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지역의 역사적(歷史的) 명소(名所)
<4> 예루살렘(Jerusalem) 성전과 통곡의 벽(Wailing Wall)
예루살렘 성문 / 통곡의 벽 / 예루살렘 시내 모습
예루살렘 성전(聖殿)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Abraham)이 아들 이삭(Isaac)을 제물로 바칠 제단을 쌓았던 곳이라고 하는데 BC 957년 지혜의 왕 솔로몬(Solomon)도 이곳에 성전이 건축하였고, 바로 예루살렘 제1 성전으로 계약궤(契約櫃-Ark of the Covenant)를 안치하여 세계인들이 모이는 명소였다고 한다. 계약궤는 모세가 구약시대에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2개로 된 십계명 돌 판을 보관했던 나무상자를 말한다.
그런데 예루살렘 성전은 이웃 나라였던 바빌로니아(Babylonia)의 느부갓네살(Nebukadnessar) 2세가 쳐들어와서 BC 604년과 BC 597년에 성전 보물들을 노략질했고, BC 586년에 성전을 파괴해버렸다.
성전이 파괴되고 BC 586년과 BC 582년에 유대인들이 바빌로니아에 포로로 잡혀가는데, 지금도 합창곡으로 너무나 유명한 베르디(Verdi)의 오페라 나부코(Nabucco)의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이 그것이다. 나부코(Nabucco)는 이태리어로 느부갓네살(Nebukadnessar)을 줄여서 발음하는 것이라고....
이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은 그 노랫말이 너무도 가슴에 와 닿아 듣는 사람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이후 페르시아가 바빌로니아를 정복하고 키루스(Cyrus) 2세는 BC 538년 칙령을 내려 포로로 잡혀 온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성전을 재건하도록 허락하여 성전 재건 작업은 BC 515년에 끝났다고 한다. 이후, BC 20년 유대의 왕 헤로데(Herod)가 제2 성전을 세웠는데 이미 계약의 궤는 사라진 후였고 그 이후 영원히 찾지 못했지만, 이곳은 이스라엘 민족 생활의 중심이 되었다고 한다고 한다.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 / 계약의 궤 / <영화포스터>잃어버린 성궤를 찾아서
영화 인디아나 존스 주연의 ‘잃어버린 성궤를 찾아서(Raiders of the Lost Ark-1981)’가 기억에 생생하다.
사람들은 사라진 성궤(聖櫃)를 찾으려고 엄청난 노력하지만 끝내 그 행방을 알지 못했다고 한다.
예루살렘 성전은 고대 유대인들이 대단히 거룩하게 여긴 곳이었는데 AD 70년 로마인들에 의해 제2 성전도 파괴되고 벽만 남아있다.
이곳이 현재 기독교와 유대교의 성지(聖地)인 ‘통곡(痛哭)의 벽(壁)’이다.
결국, 유대(Judea) 나라가 멸망하고 유대인들이 전 세계에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는데 터전을 잃은 유대인들이 유적으로 남은 이 벽에 모여 통곡을 하였다고 하여 ‘통곡의 벽’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 벽은 이슬람의 바위 사원과 알 아크사 모스크를 둘러싸고 있는 커다란 벽 일부도 이루고 있어 유대인들과 아랍인들이 관할권을 놓고 오랫동안 투쟁해왔다.
그러다가 1967년, 아랍연맹과 이스라엘이 벌인 제3차 전쟁이 6일 만에 이스라엘의 승리로 돌아가 ‘6일 전쟁’이라고 일컬어지는데 이때 이스라엘이 옛 예루살렘을 점령하면서 이곳에 대한 관할권은 이스라엘이 차지하게 되었다고 한다.
현재 예루살렘 구시가지는 무슬림(Muslim) / 기독교인(Christian) / 유대인(Jews) / 아르메니아인(Armenian)의 네 구역으로 나누어져 있다고 한다.
