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조는 이번 중간평가 과제를 공동으로 수행하였습니다. 결과물은 하나입니다.
저희 조의 기획 및 진행 일정 등을 일목요연하게 알아보실 수 있도록 엑셀 파일로 정리한 기획안을 올려드립니다.
아울러, 표절검사 결과도 함께 첨부하여 드립니다.
21710281 권현우
21912462 박동연
22012462 이성한
21912505 최준혁
하나의 농악, 두 개의 시선
<outline>
1. 같은 이름의 두 작품 ‘농악’
-이건희 컬렉션에서 접한 두 가지 ‘농악’ 작품을 보고 평론
-작품 선정 이유
-작품 해석(시대적 배경, 작가의 생애)
-두 작품 비교 서술
-느낀 점을 바탕으로 평론
2. 작가 김중현 (1941)
-시대상
-작가의 생애
-서양화에 동양화적 요소를 접목 → 풍속화의 형태
3. 작가 박수근 (1964)
-시대상
-작가의 생애
-간경화와 백내장 → 흐릿한 그림
4. 김중현, ‘농악’의 다채로움
-색채의 대비
-표정의 중의적 표현
-강렬한 리듬감
5. 박수근, ‘농악’의 단순함
-매력적인 단순함
-평범한 한국적인 주제
-작가의 화풍: 색채의 다양성보다 질감과 선을 중시
6. 평론 및 느낀 점
-김중현의 ‘선명한 농악’
-박수근의 ‘희미한 농악’
-내면이 단단한 사람이 되자
같은 이름의 두 작품 ‘농악’
우리 조는 대구미술관 이건희 컬렉션 “웰컴 홈: 개화(開花)” 작품 가운데 『농악』이라는 같은 이름을 가진 두 작품에 대해 평론할 것이다. 우리 조가 두 작품을 평론 대상으로 선정한 이유는 두 화백이 같은 주제를 판이하게 묘사한 점이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우선, 우리는 두 작품의 시대적 배경과 당시 작가의 생애를 바탕으로 작품을 해석할 것이다. 다음으로, 두 작품에 대한 차이점을 비교∙서술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직접 보고 느낀 바를 바탕으로 두 작품을 평론할 것이다.
작가 김중현
하나의 작품에는 당 시대의 흐름과 작가의 생이 들어가 있는 경우가 많다. 김중현의 『농악』은 일제강점기 말에 나온 작품이다. 일제강점기 시기 한국의 회화는 당시의 우리가 느낀 수많은 절망감과 비탄함을 통해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김중현은 서울의 가난한 가정 속에서 태어났다. 유복하지 못한 가정형편 탓에 다른 화가 지망생들처럼 일본으로 미술 유학을 가지 못한 채 직장생활을 하였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김중현은 포기하지 않고 그림을 독학하여 서양화가의 길을 걸어갔다. 당시 서양화를 그리던 작가들 속에서 유일하게 인물을 중심으로 한 풍속화를 그리는 화가로서 입지를 다졌다. 김중현의 서양화를 보면 동양적인 면을 볼 수 있다. 이는 동양화 그리기를 좋아하는 친구들의 영향이 있었다고 한다. 이렇게 김중현은 20대부터 휴전 직후 사망할 때까지 그림을 그리고 살았다. 현재는 서민 계층의 삶과 풍토적인 정경을 주제로 한 작품을 그린 작가로 남아 있다. 위와 같은 배경 속에서 『농악』은 서민의 삶을 표현하길 좋아했던 김중현이 서양화와 동양화를 접목해 그린 풍속화의 형태를 가진다.
