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1장
번성 중의 두 사건- 바벨탑의 심판과 축복,
아브람 가문의 번성의 장애
(찬송 282장)
2024-1-12, 금
맥락과 의미
하나님께서는 홍수로 이 땅을 깨끗케 하신 후 노아와 그 자손에게 “새로운 시작”을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시는 홍수로 세상을 멸하시지 않겠다고도 말씀하셨습니다(창 9:12-17). 하나님께서는 또한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는 복된 명령도 주셨습니다(창 8:17, 9:1, 7).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인간은 하나님의 명령을 무시하기 시작했습니다. 홍수로부터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한 것입니다.
11장은 말합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인간은 자신의 능력을 확신한 나머지 자기들만의 도시와 탑을 짓기로 결정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땅에 흩어 버리십니다.
하나님의 축복에 또 다른 장애가 일어났습니다. 셈의 가문, 아브람의 가문에 생육하고 번성하는 일에 장애가 일어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하실까요?
1. 노아 후손들의 반역과 눈에 보이는 바벨의 영광(1-9절)
2. 셈의 후손의 번성에서 일어난 문제들(10-32절)
1. 노아 후손들의 반역과 눈에 보이는 바벨의 영광(1-9절)
노아 후손들이 이룬 세상의 언어는 하나였습니다(1절). 노아의 후손들은 이주를 하다가 동쪽 땅, 시날 평지 즉 바벨론에 이르게 되었습니다(2절).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4절). 성과 집을 짓고 서로 화합하고 그들 자신을 하나의 나라로 만들어 가려고 했습니다. 인간의 능력을 상징하는 한 성읍, 하늘에 이르는 높은 탑을 건축하려 했습니다. 그것으로 위대한 세계적 중심지를 이루려고 했습니다(4절).
건축자재로 돌을 활용하기 어려웠던 그 곳에서 그들이 개발했던 건축 방법은 진흙을 빚고 그것을 불에 구워 단단한 벽돌을 만들고 역청 (아스팔트)으로 고정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으로 그들은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건물을 건축하였습니다.
그들의 목적은 이 땅에서 독립적인 권력을 장악하고 유지하기 위해 흩어지지 않고 함께 모여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의미에서 하나님께 대한 도전이었습니다. 첫째, 바벨에 모인 사람들은 “땅에 충만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겼습니다. 둘째, 그들은 자기들의 이름을 내려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경배하고 영화롭게 하지 않고 자기의 영광을 추구했습니다. 하나님과 같이 되려는 마음으로 선악과를 따 먹은 아담과 하와의 교만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뭉치면 힘이 된다”는 모토로 일을 했습니다. 그래서 성을 요새화하여 그 성에 큰 탑을 완성하면 하나님으로부터 “독립”할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그 들은 하나님만 섬기고 순종하라고 주신 재능을 이 세상과 인류를 위한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는데 쓰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독립하는 도구로 사용하였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개입하셨습니다. “우리가 내려가서 (말)에 혼란을 일으켜서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만들자”(7절). 노아의 시대에는 자연재해로 치셨습니다. 이제는 인간들의 단합을 치십니다. 통일된 언어를 치심으로 인간의 나라를 분열시키셨습니다. 단합과 협력을 위한 인간의 노력을 오히려 혼란의 결과를 낳았고 “바벨”이라는 부끄러운 이름을 얻게 되었습니다(8-9절).
사람들이 협력하고 평화를 만드는 것이 하나님에 대한 반역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끼리는 좋고 화목하지만 하나님께 반역하고 하나님에게서 독립하는 것을 멸망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떠나고 그 결과 멸망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막으셨습니다. 언어를 혼잡하게 하신 것은 심판이 아니고 구원의 은혜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노아와 인류를 향한 “생명보존”을 약속하셨습니다(창 6:18-20; 8:21; 9:8-17) 그래서 노아의 홍수 때와는 달리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이 시대를 멸망시키지 않고 계십니다. 사람들은 그 은혜를 알지 못하고 하나님을 의존하지 않고 인간 스스로의 높음을 자랑하고, 강력하고 통일된 나라나 나라들의 연합을 조직하려고 힘을 모읍니다.
