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먹구너미재
흔히들 산에 올라가는 산사람들을 할 일이 없어서 놀러 다니는 사람들인 줄 안다. 놀
이는 놀이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할 일이 없어서 노는 놀이가 아니라 할 일이 너무나
무겁고 많아서 이를 감당할 수 있는 힘을 얻기 위한 놀이이다. 그리고 산에 올라가는
산사람의 놀이는 몸과 마음을 함께 건 놀이이다. 몸에 땀을 흘림으로써 마음을 건전
하게 하고 마음을 깨끗하게 함으로써 몸을 건전하게 하는 놀이이다.
--- 이규호,「산상보훈(山上寶訓)」
▶ 산행일시 : 2010년 8월 28일(토), 흐림, 비
▶ 산행인원 : 7명(버들, memory, 드류, 동산, 감악산, 메아리, 신가이버)
▶ 산행시간 : 9시간 32분(휴식과 점심시간 포함)
▶ 산행거리 : 도상 13.3㎞(길 헤맨 거리 포함)
▶ 교 통 편 : 25승 버스 대절
▶ 시간별 구간
06 : 30 - 동서울종합터미널 출발
08 : 28 - 인제군 남면 갑둔리(甲屯里) 소치초교(폐교), 산행시작
09 : 09 - 소치(所峙)2교
09 : 28 - 다시 능선 진입
11 : 02 - 망태봉(望台峰, △772.8m)
11 : 24 - 801m봉
11 : 42 - 807m봉
11 : 54 ~ 12 : 27 - 848.9m봉, 점심식사
12 : 54 - △834m봉
14 : 04 - 864m봉
14 : 35 - ╋자 갈림길 안부, 오른쪽은 큰통골
15 : 12 - △934.0m봉(기령산)
15 : 47 - 임도 안부, 기령(길령)
16 : 40 - 977m봉
17 : 21 - 임도 안부, 먹구너미재
18 : 00 - 인제군 남면 정자리(亭子里) 샛말, 산행종료
22 : 17 - 동서울 강변역 도착
2. 화양강휴게소에서
▶ 망태봉(望台峰, △772.8m)
그간 숱하게 인제 쪽 오갈 때마다 부평교(富坪橋)로 우각천(牛角川)을 건너면서 그
안 굽이도는 산모롱이가 퍽이나 궁금했다. 부평교에서 내려다보는 우각천은 소양호의
주된 수원인양 항시 마르지 않고 맑디맑게 흘렀다.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은
여기야말로 참으로 적절했다. 한때는 ‘오랫동안 서서 한 길이 덤불 속으로 꺾여 내
려간 바라볼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바라보기’도 했다.
오늘 그 길을 간다. 2006년 3월 어느 날 망태봉 오른다고 간 적이 있지만 그 때는 지
형지물을 전혀 알아볼 수 없는 밤이었다. 우각천 건너고 산골짜기로 들어간다. 한적
하다. 산모롱이 돌 때마다 대천인 우각천 여울은 주변 첩첩 산을 울리도록 굉음 낸
다. 내 여태의 기대에 조금도 어긋나지 않는 그림 같은 길이다.
소치2교와 나란한 갑둔2교를 지나고 제법 너른 들판이 펼쳐진다. 소치초교 앞이다.
계류 거슬러 마냥 갔어도 좋을 길인데 우리 차는 멈춘다. 문 닫았다는 소치초교가 그
다지 쓸쓸해 보이지 않는다. 교문 옆 화단에는 코스모스가 피었다. 말쑥한 모습인 학
교 건물과 운동장은 ‘소치마을 농촌체험학교’로 바뀌었다.
길 건너 산기슭 외딴집 뒤로 간다. 가시덤불 헤치고 가파른 생사면 친다. 오래전에
간벌한 나뭇가지가 사방 널려있어 지나기 더욱 고약하다. 비산하는 낙석 경계하며 오
르고 바윗길 슬랩에서는 슬링 내린다. 사면 경사각도가 45도 내지 60도는 족히 되겠
다며 능선에 진입하기까지 네발로 달달 긴 20분이 꽤 길었다.
