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플란티크의 결심
1
플란티크는 어릴 때부터 누구에게도 교육을 받지 않았고,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자랐다. 거리의 도로가 플란티크를 키웠다 해도 좋을 것이다. 아! 이 얼마나 좋은 어머니인가. 그러나 이렇게 되기까지 여러 가지 일들이 벌어져 있었다.
연대기로 살펴보면, 아주 오래 전인 중세에 페스트가 만연해서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그런 일도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지. 하지만 그것은 아주 오래된 옛날 일이다. 이 문명이 발달한 이십 세기에 페스트라는 것이 대체 무슨 문제인가. 하지만 인플루엔자에 이르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이 병으로 플란티크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일주일 간격으로 죽고 말았던 것이다.
그 후로 이제 막 여섯 살인 플란티크와 예순 다섯 살의 할아버지가 남게 되었다. 그때 이후로 둘은 서로 의지하고 도와가며 오늘날까지 지내 왔다.
이렇게 해서 플란티크는 열세 살이 되고 할아버지는 벌써 이른 두 살이 되었다. 아마 이 할아버지만큼 명랑하고, 잔소리도 잘 하고, 건강한 노인은 없을 것이다.
나이가 예순 다섯일 때는 이 연로한 세베링 영감은 자신은 이제 눈을 감을 때까지 담배나 피우며 여름에는 바깥 복도에 있는 양지에서 볕쬐기를 하고, 겨울에는 스토브 곁에서 따뜻한 불을 쬐며 한가로이 지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때 저 유행성 감기인 인플루엔자라는 재난이 들이닥쳤던 것이다.
“나는 노인집으로 가고 저 아이는 고아원이라도 보내야겠다.”
라고 처음에는 생각했다. 그러나 갑자기 영감의 마음속에 한때 전사였던 옛날의 용기가 다시 싹트게 되었다. 죽은 아들을 쏙 빼닮은 이 아이를 매일 자신의 곁에 두고 보지 않고는 어떻게든 살아갈 가망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해서 세베링 영감은 다시 전열을 가다듬고 생활비를 벌기 위한 전쟁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렇다고는 하나 전쟁을 하기 위한 다리로 말하면, 지금 한쪽은 자신의 다리지만 다른 한쪽은 나무로 만든 의족이다. 그 다른 한편의 다리는 이 나라가 아직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의 일원으로 남아있던 시대에 제국 폐하를 위한 전쟁에 나가 보스나라는 전투에서 터키 병사가 쏜 총알에 그만 한쪽 다리를 맞고 말았던 것이다.
세베링 영감의 초창기 무렵의 조그만 사업이라고 불린 것은 커다란 목제 쟁반에 새하얗고 반짝반짝 빛나는 천의 냅프킨을 깔고, 그 위에 하얀 접시랑 작은 사발에 담은 미꾸라지부터 잉어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물고기 튀김을 놓고 팔면서 걸어 다녔던 것이다. 영감은 쟁반을 매달고 근처의 선술집들을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사업은 그럭저럭 잘 되어 그것이 생활비가 되었다.
이렇게 해서 밤에는 플란티크가 잠이 들고 나면 세베링 영감은 판매를 위해 나가고, 낮에는 보통 주부와 같이 요리를 하거나 청소를 하고 또 세탁을 하기도 했다. 이럴 때는 군대 갔을 때 무엇이라도 해내야 했던 것처럼 일을 했다. 플란티크도 일을 잘 해서 할아버지에게 도움을 주어 두 사람의 집에서는 모든 일이 척척 순조롭게 진행되어 나갔다.
2
기상은 아침 여섯 시경, 차가운 물로 얼굴을 씻고, 불을 지핀 후에 커피를 마신다. 할아버지가 아침을 짓는 동안, 플란티크는 자신의 양쪽 구두와 할아버지의 한쪽 구두를 닦고, 보찬씨의 가게로 가서 우유와 빵을 배달하고 아침을 먹은 후에 학교로 달려갔다. 점심은 세베링 할아버지가 만들고, 식기를 씻은 후면 플란티크가 그것을 닦아서 찬장에 늘어놓았다. 무슨 일이든 둘이서 하는데, 먼지를 털기도 하고, 닦기도 하면서 할아버지에게 도움을 받아 플란티크는 창도 닦았다. 그리고 나서 자신들의 주변을 정리정돈하기 위해 하숙인의 도움도 받았다. 플란티크의 양친이 죽은 후로 할아버지와 플란티크 뿐이라면 부엌만 해도 충분하기 때문에 나머지 방에 운전수인 우바로프씨를 하숙시켰던 것이다.
플란티크는 빌레크 아줌마와 이야기 하고나서 될 수 있는 한 빨리 집으로 돌아와서는 오래된 목조의 삐걱거리는 계단을 세 개씩 뛰어올라 갔다. 그리고 유리창의 유리가 덜커덩거릴 정도의 대단한 기세로 부엌으로 뛰어 들어갔다.
“할아버지, 다녀왔습니다.”
“그래, 하루 종일 어디를 그렇게 돌아다녔니?”
“놀라운 소식이 있어요.” 여러 가지 변명을 늘어놓으며 플란티크가 말했다.
“참, 제 저녁은요?”
“오븐 안에. 커피가 따뜻할 거야. 그리고 검은 빵에 버터를 발라서 먹으렴.” 플란티크는 바로 먹기 시작해서 입안에 음식을 가득 채운 채 말하기 시작했다.
“할아버지, 저 만물상 주인이 모두로부터 필요 이상으로 바가지 씌운 것을 아세요?”
