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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함 소설을 만들어 보아야 겠다
최순실의 독일 은신을 도운 사람은
데이빗 윤으로
윤남수 전 세계일보 아들이라 한다
그런데 왜 최순실이 한국에 살지 못하고
독일에 가서 살려고 했을까?
남편과 이혼 해서 그럴까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었을까?
지금 감옥에 있는 최순실은 뭣땜에
자기가 감방에 갇혔는지 알지도 못할 것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최순실이 박근혜에게 사과 하라 했지만
뭣 때문에 사과 해야 할지를 모를 것이다
옛날 삿도가 괘심한 사람 잡아 와서는
"네 죄를 네가 알겠다"
하는 짝이다
세계 일보는 통일교 문선명과 관계가 있다
크리스토 교에서 이단시 하는 문선명은 죽기 전에
나름 대로 세계 평화 운운 하면서
전 세계에 나름대로 많은 지부가 있다
단체 결혼 한다고 일본에서 수 천 명의 신부들을 대리고 와서
결혼 시킨 사례도 있다
나름 대로 한국에서 살림을 잘 한다나
국내에서 가정당이라는 정당이 그것이다
왜 별볼일 버는 세계 엘보가 그것을 가 발렸을까?
그것이 나에게는 JTBC의 최순실 국정 농단 보다 더 궁금하다
별볼일 없는 세계일보가
왜JTBC와 최순실을 엮어 놓았을까?
왜JTBC와 최순실을 엮어 놓았을까?
왜 JTBC와 최순실을
엮어 놓았을까?
세계일보 최순실인터뷰 JTBC 손석희 치밀함
세계일보에서 단독이라며 최순실인터뷰 기사를 내보냈다.
멀리 타국에서도 자신의 소식을 접하고있는가보네요.
주요내용을 요약해보면 박근혜 대통령의 사과문을 들었는지
대통령의 사과 한 말과 똑같은 말을 되풀이하네요.
이메일로 연설문을 미리 보았고
그게 국기문란죄가 될만큼 큰 문제인지
몰랐다는 이야기...
그리고 대통령이 인정한 사실이외에는 모든 사실을 부인한다고 이야기하면서
태블릿PC를 자기는 사용할줄모른다고 이야기를 통해서
태블릿PC를 어떻게 입수하게되었는지 검찰수사를 해달라는 이야기네요.
검찰조사대상이 검찰조사를 요구하구있네요.
그렇게 떳떳하시면 숨어서 인터뷰하시지마시고 직접 한국에 오셔서
당당하게 검찰조사를 받고 검찰에게 태블릿PC에 대해서 이야기하시지
또 뒤에서 언론을 이용하여 조사해달라고 요구하시네요.
숨어서 지시하는데에만 익숙해서 그런건가요?
미리 일이 터질 줄 알았듯이 한국을 떠나서 건강을 챙기면 돌아와서 모든 것을 밝힌다고...
건강하실때 떠나시지마시고 조사받으시지 그러셨어요.
세계일보는 특종이라고 보도하지만 특종의 내용은 보이지않네요.
세계일보가 특종을 낼려면 지금 최순실의 거처를 알려주는게 특종이 아닌가합니다.
지금의 인터뷰내용은 자기의 잘못은 연설문으로 한정하고 그것도 신의로 나머지는 관련설부인
조금 잠잠해지면 들어가든지하겠다는 내용이 특종인지 저는 잘모르겠습니다.
최순실이 세계일보를 특종미끼로 사적으로 이용하는것으로밖에 보이지않네요.
세계일보 최순실 인터뷰 기사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22&aid=0003110409
JTBC 손석희 사장의 치밀함을 어제 뉴스룸을 통해서 다시 보게되었습니다.
세계일보 최순실 인터뷰를 예상했다는듯이
어제는 태블릿PC의 소유에 대해서 집중보도를 하게되었습니다.
태블릿PC의 명의는 김한수 행정관이라고 하네요.
JTBC는 최순실과 청와대를 연결라인으로 김한수행정관을 지목하게됩니다.
세계일보 최순실 인터뷰에서 태블릿PC를 할줄모른다고 이야기하셨네요.
태블릿PC에서 본인 셀프사진이 담겨져있는 것을 보도해내보면서
명의는 김한수 행정관이지만 실소유는 최순실이라는것을 반증해줍니다.
그리고 아이디를 최순실의 딸이름을 사용한것을 증거로
다시 한 번 이 태블릿PC의 실소유는 최순실임을 강조합니다.
JTBC의 치밀함을 엿볼수있는거 같습니다.
태블릿PC를 대포폰처럼 사용했다는것을 확인시켜주는 것이죠.
아님 김한수 행정관이 총때를 메고 태블릿PC를 잃어버렸다고 이야기하고
자신의 실수로 태블릿PC를 유출했다고 이야기하면 김한수행정관이
이 모든 것을 책임지고 끝날수있는 내용이니까요?
그래서 최순실이 태블릿PC 존재를 몰랐다고 이야기하는지도 모르겠네요.
그걸 사전에 막는 손석희 사장의 치밀함을 엿볼수있는거 같습니다.
최순실 인터뷰에 반박하는 JTBC 동영상
어제 JTBC 손석희 뉴스룸에서 태블릿PC 소유에 대해서 다루었죠.
여기서 태블릿PC 명의는 김한수 행정관이고 실소유는 최순실이다라고
방송을 하였습니다.
태블릿PC를 할 줄 모른다던 그녀가 어떻게 태블릿PC에 셀카가 담겨져 있는지...
이 여인이 최순실이 아닐수도 있다는 가정하에 여러 전문가들에게 알아본 결과
화면의 여인은 최순실이 맞다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합니다.
최순실 인터뷰를 예상하기라도 했듯이
JTBC가 미리 반박의 가능성까지 차단하는 치밀한 구성을 엿볼수 있습니다.
정말 칼날같은 손석희씨의 구성이 아닌가 합니다.
왜 국민들에게 존경을 받는지 다시한번 알게되었습니다.
그리고 태블릿PC를 유출경로가 최순실과 소원해진 고영태가
유출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마치 내부자의 이병헌처럼 말이죠.
충분한 가능성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독일에서 더이상의 시나리오는 그만 만드시고
한국에 들어오셨어 제대로 수사받으시기 바랍니다.
[20년 16년 10월 27일 한입뉴스] 최순실 세계일보 인터뷰 “팔선녀,
처음 듣는 소설같은 말"|
◆ 최순실, 태블릿PC 취득과정 검찰 수사 촉구 “국가기밀인 줄 몰랐다” |
추미애 "최순실과 우병우 덮기 위해 날 기소,
정치공작이자 야당탄압"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는 검찰이 선거법 위반 혐의로 자신을 기소한 것에 대해
"최순실 사건과 우병우 사건을 덮기 위한 물타기이자 치졸한 정치공작,
보복성 야당탄압"이라고 주장했다.
추미애는 58년생 대구 달성군 출신이지만
지역구는서울 광진을이다
2016년 10월 13일 추 대표는 국회에서 열린 긴급최고위에서
"이것이야말로 허위조작기소고 검찰의 기소권 남용"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추 대표는 "검찰은 20대 총선에서 내가 지역발전공약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언급한 것을 짜맞추기 기획수사하면서
며칠 전부터 이것을 언론에 흘리더니 어이없게도 허위사실공표를 했고
이런 이유로 나를 기소했다"고 했다.
이어 "제1야당 대표조차 기소한 것을 보면 검찰은
더이상 국민검찰이 아니라 권력의 시녀로 전락한 정치검찰로 막 가기로 한 모양"이라고 비판했다.
추 대표는 "나는 법에 따라 당당히 응하겠지만 법을 빙자해
정권의 비리를 감추려 한다면 절대로 좌시하지 않고 단호히 맞서 싸우겠다"며
"반드시 대선에서 승리해서 정의를 바로세우고
이 땅의 검찰을 국민에게 돌려드리겠다"고 물러서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세계일보, 2016.10.13. 추미애 "최순실과 우병우 덮기 위해 날 기소, 정치공작이자 야당탄압" - 기사에서 발췌)
북한의 첫번 째 자동차 생산은 언제 였을까요? 북한의 자동차 산업은 60년이 넘는 긴 역사를 가지고 있는데요.
1958년도에 산업용 화물 자동차 '승리 58호'가 덕천 자동차 공장에서 처음 생산됩니다.
당시 북한 당국은 사회주의 공업국가로서, 자동차는 자체 생산을 통해 보급하고
사용하겠다라는 방침을 내세웠습니다.
이에 덕천 공장을 비롯, 총 5개의 설비 공장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 바람이 무색하게, 기술력의 부족으로 부품의 생산 보다는
수입된 부품을 조립하는 정도에 그쳤었습니다.
부품 개발을 하는 것이 아니라, 외국의 부품을 수입하여 조립하고
고장났을 경우에 수리하는 정도였다고 합니다.
▲평화자동차 로고
그러던 중 등장한, 북한 유일의 자동차를 생산하고 제품 전량을 판매하는 자동차 기업이 등장했는데요.
바로 평화자동차 입니다.
평화자동차는 우리나라와 북한의 자동차 생산 및 판매 기업으로서, 통일교의 투자를 받아 세워진 남북합영회사로,
1998년 북한 남포에 평화자동차 총회사가, 1999년에 서울에 (주) 평화 자동차가 설립된 것이 시초라고 합니다.
남포에는 02년도에 완공된 공장이 있긴 하지만, 공장이란 이름이 어색할 정도로 타사의 자동차를 부품상태로 수입해와
조립하는 수준이라고 합니다.
주로 이탈리아 '피아트'나 중국 화천 자동차 등에서 부품을 수입합니다.
평화 자동차는 남북 경제협력사업의 일환으로 추진되며 우리에게 단일민족의 자긍심을 심어주고,
남북화해와 교류를 촉진함과 동시에 통일을 앞당기는 중추적 역할을 한다는 비전을 갖고 있습니다.
심볼인 비둘기는 남과 북으로 나뉜 우리 민족의 화합과 화해를 나타내며,
부른색은 민족의 순수함과 세계평화를 기원한다고 하네요.
