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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사랑 143번 권혁재 시집 {고흐의 사람들} 출간
권혁재 시인은 경기도 평택에서 태어났고, 2004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시집으로는 {투명 인간}, {잠의 나이테}, {아침이 오기 전에}, {귀족노동자}가 있고, 2009년 ‘단국대학교문학상’을 수상한 바가 있다. 권혁재 시인의 다섯 번째 시집인 《고흐의 사람들》은 사랑을 통하여 타자와의 소통과 교감, 그리고 찰나와 영원의 경계를 무너뜨리고자 했던 구도의 의지가 실현된 순간을 보여준다. 사랑은 권혁재 시인의 시편들을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고리로서 모든 시적 사유가 시작되고 귀결되는 점이라고 할 수 있다. 권혁재 시인이 현실의 부조리와 왜곡을 강도 높게 비판하거나, 에로티즘을 통해서 타자와 공감을 시도할 때, 그리고 전 우주적 참여에 의해서 겨우 열리는 구도(求道)의 문을 두드릴 때, 그러한 시도의 배경에는 사랑에 대한 관심과 그것을 실현하고자 하는 열망이 깔려 있다. 종교적 성찰의 시가 그러했던 것처럼 사랑에 대한 시편 또한 단순한 현실을 넘어서 순간과 영원, 이승과 저승을 넘나든다는 점에서 현실 이면의 현실에 대한 탐구라고 할 수 있으며, 현실적 삶의 확장과 연관되어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단 한 번의 울음으로 당신 심장을 멎게 할 것 같아 횃대에 오르지 않는 닭 바람이 든 나무의 기억 때문에 펴지지 않는 날개가 자꾸만 푸드득 거린다 독수리처럼 회를 치고 싶은 본능이 하늘을 향할 때마다 울 수 없는 언어들이 목젖에 잠긴다 죽도록 날아가는 빈 날갯짓 당신에게 가는 길이 있다면 부리에 피가 나도록 싸우는 눈이 먼 투계가 되어도 좋아 몸 속 가득 당신이라는 호칭을 결결이 쌓아 놓은 채 울지 않고도 부르는 닭 바람에 흔들린 나무의 문장이 영겁으로 대답하는 사랑인 듯 붉은 동공을 빠져나간다. ―「목계(木鷄)」, 전문
목계(木鷄)란 장자(莊子)의 「달생편(達生篇)」의 투계 우화에서 유래된 용어로 나무로 만든 닭처럼 상대가 아무리 도발해도 평정심을 유지하며 진정한 힘을 발휘하는 단계를 말한다. 즉 목계란 싸움닭 중에서 교만함과 조급함, 성냄의 눈빛을 극복하고 어떠한 도발에도 평점심을 잃지 않고 대응하는 닭으로서 마치 나무로 조각한 듯한 닭이 된 투계를 말한다. 목계는 주변의 상황을 장악하여 어떠한 변화에도 흔들리지 않기에 그의 눈만 보면 모든 닭이 도망치듯 달아나게 하는 투계로서 절대적 평정의 상태에 도달한 경지를 상징한다. 시인은 이러한 목계를 빌어 절대적 사랑의 경지를 노래하고 있다. 서정적 자아의 분신인 목계는 “당신에게 가는 길”을 찾는 투계라고 할 수 있는데, 앞서 말한 목계의 경지에 도달해 있다. 그리하여 그것은 “단 한 번의 울음으로”도 “당신의 심장을 멎게 할” 수 있을 경지에 도달해 있지만, “죽도록 날아가는 빈 날개짓”으로 그대에게 가는 길을 자신의 내면에서 발견하고자 한다. 사랑은 상대방의 태도와 상황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주체의 내면에서 생성되는 에너지에 달려 있는 셈이다. 그리하여 그는 “몸 속 가득 당신이라는 호칭을/ 결결이 쌓아 놓은 채/ 울지 않고도 부르는 닭”의 경지에 이른다. 당신을 향한 사랑이 시적 자아의 내면의 결들을 만들고, 그러한 결들로 인해서 시적 자아는 자신의 내면에서 사랑하는 당신을 온전히 받아들였기에 외부에서 사랑의 대상을 찾지 않아도 되는 경지에 이른 것이다. 