작가 박수근
박수근의 『농악』도 1960년대 초의 대한민국과 그 시기의 박수근의 삶에 비추어 볼 수 있다. 그 중, 가장 버티기 힘들었던 것은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요인인 식량 문제였다. 농업생산이 증가하지 않아서 서민들은 봄철만 되면 연례행사처럼 보릿고개를 겪었다. 이런 시대적 배경은 박수근에게도 영향을 주었다. 어려운 세상에서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 위한 성실한 프로 그림쟁이가 되어야 했다. 하지만 시대는 박수근이 화가로 평범히 살아가도록 두지 않았다. 각종 사기와 생활고 등으로 박수근을 괴롭혔다. 이에 박수근은 현실의 고통을 잊고자 술을 가까이했다. 그는 결국 간경화와 백내장을 앓게 되었다. 왼쪽 눈은 실명하고, 오른쪽 눈도 제대로 볼 수 없게 된다. 이런 암흑기에 박수근은 『농악』을 그렸다. 그래서인지 농악은 당시 박수근의 상황처럼 굉장히 흐릿하다. 마치 길바닥 같은 뿌연 인상의 바탕에, 농악을 즐기는 사람들을 그렸다. 잘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 그림 속 많은 사람이 농악을 즐기고 있다. 이는 마치 당시의 어려운 세상 속에서도 어떻게든 행복하게 살아보고 싶었던 박수근의 소망이 담겨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김중현, ‘농악’의 다채로움
우리가 김중현의 『농악』에서 인상 깊게 봤던 점은 강하고 다채로운 ‘색채의 대비’였다. 눈이 부실 만큼 밝은 빛을 받은 새하얀 옷은 어두운 청록색의 배경, 그을린 농민들의 피부색과 대비되어 명암처리가 극적으로 보였다. 백의민족을 상징하는 우리나라답게 흰옷을 입고 있지만, 검게 그을린 농민들이 흰옷에 확연하게 대비되어 알 수 없는 마음속을 의도한 것처럼 보이기도 하였다. ‘인물들의 표정은 왜 확실하게 보이지 않도록 그렸을까?’ 하는 의문점도 있었다. 위에서 말했듯이 일제강점기 당시에 느꼈던 좌절감으로 인해 밝은 분위기의 ‘농악’을 그렸음에도 불구하고 웃고 있는 표정은 쉽게 그리지 못했던 것 같다. 이 부분에서 작가가 중의적인 표현을 하고자 함을 볼 수 있었다. 화면 속의 동작에서 느낄 수 있는 율동감을 강조시켰는데, 이는 그림 속 인물들의 신나는 느낌이 생생하게 전달되었다. 그림 중앙에 있는 정면을 보는 듯한 인물에서부터, 그림 밖에 뒷모습을 보이는 좌측의 인물, 고개를 돌려 옆모습을 보이는 우측의 인물까지 확실하게 계산하여 화면을 꽉 채운 듯했다. 추가로, 인물들의 각기 다른 몸동작이 강렬한 리듬감을 주었다. 이러한 색채감과 화면 구성이 그림을 감상하는 데 있어서 『농악』이라는 제목과 어울리는 화려함을 느낄 수 있었다.
박수근, ‘농악’의 단순함
김중현과 달리 박수근이 그린 『농악』은 ‘단순함’이 매력적이다. 박수근의 회화적 세계관은 ‘평범한 것’을 그린 밀레의 만종에서 시작한다. 그렇기에 박수근의 화폭에는 한국의 평범한 주제들이 대거 담겼다. 『농악』 역시 같은 연장선에 있다. 회화의 시작이 프랑스 화가 밀레에서 출발하지만 도착지는 누구보다 한국적인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박수근의 『농악』이 한국적이라고 느껴지는 이유가 주제의 평범함 때문만은 아니다. 작가의 화풍도 작품의 인상에 한몫한다. 박수근의 화풍은 신라의 석공들에게 근거한다. 그렇기에 박수근은 색채의 다양성보다는 질감과 선의 굵기를 통해 단순히 표현하고자 했다. 『농악』은 한국적인 주제를 선택하면서, 물감을 쌓아 화강암의 질감을 살렸다는 점, 단순한 선의 굵기로 표현하고자 했다는 점 등에서 우리에게 어디선가 본 듯한 익숙한 한국적인 인상을 줬다.
평론 및 느낀 점
두 작품에는 작가의 생이 투영되어 있었다. 같은 주제의 작품이지만 상반되는 분위기와 기법이 재미있는 평론을 작성하는 데 좋은 이야깃거리를 주었다. 김중현의 『농악』은 선명하다. 누가 봐도 농악을 그렸다고 볼 정도로 직관적이었다. 표정은 보이지 않지만 신나 보이는 몸동작과 모두가 즐기고 있는 광경이 인상적이었다. 박수근의 『농악』은 희미하다. 첫인상은 ‘무미건조한 화강암’이었다. 우연히 작품에서 두 명의 남자가 다리를 걷고 있는 것을 보았다. 하나의 퍼즐이 맞춰지니 옷이 보이고 꽹과리와 상모가 보였다. 이 또한, 의도된 기법이었을 것이다. 시대가 흘러가면서 사람들의 욕구는 점점 희미해져 가는 것처럼 보인다. 당장 우리도 무엇을 위해 달려가고 있는지 모르는 것과 같다. 박수근의 『농악』은 물감을 쌓아서 화강암의 질감을 나타내고, 그 위에 조각하듯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그래서 질감을 나타내느라 전체적으로 흐린 느낌을 받지만, 그 속에는 의도한 물감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우리도 희미해진 목표를 그냥 따라가기보다는 자신이 누구인지 더 알고 계발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결과적으로 단단한 내면을 가진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참고자료>
네이버 지식백과, 『김중현』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553524&cid=46660&categoryId=46660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 『식량증산』 https://theme.archives.go.kr/next/foodProduct/policy1960.do
방구석 미술관1, 조원재
방구석 미술관2, 조원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