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호 그리고 가야_못다한 이야기 03_한민족의 문명개척사
2022년 8월 8일(월)
낙랑은 중국 서토 개척의 중심지로,
일본을 개척하고 관리하였던 구야국의 國尾 임나와 같은 역할을 한 소도가 있었던 곳이다.
단군조선 번한의 전진기지, 이름 그대로 滿番汗이라 이르는 곳과 같은 의미의 이름이다.
낙랑, 아리랑 문화가 연결 되는 지역이다. 그러면서 물길이 있는 곳이다. 지금의 홍산문명의 서쪽 지역이다. 홍산문명이 있는 곳이 바로 청구 지역이다. 청구를 지나고 낙랑을 거쳐 서토로 들어간다.
지금 재야사학자들은 낙랑을 번한의 수도였던 난하 근처의 탕지보로 보고 있다.
위만정권에 낙랑 등 4군을 설치하려고 한 걸 보면 난하지역이 낙랑인 것만은 더 사실적이다
하지만 이름 그대로 낙랑을 생각해보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이곳은 홍산문명의 바운더리boundary 지역이지, 홍산문명의 지역과 전혀 다른 그러한 다른 지역은 아니다.
최숭이 뒤에 평양에 낙랑국을 세운다. 낙랑은 청구에 버금가는 넓은 지역으로 보아야 한다. 낙랑은 하나의 문화를 일구어낼 수 있는, 지금의 전라도·경상도·충청도 그런 식의 大지역명이었다. 낙랑은 지금의 일개 도시에 준하는 그런 지역명이 아니다.
그리고 郞은 상제님 대변자다. 浪은 활동의 전초기지 같은 곳이다. 그런 면에서 임나의 임과 연결된다.
지도를 펼쳐놓고 보면 난하지역은 중국대륙 개척의 전초기지가 되기보다는, 결론적으로 서쪽으로 조금 더 이동하여 지금의 북경지역에서 보면, 조백하(패수)·영정하 그곳이 더 넓은 중국대륙 개척의 전초기지로 더 적합하다.
지금의 홍산문명 지역을 청구로 본다면, 낙랑은 청구와 동등한 역할을 하는 또 다른 지역권으로 보아야 한다.
서토를 처음 개척하신 복희대제께서 청구를 거쳐 낙랑홀을 지나서 서쪽으로 가셨다.
임나도 가야 이래 삼국시대 고구려·백제·신라가 일본을 관리하기 위해 나누어 다스렸던 지역이다.
낙랑홀 하면 홀은 hole 구멍이다. 空자리이다. 가장 구석자리이다.
樂浪은 북경을 지나 흐르는 지금의 조백하(패수)·영정하로 즐거운 물결이다.
낙랑 즐거운 물결이 난하인지 내가 추정하는 조백하·영정하인지 더 두고 보아야 한다.
여하튼 중국이 북경을 수도로 그렇게 차지하고 싶어 했던 이유이다. 여기를 넘어야 자기들이 동북아 종통자리를 차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은 실패한다. 홍익인간으로 다스리지 않고 패권으로 다스려왔기 때문이다.
낙랑은 중국 그들에게 영원한 에덴동산 낙원이었다.
8월 9일(월)
어제 서울 강남지역과 인근 경기지역에 2차 장마로 대홍수가 일어났다.
오늘 양재대로를 지나 서울 병원을 다녀오면서, 治山治水가 제왕학의 제1조 1항라는 사실을 실감하였다.
왕의 자격은 치산치수를 대하는 자세에서 볼 수 있다.
치산치수는 수원지 확보로부터 시작한다.
후천 오만년 우주 최고의 수행처로 만들 꿈을 가지고 있는 내가 깊이 새겨두어야 할 조항이기도 하다.
8월 22일(월)
환국 말기
환인께서 기후변화로 초원지대의 생활터전이 무너지고 있을 때, 오로지 유목문명에서 새로운 문명을 열기 위해 많은 지역을 주시하고 계셨다.
성과가 가장 좋게 발굴된 지역이 지금의 홍산문명 지역이다.
이곳은 서쪽으로 유목이 가능한 초원지대였고, 동쪽으로는 농경이 가능한 지역이었다.
그리하여
최소한의 유목을 유지하면서 농경을 업그레이드시키기 위해 최선의 전초기지를 찾아 나선 게 지금의 홍산문명이었다.
하지만 비록 홍산지역이 일부 유목도 가능하고 농경도 시베리아보다는 유리하였지만, 천년이상 새 문명을 지속시킬만한 풍족한 경제를 제공하지는 못하였다.
과도기로 홍산지역에서 새로운 터전을 마련하고 있었지만, 아직 더 발전된 농경문명으로 전환하기에 어려운 실정이었던 것이다.