▲평화 자동차 전시회
휘파람, 뻐꾸기, 준마, 삼천리등의 모델명이 차 앞에 붙어 있는 북한 자동차들은
모두 평화자동차에서 만든 자동차들인데요.
2002년에 출시된 첫 모델인 휘파람은 피아트의 소형 세단인 '시에나'라는 모델을 들여온 것이고,
뻐꾸기는 역시 피아트가 만든 SUV인 도블로(Doblò),
준마는 쌍용자동차 체어맨의 이름만 바꾼 모델입니다.
현재는 체어맨 기반으로 생산된 준마는 단종되었고 대신 폭스바겐 차량들을 준마라는 이름으로 들여옵니다.
북한에서는 평화 자동차가 설립되면서 모든 수입차와 중고차 반입을 금지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분단 이후 최초로 평양 시내에 상업 광고판을 세울 수 있도록 허락하기도 했는데요.
이와 더불어 다양한 세제혜택을 부여한 것으로 미루어보면
자동차 산업에 큰 기대를 걸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시장이 북한 내부에 국한되어 있는데다,
북한의 시민들 경제상황이 좋지 않아 차 소비가 많은 편이 아닙니다.
그래도 2010년대 들어 평양지역을 중심으로 수요가 늘고 있다고 하네요.
평화자동차는 북한에서 생산과 판매활동을 하는 유일한 자동차 기업이어서 북한 내에서는 유명합니다.
평양 시내는 물론 주요 도로에 약 10개 정도의 대형광고판을 세워
대중적으로 이름을 알리고 있기 때문인데요.
또한 북한 주민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스포츠인 권투경기를 정식으로 후원하는 등,
스포츠 마케팅을 펼치고 있기도 합니다.
북한에선 오토바이나 자동차가 있어도 번호판을 달지 않으면 불법이라고 하는데,
문제는 이 번호판 등록하기가 굉장히 까다롭다고 전해집니다.
처음 관할 위원회에 신고하고 뇌물을 써도 등록이 힘들다고 하는데
평화자동차에서 판매하는 차량은 구매하는 즉시 번호판이 따라오기 때문에
차량 구매자들은 평화자동차를 많이 산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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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1 월에 누군가 올린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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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인가 올해 북한 아들은 박근혜 과거 폭로 하겠다고 떠들었음
지만원이 이런 내용을 알고 있기에
박근혜의 잘못된 점이라 했는가?
지만원은 10월 21일 시국 진단에서 전반부에 박근혜 박근령을 이야기 하였다
박 근혜에게 2,002 년 도엔가 당시 대통령이던 김대중을 조심 하라 했는데
자기를 잘 알면서도 한번도 찾아 오지 않았다 하엿다
박근령이는 4 번인가 찾아 와서 '오라 버니 고맙다'고 하였다
10월초엔 지만원이 홍준표에게 사진으로 고발하는 5.18 축소판과
나머지 자료를 주면서 공 부좀 하라고 하였다
홍준표의 잘못은 발갱이들 앞잡이들이 반일 감정만 일으키는 외치는 소녀상 문제와
5.18을 헌법 전문에 넣자고 하는 문재인인데
광주 가서 홍준표는 5.18 민주화를 잘못 알고 있다고 알려 주었다고 하였다
그 2 가지가 홍준표가 대선에서 표를 많이 받지 못한 것이라고 알려 주었단다
그것은 내가 생각 할 때도 홍준표는 5.18을 공부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지만원은 15년 동안 공부 해서 알고 있는 것을
도지사 하느라고 바쁜 홍준표가 알수 있으리오
그것은 30 년 이상 직장 생뢀을 한 내가 잘 알수 있다
직장 생활 할 때는 신문과, 티브 밖에 없다
그것도 집에서 밥먹을 때나
휴일날 가끔 집에서 쉬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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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엔가 김해에 있을 때
김해 도서관에 가서
노태우 회고록 좀 읽다가 말았다
언론에서
전두환과
노태우의 비자금은 3,000 억인가 엄청 많은 것이라 하엿다
박정희가 1978년 10월 26일 김재규가 쏜 총에 죽고
당시 정치 자금을 전두환이 이어 받았고
전두환은 노태우에게 그 자금을 물려 주었는데
노태우는
그 돈을 김영삼에게 물려 주려고 하였지만
김영삼은 그 돈을 받지 않았고
그 돈이 흔히들 말하는 전두환과
노태우의 비자금이라 하였다
나는 그것이 어느 정도 맞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정치 생활을 하려면 자금이 필요하다
김영삼은 자기 아버지로 부터 많은 보이지 않는 정치 자금을 후원 받았다
당원들에게 멸치 선물 보내는 것 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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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 중 마누라 이휘호의 결혼
나는 왜 이화여대 출신이 김대중과 결혼 하였는가
으아해 하였는데
이희호 여사는 김대중 대통령이
차용애 여사와 사별후
강원용 목사의
주선으로 YWCA 간사로 있을때 정치가였던,
김대중 선생을 만나 결혼했습니다.
김홍일, 홍업은 차 여사가 낳은 자식이고,
홍걸은 이희호 여사가 낳은
자식입니다.
충청도 출신이고 이화여대에서 교직에 몸을 담기도 했습니다.
미국에서 공부한 것도 사실입니다.
김대중 선생의 오랜 동지며,
반려자입니다.
그는 김대중 선생을 진정한 정치가로 뒷바라지 하기
위해서 재혼인데도 그 결심을 했으며,
평생 후회해본 일이 없다고
말 했습니다.
이휘호 남편은 3명인데 첫번째 남편은 서울대 정외과 출신입니다. 이름을 알 수없구요.
두 번째 남편은 계훈제씨이고 세번 째가 김대중 입니다.
계훈제씨는 재야 운동가로서 언재나 고무신과 한복을 입고 김대중을 딸아다니면서
용돈을 타쓰던 사람인으로서 재야 운동가로서 손꼽는 인물이었는데약 6년 전에 작고했습니다.
이휘호는 기자들이 물으면
처녀의 몸으로 김대중에게 시집 간 것처럼 말하는데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이휘호는 어떻게 김대중을 만났을까요?
아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여기에 공개합니다.
1960년대 중반 때는 재야인사들이 주로 명동 성당 건너편에 있는 YWCA에서 황동을 하였지요. 쉽게 말해서 YWCA가 데모꾼들의 집합소 였습니다.
그 때 계훈제씨가 반공법 위반으로 형무소에 가게 되었고
부인(차씨)이 자살한 김대중은 이휘호와 함께 감옥에 갖혀있는 계훈제씨를 면회가곤 하였습니다.
거기에서 김대중이 이휘호와 눈이 맞아 자기 사람으로 만들었지요.
감옥게 갖힌 사람의 부인을 채트린 겁니다.
아주 부도덕한 짓이었지요.
김대중의 부인이었던 차씨는 왜 자살했는지 아십니까?
김대중 때문이었습니다.
모르는지...
김대중은 성당 다니고
김대중 보다 43살 적은 이휘호는 교회 다녔는지
김대중과 이휘호는 가짜 신도이다
왜냐 고요
예수 믿는 사람들은 예수보다 높은 사람이 없는데
주체 사상으로 김일성이 영원 하다는 김일성을 좋아 하였으니
유 튜브에 보면 김대중은 빨갱이라고
광주 5.18 때 광주에 살았던 사람
유튜브에서 김규천이 증언하는 노인의 말을 들어 보아라
그리고 더 많은 사람의 증언을 들어 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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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칼 858 비행기가 바그다드에 가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858 기는 정기 노선에 다니는 비행기가 아니고
노후된 기종으로 김포-제주간에나 다니는
비행기는 미국에 정비 받으러 갈 예정도 있었다 한다
김현희는 858 기 탑승자 명단도 가지고 왔다고 하는데
어떻게 2 달 전에 탑승자 명단을 가지고 있었던가
김현희의 실체 2 부 유튜브에서 읽어 보세요
국정원에도 빨갱이가 있었다는 증거다
김현희는 초짜 배기 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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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내용은 참깨 방송 김종환과
지만원이 읽어 보면 도움이 될 것 같은데?
2007년엔가 산악회를 따라서 그산에 등산을 가서 알고 있다
전남 화순의 백아산을 아십니까?
나는 그 산에 2007년엔가 산악회를 따라서
등산을 가 서 알고 있다
백아산은 818 미터로
산악회에서 등산 다니는 산으로는 높은 산이 아니다
그러나 그 산은 유명 하다
그 산에 있는 안내 문귀를 보아야만 알 수 있다
화순은 지리산과 관계 있는 곳이다
6.25 이전에는 빨갱이들이 판을 쳤던 곳이기 때문이다
산 정상 20 미터 가까이는 암벽으로 되어 있어서
전투 방어에는 안성 맞춤 이었기 때문이다
6.25 직전 남로당 들이 설칠 대
국군이 토벌 하러 갔다가 어렵게 겨우 차지 했으나
다시 빨갱이들에서 빼앗겻을 때
결국 미국 오끼나와에서 비행기를 동원해서
되 찾았다는 기록이 있다
지금도 백아선에는 빨갱이들을 기리는
모임이모이고들 있다고 한다
5.18 때 화순 광산에서 다이나 마이트 가지고 와서
전남 도청에 보관 하였다고 하는 곳도
화순 광산에 빨강 물이 든 사람이 있어서 그랬을 것이라 짐작 된다
사상이란 잘 바뀌지 않으니
그리고 그런 후손들은 더더욱 의심이 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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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빛 호수의 저자 이수성씨 이야기를
유튜브에서 듣던지
아니면 책을 사서 읽어 보세
이수성씨는 5.18 때 보좌관으로 따라 광주에 왔고
또 다른 한명은 북한 특수군으로 와서
만났던 사람 몇 명 없앴다잖아요
Koarea 사람들은 왜 거짓말을 잘 할까
내가 만났던 91 살의 할아 버지 삼촌이
그 당시 마적단들이 달려 와서 죽였다고 하였다
마적단은 부잣집 껏을 빼앗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오어 주었던
황해도 해주의 임꺽정을 사칭 하면서
북치고 꽹과리 치면서 쳐들어 온다고 하였다.
