵 등이 해당 농부들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사이에 이들 5대 기업의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사라 리의 이익은 2000년 한 해 동안 17% 상승했고, 네슬레는 무려 26% 상승했다. 치보에게 2000년 한 해는 창립이래 가장 높은 이익을 낸 해로, 47% 상승을 기록했다.
오늘날 커피를 팔아서 얻는 소득은 생산 원가에도 훨씬 미치지 못한다. 자연 조건에 따라 성장 속도가 다른 커피 원두를 일일이 손으로 수확하려면 고도의 기술과 에너지, 기술이 필요하다. 하지만 오늘날엔 그렇게 일을 해도 적절한 대가를 받을 수가 없다.
한스 조허는 네슬레의 ‘농업’담당 국장이다. 대부분의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그는 커피 재배 농부들에게 몰아닥친 상황의 폭력성을 속속들이 잘 알고 있으며, 일이 그 지경에 이르렀음을 몹시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하지만 그는 상황이 그렇게 된 것은 어디까지나 ‘세계화된 시장이 지니는 보편적인 힘’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네슬레가 아라비카와 로부스타 원두 가격을 놓고 벌이고 있는 투기에 대해서는? 한스 조허는 그런 일은 금시초문이라고 답한다. 절대로 그렇지 않다. 그건 어디까지나 시장을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손, 즉 객관적인 힘에 따른 것일 뿐이라고 그는 확신한다.
하지만 한스 조허는 그로 인해 타격을 입은 농가들에 대해서는 무한한 연민을 느끼며 그들을 돕고 싶어한다. 그는 가히 현기증이 날 만한 세안을 서슴지 않는다. 현재 지구상에는 커피 생산자가 2,500만 명쯤 되는데, 이들 중에서 적어도 1천만 명은 ‘기꺼이 사라질 것을 수락해야 한다’는 것이 거의 제안이다. 바꿔 말하자면, 시장을 ‘정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조허는 남아도는 인간들에게 ‘사라질’ 것을 권유한다.
모든 적대적인 환경 속에서도 에티오피아 사회는 꿋꿋이 지탱되고 있다. 살아남겠다는 의지와 결단력, 농부들이 보여준 자긍심 등이다 이와 같은 인내심이 가능한 비결은 무엇일까?
우선 촘촘하게 엮인 각종 협회들의 망이 이 황폐한 땅을 촉촉하게 적신다. 에티오피아에는 다양한 형태의 각종 단체들이 공존한다. 유명한 커피 예식으로 뭉친 이웃들의 모임, 같은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끼리 경제적으로 상호 부조하는 모임, 비밀 결사대에 가까운 카로 부족 사냥꾼 모임, 우물을 공동으로 관리하는 농부들 모임, 케벨레(도시의 구역) 내의 공공서비스(쓰레기 처리 등)의 원활한 운영을 돕는 공공단체 등 다양한 공적, 사적 모임들이 형성되어 있다.
이디르, 이쿠브, 그리고 데바라고 하는 세 가지 유형의 모임이 특별히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이디르는 장례 모임이다. 에티오피아의 사회이나 집단 상상력 속에는 죽음이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죽음은 고도로 제례화되어 있다. 장례식은 산 자들의 사회생활에서 매우 중요한 순간이다. 상을 당한 가족은 이렇게 무리지어 모여든 손님들로부터 위안과 힘을 얻는다. 그런데 장례를 치르려면 비용이 많이 든다.
따라서 가장 부담이 되는 비용은 문상을 위해 상가를 방문한 손님들에게 7일 동안 계속 식사를 대접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다. 이디르는 말하자면 상을 당했을 때를 준비하는 일종의 신용금고인 셈이다. 남자건 여자건 청소년 시절부터 적립하기 시작해서 퇴직 때까지 부지런히 돈을 부어야 가까운 사람이 죽어서 목돈이 필요할 때 차질 없이 지급받을 수 있다.
이쿠브는 은행 역할을 하는 모임이다. 에티오피아의 농촌 지역에는 엄밀한 의미의 은행에 해당하는 기관이 없으므로, 농촌 지역과 도시의 케벨레에는 사채업자들이 기승을 부린다.