한숨 돌리고 흐릿한 인적 따라 바위 턱 넘는데 갑자기 선두가 바로 아래로 도로가 보
인다며 길을 잘못 든 것 같다고 뒤로 돈다. 이게 착오였다. 약간만 오른쪽으로 시선
과 발걸음을 돌렸더라면 능선 마루금을 발견할 수 있었을 텐데 떼알바의 시작이었다.
하긴 2006년 3월 그때도 여기서 1시간가량 헤맸다. 자연스레 내가 선두 된다.
소치초교 앞 첨봉인 412m봉을 오르고 북동향 방향 좋다. 그런데 계속 내림 길이다.
메아리 님이 그 이유를 알아보려고 일행 잠시 멈추게 하고 내려가더니 우각천 물소리
에 놀라 올라온다. 오른쪽 옅은 지능선 잡아 에라 하고 내린다. 이럴 수가! 차로 방
금 지나온 소치2교 앞이다. 412m봉을 다시 오른다. 당초 오늘 산행은 최소한 응봉산
넘고 △975.3m봉 넘어 정자고개까지 가마고 했는데 우각천에서 그 수포로 돌아갔다.
다시 능선 진입. 40분이 걸린다. 우세스러운 일. 오늘 흘린 진땀 대부분은 여기서 흘
린 것이다. 덤불 속 마루금 소로를 찾아낸다. 고도 점점 높이며 숲속을 간다. 등로
주변의 보기 좋은 아름드리 적송을 우러르다 우후죽순 격으로 막 솟아나온 버섯들을
툭툭 건드려본다. 아는 버섯은 겨우 달걀버섯이나 싸리버섯. 다 독버섯으로 보인다.
부드럽던 능선이 사나워지기 시작한다. 암릉 나온다. 왼쪽의 인적 따른다. 암릉 밑자
락 길게 돈다. 앞 사면이 절벽으로 변하고 인적은 간데없이 사라졌다. 되돌 수는 없
는 일. 올려친다. 바위는 젖어 매우 미끄럽다. 어렵사리 암릉인 주능선에 진입한다.
아무래도 아까 암릉과 맞닥뜨릴 때 직등하는 편이 나았을 듯하다.
망대산 중턱. 절벽을 오른쪽으로 돌아 한 피치 더 힘 쏟아야 망태봉 정상이다. 산이
높아 망보기 좋다하여 망태봉라고 하나 암봉이나 그 옆 삼각점이 있는 헬기장에서 둘
러보아도 나무숲으로 가려 망(望)할 경치는 없다. 새마포산악회에서 망태봉 정상 표
지판을 나무에 걸어놓았다. 삼각점은 어론 412, 2005 재설. 국토지리정보원의 지형도
에는 ‘望台峰’이라 표기하고 고시지명은 ‘망대봉’이라 한다. 台(별이름 태)를 臺
(돈대 대)자의 속자로 여기나보다.
3. 코스모스, 소치초교에서
4. 흰가시광대버섯
5. 망태봉 중턱에서
▶ 먹구너미고개
망태봉 오르는 데 예상보다 많은 시간(2시간 34분)이 걸렸다. 이대로 가다가는 응봉
산 넘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든다. 서둔다. 바람 솔솔 불어 걷기 좋다. 오르내리는 심
한 굴곡이 없는 801m봉, 807m봉을 대깍 넘는다. 848.9m봉이 움찔하게 높다랗지만 방
이다. 848.9m봉 정상은 널찍하고 그늘진 공터다. 영진도엽에 표시된 삼각점은 없다.
둥글게 자리 펴고 점심밥 먹는다. memory 님이 싸온 한 바리 음식으로 산중 더없는
성찬이다. 정작 memory 님 본인은 식사량이 워낙 적어 그걸 보는 일행들이 불안하다.