<5> 페트라(Petra) 유적
페트라(Petra)의 알카즈네(Al-Khazneh) 신전
세계에서 또 다른 ‘잃어버린 도시’로 꼽히는 페트라(Petra)의 역사는 기원전(紀元前)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사해(死海)와 아카바(Aqabah)만 사이의 요르단(Jordan) 영토에 있는 페트라(Petra)는 기원전 나바테아(Nabataea) 왕국의 수도였는데 수백 년 된 석조(石造) 건축물들로 세계에서 가장 매력적이고 아름다운 곳으로 꼽힌다. 페트라는 기원전 400년에서 서기 106년 사이 나바테아 왕국의 수도였는데 로마제국에 의해 점령될 때까지 계속 존재했던 나라이다.
그러나 로마제국에 점령된 이후 도시는 경제 문제로 인기를 잃었고 곧이어 대지진으로 함몰되는 바람에 잊혀진 도시가 되었지만 1958년 발굴되면서 다시 알려지게 된 고대도시이다.
페트라(Petra)는 깎아지른 바위 절벽 사잇길로 들어가면 만나게 되는 거대하고 아름다운 건축물 알카즈네(Al-Khazneh)를 마주하면서 감격하게 되는데 높이 40m, 폭 30m의 거대한 건축물이다.
알카즈네는 이곳 페트라 유적의 모든 것이라고 생각되지만, 이곳은 사실 페트라 유적의 입구에 불과하다. 조금 더 바위 계곡으로 들어가면 장밋빛 암벽에 유럽 제라늄 문양인 파사트(Passat)들로 장식된 파사트 대로(大路)가 나오고, 잇달아 장밋빛 유적이 끝없이 이어진다.
페트라는 기원(紀元) 전후, 매우 중요한 도시였다고 하는데 사막 내륙의 대상(隊商)들의 주요 루트인 홍해와 지중해를 연결하는 바닷길의 중간지점이었기 때문이다. 사막 한가운데 유일하게 풍부한 물줄기가 있고, 외부 침입을 막아 줄 바위로 된 성벽이 있어 상인들의 안전한 휴식처가 되기도 했던 곳이다. 성경에서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이집트에서 요르단으로 들어가면서 지팡이로 바위를 쳐서 물이 나오게 했다는 곳이 바로 이곳 페트라라고 하며, 유적지 주변 마을에는 아직도 그 모세의 샘이 있어서 마을의 중요한 식수원(食水源)이 되고 있다고 한다.
고대도시 페트라는 극장, 사원, 집과 같은 구조물들이 석회암으로 정교하게 조각된 것이 특징인데 알카즈네와 로마 시대에 지어진 원형 극장이 가장 잘 알려진 건축물이다.
사암(砂巖)으로 된 암석지대에 다양한 건축물들로 구성된 페트라의 규모는 약 100㎢에 걸쳐 펼쳐져 있으며, 최근 페트라의 알카즈네 지하에서 왕들의 비밀무덤도 발견되었다고 한다.
이 페트라 유적은 스티븐 스필버그(Steven Spielberg) 감독이 제작한 일련의 모험영화인 ‘인디애나 존스(Indiana Jones)’ 중 제3편인 ‘최후의 성전(Last Crusade, 1989년)’, 영국 데이비드 린(David Lean) 감독의 ‘아라비아의 로렌스(Awrence of Arabia, 1962년)’ 등 명화(名畫)의 촬영지로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지게 되었는데 한국의 드라마 ‘미생(未生:20부작/2014년)’에도 나오면서 한국인들의 관심을 받게 되었다. 요르단에는 페트라 유적 외에도 광대한 메마른 사막 와디럼(Wadi Rum)이 있는데 붉은 바위로 둘러싼 ‘달의 계곡(Valley of the Moon)’은 기막힌 경관을 자랑하는 곳이고, 북쪽에는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면의 호수인 사해(死海)도 있는데 물의 염분(鹽分) 농도(濃度)가 무려 30%(일반 바닷물은 3.5%)나 되어 수영을 전혀 할 줄 몰라도 몸이 물에 그냥 둥둥 뜨니 누구라도 수영을 즐길 수 있는 곳이라고 한다.
성서(聖書)에 보면 예수(Jesus)가 물 위로 걸어오는 장면이 있는데 바로 이곳 사해(死海)이다.
사해(死海)는 ‘죽음의 바다’라는 뜻인데 염도가 너무 높아 물고기들이 살 수 없다는 의미겠다.
사막 와디럼(Wadi Rum) / 달의 계곡(Valley of the Moon) / 사해(死海) / 해변 소금 덩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