이쿠브는 말하자면 소액 대출을 담당하는 네트워크라고 할 수 있다. 이쿠브를 통해서 크지 않은 액수의 돈을 대출받아 닭 두서너 마리, 혹은 당나귀 한 마리를 구입할 수도 있고, 종자를 구입하거나 집 짓는 데 필요한 벽돌을 살 수도 있다. 유럽이나 미국 출신 유엔 개발계획 전문가들은 이쿠브의 성과에 대해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돈을 빌린 자들은 심각한 빈곤 상태에도 불구하고 꼬박꼬박 빌린 돈을 갚기 때문이다.
에티오피아 학생들은 대학 측이 제공하는 대출을 통해 스스로 학비를 조달할 수 있다. 대출제도를 이용하는 학생은 누구나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 생활을 시작해서 7년에 걸쳐 학창 시절에 대출받은 자금 중에서 최소한 42%를 상환한다. 이 제도는 아무런 문제없이 완벽하게 운영되고 있다. 대출금을 상환하지 않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 점이 바로 에티오피아 문화의 강점이다. 에티오피아인들은 자신들이 한 약속을 충실하게 이행한다. 그렇기 때문에 에티오피아는 외채도 성실하게 갚아나가고 있다.
이쿠브는 이디르와 마찬가지로 아주 오래전부터 에티오피아인들의 생활의 일부였다. 이와 같은 소액 대출체제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동요하지 않고 에티오피아 사회를 지탱해왔다.
데바는 노동조합이나 동업자 조합과 유사한 기능을 지닌 조직이다. 커피 재배자, 가죽 제조업자 등이 데바를 통해 국가의 공무원이나 투기세력, 상인들에 대항해서 자신들의 이익을 방어한다.
이 모든 단체나 모임 등은 회원 수의 크고 작음이나 설립 목표의 다양성과 상관없이 한 가정의 가장이라면 동등한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총회에 의해 운영된다. 모임의 규모가 너무 클 때는 권한을 위임받은 대표들이 정기적으로 모여 결정권을 행사하고, 수입 지출 내역을 인가하며 미래의 사업을 계획한다. 풀뿌리 민주주의와 엄격한 사회적 연대의식 덕분에 이와 같은 모임들은 심리적, 사회적으로 지속성과 효율성을 보장받는다.
하지만 이와 같은 남다른 활력과 저항력, 용기에도 불구하고 에티오피아는 오늘날 기력이 다해가고 있다. 부채가 서서히 에티오피아의 숨통을 죄어오고 있기 때문이다. 언제쯤이면 에티오피아 국민들이 얼마간의 행복이라도 맛불 수 있을까? 어쨌거나 부채가 있는 한 그런 날은 오지 않을 것이 확실하다.
-브라질, 혁명은 계속된다
내란이 빚어낸 집단학살에 사용된 무기를 수입하느라 들인 비용을 갚아야 하는 르완다와는 다르지만, 브라질도 군사 독재정권과 이와 결탁한 허수아비 대통령들이 수출입은행이나 국제통화기금, 유럽이나 일본`북미 지역 민간 은행들로부터 끌어다 쓴 천문학적인 액수의 부채를 갚아야 하는 처지다. 독재자들은 국민의 자유를 박탈하고 민주주의를 부르짖는 사람들을 고문했을 뿐만 아니라, 오로지 북미 지역의 후견인들의 이익만을 챙기느라 자국의 부를 제멋대로 사취했다. 군사 독재정권 이후에 들어선 대통령들은 부패를 조장했으며 수익성이 높은 공공기업을 외국 자본에게 유리하도록 민영화해버렸다.
그 결과 오늘날 이 끔찍한 부채를 갚아야 할 의무는 룰라 대통령에게로 넘어 왔다.
2003년 1월 1일 룰라가 대통령에 취임한 날을 기준으로 브라질의 외채는 2,350억 달러를 웃돈다. 이 액수는 외채를 안고 있는 제3세계 모든 국가 중에서 두 번째로 많은 액수다. 이 액수는 또한 브라질이 최근 4년 동안 수출을 통해 벌어들인 총액과 맞먹는다. 따라서 기아 제로 프로그램은 브라질 현 정부가 부채 지불 유예를 얻어내지 못하는 한 언제까지나 허울 좋은 탁상공론에 그치고 말 것이다.