일제는 그런 무리들이 없게 치안을 하였다는 것이다
나는 일본에 고작 1 박 2 일로 부산에서 가장 가까운
후쿠오카 밖에 가 보지 못하였지만
일본은 한국 보다 훨씬 깨끗하였다
일본은 예수 믿는 사람이 2 % 도 안되는 국가 이지만
예수 믿는다 하는 사람이 20 % 되는 우리나라 보다
질서를 더 잘 지킨다고 한다
일본에 갔다가 온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들 보세요
단지 일제 식민지 36년을 아주 강조 하면서 살아가는
우리나라 사람 보다 낫다
소녀상 가지고 아직까지 울가 먹는데
당시 일본에 끌려 갔던 사람들 거의 다 죽고
몇몇이서 이야기 하는 것을 뻥튀기 하여서
일본과의 합의는 잘못 되었다고 떠들고 있다
죽기 전에 100 만원이라도 타서 쓰고 죽어야지
죽고 난 후에 5억을 타 본들 뭣하리요
그 돈 서로 많이 차지하려고 싸우게
자기 후손들 싸움만 붙이는 꼴이 된다
이승만이 독재 하였다고 떠드는 인간들이
5월 9일날 투표를 사기 치고 있는가
멍청이 들아!
이승만 때
한글이나 읽고
민주주의를 제대로 아는 사람 50%도 안되었다
이씨 왕조를 섬기다가 일본 식민지가 되었는데
그리고 학교도 없어서
한자는 약 20 % 쉬운 한글도 50%도
읽을 수 없었다
헌법은 미국과 다른 선진국 것 같다가 만들어 놓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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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석희의 사장 홍석현을 홀라당 벗겨 보아야 한다
손 석희는 월급 받아 먹는 주제에 제 멋대로 하지 못하니
대가리를 부수 어야 한다
장기에서 장군이 죽으면 졸개가 몇개 남아 있는것에 관계 없이
지는 것 같이
홍석현은 좀 배웠겠다
돈 많이 있겠다
물고 디리져야 할 놈이 홍석현이다
회사 생활 30년 넘게 해봐서 안다
월급 받아 먹는 주제에 제 멋대로 하다가는 밥줄 끊기는데
2017 년 4.18
유튜브에 인터뷰 영상 업로드
"대통령으로부터 두 번의 외압이 있었다"
CBS노컷뉴스 강민혜 기자
"대통령으로부터 두 번의 외압이 있었다"
홍석현 전 중앙일보·JTBC 회장이
박근혜 전 대통령으로부터 손석희 JTBC '뉴스룸' 앵커를 교체하라는 취지의 압박을 받았다는 사실을 폭로했다.
홍 전 회장의 폭로가 담긴 영상은
지난 16일 유튜브에 "JTBC 외압의 실체, 이제는 말할 수 있다,
홍석현"이라는 제하의 영상과 "박근혜 정부의 JTBC 탄압,
그리고 홍석현의 대처, 그 숨겨진 이야기를 하다"라는 설명글과 함께 올라왔다.
영상은 탄핵정국과 관련 "JTBC에 대한 원망과 의심,
책임을 묻는 어떤 논리도 저는 수긍하지 않습니다",
"진실 추구"라는 자막으로 시작한다.
또 "이제, 제가 떠나온 곳(JTBC)에서 일하시는 분들에게
해드릴 수 있는 말은 딱 한 가지입니다",
"지금까지 하시던 대로 일을 해 주시라"라는
문구가 차례로 등장한다.
이어 갈색 개량한복을 입은 홍 전 회장은
"태블릿 PC 보도(지난 2016년 10월 24일) 이후에는
정권이 좀 약해졌기 때문에 직접적인 외압은 없었다"면서도
"보수층으로부터의 비난,
태블릿PC가 조작됐다는 말도 나왔다"고 회상했다.
그는 "극우단체 집회 현장에서
내 이름이나 손 앵커의 이름까지 규탄 대상으로 규명됐던 걸
기억한다"며 "내가 (위로부터) 받은
구체적 외압은 5~6번이 된다"고 폭로했다.
홍 전 회장은 "그 중 대통령으로부터 (외압이) 두 번 있었다"며
"이 자리에서 처음 밝힌다. 그건(외압은) 시대착오적인 일"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사실은 뭐 나는 언론을 경영하는 입장에서,
또 개인적으로 정치적 사건에 연루돼 고초를 치른 입장에서,
사실 좀 위협을 느낀 것은 사실"이라고
당시 느낀 공포를 토로하기도 했다.
홍 전 회장은 그러나 "그런 외압을 받아 앵커를 교체한다는 건
내 자존심이 용서하지 않았고
21세기에 있어서는 안 된다는 일이라고 생각해 외압을 견뎠다"고 설명했다.
언론사 사주가 박근혜 전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받은 외압 사실을 거론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 2016년 10월 태블릿 PC 보도에 대해 일각에서는
청와대 압력설, 개헌카드설, 손 앵커 교체설 등의
지라시가 나돌기도 했다.
18일 미디어 전문지 미디어오늘은
중앙미디어네트워크 소속 고위관계자의 말을 빌려
"2016년 2월경
박근혜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독대했고
이날 대화의 절반은 손석희를 갈아치우라는 압력이었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미디어오늘은 이 관계자가
"이 부회장이 '(당시) 홍 회장에게 통하지 않을 얘기'라며
난색을 표하자
박 대통령이 이 부회장에게 (삼성) 광고를 (JTBC에) 하지 말라고 했다"고 말했다고도 부연했다.
친일파 홍진기 색끼 원죄 홍석현의 죄 4.19때
발포명령 내려 183명을 죽여 사형받은 홍진기 를
이병철이 돈으로 로비하여
박정희가 특사로 풀어준
친일파 홍진기 색끼 원죄를 물려 받은 jtbc회장 홍석현
삼성x 파일때
1000개 계좌로 뇌물을 보낸 홍석현 처벌도 안받아
삼성x파일 덮어 준 문재인
홍석현과 문재인이 대선 한달전 만나
문재인이 총리를 제안하자
그런 하찮은 것 맡을 군번이 아니니
미.특사와 ㅋㅋ 외교안보 특보를 새로만들어 상왕으로 모시라고
5월16일자 뉴스 데일리 에서
홍석현이 특사가 되면 안되는 3가지 이유로
김진 전 중앙일보 논설위원이 말하걸 기사로 폭로
사람들의 눈이 있으니 문정인도 함께 해서 눈치못채게 바람잡으라고 하라고 홍석현이 충분이 지시하고도 남을놈
박정희 정권 실세로 인혁당 사건을 지휘한
신직수 사위 홍석현
전두환 실세로 국무총리 지낸 노신영 아들과 결혼한
홍라영이 여동생으로 부역하며 놀아난 홍석현에 대해 깽깽이 들은
박열의 시 개새끼 처럼 하늘보고 짖고 달보고 짖는 것처럼 엉뚱한 곳에 짖어되고 정작 짖어야 되는 곳엔 찍소리도 못해 ㅋㅋ
한국 전체가 유독 진짜 강자인 삼성에게만 개가 되는
삼성 개새끼 공화국
5.18 진상규명도 진작에 했어야 하는데
문재인이 하는 척 하는건지
진짜 하는건지 김대중이는 왜 안했는지
전두환 사법처리도 김영삼이 했다
1997년 삼성x파일을 기획하여 8년지나 2005년 7월 공소시효가 지난 시점을 기다려 터트려 이건희 회장을 정신없게 만들다가
이건희 폐암이 도져 미국 텍사스 md엔더슨 암센터에 입원시키고
2005년 11월 19일 이전에
이윤형을 암살한 홍라희 홍석현 이재용 일당이
동시에 중앙일보에서 지원하다
황우석 줄기세포 사기사건을 터트려 덮은것처럼
이건희 회장이 가장총애하며 상속을 많이 해주려 하던
배다른 막내딸 이윤형을 홍라희 일당이 암살한걸
이건희가 뒤늣게 알자
이건희 암살 실행전 파장을 우려해 미리 세월호 학살을 기획하고
세월호 집회가 한참일때 26일후
이건희 암살을 조용히 덮은
홍라희 홍석현 이재용의 전형적인 교활한 수법
은 고영태 녹취록 발견으로 박근혜 탄핵이 기획됐으며
배후가 삼성이 의심되자
박근혜 탄핵과
삼성알바 문재인 당선을 위해 전략적 구속의 속임수를 택한 이재용
노무현 암살의 확실한 증거는 수없이 많은데
전부 덮은 삼성개새끼공화국
노무현이 검찰에서 삼성커넥션 터트리려 하자
여.야 모두 치명타라
일루미나티 한국지부 홍석현 이재용의 삼성공화국이 암살하고
명박이와 재인이 은폐하자
삼성알바 문재인 당선시키려
호빠 고영태 게이트 기획한 삼성가 이윤형과 이건희 회장 암살한 홍라희 홍석현 이재용
문재인과 홍석현이 대선 한달전에 만났는데
재인이가 총리를 제안하자
그런 하찮은 것을 맡을 군번이 아니니 미.특사와 외교안보 특보를 새로 만들어
상왕으로 모시라고 김진 전 중앙일보 논설위원이 뉴스데일리에 5월16일자 기사로 폭로했다
(홍석현이 미특사로 가서는 안되는 3가지이유 기사 참조 )
박열의 개색끼 라는 시가 생각난다
저런놈을 상왕으로 문재인이 모시는데 어느누구도 찍소리도 못하는
박열의 시 개새끼 처럼 하늘보고 짖고 달보고 짖는 것처럼 엉뚱한 곳에 짖어되고 정작 짖어야 되는 곳엔 찍소리도 못해 ㅋㅋ
한국 전체가 유독 삼성에게만 개가 되는 삼성 개새끼 공화국
2015년 7월 25일 박 전 대통령과 단독 면담을 한
이 부회장이 매우 당황한 표정으로
'내가 왜 대통령에게 야단을 맞아야 하냐'는 말을 했다"고
진술했다.
최 전 실장은 당시 상황에 대해
"이 부회장이 그렇게 당황하는 것은 처음 봤다.
심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이날 이 부회장은 2014년 9월15일에 이어 대통령과 2차 독대를 했다. 당시 박 전 대통령은 30분간의 면담 중 15분을 승마 지원에 할애했고, 삼성의 지원이 미비하다고 크게 질책했다.
