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예능프로그램 MBC의 무한도전이 2006년 방영을 시작해 약 10년이 지난 현재, 가장 재미있었던 에피소드로 사람들이 다섯 손가락 안으로 꼽는 '레전드' 편이 있습니다. 2009년 2월 28일 방영된 '정신감정 특집편'은 무한도전 멤버들의 정신을 분석해 '까발려' 보는 내용이었습니다. 당시 멤버들의 정신분석을 담당해 예리한 분석결과를 내놓은 한 정신과의사는 시청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그 주인공, 송형석 마음과마음정신과의원 원장을 그가 진료하는 일산의 병원에서 만났습니다.
"6년이나 지난 지금도 어떻게 무한도전에 출연하게 됐냐고 사람들이 묻는데, 그냥 제작진에게서 전화가 와서 출연해 볼래요? 라고 물었고, 좋다고 승낙한 거였어요. 사실, 알고 보면 별 게 없죠."
그에게 무한도전 출연 비하인드 스토리를 좀 더 들어봤습니다. 송 원장이 프로그램 출연에는 응했지만 바로 촬영해 방영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촬영 며칠 전에 팀 내부 사정으로 순식간에 촬영 취소가 된 것. 2007년도의 일이입니다. "좀 심통이 나 있었죠. 무한도전을 예전부터도 재미있게 시청하고 있었는데, 그 이후에는 '얼마나 잘하는지 보자'는 심정으로 눈에 불을 켜고 봤던 것 같아요.(웃음)"
2년 뒤에 다시 제작진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분노가 극에 달해 있었던' 그는 상황극으로만 구성하려고 하던 제작진의 설명에 "그런 거 하지 맙시다. 멤버들 지능검사 다 내보내고, 전부 까발립시다. 어떤 인간인지 다 드러내자고요"라고 말하며 강하게 의사전달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게 먹혔습니다.
무한도전 출연 당시, 범상치 않은 긴 머리카락을 어깨까지 늘어뜨린 채 유려한 말솜씨로 사람들을 매료시켰던 송 원장의 캐릭터는 자못 독특했습니다.
"고2 때는 사이코라고 주변에 알려졌어요." 수업 중 책상 앞에 앉아 있다가도 갑작스럽게 일어나 소리를 지르고 싶고, 고함을 치고 싶었다는 설명. 수업시간에 왜 소리를 지르면 안되지? 뛰쳐나가면 왜 안 될까? 거듭 생각했습니다. '수업시간에 소리를 지르면 안 되는 이유'를 몰랐던 그는 수업시간에 소리를 지르고 뜬금없이 화도 냈습니다. 이상한 녀석 취급을 받았습니다. 결국, 사이코로 주변 인식이 굳어졌습니다. 자신을 무서워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고3 때 돼서야 소리를 지르거나 이상한 행동을 하면 욕을 먹으니 하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뒤에는 조용히 살아야겠다 싶어 그런 행동을 그만뒀죠. 금기의 이유를 알기까지는 이상하게 행동한 거죠. 내가 왜 그런 것인지 알고 싶었습니다. 내 속에 뭐가 있는 것인지 궁금했죠."
정신과 분야로 나아가게 된 계기는 고1 때부터입니다. 멋있게 보이려고 정신분석의 창시자,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저서에 손을 댔고, 막연하게 '정신과의사가 되고 싶다'고 느꼈습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어릴 적부터 마음이나 감성이 예민했던 기질이 한 몫 한 것 같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볼 때도 왜 저 사람은 저런 의도로 말할까. 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게 보이는데. 그렇게 항상 마음 속에 있는 심리적 요소를 세분화해서 분석하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프로이트로 정신과에 입문했지만, 대학 때는 구스타프 융에 흠뻑 빠졌습니다. 에르히 프롬과 기타 종교서적도 많이 읽었고, 불경서에서 말하는 선문답 속에서 인간의 심리를 엿보기도 했습니다.
정신과 진로에 대한 불은 빨리 지펴졌습니다. 이과를 선택하고 나서는 정신과 분야 외에 달리 관심이 없었습니다. 누군가를 치료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프로이트 책을 읽으면서 나 자신 안에 내가 모르는 내가 있다는 사실에 매료된 탓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송 원장은 아이들에게 "좋아하는 것은 전부 해보라"고 조언했습니다.
"학창 시절, 정말 쓸데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열심히 하는 것들이 있을 겁니다. 그것이 나중에 정말 중요한 경험이 됩니다. 지금 하는 일이 가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게임을 하든, 만화책을 보든, 전부 값진 일이에요."
다만, 열심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게 그의 조언. 게임의 경우, 왜 이 게임은 이렇게 만들었을까. 나라면 다른 방식으로 만들 텐데. 실제로 분석해 보고 기획해 봅니다.
"자신을 기쁘게 해주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밖에 없어요. 부모님이 도와줄 수 있는 것도 있지만, 결국에는 본인에게 달렸죠. 다른 사람 눈치 보지 말고, 하고 싶은 것은 하세요. 물론 절제해야 하는 부분도 있지만 정말 하고 싶은 것은 하세요. '분열된 내 존재'들이 자신을 기쁘게 해줘야,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실수를 해도 너무 실망하거나 본인에게 화가 나지 않죠. '너'는 '나'에게 잘해 줬으니까요."
송 원장의 경우, 만화를 좋아했습니다. 어릴 적부터 순정만화를 매우 좋아했고 특히 미우치 스즈에의 '유리가면'을 애독했습니다.