이 질병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치료책을 주셨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완전히 낮아지신 분을 하나님께서 높여주시고 그 분을 이 세상을 다스리시는 분으로 세우신 일이었습니다. 그분을 통해 심판과 멸망보다 더 근본적인 하나님의 새 창조를 완성하십니다.
바로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 “개입”하시고 세상을 “구원”하십니다. 그래서 아무리 종말이 임할 것처럼 보이는 순간이라도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하나님께서는 인류의 역사를 중단시키지 않으십니다. 자비롭게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베풀어주시는 것입니다.
이 세상을 생육하고 번성하고 충만하게 하셔서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세상으로 약속대로 점차 만들어 가십니다. 세상도, 우리 생명도 보존해 주시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새로운 사람으로 살아가도록 하시기 위함입니다.
사람들이 보기에 큰 업적을 성취하려는 데 우리의 은사를 낭비하지 맙시다. 우리는 은밀한 중에 보시고 판단해 주시고 나중에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은혜로 갚아주시는 하나님을 소망합시다. 그래야 물질이나 명예가 아닌 하나님을 참으로 예배할 수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에 노예가 되지 않고 믿음으로 살아 갈 수 있도록 기도로 하나님께 구합시다. 오늘도 그 가르침에 순종하여 살아갑시다.
2. 셈의 후손의 번성에서 일어난 문제들(10-32절)
10절부터 셈의 후예에 관해 소개합니다. 10장에서 셈에서 벨렉까지 이어진 계보를(10:21-25) 반복해서 말합니다(11:10-17). 계속하여 데라, 그의 아들 아브람과 아브람의 조카 롯까지 후예를 말합니다.
데라의 후예: 이렇게 생육하고 번성하던 셈의 후손의 가문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27절에 데라는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 세 아들들을 낳았습니다. 데라의 막내 아들 하란은 롯을 낳고 죽었습니다. 그리고 데라의 첫 장남 아브람은 사래와 결혼했지만 “잉태하지 못함으로 자식이 없었더라”(29,30절). 사라는 불임이었습니다.
“낳고 낳고” 이렇게 계속되던 자손 번성의 이야기가 끊기고 있습니다. 아들이 아버지보다 먼저 죽어서 하란의 대가 끊어졌습니다. 불임인 며느리 때문에 또 한 아들의 대가 끊길 위기에 있었습니다.
데라는 이유가 뭔지 모르지만 갈대아 우르라는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떠났습니다. 북서쪽으로 이사했습니다. 이사한 지역을 죽은 아들 하란의 이름으로 불렀습니다.
데라는 하란에서 250세에 죽었습니다. 그의 조상 셈은 100세에 첫 아들을 낳았고 그 다음에 500년을 지내며, 600살을 살았습니다. 이제 사람의 수명도 줄어듭니다. 생육하고 번성하는게 어려워진 이 위기의 가정에 하나님께서 나타나실 것입니다.
믿고 복종할 일
자기의 이름을 높이려고 사람들이 힘을 합치는 것은 행복이 아니라 불행을 초래하였습니다. 사람들 사이에 분열을 일으킵니다.
교만한 사람들을 위해 하나님께서 주신 치료제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이지만 하나님과 동등된 권리를 주장하지 않으시고 아주 낮아지셨습니다. 사람이 되셨고, 종이 되셨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높이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우리는 교만과 죄에서 해방되었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서로를 섬기는 새로운 공동체 교회의 지체들이 되었습니다. 교회를 통해 그리스도의 생명을 공급받으면서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는 삶을 살아갑시다. 주님께서 주신 위치에서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는 목적으로 살아갑시다.
이제 우리는 언어가 다르고 문화가 다른 세상 가운데 살아갑니다. 그러나 서로 다름을 존중합시다. 하나님만을 높이는 하나의 믿음 안에서 겸손히 하나가 되어 갑시다.
우리에게도 데라(아브람의 아버지)의 가정처럼 생육하고 번성하는 일에 문제가 생길 때가 있습니다. 이때 하나님의 나타나심을 기다립시다. 당황하지 마십시오. 불평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신뢰하고 감사하고 기대합시다.
1. 오늘 말씀하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2. 오늘 말씀에서 주신 교훈은 무엇입니까? 3. 오늘 말씀에서 순종할 내용은 무엇입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