독대에서 돌아온 이 부회장은 오후 4시 이후
서초사옥에서 최지성 전 실장과 대한승마협회장인
박상진 전 삼성전자 대외협력 사장과 긴급회의를 가졌다.
상황은 이날 2차 독대 이후 급변했다.
이런 이재용의 주장은 시중에 일명 이재용이 박근혜에게 레이저를 맞았다고
교활한 이재용이 삼성공화국 조직을 이용해 조직적으로
거짖소문을 퍼트려 거짓 여론몰이를 하기도 했다
박근혜는 재판에서 이재용의 주장은
한마디로 어이없는 거짓말 이라고 일축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검찰 조사 당시 자신에게 적용된 모든 혐의를 부인하며 강하게 반발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박 전 대통령은 최대 쟁점인 592억 원대 뇌물 혐의는
완전히 소설이라며 재임 3년 반 동안 고생을 고생인지 모르고
살았는데 사람을 어떻게 그렇게 더럽게 만드느냐고
수사 검사에게 따져 묻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대통령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승계 문제에 관심 가질 이유가 없고,
최순실 씨와 이해관계가 없는 삼성이 돈을 보내준 것도
이해되지 않았다고 주장했습니다.
또, 최 씨는 나서는 사람이 아니어서 비선이 아니라고 생각했다며 다만 자신의 말을 국민이 이해하기 쉽게 가다듬는데 감각이 있어 연설문 작성에 조금 도움을 받았다고 진술했습니다.
플레이그라운드나 더블루K는 최 씨와 관련 있는 회사인지 모르고 대기업에 추천했다면서
최 씨에게 속아 참담하다는 심정도 내비쳤습니다.
특히, 최 씨로부터 돈을 받을 이유도 없을뿐더러 개인적으로 사용해야 할 돈은 모두 자신이 냈다며
최 씨와의 경제공동체 의혹을 부정했습니다.
첫 정식재판에서도 모든 혐의를 부인한 박 전 대통령은
두 번째 정식 재판을 위해 또다시 법원에 나올 예정입니다.
재판부는 이번 재판에 박 전 대통령만 불러 공범 최 씨의 심리가
마무리된 직권남용과 강요 혐의에 대한
서류증거 조사를 진행합니다.
법정에 선 박 전 대통령이 삼성 뇌물이나 대기업 재단 출연 같은 주요 쟁점에서 자신의 무죄를 적극적으로 주장할지,
변호인에게 모든 변론을 맡기는 전략을 취할지도 주목됩니다.
검찰 조사 과정에서 박 전 대통령이 모든 혐의를 구체적으로 부인한 것으로 확인되면서 증거조사를 통한 혐의 입증 정도와 가능성에 따라 재판의 향방이 결정될 전망입니다.
YTN 박서경입니다.
최순실과 박근혜 관계를 알고 최순실에게 접근해서
삼성알바 고영태 부치고 배후에서 탄핵을 기획한 삼성
검찰과 헌재도 삼성알바들로 채우고 탄핵 쇼 시작
친박이 옹호하는 반기문이 차기대선 1위가 확실하고
반기문은 삼성에 특별이 돈을 받은것이 없기에
삼성알바 문재인을 당선시켜야
특히 나의 책의 출판을 막을수가 있다고 판단한
삼성공화국이 치밀하게 기획하여 탄핵을 기획한 것이다
더불어 민주당과
국민의 당은 삼성공화국의 주문대로 탄핵을 찬성했던것
여럿이서 사람하나 바보만드는건 일도 아니라고
청와대에 치밀하게 삼성알바들로 채우고
박근혜를 바보만들고 뒤집어 씌워 탄핵을 기획한 홍라희 개년
삼성알바 명박이 패거리들이 튀어나와
바른정당을 만들고 탄핵을 적극 지지했기에 가능했다
문재인이 4대강을 조사하는것은 그야말로 눈속임 하는척 하겠지
홍준표도 자식이 삼성다니고 삼성알바다
삼성알바 문재인 당선시키려
호빠 고영태 게이트 기획한
삼성공화국 홍라희 홍석현 이재용 일당이
삼성공화국 그림자 정부 상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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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석현의 박근혜 대통령 탄핵 관련성
2017.08.04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8월2일 법정 진술에서 매우 의미 있는 증언을 했습니다. 먼저 이재용의 증언을 실은 기사를 링크하니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재용과 독대한 자리에서
JTBC의 뉴스보도를 거론하면서
"홍석현 회장이 외삼촌이지 않느냐.
중앙일보 자회사인
JTBC의 뉴스프로그램이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
나라를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그럴 수 없다며
이적단체라는 단어까지 사용했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재용에게 중앙일보가 삼성 계열사였고,
홍석현이 외삼촌이니 가서 이야기 좀 하라고 하자,
이재용이 독립된 언론사이고
홍석현이 손윗분이라 힘들다는 뉘앙스를 보였더니
박근혜 대통령이 더 강한 불만을 보였다고 합니다.
박 대통령은 두 명의 정치인의 실명을 거론하며
홍석현이 정치에 야망이 있는 거 같다고 하고,
삼성이 줄을 대는 것 아니냐는 말도 했다고 하는군요.
이재용은 곧장 홍석현을 만나 이 같은 사실을 전달했고,
홍석현도 이후 박 대통령을 몇 차례 만났다고 합니다.
박 대통령과 독대 자리에서
이런 박 대통령의 질책과 호통이 있었는데
어떻게 내가 청탁을 하고 뇌물 공여를 하는 일을 협의할 수 있느냐는 것이
이재용의 주장입니다.
이재용과 박 대통령의 독대가 2015년 7월에 있었고,
독대에서 오갔던 일로
홍석현과 박 대통령이 만난 것도 2015년일 것입니다.
(홍석현과 박 대통령간에 오갔던 이야기가 밝혀지면 이번 사태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겠습니다.
이미 이재용이 홍석현과 박 대통령이 만났다고 밝혔으니
박 대통령이 차라리 법정에서
홍석현과 주고받았던 이야기를 상세히 진술했으면 좋겠습니다.
2명의 정치인이 누구인지도 밝혔으면 하구요)
그리고 조선일보가 우병우 퇴진을 유도하기 위해
거짓 기사를 1면에 한 달간 대대적으로 보도한 것이
2016년 7월,
언론들이 최순실 게이트를 보도하기 시작한 것이 2016년 8월,
조선일보 송희영 주필이 대우조선 비리로 주필직을 사임하고
검찰 수사를 받으면서
청와대와 조선일보의 1차전이
조선일보 패배로 끝난 것이 2016년 9월,
드디어 2016년 10월 24일 JTBC는 최순실PC(태블릿)을 터뜨리며 박근혜 대통령을 정면 공격했고,
이것이 계기가 되어 박 대통령은 탄핵되고 구속되어
현재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보수, 진보를 막론하고
전 언론들이 과장, 왜곡, 조작 기사를 쏟아내며
박 대통령 잡기에 혈안이 되었습니다.
사실 진보 언론보다 조선, 중앙, 동아,
그리고 이들의 자회사인 종편들이 더 발광을 했지요.
왜 박 대통령이 정규재TV와의 대담에서
이번 사태(탄핵)가 기획되었다고 말했는지
그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박 대통령은
홍석현과 있었던 일이나 조선일보의 청탁을 거절한 일,
조선이 우병우 민정수석을 공격한 일 등
공개적으로 밝혀진 일 이외에도 부패 언론들이 어떤 짓을 했는지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2명의 정치인을 이재용 앞에서 거명한 것으로 보아
이들 부패한 언론권력과 정치권이 결탁하고 있음도 인지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박 대통령이 말한 2명의 정치인이 누구일까요?)
박 대통령이 이재용에게 말한 대로
홍석현은 정치에 뜻을 품고 19대 대선 출마를 준비하기도 했지요. 홍석현은 출마를 포기한 후에는
문재인 정부의 대미특사로 트럼프를 만나기도 한 것으로 보아
여전히 정치를 접지 않은 것 같습니다.
왜 jtbc가 하필 최순실 PC를 폭로했을까 그 이유가 궁금했는데,
jtbc가 그럴 이유가 있었음이 이번 이재용의 진술로 드러났네요.
고영태 일당의 정보(USB, 태블릿 PC)가 TV조선 이한동 기자에서 한겨례 김의겸 기자를 거쳐 jtbc에 이르게 되고
최종 jtbc가 터뜨리게 된 것도
이제 어느 정도 설명이 되는 것 같습니다.
한겨례 김의겸은 팟빵에서 jtbc는 최순실 자료를 주운 것이 아니라 전달받은 것이라고 분명히 말했습니다.
jtbc는 블루K 사무실에 가서
우연히 태블릿PC를 찾았던 것이 아니라
고영태 일당과 짜고 전달받았을 가능성이 매우 농후했는데,
이번에 이재용의 진술로 jtbc가 폭로할 이유까지 밝혀졌으니
jtbc와 고영태 일당간에 어떤 거래가 오갔는지도
수사해야 한다고 봅니다.
저는 처음부터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은
조선일보 등 부패한 언론권력들이
자신의 청탁을 거부한 청와대를 와해시키려 시작했고,
이에 자칭 진보세력들이 합세한 것이라고 주장해 왔습니다.
이제 어느 정도 퍼즐이 맞추어지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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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진기
1917년 경기도 고양(高陽)에서 출생했다.
본관은 남양(南陽), 호는 유민(維民)이다.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지낸 김신석의 사위이다.
1930년 3월 왕십리공립보통학교,
1934년 3월 경성제1고등보통학교를 거쳐
1937년 3월 경성제국대학 예과,
1940년 3월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법과를 졸업했다.
1940년 4월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조수로 근무,
10월 일본 고등문관시험 사법과에 합격해
1942년 3월 조선총독부 사법관시보로
경성지방법원 및 동 검사국에서 1년 6개월 간 근무했다.
1943년 12월 전주지방법원 예비판사,
1944년 9월 전주지방법원 판사에 임명되어 해방 때까지 재직했다.
광복 후 1945년 9월 미군정청 법제부 법제관,
10월 법제부 사법요원양성소 교수를 거쳐,
1946년 10월 사법부 법률조사국 법무관이 되었다.