그나마 먹는 둥 마는 둥이다. 힘들어 도저히 못 먹겠다하니 그러고도 어떻게 걷을 수
있을까 걱정한다. (어쨌거나 오늘도 훌륭히 완주한 것은 대단한 일이다.)
848.9m봉에서 Y자 능선이 분기한다. 왼쪽 진행방향으로 문창환(킬文) 님의 산행표지
기가 보인다. 반갑다. 고도 60m쯤 낮추도록 쭈욱 내리고 독도주의 구간이다. 오르다
말고 오른쪽으로 확 꺾어야 한다. 그런다. 덤불속에 삼각점(어론 414, 2005 재설)이
있는 봉우리를 763m봉인 줄 알고 씩씩히 동진한다.
그런데 지도상의 넙데데한 사면은 나타나지 않고 급전직하로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또 길을 잘못 들었다고 우왕좌왕하는 중에 사면 훑는 메아리 님만이 태연하다. 서로
지도를 대조한즉 우리는 방금 834m봉을 지났으며 제대로 가고 있단다. 그랬다. 삼각
점 있는 봉우리가 834m봉이었다!
나지막한 763m봉을 가뿐히 넘어 살짝 내렸다가 864m봉 오름길. 모처럼 되다. 가파른
사면에 등로는 보이지 않고 키 훌쩍 넘는 미역줄나무 넝쿨을 몸부림하여 뚫는다. 더
구나 앞에 가던 동산 님이 벌에 쏘였다고 하여 덤불속으로 피한다. 비 내리기 시작한
다. 쉬이 그칠 것 같지 않아 배낭커버 씌운다. ‘아침노을 저녁 비’라고 했다. 오늘
아침 올림픽대교에서 바라보는 노을이 볼만하여 비 내릴 줄 짐작하였지만 때가 너무
이르다.
864m봉 넘고서도 봉우리 3개 오르락내리락하여 ┼자 갈림길이 있는 안부다. 오른쪽은
큰통골로 빠진다. 쉴 때는 비가 멎는다. ‘기령산’이라는 △975.3m봉. 짙은 잡목(주
로 철쭉) 숲길이다. 천지 가득 쏴아 하는 빗소리. 소리만으로도 시원하고 쇄락하다.
숲 벗어나 하늘 뚫린 데에서 두 팔 벌리고 얼굴 들어 비 맞는다. 쇼생크 탈출한 앤디
듀프레인처럼.
다시 숲속으로 든다. 오른쪽은 급사면이고 왼쪽은 완사면이다. 멀리 간 줄 알았던 선
두(신가이버, 메아리)가 오른쪽 사면으로 뚝 떨어져 돈다. 저런 사면에도 더덕이 있
어 찾는가보다 물었더니 벌떼를 피해 도망가는 중이라고 한다. 신가이버 님이 기습당
해 여러 방 쏘였다고 한다. 납작 엎드려 살금살금 왼쪽 사면으로 돈다.
어설프게 돌았다. 뒤에 오던 memory 님이 연거푸 세 방이나 쏘였다. 생전 처음 벌에
쏘여본다고 한다. 얼른 약 바른다. 오늘 벌에 쏘인 세 사람은 벌에 특히 강한 모양이
다. 아무도 붓지 않는다. 신가이버 님은 봉침효과가 적어질까봐 일부러 약을 먹지도
바르지도 않았다. 벌 피하느라 허둥지둥하여 암봉인 △934.0m봉을 어느새 올라와버렸
다. 삼각점은 어론 416, 2005 재설. 경점인데 사방 안개 자욱하여 조망할 수가 없다.
△934.0m봉에서 완만하고 길게 내린 안부. 임도가 지나는 기령이다. 17시가 되면 무
조건 하산하기로 한다. 초원을 간다. 교통호인가? 마루금으로 도랑이 얕게 파였다.
낙엽 밑 사정을 몰라 푹 빠지기도 하여 아예 도랑둑으로 간다. 이번 비는 엄청 굵다.
호우다. 빗물이 앞가슴 타고 줄줄 흐른다. 샤워하는 셈이다. 977m봉 오를 때까지 주
룩주룩 내린다.