1964년 4월, 쿠데타가 일어났을 무렵에 브라질의 외채는 25억 달러였다. 그로부터 21년 후 군부 독재가 종지부를 찍었을 때 외채는 1천억 달러를 넘어섰다. 왜 이런 일이 생겼는가?
1964년부터 1985년까지 지속되어온 군부독재 기간 동안 정권을 잡은 군정체제가 추구한 전략은 국가의 치안과 통합 발전이라는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거의 남미대륙 전체에 걸쳐 대대적인 감시와 억압, 민주주의자 색출체제가 자리 잡았다. 이를 위해서는 어마어마한 재원이 필요했다. 국가의 치안을 위해서라면 그 어떤 비용도 지나칠 것이 없었다. 초기에는 수출입은행, 거대 민간 은행들, 그 뒤를 이어 국제통화기금 등이 여러 차례에 걸쳐 수십억 달러씩 지원함으로써 독재 체제의 유지와 강화에 필요한 자금을 댔다.
대대적인 국토 확장, 국토 재무장, 독재의 주역인 육`해`공 3군의 재정비와 현대화 작업 등을 위해 공적 자금은 물론 북미 민간자본들이 수백억 달러씩 투입되었다. 이 돈들은 수출입은행과 민간 은행, 국제통화기금 등을 통해 브라질로 유입되었다.
군부독재가 계속된 21년 동안 100만 제곱킬로미터 이상의 산림이 파괴되거나 불태워졌다. 이렇게 얻은 땅의 90% 이상은 거대 다국적 농가공 식품업체나 목축업체들에게 분배되었다. 삼림을 불태워 일군 땅 위에 북미 농가공 식품업체나 거대 다국적 목축업체들은 방대한 고무나무나 캐슈, 밀 농장들, 혹은 조방 농법에 따라 소를 기르는 데 필요한 초지 등을 건설했다.
아마존 정글과 인근 습지대 마투그로수 수만 헥타르에서 대대적인 벌목을 진행, 그곳에 어마어마하게 큰 규모의 콩 농장이 들어섰다. 이렇게 해서 브라질은 세계 제1위 콩 수출국이 되었다.
에르빈 바겐호퍼의 표현을 빌리면, ‘유럽의 젖소들이 브라질 숲을 거덜’내는 형국이 된 것이다.
이와 동시에 브라질은 세계 제1위 바이오 연료 생산숙이라는 타이틀도 거머쥐었다. 사탕수수의 초록빛 바다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드넓게 펼쳐진 덕분이다. 하지만 곡물 재배 면적은 그만큼 줄어들었다. 사탕수수는 한꺼번에 수백만 톤씩 자동차 연료로 변신한다. 이는 특히 북미 지역 자동차들의 연료로 사용된다.
인간을 위한 식량생산 농업이나 아마존 정글 관점에서 보자면 재앙에 가까운 이 같은 새로운 정책 덕분에 브라질은 막대한 양의 외화를 벌어들인다. 이렇게 벌어들인 외화는 브라질의 부채를 줄이는데 요긴하게 쓰인다.
하지만 그 와중에 브라질의 기아 제로 프로그램은 완전히 폐기 상태에 이르렀으면, 그 대신 ‘볼사 파밀리아’, 즉 ‘저소득 가정을 위한 지원금’제도가 생겨났다. 이 제도는 성인 가족의 수입이 한 달에 90레알(45달러) 미만인 가정을 돕는 사업으로서, 이러한 저소득 가정은 식량, 의료, 교육, 위생 시설 등을 위해 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 2007년 현재 800만 가정의 4,000만 명 이상이 이 제도의 혜택을 받고 있다.