1948년 11월 법무부 조사국장으로
대한민국 법전편찬위원회의 위원으로 위촉되었다.
1949년 6월 법무부 조사국장 겸 대검찰청 검사,
1950년 4월 법무부 법무국장 겸 대검찰청 검사에 임명되었다.
한일회담이 전개되었던 1951년부터 1953년까지 한국 측 대표
재산청구분과 위원장으로 활동했다.
1954년 2월 법무부 차관,
1955년 10월 제2대 해무청장으로 취임했으며,
1958년 2월 법무부 장관이 되었다.
1960년 3월 내무부 장관에 임명되어 재직 중 4·19 혁명을 맞았으며, 3·15 부정선거 및 4·19 발포명령의 책임자로 체포되었다.
1961년 12월 혁명재판소 상소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으나,
1963년 8월 석방되었다.
1964년 9월 라디오 서울방송 사장,
1966년 12월 중앙일보사 회장,
1969년 5월 동양방송 사장,
1975년 2월 중앙일보와 동양방송 대표이사에 취임했다.
1976년 제일합섬, 중앙개발, 삼성코닝, 삼성중공업, 삼성전자,
삼성물산 등의 이사를 지냈으며,
1980년 9월 중앙일보사와 동양방송 회장으로 취임해 활동 중이던 1986년 7월 13일 사망했다.
관계 | 이름 | 출생일 | 사망일 | 활동사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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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자 | 김윤남 | 25일 | 2013년 6월 5일 | 원불교 원정사 | |
장녀 | 홍라희 | 1945년 7월 15일 | 리움 관장 | ||
사위 | 이건희 | 1942년 1월 9일 | 삼성전자 회장 | ||
외손자 | 이재용 | 1968년 6월 23일 | 삼성전자 부회장 | ||
외손녀 | 이부진 | 1970년 10월 6일 | 호텔신라 사장, 삼성애버랜드 사장, 삼성물산 고문 | ||
외손녀 | 이서현 | 1973년 9월 20일 | 제일모직, 제일기획 부사장, 미국패션디자이너협회 위원 | ||
장남 | 홍석현 | 1949년 10월 20일 | 중앙일보 회장 | ||
손자 | 홍정도 | 1977년 11월 11일 | JTBC 사장 | ||
차남 | 홍석조 | 1953년 1월 8일 | 보광훼미리마트 | 장, 전 광주고등검찰청 검사장 | |
손자 | 홍정국 | 1982년 | |||
3남 | 홍석준 | 1954년 9월 17일 | 삼성SDI 부사장 | ||
4남 | 홍석규 | 1956년 1월 15일 | 보광 대표이사 | ||
차녀 | 홍라영 | 1960년 1월 10일 | 삼성문화재단 상무 | ||
사위 | 노철수 | 1956년 7월 27일 | 애미커스 회장, 아버지 前 국무총리 노신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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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2일 참깨방송에서 나와서 증언 하는
ROTC 출신
5.18 당시 11공수 62 대대 4 지역대 당시 중위
신동국의 증언을 들어 보아야 5.18 당시 사테를 잘 알 수 있다
시간은 약 1 시간 30분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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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7일날
보라빛 호수에서 전하는
'5.18은 광주 도청 지하 지휘소에서
북한 특수군이 지휘 하였다는 것을 들어 보아라
40 분 길이 가운데 15-20 분 사이에 이야기 하는
북한 특수군과 11 공수 사이에 발생한 광주 교도소에서
총격전 이야기를 들어 보아야 한다
특히 지만원과 참깨방송 김종환은 들어보아야 도움이 될 것이다
보라빛 호수 저자와는 다른 탈북자 사람은
이리역 폭파 사건도 그렇고
전두환 때문에 북한 특수군이 많이 죽었다고
김일성이 지시해서
전두환을 죽이려 하였던
버어마 까지 가서 아웅산 테러 폭파 와도 관련이 있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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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년 11월 7일
지만원의 5.18 진실 규명을 들어 보세요
시간 약 40 분이 지만원 연설문이다
제주 4.3 사태를 하도록 한 것은 박근혜의 잘못이며
김영삼 때
안기부장 권영해는 잘못이며
그 당시 권영해 밑에서 일한 홍준표의 잘못 이며
청계천 옆 전태일 거리
인명진은 교회에 침투한 빨갱이 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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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저축 은행 사태
부산저축은행 비리의 주축은 광주출신? |
어디에서 범죄자는 있다, 솔직하게 밝혀야 |
하지만 부산저축은행의 부실과 부패 중심에 지난 김대중 정권에 친화적인 호남세력이 있는 것으로 의심된다. 부산저축은행그룹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진행되면서 감독기관인 금융감독원 담당자들과 부실 저축은행 경영진 간에 돈을 매개로 한 은밀한 거래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고 문화일보가 전했다. 금융감독원이 금융비리의 핵심세력이 되었다는 구체적 사례가 이번 부산저축은행 비리사건이다. 권력, 금력, 지연, 학연이 뒤엉킨 부산저축은행 비리의 실체가 언론의 은폐와 물타기에도 불구하고 서서히 밝혀지고 있다. 부산저축은행 비리사건을 보면서, 지연과 학연과 권력을 매개로 서민들의 고혈을 착취하는 금융마피아 집단을 연상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번에는 호남출신 광주제일고 동문들이 부산저축은행 비리사건의 주축인 것 같다. 비리가 비리를 물고 늘어지면서, 부산저축은행 비리사건은 서민의 이름으로 서민을 착취하는 정치세력의 한 상징적 부패사건으로 보인다. KB자산운용 감사 이모씨가 금감원에 재직하던 2009년 광주지역 보해저축은행 오문철 대표이사로부터 3억원을 받은 사실을 밝혀낸 광주지검은 앞서 4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금감원 부국장 정모씨를 구속했고, 또 다른 전직 임원의 비리혐의를 포착하여 수사에 나섰다고 한다. 국제금융세력이 IMF사태를 기회로 한국의 금융기관들을 장악해가는 매국현상이 김대중 정권에서 벌어지면서, '한국의 금융계가 김대중 추종세력에 의해 장악되었다는 추정'이 광주일고 출신들이 장악한 부산저축은행에서 증명되는 듯하다. 금감원이 부실은행을 만들고 키우는 데에 한 주범이 되어있는 한국의 금융계에는, 생존을 위한 어떤 비리가 아니라, 권력을 이용한 비리가 감독기관과 피감독기관 사이에서 벌어졌다. 호남출신의 부산저축은행 경영진과 감사와 대주주가 짜고 일으킨 금융비리사건으로 의심받고 있다. 부산저축은행의 경영진(박연호 회장, 김양 부회장, 오지열 행장, 문평기 감사, 그리고 부산저축은행에 거래한 KB 자산운용사 장인환 대표 등)에 광주일고 혹은 호남 출신들이 많다. '미래애셋'을 광주일고 출신들이 만들어 성공했다는 보도를 보면서, 김대중 정권 당시에 호남출신들이 금융계를 많이 장악했는 게 아닌가 의심했는데, 부산저축은행까지 호남출신들이 장악해서 금융사기극을 벌였다. MBC가 "학연과 지연이 얽혀있는 경영진들이 부실을 초래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부산저축은행 대주주와 감사가 특정지역 명문고 출신이거나 같은 지역 출신으로 밝혀졌다"고 보도했듯이, 이번 부산저축은행 비리사건은 호남출신(광주제일고 동문)들의 비리사건으로 규정되어 비판받을 수도 있다.
부동산 시행사업을 직접 시행했을 무렵부터 수회 이 은행에 상주하며 정기 및 부분검사를 실시했지만 불법대출을 밝혀내지 못했던 금감원이 부산저축은행 부실 사태의 숨은 주역으로 비판받고 있다. 오죽했으면, 이명박 대통령이 4일 오전 금감원을 전격 방문한 자리에서 "(부산저축은행 문제 발생) 훨씬 이전부터 (금융감독원에) 나쁜 관행과 조직적 비리가 있었다. 문제를 못 찾은 것인지 안 찾은 것인지 알 수 없다. 부산저축은행 등 대주주와 경영진이 용서받기 힘든 비리를 저지른 걸 보면서 저 자신도, 국민도 분노에 앞서 슬픔을 느끼고 있다. 불행히도 여러분이 대주주의 비리에 합세했다"고 비난했겠는가? 부산저축은행이라는 지역명을 가진 금융그룹을 광주출신들이 장악해서 부산의 서민들을 상대로 금융사기극을 벌일 정도는 호남차별은 오히려 호남군림이 아닌가?
호남출신들이 전문적으로 벌인 금융사기극으로 판단된다. 부산저축은행그룹이 만든 120개 특수목적법인(SPC) 대표이사가 모두 명의상 차주에 불과했고 수개의 SPC가 동일한 사업장 투자를 위해 수천억원을 대출받았기 때문에,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대출 검사만 제대로 했더라도 불법대출의 전모가 충분히 드러날 수 있었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라고 한다. 박연호 부산저축은행그룹 회장 등 임원 5명은 이미 2009년에도 임직원 친척 명의로 SPC를 세운 뒤 사업성 검토 없이 200억원을 대출해준 혐의로 기소된 바 있으니, 부산저축은행그룹 비리사건은 금감원과 호남출신 경영자들과 대주주들이 합동해서 벌인 부산지역의 서민착취극으로 규정될 수 있다. 포스텍과 삼성의 장학금을 빨아먹은 이번 비리사건은 호남출신들의 악행으로 낙인될 수 있다.
