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회(동창 친목회)
나는 26회를 잊을수 없는 고향의 소꼽친구 들이며 코흘리개 시절의 그당시에는 동무들이라 고 호칭을 하던 시절이였고, 내가 태어난곳은 아산시 송악면 평촌리 였지만.그곳을 어 렸을 적에 도고로 이사를 하여 어린시절은 도고면 향산리에서 자랐다.도고 초등학교에 입학을 하였는데,나이가 한살 줄었고 9살에 입학을 하였기 때문에 정상으로 들어간 친 구들 보다는 두살이 위였던 것이다. 도고산 정기받은 도고초등학교의 교가 첫귀절 처럼 도고산 아래에 있는 전형적인 시골 농촌 이였고 도고 저수지 밑에 자리를 깔고 앉아 있는 도고초등학교는 역사가 깊은 학교라 서 푸라다나스 나무는 몇아름이 될 정도로 커 있었고, 은수원사시나무도 몇아름이 되였 던 것이다. 나는 동창생들을 괴롭히거나 떄린적은 한번도 없는 것으로 생각 된다. 공부를 좋아하지 않았고 집에오면은 집안일과 소을 끌고 다니면서 풀을 뜯어 먹게하는 작 업은 꼭 내몫이였다. 그 당시에 소 한마리를 먹이면 그것이 재산 제일호였던 당시이고 보니,보리고개라는 단어가 그 당시에 유행 하였던 시절이기도 한 것이다.뒤 늦게 6학년 당시에는 공부를 하기를 좋아 하였고 책 읽기를 좋아 하였는데. 가정에 살기가 힘들어 진학을 할 수가 없었으며 서당 2년이라는 긴 세월을 한학을 하게 되였던 것이다.그러면 서도 강의록을 보면서 공부를 하였던 것도 지금 생각을 하면 그당시에 열심히 하였기 때 문에 눈이 밝아 졌던 것만은 인정을 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 당시에는 60년대 초반 이였기 때문에 공부을 한다는 것은 힘이 들었고, 아버님이 일찍 작고를 하시고 내가 동생들을 고등학교까지 가르치다 보니, 쪼들리는 가정은 살 수가 없어서 離農을을 해야 했던 것이다. 81년에 순천향 대학교에 정식직원으로 출근을 하였지만 군생활 소급연금을 떼다 보니 참 으로 살기가 힘에 겨웠다.그당시 친구들도 농촌에 있으면 시골 청년이 된다고 서울로 .올라간 친구들은 최창교친구는가주유소 사장이 되였고,이종국친구는 중개업 사업으 로 많은 돈을 모으는 개가를 올렸던 것이다. 80년대 중반에서부터 최창교친구와 이종 국친구의 주축으로 26회가 창설 되였으며, 서울에서 시작한26회는 도고초등학교 26회 동창생회로 명실공히 활동을 하기 시작 하였던 거이다. 모교장학금을 보내 주는가 하면 육영 사업을 하였으며 애경사도 병행 하기에 이른 것이다. 나는 뒤늦게 26회 회원이 되었고 입회금20만원을 내 놓았으며 아산만에서 회원들간의 유람선을 타면서 서울친구들과 줄거운 하루를 보내고 난후 헤어졌던 것이다. 지금26회 회원은 그리 많지는 않치만 서울사는 최기선친구는 세무공무원으로 30년이란 공직생활을 하고 있으며,김태식친구는 정년퇴직을 하였고,이만식친구도 정년퇴직을 하였 다는것 이다.이종국 친구는 초창기 공인중개사를 패스하여 수원에서는 유지측에 들었 으며 의원에 나올 수있을 정도로 기반이 두터운 친구이기도 한것이다. 이종배 친구도 건축업에 손을 대어서 성공한 케이스이며, 많은 재산을 모은친구이다. 김영만박사 친구는연구소에서 근무하는 에리트로서 활동하고 있으며 지금은 26회의 회장 이다.이강남박사 친구는 지금 수원에서 수의사 개업을 하여 수위사원장이며,남학우박 사 친구는 공직에서 농촌진흥청의 근무를 하고 있으며,26회의 살림꾼 총무직을 역임하 고 있는데. 조금의 빈틈도 볼 수가 없는 친구이다. 오늘의 차표 준비도 남학우 친구의 주선으로 서울에서 서대전까지 왕복을 끊었으며 내기차표도 천안에 tmo담당관인 남학 우친구 처남에게 부탁을 하여 끊어 놓았으니, 돈내고 찾으라는 것이다. 온양을 버스타고 나간시간은 8시20분 천안에가니 겨우 9시 밖에 되지 않았다.평지의 천안역 은 폐쇄가 되고 그옆에는 새청사가 지어졌으며 24일 1 시에 개통하였다는 것이다 11시12분까지 역 청사를 둘러보면서 시간을 보내었으며, 6호차21호에 앉아 있는데.