이러한 사랑의 경지는 주체와 객체의 구분이 사라지게 한다. 그대가 내 안에 있고, 내가 그대 안에 있기에 나와 그대의 경계와 분별이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시의 마지막 부분에서 시적 자아는 목계의 “붉은 동공”을 “영겁으로 대답하는 사랑”이라고 묘사하고 있는데, 이러한 표현은 유한한 시간의 한계를 초월한 사랑의 모습, 천지가 한 번 개벽한 뒤부터 다음 개벽할 때까지의 시간이라는 겁의 무한 속에 스민 사랑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 영겁의 시간 속에서 무한히 응답하는 사랑의 모습을 아름답게 형상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랑의 모습은 주체와 객체의 경계와 구분을 무화하고, 순간과 영원이라는 시간의 경계 또한 벗어나 있다는 점에서 시인이 진실로 추구하고자 했던 타자와의 소통과 교감, 그리고 찰나와 영원의 경계를 무너뜨리고자 했던 구도(求道)의 의지가 실현된 순간을 보여준다. 사랑이야말로 에로티즘과 구도의 수행을 통해 도달하고자 했던 타자와의 교감, 그리고 차안과 피안의 구분이 무너진 영원의 순간에 도달하게 하는 심급인 셈이다. 이 시집에는 이와 같은 아름다운 사랑의 시편들이 곳곳에 바둑알처럼 박혀 있다. 「붉은 주름」에는 매운 맛을 잃어버리고 희나리로 변해가는 고추와 늙으신 어머니의 사랑을 그리고 있는데, 갈래갈래 접혀 있는 고추의 잔주름과 “고추를 더 검붉게 어루만지는/ 어머니의 주름 가득한 손”이 중첩되면서 시간에 의해 파괴되어 가는 존재자들의 교감과 공감의 순간이 아름답게 펼쳐지고 있다. 또한 「산골(散骨)2」에서는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을 노래하고 있는데, “천 근 같은 시간 사이로/ 희뿌옇게 불어대는 골바람/ 훌쩍이며 국을 한술 뜬다/ 간이 잘 맞는 아버지/ 아버지를 맛있게 먹는다.”라고 표현하면서 사랑이야말로 이승과 저승 사이를 넘나들며 차안과 피안을 잇는 고리라는 사유에 도달하고 있다. “천근 같은 시간 사이로/ 희뿌옇게 불어대는 골바람”은 돌아가신 아버지가 계신 산등성이와 자식들이 국밥을 먹고 있는 계곡을 연결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승과 저승을 넘나드는 바람이라고 할 수 있으며, 아버지를 먹는 시적 자아의 모습은 이승과 저승이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깨달음을 체현하고 있는 사랑의 실체를 보여준다. 결국 우리는 지금까지 권혁재 시인의 귀결점인 영원과 불이(不二)의 속성을 지닌 사랑에 이르는 길을 밟아온 셈이다. 시인이 새로운 시란 포스트모던적 주체와 환상의 주체를 벗어나고 강의실을 벗어난 현실에 서 있어야 한다는 생각의 이면에는 이러한 사랑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리고 꽃과 자연물들을 통해서 에로티즘의 향연을 펼칠 때도 그 이면에는 타자와 교감과 공감을 지향하는 사랑의 열망이 숨어 있었다. 불교적 사유를 통해 세상의 진리를 더듬을 때도 결국 궁극적으로 시인의 마음속에는 진정한 사랑을 향한 갈망이 들끓고 있었다. 그리고 권혁재 시인이 이러한 시적 구도(求道)의 작업을 통해서 도달한 사랑의 모습은 자아와 타자의 무화로서의 사랑, 그리고 순간과 영원, 차안과 피안을 잇는 고리로서의 사랑이라고 할 수 있다(황치복, 문학평론가). ---권혁재 시집, 《고흐의 사람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