이 지구상에서 범죄가 없고 사기가 없는 곳이 어디에 있겠는가? 하지만 부산저축은행의 금융비리사건의 주축이 부산사람들이 아니라, 광주일고 출신들이라면, 그것은 분명히 언론에서 짚어줘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부산저축은행의 비리사건을 부산사람들의 부패사건으로 기억하는 잘못된 정보의 생산과 확산을 언론이 막아줘야 하는게 아닌가? MBC가 광주일고와 호남출신들이 이번 부산저축은행 비리사건의 주축이라는 사실을 살짝 은폐해서 "학연과 지연이 얽혀있는 경영진들이 부실을 초래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부산저축은행 대주주와 감사가 특정지역 명문고 출신이거나 같은 지역 출신으로 밝혀졌다"고 보도한 것은 호남세력이 언론을 장악해서 사실을 왜곡한 사례가 아닌가 의심된다. 이념적, 세력적, 지역적 편향을 한국사회에 확산시키고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영남의 분열적 모습을 부각시키고 호남의 유해한 악덕은 은폐하고, 우익의 좋은 모습을 감추고 좌익의 나쁜 모습을 감추고, 남한의 나쁜 모습을 부각시키고 북괴의 악행은 두둔하고, 한나라당의 나쁜 모습을 부각시키고, 민주당의 나쁜 행태를 비호하는 편파적 보도를 종종 본다. 특정 지역과 세력과 이념에 굴종하며, 진실을 왜곡하고 사실을 은폐하고 분열을 조성하는 한국의 편파적인 언론들은 부산저축은행의 범죄조직을 구체적으로 지목하는 보도를 함으로써 역지역차별주의를 극복해야 한다. 부 산저축은행 비리사건의 핵심 범죄자들에 대한 은폐는 지양되어야 한다. 지역주의적 차별과 두둔은 모두 악이다. 호남의 지역주의는 한국사회에서 가장 악질적인 분파주의이다. 영남지역주의는 많이 묽어져서 민주당이 차기 총선에서 PK에서 10석을 건질 것이라는 보도까지 나오는데, 민주당의 호남주의는 더 깊어진 것 같다. 지역주의와 좌익이념에 기운 김대중-노무현 패당의 분파주의(particularism)는 분열과 갈등과 파멸에 치명적 변수다. 성숙한 민주주의는 지연, 학연, 혈연 등의 분파주의적 요소를 초월해야 가능하는데, 민주당의 호남주의와 민노당의 종북근성은 한국 민주화에 마지막 걸림돌이다. '부산저축은행 비리사건에 호남출신 광주제일고 동문들이 핵심이었다'고 보도하는 것은, 범죄가 특정지역을 넘어서는 보편적 현상이기에, 자기의로움(self-righteousness)에 빠진 지역주의 극복에 한 호기가 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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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년 11월 11일 12일 13일
김종환의 참깨 방송에서
20 사단 62연대 중대장
최종원 대위가 부탁 하는 말
5.18 때 광주에 참가 하였던
31사, 3공수, 7공수, 교도대 등
모두 나와서 당시의 상황을 밝혀 달라고
부탁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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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때 광주에 간
2017년 9월 26일 에 방송 하였던
11 공수 62 대대 5 지역대 본부에 근무 하였던
김민수 중사의 증언을 들어 보아라
시간 60 분 정도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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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15일 방송을 들어 보아라
5.18 때 한쪽 팔을 잃은
조참모 대위에게 입을 다물게 한 사람들 다 반성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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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은 폭동인가? 민주화인가?
2017년 11월 15일 뉴스타운에서 말하는
안중권의 전라도가 전라도를 말한다
1 시간 20 분 정도 걸린다
한번 들어 보세요
1980년 5 월 18 일부터 통제 불능의
사태에 이어렀다고 말한다
온갖 거짓 선동들이 퍼지고
변 압기가 터져서 불이 난 것인데
5 월 19일 시민군 속에 포함된 폭도들이 부러짖은
구호는
" 계엄해제"
"김대중 석방하라"
5월 21일은 화려한 휴가의 배경이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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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21일
5.18 당시
20사단 62 연대 통신대장 (당시 29 살)
김기환 대위의 이야기를 들어 보아라
35 분 쯤 시간에 당시 같이 갔던 광주에 살았던
광주 사람이 집에 전화 하니까
" 니가 경상도 군인도 아니면서 왜 이곳에 왔느냐고" 하였다
거짓 선동 방송이 광주 시내에 판쳐고 다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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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년 11월 24일
뉴스타운에서 이야기 하는
5.18 당시 ROTC 16기
당시 11 공수 6 지대장
신동국 중위의 이야기를 들어 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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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9일 참깨 방송에서 이야기 하는
5.18 당시
3 공수 16 대로 광주 사태에 참가 하였던
김응근 대위의
광주 교도소 방어체험담
증언을 들어 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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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1일
"신의 한 수"에서
방송하는 이야기를 들어 보세요
통일교 자금이
북한 평화 자동차라는 회사로 들어 가서
그 돈으로 소련 얫날 잠수함을 사 들였다는 것이다
세월호 사건을 끌고 갔는
유병언과 구원파 관계도 알아들 보아야 한다
구원파도 크리스토교를
가짜로 이용하는 가짜 이다
침례는 세례 받을 때
보통 교회에서 사용하는
약식으로 목사가 손으로 물을 뿌려 주는 것 보다
물통에 들어 갔다
나오는 방식이
더 맞다는 이론이다.
대한 민국에는
가짜 예수가 50 명이 있고
가짜 하나님이 9 명 설치고 다닌다고 하였다
방송 울리는 잡음 잡는데
방송에서
수건 50 장 걸어 놓는데
어떤 사람들은 미신적이라 하지만
흡음 시설 하려면 적게 잡아도
400- 1000 만원 들어서 못 한다고 하였다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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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씨(61)의 국정농단 사건
1심 재판이 기소 후 1년여 만에 마무리됐다.
검찰은 14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판사 김세윤)에서 열린 결심공판에서
최씨에 징역 25년형과 벌금 1185억원,
77억9000여만원 추징 등을 구형했다.
지난해 7월 미르재단 의혹 제기로 시작된 이 사건은
특별검사 수사와
헌정사상 최초 대통령 탄핵까지 이어졌다.
지난해부터 온 국민이 집중한 이 사건에 대해 법원이 어떤 판단을 내놓을지 주목된다.
국정농단 사건은 지난해 7월 미르재단이
대기업 자금 486억원을 끌어모으는 데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58)이 개입했다는 언론보도로 세상에 알려졌다.
이를 시작으로 미르재단과 더불어 K스포츠재단에 대한 언론 취재가 본격화됐다.
최씨는 9월 독일로 출국한 뒤 도피생활을 시작했다.
최씨와 언론의 숨바꼭질은 10월24일
JTBC의 태블릿PC 보도로 끝났다.
최씨의 것으로 추정되는 이 기기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65)의 드레스덴 연설문 등
각종 기밀자료가 발견됐다.
다음날 박 전 대통령은 1차 대국민담화를 통해 최씨의 존재를 인정했다.
현지시간 같은달 26일 최씨는 한 언론 인터뷰를 통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여기서 최씨는 박 전 대통령의 연설문을 고친 점은 시인하면서도 "국가기밀인 줄 몰랐다"고 말했다.
이외에 미르·K스포츠재단 운영, 국정개입 의혹은 모두 부인했다.
검찰은 이영렬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을 필두로
특별수사본부(특수본)를 구성하고 대규모 수사에 착수했다.
최씨는 10월30일 비밀리에 귀국한 뒤
다음달 검찰에 처음으로 소환됐다.
"죽을 죄를 지었다"는 말을 남기고 검찰 조사실로 향한 최씨는
그날 밤 긴급체포됐다.
법원은 11월3일 최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이후 안 전 수석과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48)까지
구속되면서 검찰 수사는 급물살을 탔다.
검찰은 약 3주쯤 뒤인 11월20일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 강요와 현대자동차, 포스코, KT 등 사기업 이권에 개입한 혐의, 청와대 문건 유출 혐의 등을 적용해 세 사람을 구속기소했다.
그 사이 국회에서는
'최순실 특검법'(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 사건 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이 통과됐고 박영수 변호사(65·사법연수원 10기)가 특별검사에 임명됐다.
3일 뒤 당시 야3당이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발의하고 최종 가결되면서 특검 수사와 탄핵정국이 동시에 진행됐다.
최씨는 "음해세력의 기획폭로 때문에 이 상황까지 왔다"며
특검 수사와 박 전 대통령 탄핵심판에 비협조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러다 지난 1월25일 특검 사무실에 강제소환되자 카메라를 향해 "민주주의 특검이 아니다"라고 고함을 치기도 했다.
특검은 지난 2월28일 박 전 대통령과 짜고 삼성그룹 자금 433억원을 뇌물로 챙긴 혐의를 추가해 최씨를 기소했다.
뇌물공여자로 지목된 이재용 부회장(49)도 함께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은 특검으로부터 롯데그룹, SK그룹 뇌물 사건을 넘겨받아 총 뇌물 액수를 592억원으로 특정하고 박 전 대통령과 최씨를 기소했다. 이 과정에서 최씨의 혐의는 총 18개로 늘어났다.
최씨 사건은 전부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판사 김세윤)로 배당됐다.
재판부는 미르·K스포츠재단 관계자들과
차은택, 고영태씨 등
최씨의 핵심 측근들을 법정에 소환했다.
이들은 최씨가 박 전 대통령과 어떤 관계인지,
청와대에 어떤 영향력을 행사했는지에 대해 생생히 증언했다.
이에 최씨 쪽은
"국정농단 사건은 기획폭로"라면서 모든 혐의를 부인했다.
국정농단 사건의 '스모킹건'이 된
태블릿PC가 조작됐다고 주장하는 한편
특검에서 인권탄압, 진술강요가 있었다고 했다.
최씨 재판은 박 전 대통령이 기소되면서 변곡점을 맞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됐다는 소식을 듣고 대성통곡했다는
최씨는 "박 전 대통령과 함께 재판받는 것은 고통"이라며 따로 재판을 진행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고
두 사람의 뇌물 사건을 병합했다.
결국 5월23일부터 두 사람은 피고인석에 나란히 앉아 재판을 받게 됐다. 최씨가 법정에서 "이 재판이 박 전 대통령의 허물을 벗겨줬으면 좋겠다"고 울먹였지만 박 전 대통령은 최씨를 외면했다.
이후 박 전 대통령이 '재판 보이콧'에 나서기 전까지 장기간의 법정공방이 이어졌다.
그동안 최씨는 이화여대 학사비리 사건 재판에서 1심과 2심에서 모두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이영선 전 청와대 행정관과 박채윤 와이제이콥스메디칼 대표 등 다른 국정농단 사건 피고인들도 잇따라 실형을 선고받았다. 특히 뇌물공여자로 기소된 이 부회장이 8월25일 징역 5년을 선고받으면서 최씨와 박 전 대통령 측에 패색이 짙다는 전망이 나왔다.