무농지 농업 노동자 모임은 배신행위라고 연일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농업개혁은 지지부진하고, 가족 단위 농업은 고사 상태에 직면했다. 브라질 회사나 외국 회사 구분 없이 바이오 연료나 콩, 그 외 수출용 작물을 생산하는 자본주의 거대 기업들만 이 엄청난 세제 혜택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브라질의 상황에 대해서 부채의 멍에에서 벗어나는 일이야말로 영양실조와 비위생적인 식수, 문맹, 각종 전염병, 끔찍한 가난 등으로 허덕이는 수천만 브라질 주민들에게 얼마간의 희망을 주는 유일한 탈출구라고 할 수 있다.
-탐욕의 시대는 어떻게 봉건화되는가?
우리는 이 세계가 다시금 봉건화되어가는 참상을 목격하고 있는 중이다. 이처럼 새로 등장한 봉건적 권력은 거대 다국적 민간 기업의 얼굴을 하고 있다. 여기서 한번 정리를 해둘 필요가 있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비중이 큰 500개의 거대 다국적 기업들이 지구 전체 생산의 52%를 차지하고 있다. 이들 500개 기업 중에서 58%는 미국에서 출발한 기업들이다. 이들 500개 기업은 모두 합해도 고작 전 세계 노동력의 1.8%만을 고용하고 있다. 이들 500개 기업이 축적한 부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133개국의 부를 모두 합한 것보다 크다.
이들 신흥 봉건주의자들이 추구하는 유일한 목표는 최소한의 시간에 최대한의 이익을 창출하여 자신들의 권력 확대를 가속화시키는 일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정한 규칙에 반대하는 모든 장애물은 제거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남반구 지역 국가들의 부채가 끊임없이 증가하는 가장 큰 이유로는 거대 다국적 기업들이 자리 잡은 나라 현지에서의 기업 활동을 통해 얻은 이윤이나 주식투자 등을 통해서 얻은 이익을 외화로 본사가 있는 나라에 송금하는 관행을 들 수 있다.
지구상에서 벌어지는 지배의 규모를 가늠해보기 위해서, 농가공 식품업계를 예를 들어보자. 2004년에는 아벤티스, 몬산토, 파이오니어, 신젠타 등을 포함하는 10개의 거대 다국적 기업이 세계 종자시장의 1/3 이상을 지배했다. 이 시장의 총 매출은 2007년의 경우 310억 달러였다.
이번엔 살충제 시장을 보자. 이 시장에서는 해마다 280억 달러 정도가 거래된다. 그런데 이 시장의 80%는 7개의 거대 다국적 기업들이 장악하고 있다.
살충제의 가격에 따라 방글라데시 수백만 벵갈 지역 농민들의 목숨이 살기도 하고 죽기도 하는 형국이다. 그런데 해마다 벵갈 지역에 판매되는 살충제의 가격을 결정하는 것은 신흥 봉건제후들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세운 기준, 즉 이익의 극대화라는 기준에 따라 가격을 결정한다. 공공 차원에서 이 가격을 제어할 수단은 없다.
방글라데시에서 통용되는 진실은 인도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2004년 10월 <프론트라인>이라는 잡지는 인도의 라구베라 레디 농업장관과의 인터뷰를 실었다. 장관은 인도 연방의 주요 구성원인 안드라프라데시 지역에서, 종자와 살충제를 판매하는 거대 다국적 기업 현지 지사들에게 진 빚 때문에 비관한 나머지 1998년부터 2004년 사이에 자살을 택한 농민의 수가 3,000명이 넘는다고 밝혔다.
이제 곡물 거래 상인들에게로 눈을 돌려보자. 이들은 전 세계 곡물운송, 보험, 저장창고 등을 장악하고 있을 뿐 아니라. 그렇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시카고 농산물 거래소까지 좌지우지 한다. 이곳에서도 역시 결정권과 재산권은 일부 거대 기업에 집중되어 있다. 30개의 기업이 세계 곡물 거래를 도맡아 움직이고 있다.