“뭐라고? 그것이 너의 소식이냐? 저런, 플란티크. 나는 네가 좀 더 영리하기를 바란다.”
“음, 아니에요. 정말로 바가지를 씌워요. 자신의 장부에 기입되어 있는 여러 사람들의 외상매출대금에 한 번도 사지 않은 물건의 가격까지 기록해 모두로부터 갈취하고 있단 말이에요.”
“야, 이거 정신 차리고 들어야겠는 걸. 틀림없이 죄가 무거운 것 같은데. 누가 고소하지 않아?”
“돈이 없어서 말이에요. 그 밖에 외상으로 거래하려는 사람도 아직 있다고 생각되니까요. 이미 그런 것은 말이죠, 브레이하씨에게 물어 보았어요. 그랬더니 그런 짓은 벌써 오래 전부터 조금씩 속여서 갈취했던 것 같다나요. 할아버지, 뭔가 이 사람을 혼내 줄 방법이 없을까요?”
“그거야 있지. 참으로 가장 힘이 없는 사람들로부터 갈취한 놈이라면야, 그 사람들의 원성이 하늘까지 미칠 거야. 그러나 나하고 관계없는 일이다. 따라서 이 일로 서로 부딪치지 않도록 해. 언제까지고 그런 일을 계속 저지르면 반드시 천벌을 받게 될 거야.”
“그거야 저도 알죠. 그렇지만 말이에요, 그때까지 이 사람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마지막 셔츠까지 빼앗아 갈 거예요.” 라며 플란티크는 불평을 늘어놓았다.
“그런 일은 난 잘 모른다. 자, 할아버지는 지금부터 재료 구입하러 나가야 돼. 숙제가 있으면 꼭 끝내고 곧바로 잠자리에 들도록 해라. 그럼 쉬도록 해라.”
라며 할아버지는 대화를 끝내고 말았다.
“다녀오세요.”
플란티크는 그만 낙담하고 말았다. 할아버지께서는 좀 더 관심을 가지고 어떻게 하면 좋을지 가르쳐주실 것처럼 생각되었기 때문이었다. 헌데, 할아버지는 이런 일에 끼어들기에는 벌써 나이를 많이 드셨고, 게다가 아직도 ‘내 코가 석 자’ 라고 빠듯하게 생활하고 있기 때문이다.
3
세베링 영감이 나가자 플란티크는 램프에 불을 붙이고 산수책을 폈다. 그러자 숙제가 떠올랐다. 그러나 숙제는 하기가 쉽지 않았다. 늘어선 숫자 대신에 눈앞에는 빌레크 아줌마의 얼굴과 손가락 때가 잔뜩 묻은 보찬씨의 녹색 장부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계산 숙제가 끝나자 바로 그때 우바로프씨의 방으로부터 시계가 열 시를 치는 것이 들려왔다. 침대로 들어가야 할 시간이다.
외부 복도로 이어지는 벽에 붙은 유리창은 이 부엌에 있는 창의 하나로 플란티크는 언제나 침대에 누워 그 창으로부터 별이 반짝이는 밤하늘을 감상했다. 어느 때는 구름은 없고 달만 보이기도 하고, 어느 때는 환영처럼 기괴한 구름의 무리가 보이기도 했으며, 거리의 수많은 등불의 반짝반짝 빛나는 모습들이 보이기도 했다.
그런데 오늘은 어떻게 해도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벌써 열시 반, 그리고 잠시 후 열한 시를 알리는 종소리를 들었지만 여전히 잠이 들지 못했다. 그 장부가 사라져 버린다면 이 세상의 많은 안 좋은 일도 같이 사라져 버릴 텐데. 그렇지만 모두는 정직한 사람들이라 보찬씨에게 빚진 돈을 정확히 일 할렐까지 빠짐없이 갚을 것임에 틀림없다. 물론 정말로 외상으로 가져간 물건에 대해서만 말이다. 그렇다. 저 녹색 장부가 없어지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하늘에는 달이 나와 있다. 거의 만월에 가까운데, 그 위로 구름이 지나가고 있다. 플란티크에게는 구름이 여러 가지 기괴한 얼굴처럼 보였다. 한동안 부엌에는 달빛이 가득 찼으나 다시 어두워졌다. 뭔가 기분이 나쁜 것이 플란티크는 그만 무서워졌다. 이렇게 아름다운 빛은 달에서 나오지만, 가끔 그것을 숨기는 것은 도깨비도, 아무 것도 아닌, 단지 물방울처럼 그것이 결코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달은 자신의 궤도를 돌고, 구름은 그 앞을 가로지른다. 플란티크는 잠들지 못하고 생각에 잠겨 있다. 그러다 돌연 누군가에게 공격을 당한 것처럼 침대 위로 벌떡 일어나 이불을 걷어찼다.
그렇다. 저 장부를 어떻게든 손에 넣어 없애버려야 한다. 마침 안성맞춤으로 할아버지는 집에 없고, 우바로프씨도 야간 근무가 되어 역시 집에 없다. 플란티크에게는 오늘 밤이야말로 자신의 계획을 실행하기에 적당한 것으로 또 다시 이런 기회는 없을 거라고 여겼다. 벗은 옷들은 침대 옆에 있는 의자에 개켜져 있다. 할아버지가 언제라도 이렇게 깔끔하게 정돈하도록 평소에 가르쳤기 때문이다.
반바지를 입고, 와이셔츠를 입으면 옷 입는 일은 끝이다. 그때, 밤에 외출하면 추울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떠올라 옷을 넣어두는 장롱에서 세타를 꺼내 입었다. 플란티크는 주변을 정리하고 현관문을 열어 바깥 복도로 슬슬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