박 전 대통령은 10월16일 법원이 두 번째 구속영장을 발부해 구속 기간을 연장시키자 기존 사선 변호인단을 총 사임시키고
'재판 보이콧'에 돌입했다.
이에 따라 박 전 대통령과 최씨의 선고를 같은 날 진행한다는 재판부의 계획에 차질이 빚어졌다.
최씨 측은 구속기간 만료가 얼마 남지 않았다며
석방해줄 것을 요청했다. 장기간 재판이 이어져
최씨의 건강이 심하게 악화됐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최씨 쪽은 석방해주지 않으면
국제연합(UN)에 인권문제를 제기하겠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도주 우려가 있다"며
구속 상태로 최씨 재판을 계속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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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농단의 '시작과 끝'이자 박근혜 정부 '비선실세'였던
최순실씨는 2017년 12월 14일
검찰의 징역 25년과
총 1천263억원의 벌금·추징금 구형에 대해
"사회주의에서 재산 몰수하는 것보다 더하다"고 비판했다.
최씨는 이날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김세윤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결심 공판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눈물을 흘리면서 격분해
이같이 항의했다.
검찰은 최씨에게 징역 25년과 벌금 1천185억원,
추징금 77억9천735만원 등 1천263억원을 내라고 요구했다.
형법은 뇌물 등 범죄수익은 몰수하고,
몰수가 불가능하면 그 가액을 추징하도록 한다.
통상 피고인의 최후진술은 변호인들의 최종 변론이 마무리된 뒤에 이뤄진다.
그러나 재판장은 최씨가 검찰의 구형량에 충격을 받아
심리 상태가 불안정하자 먼저 최후진술 기회를 줬다.
최후진술에 들어간 최씨는 연신 흐느끼며
"세상에 이런 모함과 검찰 구형을 보니
제가 사회주의보다 더한 국가에서 살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고
억울해했다.
이어 "한 번도 어떤 사익을 추구하지 않았는데
1천억원대 벌금을 물리는 건
사회주의에서 재산을 몰수하는 것보다 더하다"고 울먹였다.
그는 "정경유착을 뒤집어씌우는 특검과
검찰의 악행은 살인적인 발상"이라는
극단적인 표현도 서슴지 않았다.
최씨는 재판 마지막까지도
한때 측근이었다가 돌아선 고영태씨 등에 대한 원망을 쏟아냈다.
그는
"고영태와 그 주변 인물들이 투명인간처럼 살아온 저에게 오명과 누명을 뒤집어 씌웠다"며 "그들이 이번 사태를 야기했고 제 약점을 이용해 국정농단을 기획한 것"이라고 성토했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해서 입을 열 떼는 오열하기도 했다.
그는 "저는 대통령이 젊은 시절 고통과 아픔을 딛고 일어난 강한 모습에 존경과 신뢰를 했기 때문에 곁에서 40년 동안 지켜봐 온 것뿐"이라고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면서 "돌이켜보면 대통령이 됐을 때 떠나지 못한 게 후회스럽고 이런 사태를 만든 것에 대해 고통스러워하고 있다"며 "대통령과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죄드리고 싶다"고 후회했다.
최씨는 재판부에 대해선 "판사님들이 많은 배려를 해줘서 사실 여기까지 왔다"며 "앞으로
이런 국정농단 기획이나 음모가
이 나라에서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재판부가 잘 이끌어달라"고 호소했다.
재판부는 최씨가 진술을 마치자 먼저 법정에서 퇴정하도록 했다.
교도관들의 부축을 받아 법정을 나서는 최씨의 등 뒤로 방청객들이 "힘내세요"라고 응원하자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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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4일
우종창이 이야기 하는
이승복 사건에 대하여 알아보자
무장 공비들은
배가 고파서 외딴집 이승복 집을 찾아 갔다고 한다
시간 약 40분 걸린다
당시 조선 일보 기자였던
우종창의 강인원 기자
조선일보 공채 9 기로 입사하였던
이야기를 들어 보세요
이승복은 강원도
평창군 계방면 노동리
속사 국민학교 대방 분교에
2 한년 이었다고 한다
계방산은
내가 산악회 따라서 계방산에 처음 갔기 때문에 잊지 목한다
계방산 아래 외 딴 집을 복원해 두었다
1967년 김신조 일당에 청와대를 폭파 할려고
넘어 왔고
그해 4 월에 예비군 창설 하였다
내가 중학교 2 학년 때 이었다
1968년 울진 주문진에
무장 공비가 넘어 왔다
김일성의 끊임 업는 침략 행위이다
이승복은
1968년 12월 9일
가족 4 명이 무장 공비에 의해 죽었다
"공산당이 싫어요"
그 이야기는 죽었지만
이승복의 형 이학관은 칼에 찔렸지만 죽지 않고
살아서 증언 하였다고 한다
이승복은 자기 엄마와
자기 남동생과 여동생과 같이 4 명이 죽었다고 한다
무장 공비가 와서 죽였다는 이야기는
당시 월남전에도 참여 하였던
유경상이
그날 밤 20 킬로 떨어진 파출소에 가서 신고 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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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20일 서울고법 형사13부(재판장 정형식) 심리로 열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항소심 재판에
증인으로 나온 최순실씨는 특검팀 질문에 날 선 반응을 보였다.
재판장이 수차례 경고했지만
최씨는 "뭘 묻는 거냐" "똑바로 질문하라"며
특검팀과 신경전을 벌였다.
앞서 검찰과 특검팀은 지난 14일
최씨에게 징역 25년을 구형(求刑)했다.
당시 최씨는 대기실에서 비명을 질렀다.
최씨는 이날 딸 정유라씨 증언과 관련된 질문이 나올 때마다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정씨는 지난 7월 이 부회장 1심 재판에 나와 "엄마가
(삼성이 사준 말을) 네 것처럼 타면 된다고 했다"는 등
최씨에게 불리한 증언을 쏟아냈다.
최씨는 "특검이 딸을 새벽에 몰래 데려가 법정에 세웠다"며
이 부회장의 1심 재판에선 증언을 거부했었다.
특검팀이 이날 "정씨에게
'네 것처럼 타면 된다'고 말한 게 사실이냐"고 묻자
최씨는 "그럼 '네 말처럼 타라'고 하지
'남의 말처럼 타라'고 하느냐"며 언성을 높였다. 특검팀이 "차분하게 질문을 잘 듣고 대답하라"고 하자
최씨는 "그러니까 왜 새벽에 딸을 데리고 가셨느냐"며 화를 냈다.
"딸과 싸움을 붙이는 거냐.
저는 걔가 왜 그렇게 얘기했는지 모르겠다"고도 했다.
최씨는 또 특검팀이 마필 구입과 관련한 질문을 반복하자
"독일을 한번 갔다 오시든가
말을 연구한 검사님이
나오시든가 해야지 답답하다"고 했다.
특검팀이 "답변이 이해가 안 간다"고 하자
최씨는 "아니 저도 이해가 안 된다"고 맞받았다.
방청석에선 웃음이 터져 나왔다.
최씨는 박근혜 전 대통령과 차명폰으로 통화한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대화 내용에 대해선 함구했다.
특검팀이 "두 달 남짓한 기간에 259회나 통화한 이유가 뭐냐"고
묻자
"검찰에서 40년 지기(知己)라고 이슈화하는데
그 정도 통화는 할 수 있는 것 아니냐.
통화 내용을 묻는 건 실례"라고 했다.
한편 박근혜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이 특수활동비를 청와대에 상납했다는
의혹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은
박 전 대통령에게 22일 검찰에 출석해 조사받으라고 통보했다.
박 전 대통령은 2013년 5월부터 작년 9월까지 남재준·이병기·이병호 전 국정원장으로부터 매월 5000만~1억원씩 총 40억원의 특수활동비를 받은 혐의(뇌물·국고손실)를 받고 있다.
앞서 검찰은 특수활동비를 주고받는 데 관여한 혐의로
남재준·이병기 전 국정원장과 이재만·안봉근 전 청와대 비서관을 구속 기소했다.
박 전 대통령이 검찰에 출석할 가능성은 낮다.
박 전 대통령은
지난 10월 법원이 자신의 1심 구속 기한을 연장하자 재판에 나오지 않고 있다.
검찰은 박 전 대통령이 불출석하면 구치소로 찾아가 조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검찰은 이 사건과 관련해 22일
이원종 전 청와대 비서실장도 조사할 계획이다.
작년 5~10월까지 비서실장을 지낸 이 전 실장도 국정원 특수활동비를 받는 데 관여한 혐의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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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특활비) 청와대 상납의 ‘최종목적지’ 박근혜 전 대통령(65·구속기소)이 22일로 예정된 검찰 소환조사에 불응했다.
검찰은 21일 “박근혜 전 대통령이 내일 건강상 등 이유로 검찰에 출석하지 않겠다고 알려왔다”고 밝혔다.
앞서 검찰은 지난 20일 박 전 대통령에게 특수활동비(특활비) 상납 의혹과 관련해 22일 오전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할 것을 통보했다.
검찰의 소환 통보는 20일 서울구치소를 통해 삼성 등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수감 중인 박 전 대통령에게 서울구치소를 통해 전달됐다. 사선 변호인 총사임 후 외부 접촉을 끊고 있는 박 전 대통령이 검찰 소환에 응하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높았다.