아프리카 대륙과 섬에 위치한 52개국 중에서 15개국만이 식량 자급자족을 달성했다. 나머지 37개국은 자국민에게 식량을 공급하기 위해 세계 곡물시장을 이용한다. 이 말은 ‘정상적인’ 수확이 이루어진 해, 다시 말해서 전쟁이나 가뭄, 메뚜기 떼의 공격 혹은 그 외의 천재지변 등이 없었던 해에도 그렇다는 말이다. 이 나라들이 만성적인 영양 결핍에 시달리는 까닭은 자국의 생산량이 한 해 추수를 끝낸 곡식이 모두 동이 나고 이듬해 추수는 시작되지 않아 곡식이 없는 기간인 ‘보릿고개’를 넘기기에 불충분하기 때문이다.
미국 중앙정보부의 작전실 책임자로 일했던 로버트 베어는 거대 다국적 기업들이 보유하고 잇는 정탐과 색출 작업팀들의 활동이 얼마나 효율적이고 정교하며 비용 또한 얼마나 막대한지 공개한 적이 있다. 일부 기업들은 특히 유엔 중요 기구의 조직에 침투하는데 아주 능하다. 세계 보건기구는 독자적인 정책을 결정하고 결의안을 채택하며 협약의 틀을 정할 수 있다. 여기서 결정된 사항들은 화학, 유전자 공학, 제약, 담배 관련 거대 민간 다국적 기업들의 기업 활동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세계보건기구는 제3세계 국가들에서 매년 수천만 명의 목숨을 위협하는 소아마비, 황열병, 말라리아, 간염 등의 예방 사업을 펼치고 있다. 이러한 예방 켐페인은 막대한 예산을 필요로 한다.
요컨대 세계보건기구의 일거수일투족에 따라 막대한 자금의 향방이 결정되는 것이다.
제약계에 군림하는 세계화 지상주의자들의 예를 들어보자. 이들은 마케팅 담당부서에서 구매력 높은 잠재 고객들이 분명히 있음을 확인한 다음에야 비로소 신약 개발에 들어간다.
건강은 누구나 누려야 하는 귄리임을 주장하며 투쟁을 벌이는 용기 있는 비정부기구 중의 하나인 안테나의 대표 데니스 폰 데르 바이드는 ‘말라리아가 뉴욕에 창궐하지 않는 것은 우리의 불행’이라고 말했다.
세계보건기구는 제약업계에서 신경 쓰지 않는 질병들을 가리켜 ‘소홀히 다뤄지는 질병’이라고 부른다. 이 같은 질병은 종류도 많고, 해마다 수천만 명의 목숨을 앗아가거나 불구로 만든다. 그런데도 이러한 질병을 퇴치할 수 있는 약은 거의 없는 형편이다. 어쩌다가 있다고 해도 오래되었거나 효과가 떨어지는 것들뿐이다.
전염병인 댕기열은 전 세계 100여 개국에서 발병된 것으로 보고되었으며, 특히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가 취약 지구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댕기열을 퇴치하기 위한 연구는 아직까지 초보 단계에 머물러 있다. 브라질과 인도네시아, 나미비아 같은 곳에서 댕기열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은 그저 혼자서 병을 이겨내는 수밖에 없다. 환자들은 자신만의 면역성에 의존하다가 대부분의 경우 끔찍한 고통에 시달리며 죽어가기 십상이다.
세계화 지상주의자들은 또한 수면병에 효과가 있는 약품을 개발하고 이를 상품화하는 일에도 그다지 관심이 없다. 이 병은 주로 열대지방, 특히 영양 상태가 좋지 못하고 위생 상태가 열악한 주거지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 바꿔 말하면 구매력이 높지 않은 사람들이 걸리는 병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대조 현상은 뚜렷하다. 제약계의 거대 다국적 기업들은 해마다 점점 더 정교한 엄청난 신약들로 북아메리카와 유럽 시장을 장악한다. 그런데 이 신약들이란 것들이 조금만 자세히 뜯어보면 이미 잘 알려진 똑같은 증세를 치료하는 약들이다. 기존에 나와 있던 약들과 색깔과 형태, 포장 방식과 이름 정도만 다를 뿐이다. 셀 수도 없이 많은 약들이 영양 좋은 백인들의 몸이 겪는 소소한 불편함을 없애주겠노라고 시장을 뒤덮는 것이다. 가장 최근에 등장했으며 현재로서는 가장 수익성이 높은 약은 소위 ‘라이프 스타일’ 약이라고 하는 노화 방지 약, 성욕감퇴 방지 약, 주름 방지 약 등이다.