7. 큰통골 고개에서
8. 934m봉에서, 감악산 님
9. 등로
10. 기령에서, 왼쪽부터 메아리, 버들, 동산, 신가이버, 감악산
11. 기령에서, 신가이버 님 손에 든 것은 멜론
급사면 흙길. 미끄럽다. 자주 엎어진다. 교통호 따라 왼쪽 사면으로 돈다. 자칫하면
△986.0m봉으로 빠지기 쉽다. 미리 977m봉을 오른다. 16시 40분. 역불급이다. 분하지
만 먹구너미재에서 하산하기로 한다. 배낭 털어 먹고 마신다. 먹구너미재 가는 길.
인적이 없다. 싸리나무숲 헤친다. 아니 헤엄친다. 양팔로 물구덩이 숲 젖히는 것이
물살 가르는 것과 진배없다.
흠뻑 젖어 임도 안부. 먹구너미재다. 작년 8월 초에 여기 온 높은산 님이 재명의 유
래를 이곳 마을주민에게 물었다. 재를 ‘먹고 넘어야 한다’고 해서란다. 임도로 내
린다. 콘크리트 포장한 임도다. 임도는 산허리 끊임없이 돌아간다. 산굽이 몇 개 돌
다가 기령골 채소밭 내려다보고 그리로 내린다. 울창한 가시덤불숲이다. 무턱대고 두
릅나무 잡았다가 손바닥 따끔하니 찔린다.
산기슭 아래 브로콜리 밭으로 떨어진다. 밭에서 자라는 브로콜리는 일행 모두 처음
본다. 케일이다. 양배추다. 의견 분분하다가 잎으로 둘러싸인 가운데 꽃봉오리가 영
락없이 시장에서 보던 브로콜리라 이에 틀림없다고 다 동의하고도 비닐하우스에서 작
업하는 마을주민에게 물어 확인한다. 고추, 호박, 곰취, 기장, 양배추 등등 재배하는
밭 기웃거리며 내린다.
정자교 샛말 가기 전 김기사 님이 차 몰고 온다. 정자천, 우각천, 하늘 여울 소치마
을을 지난다.
12. 먹구너미재
13. 곰취꽃
14. 곰취꽃
15. 우각천 계류
16. 홍천 가는 길 주변
17. 전날 서울 상공에서 본 저녁노을
18. 전날 서울 상공에서 본 저녁노을
첫댓글 안개속을 넘나드는 멋진 오지산행... 멜론(?)드시는 가이버님 모습에서 한가롭던 자신에 초조함이 느껴집니다.ㅋ
일주일간 어디 계셨길래 하늘길에서 저 멋진 광경을 담으셨나요?
초반에 알바하며 진땀 빼고, 중반 벌에 생전 처음 (세 군데나 - )쏘여본 경험까지도 견딜만 했는데 .. 977봉 직전의 가파른 진흙탕에서 쏟아지는 비 맞으며 미끄러져 엎어지고 자빠지고 하느라 꽤 애먹었습니다.
앞, 뒤에서 "감악산"님이 이끌어 주신 덕분에 간신히 헤어날 수 있었지요
길도 험하고, 우의도 없이 계속 비를 맞아 오한이 나서 달달 떨기도 했지만, 한적하고 오붓한 오지산행의 묘미(妙味)를 느낄 수 있어 좋았습니다.
(어쨌거나 오늘도 훌륭히 완주한 것은 대단한 일이다.)
.......축하 드리며, 성원 보냅니다0~^^
오지산행하려면 벌에 쏘이는 것은 관문입니다...^^ 별탈없으셨다니 다행입니다. ^^ 저도 지난번에 한 방..ㅎㅎㅎ
저도 몰랐었는데 집에 와서 보니 마박에 한 방 쏘였더라구요^^..두번째 간 능선이지만 오지의 맛을 마음껏기고온 하루였습니다..고맙습니다
멋~~~~진~~~ 글.. 황홀한 사진까징......... 힘도 좋으셔 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