검찰은 박근혜정부의 ‘화이트리스트’ 수사 과정에서 국정원이 특수활동비 40억원을 청와대 관계자들에게 상납한 정황을 포착하고 지난 10월31일 안봉근 전 청와대 국정홍보비서관(51)과 이재만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51)을 뇌물수수 혐의로 체포했다
이후 수사는 급물살을 탔다. 검찰은 박 전 대통령의 최측근인 안 전 비서관과 이 전 비서관을 특정범죄 가중처벌법상 뇌물과 국고손실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이들은 남재준 전 국정원장(73)과 이병기 전 원장(70), 이병호 전 원장(77)으로부터 4년 동안 약 40억원의 국정원 특활비를 상납받은 혐의 등을 받고 있다. 안 전 비서관은 2013년 5월부터 2015년 초까지 개인적으로 국정원에서 1350만원을 여러차례 나눠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뇌물 공여자’인 남 전 원장과 이병기 전 국정원장을 특정범죄 가중처벌법상 국고 등 손실과 뇌물공여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이들은 국정원장 임명에 대한 보답과 향후 임기와 인사,
예산편성 등 국정원장의 직무수행과 국정원의 현안과 관련해
대통령으로부터 각종 편의를 제공받을 것을 기대하면서
국정원장 특별사업비 중 일부를 빼내어
대통령에게 뇌물로 제공하기로 계획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 전 원장은 2014년 7월부터 2015년 2월까지
국정원장에 배정된 국정원 예산 40억원 중
매월 1억원을 현금으로 준비해 8회에 걸쳐 총 8억원을
이 전 비서관을 통해
박 전 대통령에게 전달한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구속영장이 기각된
이병호 전 국정원장에 대해서도 수사하고 있다.
이 전 원장은 매달 5000만원에서 1억원, 최대 2억원 등 총 25억원을 청와대에 상납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병호 전 원장은 지난해 4·13 총선을 앞두고 실시한
여론조사비용 5억원을 대납한 혐의
(국정원법상 정치관여 금지 위반) 등도 받고 있다.
검찰은 박 전 대통령이 출석하면 일명 보수 단체 지원 등
‘화이트리스트’ 의혹과 세월호 보고시간 조작 등에
대해서도 조사를 계획했지만
결국 소환조사가 무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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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18 때
광주에 내려 왔던
북한
특수군 534 부대의 158 명의
전사자와 전투 기록 물을
2017년 12월 20일에 올린
참깨 방송에서 들어 보세요
시간 18분 걸린다
폭풍 군단 우레 3 여단
1.1980년 4월 28일밤 함남 신포항 출발
29일 남포 도착
2.군단장, 군단 정치 지도원 등이 마중나옴
3. 1980년 5월 2일 새벽 3시 잠수정 이용 남포 출발
다음날 새벽 2시 전남 영광군 염전면 두우리
백바위 해변 상륙, 미리온 대기자 및 안내원을 따라
1차 집결지 무등산 X 호 지역에 모임
4. 육지로 침투한 자는 강원도 철원군 땅굴로 침투후
전주 부근 대둔산에 야영
땅굴 출구에는 노인이 대기하고 있었음
1980년 4월 28일
5월 21일 오전 8시 : 20 사단 지휘부 차량 공격
아세아 자동차 공격
장갑차 6 대
군트럭 305 대
버스 100 대
고속 버스 5 대 탈취
군 부대 무기고 등 40(47) 개
4. 전남 도청 점령 작전
5. 광주 교도소 5 차례 공격
6, 장흥 교도소 공격
8. 전남 도청 지하실에 8 톤 트럭 1 대분
(약 2,600 상자)폭탄 설치
9. 잔혹한 시민 학살
전사자 등 총 490명
475명 광주 근교 암매장
11 명 망월동 묘지
4명은 귀환중 사망
폭풍 군단 우레 3여단은 참전자 300명중
생존 귀환자 57명(이중 부상자는 46명)
( 사망 : 165 명 , 행방 불명자: 78 명 )
4. 참가자 관리 부대
534 부대 150 명
108 부대 112 명
806 부대 74 명
직전종결
1980년 6월 19일
8월 1 일자로 인민군 렬사묘 조성
2013,2014년은 인민군들의 열사 비석은
6.25 참전 묘비로 바꿈
(2012년 남한에서 비문 사진이 나돌았기 때문이다)
(비석은 청진역 북쪽 600 미터
해발 70 미터의 낙타산 기슭에 있다
북위 41도 47분 54.3초
동경 129도 47분 59.3 초 지점에 있다
묘지는 여군 왼쪽
남자 오른쪽에 있다
전사자 명부 및 전투 기록장 접수 김주호 박사 팀
세로로 "인민군 영웅들의 렬사" 묘
비석 왼쪽 세로로 두줄로 : 사람들이여 ! 걸음을 멈추고
용사들의 불멸의 애국정신을 추억하라
피로써 조국을 지킨 인민군 렬사들의 혁명 정신과
찬란한 위훈은 후손만대에서 길이 빛나리라!"
(158명의) 동무외 삼백삼십이명의 인민군 영웅 렬사들이
잠들고 있다.
오른쪽 끝에 세로로"여기에 청춘의 고귀한 심명을
당과 조국과 인민을 위해 바친 님일세"
(대외비 한함) 남조선 통일 전선을 위한 투쟁에서 전사한한
조선 인민군 열사자료 조선무력부 534 부대 (1980. 8. 1)
더 많은 비문 자료는 방송 참조
번호 성명 난 곳 생년 월일 입대 년도 전사한 연월일 군사 칭호
1 홍성표 청진시 송편구역 강덕동 4반 1950. 1.18 1967. 7.26 1980.6 19 조선 인민군소위
2 김석준 청진시 송편구역 송평동 2반 1951 2. 6 1968. 7.30 1980.6 19 조선 인민군소위
3 한창준 청진시 수남구역 어항동 3반 1948.12. 4 1965. 9.30 1980.6 19 조선 인민군소좌
4 오부진 청진시 청암구역 청암동 5반 1950. 5. 2 1967. 9.17 198
(대외비 한함) 남조선 통일 전선을 위한 투쟁에서 전사한한
조선 인민군 열사자료 조선무력부 534 부대 (1980. 8. 1)
번호 성명 난 곳 생년 월일 입대 년도 전사한 연월일 군사 칭호
1 홍성표 청진시 송편구역 강덕동 4반 1950. 1.18 1967. 7.26 1980.6 19 조선 인민군소위
2 김석준 청진시 송편구역 송평동 2반 1951 2. 6 1968. 7.30 1980.6 19 조선 인민군소위
3 한창준 청진시 수남구역 어항동 3반 1948.12. 4 1965. 9.30 1980.6 19 조선 인민군소좌
4 오부진 청진시 청암구역 청암동 5반 1950. 5. 2 1967. 9.17 1980.6 19 조선 인민군소위
5 김윤선 청진시 포항구역 역전동 6반 1949. 8.10 1966. 7. 5 1980.6 19 조선 인민군대위
6 김웅수 청진시 성편구역 성암동15반 1949. 9. 9 1966. 8.14 1980.6 19 조선 인민군대위
7 김국식 청진시 송편구역 송편동 7반 1948.11. 6 1965. 9.17 1980.6 19 조선 인민군중좌
8 김한수 청진시 포항구역 역전동 12반1947.11. 3 1964. 8. 9 1980.6 19 조선 인민군상좌
9 서대석 청진시 송편구역 사구동 3반 1950. 6. 6 1967. 7 4 1980.6 19 조선 인민군중위
나머지 인원 비석에 새겨진 158명 명단 참조
1. 김석준 한창준 오부진 김운선 김응수 김국식 김한주 서대석 우준선 조영규
2. 염종식 유해윤 김종돈 천수만 유리극 김귀옥 서진남 김창록 김영석 김수전
3. 김용성 전순돌 리계찬 림한석 김진우 박원용 황송열 김동철 리진석 강원철
4. 최귀환 리창용 송원백 현태룡 박경화 김수근 김인준 방동환 전성규 남창섭
5.강일권 리봉섭 주창동 김인현 윤장우 리정부 김은태 최은신 김태환 김명규
6.리동근 김승미 리동철 리양수 허명신 염철남 염홍식 리정환 최철순 염근원
7.김학준 조기림 리숭봉 림용현 주장실 최진숙 백창덕 김두표 허죽순 최윤일
8.김길만 김일춘 리신전 김귀삼 리손직 박려원 리창근 리광주 박경준 김한옥
9.김영학 리인걸 림대식 박재준 리학권 염인순 홍인준 최리순 염운신 리광춘
10.라하권 리종문 박광용 림종문 노훈문 황명환 김두관 임원표 배은호 최영도 서용규
11.김기성 최재복 김원형 김종환 최봉준 최규학 김상혁 김기남 현원식 김옥현 유풍준
12. 김영식 김황로 김화룡 리순희 김종순 백기준 김길선 김우철 박일진 리은지 김종린
13. 김장복 최갑진 박두길 리도화 김현룡 안경찬 최도진 천지춘 김영호 리일호 전기천
14. 마진선 홍종묵 신안석 김허준 김월빈 백순옥 리춘식 류길산 김인도 김옥린 김동준
15 김영화 윤성화 림영훈 최중선 한승택 차준옥 김병천 김영옥 김두천 박은학 조영학
16. 홍성표 리진혁 (총 158멍)
530 지오피 총기 사고도
다시 조가해야 한다
김동민 씨는
북한군 죄를 뒤집어 쓰고
감옥에서 아무도
만나지 못하고 있다
억울하게 옥살이 하는
김동민을
최순실 보다 먼저
석방 시켜야 한다
아시안 게임 마치는 날
김정은 전용기로 서울에 와서
김관진 만난 것
다시 조사 해야 한다
김동민 일병 사건도
그 때 벌어진 일이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들도
박근혜가
제주 4.3 폭동을 역사 공부도 안하고
판정 내린 어리석은 판단이다
지만원은
육군 사관 학교 졸업하고
미국 가서 해군 대학에서
공부하고
5.18에 대하여 20 년 이상
공부한 사람이다
조갑제는 군대나 갔다 왔는지
모른다
자기가 특수군 경험이 없으니까
생각 나는 대로
이야기 하는 것이다
자기가 특수군 경험이 없으니까
홍준표도 그렇고
특수군이 어떤 것인지도 모르고
생각나는 대로 이야기 하는
정치 꾼이다
정치꾼은 정치나 하면 되는
것이다
내가 군대 생활 할 때
1978-1980년
5.18 끝나고
전두환 대통령 될 때 재대 하였다
그해에는 참 비가 많이 와서
온 논에 깜부기들이 많았다
우리 집 논에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3 공수 옆 양구에서 있어서 어느정도 안다
세월호도 그렇고
맘 내키는 무식한 사람들의 울부 짖음이다
1980 년대는 대기업도
컴퓨터로
문서 작업을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