세계보건기구가 보유하고 있는 결정적인 통계를 보자. 1975년부터 2000년 사이에 세계 각국의 관계 당국에서는 1,393가지 신약의 상품화를 허가했으며, 이중에서 ‘소홀히 다뤄지는 질병’을 치료하기 위한 약은 겨우 16가지에 불과했다. 세계보건기구 보고서는 이와 같은 현상에 대해 다음과 같이 간략하게 결론지었다. ‘제약업계에서는 수요에 따른 시장 조정 기능이 전혀 가동되지 않고 있다. 구속력 있는 조치가 절대로 필요하다.’
부채와 기아 덕분에 나날이 번영하고 있는 세계화된 자본주의 맥락에서 선택의 폭은 그다지 넓지 않다. 세계화 지상주의자들이 다른 사람들과 끈끈한 연대의식을 지닌 사람들처럼 행동한다면, 그들이 세운 제국이 와해될 것이고, 반대로 그들이 연민이나 인류애 등을 지옥에 던져버리고 사납고 냉소적인 야수처럼 행동한다면 투자가 증대되고 이윤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구칠 것이며, 발밑엔 시체가 즐비하게 널릴 것이다.
선택의 여지는 별로 없다. 이들 신흥 봉건 제후들이 그들의 활약을 통해서 거두어들이는 엄청난 액수의 보수를 고려한다면, 연민의 길을 택해서 제국을 와해시키는 선택은 이들에게 결코 매력적일 수 없다.
-유전자 변형 생물, 불공정 경쟁의 대표주자
식물의 유전자 변형은 다른 종의 유전자를 이식해서 얻은 결과물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식을 통해 이루어진 염색체가 어떤 식으로 기능하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다. 그런데 세계화 지상주의자들이 보기엔 유전자 변형 식물이야말로 천문학적인 이윤을 보장해줄 수 있는 확실한 수단이다. 특허권으로 보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유전자 변형 종자를 사용하는 농부가 지난해의 수확에서 다음 해의 수확을 위해 일정 비율의 종자를 남긴다면 농부는 이 종자의 특허권을 가진 거대 다국적 기업에 일종의 세금을 지불해야 한다. 농부가 유전자 변형된 종자를 사용하되 그 종자가 번식이 불가능한 종자라면 농부는 해마다 기업으로부터 새로 종자를 사들여야 한다.
유전자 변형 생물에 관한 갈등은 어마어마한 액수의 돈이 걸려있는 절박한 문제다. 미국 농가공 식품업계는 미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 자신들이 보유한 종자들과 자신들이 새로 개발한 제품들을 파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적지 않은 나라에서, 특히 아프리카와 라틴아메리카 지역에서 미국 업체들은 유전자 변형 생산품 금지 조항을 피해가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덤비고 있다.
신흥 봉건제후들은 유전자 변형 물질이 기아를 퇴치할 수 있는 절대적인 방편이 된다는 억지 논리를 편다. 기아로 인한 떼죽음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식물의 유전자 변형에 적극적으로 동참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들의 주장은 엄청난 진실 왜곡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주장은 세계화 지상주의자들의 앵무새 노릇을 하고 있는 세계 각국의 부처에서 매일 흘러나온다. 이와 같은 말이 나오기까지 수십억 달러가 오고 갔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이들 업계의 선두주자가 바로 몬산토 사다. 백악관에서 이 회사의 입김은 대단하다. 세계유전자 변형 종자 시장의 개방ㄷ이 몬산토 사의 최우선 과제다. 몬산토 사가 세계에서 가장 큰 유전자 변형 생물 생산기업이기 때문이다. 전 세계 7천만 헥타르의 GMO 경작지 중의 90%가 몬산토 사의 제품을 사용하고 있다.