총 무 남학우 친구가 찾아와서 나중에는 차표를 기억에서 잃어버려 못 줄수도 있으니 지 금 받으라면서, ,서대전역에서 내리라는 것이다.서울서 온 친구들은 5호 차에서 있다고 하였다. 서대전까지 도착할떄까지 아무도 오지 않았고 서대전에 내리니. 역 청사 안에 서 대전의 친구 세명이 마중을 나와 있었다. 이은규친구 오명섭친구 장국태친구 오늘 회원 동원은 15명이라하였다.①강성식정년퇴 직 ②김영만박사 회장 ③김태식정년퇴직④남학우박사 총무 ⑤ 남기붕사업가 사장 ⑥이종배건설사업가사장⑦이종국중개업사장⑧이만식정년퇴직⑨이강남박사 수위사 원장⑩최기선세무공무원⑪최창교주유소사장⑫이은규대전농산물집판장소장 ⑬오명섭라이온스총재⑭장국태해군본부 고문⑮나까지 15명이였다.이런 쟁쟁한 이사람들과 한자리를 할수 있다는 것이 영광이기는 하지만 나는 자연인이기 에 동승 을 하는 것이다.30분이상을 주차장에 있었기 때문에 주차비를 물어야 했고 차3대에 5명씩 분승 한다음에 동학사로 가는도중에 김영만박사와 이은규소장과의 대화는 이은 규소장이 대전을 부리핑하는 형식으로 공직생활을 하면서 많은외국여행을 하였다는 것이다 많은대화가 오고 갔지만 우리는 할 말이 없었고, 이은규소장의 입지전적인 옛날의 후일담은 열거 할 수 없을 정도 였다.이은규 소장의 말에 의하면 봄에는 벗꽃이 만발할 때면 상 춘객들이 인산인해를 이룬다고 하였고, 평일에도 요즈음은 항상 붐비고 있다는 것이다 만산홍엽이휘드러지게 가을의 정취를 뽑내고 있을 떄 계룡산 굽이 굽이 산기슭 도로에 는 차구경 사람구경이 어원에 맞을 정도 였다.이은규소장의 부리핑을 들으며 공 감을 하고 차가 밀리는 바람에 시간을 지체 하였다. 계룡상 끝자락 경북식당으로 장국태 고 문과의 전화 통화로 제일먼저 자리를 마련하여 휴식을 취 하였고 그곳에서 장국태고문의 하숙생활로 정이들은 주인과의 교분과 정으로 장국태친구의 써빙으로 분위기는 화기애애 하였으며 많은음식은 먹었지만 저렴하게 먹었다는 것은 남학우 총무의 지론이다. 배부르게 포만감을 느낀 동창생들은 등산을 동학사을 등산 하기로 하고 매표소에서 기다렸 지만 오지를 않이 하였고 나와 남학우 친구 최기선친구 이만식 친구 김태식친구 오명 섭친구는 동학사에 오를 수 있었다. 오명섭친구는 불자인것이 분명하고,시주를 하고 불 전에 공수재배를 하였는데, 남학우 친구는 기독교를 믿는다고 하였다.나에게 남학우 친구가 무슨 신앙을 믿느냐기에 아무교도 믿지 않는 다고 하였다.나의 마음의 칠불을 믿는다고 다짐하여 보았다. 형형색색 울긋불긋 푸르고 노란 색깔들의 향연속에 인간들은 그속에 나는 자연인이다, 그속에 同化돠어 어느사람은 빨리 걷고, 어느 사람은 산수와 대화를 나누면서 천천히, 걷고 있다.일몰이 지는 시기에도 차량은 오고 가지를 못하고 들어 오는가 하면 나가는 사람들은 밀리는 차량의 有備無患을 몸소 실천을 하는 것일게다. 경북식당을 떠난 우리 차량 석대는 지금시간이 4시 30분 인데도 산그림자가. 석양의 산봉우 리 위를 오색영롱하고 光輝의 해그림자을 만들어 내는 아름다움을 보고 감탄을 하였다 이은규친구가 몇년동안 회의에 참석치를 못하였던 것은, 공직에 짬을 내지 못함이였고 ,오늘 저녁을 26회원에게 저녁을 사기로하였다. 밀린 회비가 많아서 탕감하기로 하고 이은규친구의 농산물 직판장의 수산직판장으로 직행을 하게 되였다 그곳에 차량을 세워 놓고 조금은 걸어서 대전의 올림픽 축구경기장 에 입성을 하였으며 대전 친구들의 vip석은 본부석이고 일등석은 입구 위이며 죽 설명을 하였고 위에서 내려다. 보이는 축구장은 퍽이나 작아 보였던 것만은 숨길 수없는 사실이였다. 축구장이 작아서 가 않이라 보는 시각이 그러 했던 것이다.팔강에 들어가는 모습을 보았노라고 하였고, 그 당시 대전은 흥분과 축제의 기분은 지금도생생하게 기억이 난다고 하였다. 