"유리가면이 너무 재미있어서 초2 때 집에 있는 것은 전부 읽었어요. 사실, 유리가면은 개인의 정체성에 관련된 내용이거든요. 캐릭터의 역할에 빙의돼 연기를 펼치는 천재 연기자의 이야기죠. 사람이 갖고 있는 나라는 것은 무엇인가. 이미 초등학생 때부터 인간의 심리에 관심이 있었던 셈이죠."
만화책에 빠지는 것을 부모님이 좋아하지는 않았습니다. 부모님 몰래 만화책을 읽고, 중학교 이전까지는 만화방이라는 곳에 가면 큰일 나는 줄 알고 컸습니다. 몰래 하는 맛이 더 재미있어서였을까, 만화책뿐만 아니라, 게임, 음악에도 빠졌습니다. "유독 심했을 때는 라디오에서 선정한 상위 100곡 중에서 못 들은 것이 10곡이 넘어가면 '내가 게을렀구나'라고 생각하고는 꼭 찾아서 듣고는 했어요." 하고 싶은 것을 다 하지 않으면 직성이 풀리지 않았습니다. 이때 얻은 지식들은 지금까지 유용하게 남았습니다.
현재는 저명한 정신과의사로 활약하는 그이지만 학창시절 성적은 생각보다 높지는 않았습니다. 고등학교 올라와서야 많이 올라 상위권에 들었습니다. 워낙 집중하지 못하는 스타일이어서 수업시간 선생님의 말도 제대로 듣지 못했습니다. 하루 중 3개 수업은 잠으로 보냈습니다. 부족한 공부는 수업이 끝나고 친구들의 필기를 베끼고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 자습으로 채웠습니다. 평소에는 아무 것도 모르는데, 시험 결과는 잘 나오는 그런 아이였습니다. 심리나 현상을 관찰하고 분석하는 것을 좋아하는 송 원장답게 어릴 적 취미생활에 대해서도 분석을 내놓았습니다.
"제가 비주얼(visual)에 예민하고 글자에는 약하거든요. 교과서를 읽을 때도 문장을 잘 못 외웠어요. 그런데 또 문장을 그림기호로 바꿔 그려놓으면 기가 막히게 잘 외웠죠. 의미 없는 문장은 머릿속에 안 들어오는 겁니다. 동화책 읽는 시기를 벗어나니 소설로는 마음이 안 가더라고요."
성인이 돼서도 만화에 대한 끈은 놓지 못했습니다. 2000년에는 의학매체 메디게이트에 '닥터메드'라는 만화를 연재했고, 2013년에는 '까칠하게 힐링'이라는 책을 펴냈습니다. 에세이 형식으로 출판됐지만, 그는 자신의 책을 '만화책'이라고 소개합니다.
저서 '까칠하게 힐링'에 송형석 원장이 그린 만화.
"만화책을 읽으면 '오타쿠'라고 하는 문화에 정말 짜증이 납니다. 자기와 다른 문화를 즐기는 사람에게는 존경심과 호기심을 보여야 하는데, 자신과 다르면 폄하하고 비난하지요. 우리나라의 나쁜 문화 중 하나입니다."
다양한 인간상이 필요하다는 것. 비슷한 취미나 관심사만 갖도록 하면 비슷한 인간만 만든다는 게 그의 주장입니다.
"비슷한 인간만으로 사회가 구성되면 '면역력'이 떨어집니다. 새로운 스트레스를 견딜 힘이 없는 거예요. 경기가 한 풀 꺾이면 사람들이 쉽게 무너지는 이유도 거기에서 찾아볼 수 있죠. 실제로 정신과 상담을 해 보면 생각에 너무 융통성이 없음을 느끼게 됩니다. '선생님, 직장을 잃을까봐 너무 걱정이 됩니다'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어요. 잃으면 어떠냐고 물으면 '직장을 잃으면 죽어야죠'라고 그래요. 잘리면 죽는다는 거예요. 너무 단순해진 거죠. 사실, 실직을 해도 노숙생활을 해서라도 먹고 살 수는 있잖아요? 그런데 자살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요. 애들, 어른 할 것 없이 사고방법이 다 단순해졌어요."
그래서 그는 내년 전면 시행되는 자유학기제에 대해 두 팔 벌려 찬성을 표했습니다. 적극 지지했습니다.
"예전부터 중1 시기에 중간 이행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많이 이야기해 왔어요. 초등학교 과정에서 중학교로 넘어오면서 공부 양이 많이 늘어 적응하지 못하고 괴로워하는 아이들이 많아요. 1학기 때만이라도 공부 부담을 줄이고 편안하게 생각할 시간을 주는 거죠."
다양한 직업에 대해 알아보는 것도 긍정적으로 생각했습니다.
"여러 일터로 찾아가서 직접 체험해 보는 거 아주 좋네요. 학생들에게 학부모 직업을 대보라고 하면 200개 이상 되지만, 사실 몇 만개 이상의 직업들이 세상에 존재하잖아요."
그러면서 그는 "너무 화려한 직업만 체험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고도 전했습니다.
"대표적인 직업 몇 개만 체험하지 말고, 잘 알려지지 않은 직업도 많이 체험하세요. '저거, 밥 벌어먹고 살 수 있나?' 그런 것도 보고요. 부모님들은 '그 직업은 안돼'라고 편견을 가질 수 있지만, 사실 잘못 인식하는 직업들이 많아요. '임상심리사? 뭐하는 직업인데? 굶어 죽어.' 아니에요. 정말 좋은 직업이 많은데, 그걸 잘 모르는 게 아쉽죠. 세상은 넓고, 세상에는 참 다양한 직업들이 많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