-베베이의 파렴치한 문어, 네슬레 왕국
네슬레는 식품과 음료수 분야에서 가장 막강한 거대 다국적 기업이다. 1843년에 설립되었으며, 본사는 스위스의 레만 호 부근, 베베이라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전 세계의 거의 모든 국적을 총 망라한 275,000 명의 종업원이 86개국에 산재한 511개의 네슬레 공장에서 일한다. 음료수와 식품, 동물 사료 등 세 가지 분야에서 네슬레가 생산하는 식품의 가짓수만 해도 8천 개가 넘는다. 네슬레는 세계에서 27번째로 큰 기업이다.
네슬레가 선도적으로 이끌고 있는 수출 지향적인 농업은 따지고 보면 중소 규모의 가족 농장들을 모두 고사시키며, 따라서 국가 전체의 식량 주권을 말살시키고 있다. 또한 수출을 위한 집약적 농업은 환경을 파괴하기도 한다.
네슬레의 놀라운 이익을 설명하는 또 한 가지 이유가 있다. CEO는 세계 농업 원료시장이라는 정글에서는 누구 못지 않게 경험이 풍부하다. 그는 자사의 원가를 줄이면서 소비자 가격은 낮추지 않는 방식으로 세계 시장의 가격을 조정하는 방식을 훤히 꿰뚫고 있다. 가령 에티오피아의 커피 생산 농부는 지난 5년 사이에 원두 값이 2/3나 폭락하는 비극을 겪었다. 같은 기간, 제네바 시내의 카페에서 마시는 커피 한 잔 값은 2배로 뛰었다.
전 세계 곳곳, 특히 부채가 많은 제3세계 국가에 불어 닥치는 식수 생산 공기업의 민영화 열풍은 베베이의 문어가 천문학적인 액수의 이윤을 창출하는 데 큰 도움을 주고 있다. 1990년에 벌써 전 세계 5,100만 명이 민간 기업이 제공하는 식수를 공급받았다. 그 후 식수 산업의 민영화는 한층 더 발 빠르게 진행되었다. 점점 더 많은 나라에서 빚더미에 올라앉은 지방자치단체들이 민간 기업에게 상수도 망을 팔아넘기고 있다. 네슬레는 이와 같은 추세의 최대 수혜자라고 할 수 있다.
볼리비아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볼리비아 정부는 세계은행의 압력에 못 이겨 공공 상수도 망을 민간 기업에 팔았다. 계약이 체결되자 민간 기업들은 서둘러 물값을 2배로 올렸다. 이는 대다수 볼리비아인들이 식품비보다 훨씬 비싼 물값을 내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수도사업의 독점권을 민간 기업에게 이양할 경우, 사람들은 허가 없이는 마을 앞 공동우물에서조차도 물을 마음대로 쓸 수 없게 된다. 대규모 농장에서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나 소규모 소작농들 모두 자기 땅에서 빗물을 받아쓰는 것조차 불가능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허가증을 사야만 한다.
네슬레는 가장 막강한 식수 공급망을 확보하고 있을 뿐 아니라 생수 사업에 있어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강자다.
어느 나라가 되었건 한 나라와 그 나라가 제정한 법 앞에서 신흥 봉건제후들은 더할 나위 없이 냉랭할 정도로 거만함을 드러낸다.
북반구 지역의 선진 국가에서라면 이들은 공장 이전이라는 으름장을 들이댄다. 최대한 많은 이윤을 얻기 위해서 이들은 노동조합과 정부를 상대로 공장을 다른 나라로 옮기겠노라고 위협하는 것이다.
공장이전이라는 위협은 특히 효과가 좋다. 이는 최근 전자기계들이 발전과 더불어 기술 혁명이 가능해진 덕분에 점점 더 적은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고용시장에 직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비장의 무기이기 때문이다.
2001년부터 2003년 사이에 지멘스 사는 전 세계에서 3만 개의 일자리를 없앴다.
일자리 감소는 세계적으로 일반화된 추세다. 거의 모든 거대 다국적 기업들이 이 전략을 사용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7년 사이에 세계 100대 다국적 기업들의 판매액은 44% 증가한 반면, 종업원 수는 불과 21% 증가하는 데 그쳤다.