오명섭라이온스총재는 30억을 드려 건설한 조형물에 2000만원이라는 거액을 희사 하였으며 조형물 공로자로대전시에서 세번째자리에 당당히 새겨진 오명섭라이온스총재라는 명 찰이새겨져 있는 것을 볼떄 무한한 감회가 서린다. 수산직판장으로 돌아온 26회원들은 그곳에서 광어회 와 돔회를 포만감이 갈 정도로 찌개와 저녁식사를 한다음에 그동안의 많은 대화는 대전에 세친구들의 입지 전적인 이야기와 박수로서 환영을 하여 주었고,은평농수산물 직판장 이은규소장이 낸 저녁식사를 먹고 나서 서대전역으로 차량에 분승하여 서대전역에 도착 하였는데, 오늘 이강남 박사가 술 에 취하면 조금은 도를 넘긴다는 것이다. 최창교친구가 함께 모시는 것을 보았다고나 할 까? 8시45분열차 전의 열차가 20분이나 연착을 하여 임시 역사내에는 만원을 이루기도 하였다 7시45분 열차는 4분연착이 되였을 뿐 이였다. 대전 동창생들은 나보다는 한두살 쯤 덜 먹은 동창생들과의 대화와 어린시절 코흘리개 들의 초등학교시절의 모임 26회가 나는 좋다. 어린시절의 정다웠던 모습들을 회상 하면서 그 시절에 그 사람들이 사회에 일익을 담당 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핳 떄 매우 고무 적이라 아니 힐 수없는 것이다
도고산 정기어린 도고초등학교의 교가 첫머리는 내가 근 육십이 가까운 나이지만 잃어 버리리지 않았고, 도고산 정기 속에서 26회가 우 뚝 솟은 봉우리로 거듭나는 그런 26회가 나는 좋다
松亭 玄萬奎 拜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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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송정님 진솔한 글 잘 읽었네요. 동창이 그리워질 때가 가끔 있네요...
즐거운 동창 모임이셨네요...^^
어린 시절 이야기와 친구분들 이야기 잘 읽었습니다. 초등학교 교가를 아직 기억하고 계시다니 정말 대단하시다는 생각이 듭니다. 늘 좋은 시간 보내십시오
친구분들의 근황을 다 아시고 연락하시며 사시는 선생님이 행복하게 여겨집니다..사는데 바쁘다고 아이들이 어리다는 핑게로 친구들과의 만남도 한해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하는 일들을 생각해 보면서 그리운 친구들에게 안부전화라도 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행복한 저녁 되십시요...^^*
붓순이님:瑞香님:소영님: 賢堂님:이렇게 오셔서 꼬리글 달아 주심에 갑사를 드립니다. 어린시절의 추억담 . 어린시절의 아기자기 했던 초등학교의 후문에는 벗나무가 오랜세월동안 고목으로 있었던 그곳은 벗나무가 없어져 향수를 느끼게도 합니다.님들도. 향수를 느끼고 ㅠ계시겠지요 *^^* 건강 하시고 늘 행복 하세요
초등학교 어린 친구들이 정겹지요. 저도 몇년전에 대전에 있는 친구와 함께 주선을 하여 서울과 전주친구들을 초청하여 동학사에서 모임을 갖은 기억이 나네요. 진솔한 글 잘 읽었습니다. 건강하시고 행복 하세요~~~
송정선생님의 삶의 모습이 참 진솔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송정님 여자 동창생은 없어요? 전 유일하게 초등학교 동창회만 가끔 가는데 요새 잠잠하네요...건강하시고 정겹고 아름다운 만남 계속 유지 되시길 기원합니다.
湖亭님:안녕 하세요? 이렇게 오셔서 읽으시고 꼬리글 달아 주심에 감사를 드립니다.건강 하시고 늘 행복 하세요*^^* 청난당님:안녕 하세요. 감사 합니다 건강 하시고 늘행복 하세요. *^^* 玄珍님: 안녕 하세요? 초등학교 시절의 동창생들의 참으로 향수를 느끼게도 합니다. 기원까지 하여 주시는 님의 배려에 감사를 드립니
다. 건강 하시고 늘 행복 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