-저자 후기
경제 전쟁의 선봉에 선 제후들은 우리의 지구를 정기적으로 거덜 내고 있다. 이들은 국가가 지니는 규범적인 권력을 정면에서 공격하며, 민중의 주권을 무시하고, 민주주의의 전복을 꾀하면, 자연을 훼손하고, 인간과 인간의 자유를 유린한다. 경제를 일종의 자연 현상으로 만들어버리고,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에 맹종하는 것이야말로 이들에게는 우주 생성 이론을 대신한다. 이익의 극대화는 이 이론을 실행에 옮기는 것에 다름없다.
이들이 신봉하는 이 같은 우주관과 실천 방식을 ‘구조적 폭력’이라고 부른다.
부채와 기아는 세계를 지배하는 제후들이 민중을 노예화시키며, 그들이 지닌 힘과 자원, 즉 꿈을 빼앗기 위해 사용하는 두 개의 강력한 대량살상 무기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192개국 가운데 122개국은 남반구에 위치한다. 이들 국가들의 외채를 모두 합하면 2조 1천억 달러가 넘는다. 외채는 멍에처럼 채무자를 짓누른다. 가령 특정 제3세계 국가가 수출을 통해 벌어들인 외화의 대부분이 부채에 대한 이자와 원금을 상환하는데 고스란히 바쳐진다.
북반구의 채권 은행들은 피를 빨아먹는 거머리처럼 기능한다. 따라서 채무국은 순식간에 빈혈 상태에 이르고 만다. 부채는 관개수로 설비, 도로 기반 사업, 교육, 위생 사업 등 사회 투자를 저해한다. 가장 가난한 국가들일 경우, 부채를 안고 있는 한 어떤 발전도 불가능하다.
기아는 하루하루 대규모 학살을 저지르지만 이는 냉혹한 현실일 뿐이다. 이 지구상에서는 5초마다 10세 미만의 어린이 한 명이 기아로 목숨을 잃는다. 비타민 A의 부족으로 4분에 한 명씩 시력을 잃는다.
2006년에는 8억 5,400만 명, 다시 말해서 지구 전체 인구 6명 중 한 명꼴로 심각한 만성 영양 결핍에 시달렸다. 2005년의 8억 4,200만 명에 비해 훨씬 증가한 숫자다.
이와 같은 통계 수치를 발표하는 유엔식량농업기구에 따르면, 현재 세계의 농업 생산력으로는 120억 명을 정상적으로 먹일 수 있다. 바꿔 말하면, 하루에 성인 1명당 2,700칼로리를 공급하는 일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말이다.
오늘날 지구의 인구는 62억 명 정도로 추산된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결론을 내려 보자. 기아는 절대로 어쩔 수 없는 운명이 아니다. 기아로 죽은 어린아이는 살해당한 것과 마찬가지다. 약육강식의 자본주의 논리에 따라 편성된 세계의 경제, 사회 정치적 질서는 살인적이기만 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한마디로 부조리 그 자체다.
현재 세계를 지배하는 질서는 살인적일 뿐 아니라 아무런 정당한 필요도 없이 살인을 자행하고 있다. 그 같은 질소는 뿌리 뽑아야 마땅하다. 이 책이 그와 같은 투쟁을 위한 무기가 되기를 소망한다.
희망은 어디에 있는가? 소수, 즉 대체로 별다른 의식 없이 사는 백인들의 편의를 위해 언제까지고 대다수가 가난과 절망, 착취, 기아 속에서 신음해야 하는 세상을 거부하는 인간의 이성 속에 희망은 깃들어 있다. 우리들 각자의 마음속에는 도덕적인 요청이 자리 잡고 있다. 그러니 그것을 흔들어 깨우고 저항하겠다는 의지를 북돋우며, 투쟁을 조직해야 한다.
나는 타인이며 동시에 타인은 나다. 타인에게 가하는 비인간적인 행동은 내 안에 깃들어 있는 인간성을 말살시킨다.
카를 마르크스는 ‘혁명가는 한 포기 풀이 자라나는 소리도 들을 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투쟁의 결과는 불확실하다. 하지만 확실한 것도 있다. 일찍이 파블로 네루다가 말하지 않았던가.
‘그들은 꽃이란 꽃은 모조리 꺾어버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해도 결코 봄의 주인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