천년이상 새 문명의 중심지 역할을 하지 못하여 또다시 위기에 봉착하고 있었다.
이러한 때
지금의 평안도 땅에서
고시례께서 수확량이 1.5배 더 높은 벼 건답직파재배를 개발함으로써 농경으로의 전환이 가능한 희망을 보았던 것이다.
이때부터 물을 좋아하는 평야지 벼가 오곡의 주인장으로 대두되기 시작하고, 밭에서는 콩이 주장이 되었다.
만주 땅은 거의 전 지역이 콩밭太田이었기에 일반 밭보다 그 수확량이 1.5배에 달하였다.
벼 수전재배가 정착하기 전까지 만주 땅의 콩이 주인장 노릇을 하였다.
밝달국 후반 송화강 만주 비서갑을 중심으로 단군왕검께서 반만년 백두산문명을 일으킬 수 있었다.
하얼빈이 단군조선의 첫 수도가 된 이유이다.
밝달국 1565년은
유목에서 농경·목축으로 전환하는 크나큰 대전환기였다.
단군조선 2세 부루단군께서 벼 수전직파재배를 시작함으로써 명실공이 농경·해양문명으로 전환하였던 것이다.
8월 29일(월)
김부식은
자신의 조상 흉노를 비하한 한무제의 역사왜곡 덫에 걸려 심한 열등의식으로
가야狗耶(BCE 300년경 남삼한의 변진구야국, CE 42년 대가야·가락국 등)를 지워버리면서
한무제의 심적 수하가 되어 더 깊은 역사 왜곡의 소용돌이로 들어갔다.
김부식의 삼국사기 역사관이 이 땅을 지배하면서 우리민족은 억음존양 천년 신권臣權의 낭떠러지로 떨어졌다.
김수로는 왜 김해로 왔나?
한반도 남쪽 땅 흉노족의 근거지가 변진 땅이었기 때문이다.
흉노는 번조선과 가까웠다. 번조선 유민들은 남삼한 변진 땅으로 내려왔다. 그 시작이 BCE 300년경 자색줄을 타고 내려온 6개의 황금알 주인, 흉노의 변진구야국(가야)을 비롯한 6가야였다.
서기 전후에 시작된 대가야·가락국을 비롯한 천자를 자처한 가야가 유적으로 보면 최소 9가야나 되는데도 6가야로 고집하는 이유가 변진구야의 전설을 차용했기 때문이다.
≪9가야≫ 대가야·성주가야·대구가야·합천가야, 비화가야·아라가야, 가락국·고녕가야·소가야
남삼한 변진구야狗耶의 세계최고 제련기술은 자오지천황으로부터 전수받은 것이다.
오르도스 응형금관의 주인 가야의 먼 조상
少昊는
태호로부터 복희괘도와 복희글을, 여와로부터 거북신앙의 법맥을,
신농씨로부터 의학과 농경을,
동두철액의 자오지천황으로부터 청동과 제철 제련기술을 전수받았다.
소호의 후예 은나라는 商人이 되어 신농씨의 물물교환 법을 실용화시켰다.
士農工商 모든 생활문화를 하나로 모아,
少昊는 인문시조 太昊에 이어 명실공이 인문中시조가 되었다.
8월 31일(수)
밝달국 주곡 고시례께서
벼 건답직파를 개발하시고 1,500년 동안 벼농사를 어렵게 만든 게 5,900년 전부터 이 땅에 자리한 잡초성벼이다.
벼는 벼인데 수확하기 전에 다 떨어져 버린다. 이런 DNA형질을 탈립성이라 한다.
볍씨가 길쭉한 안남미 피가 많이 들어간, 평야지 밭에 적응되어 왔던 벼에 탈립성 DNA특성이 많이 드러난다.
벼지만 쌀을 수확하지 못하니 벼라고 말할 수 없다.
내가 근무할 때 이 분야 전문가들이 이름하여 잡초성벼라고 정의하였다.
단군조선 2세 부루단군께서 벼 수전직파를 개발하시면서 이 문제를 해결했다.
그런데 또 애를 먹이는 게 남아있었다.
그게 피稗다.
2,000년 동안 애를 먹인 이 피 문제를 해결한 게 BCE 300년경 대화大和여왕이 개발 완료한 이앙재배이다.
300년 전 서양에서 산업혁명과 과학혁명이 일어나면서 인류의 물질문명이 극도로 발전한다.
20세기 현대후반에 들어와서 사람이 많아지고 더 많은 쌀을 수확해야 하는 실정에서
이앙재배는 생산비가 너무 많이 소요되는 단점이 생겨났다.
그리하여
이앙재배가 나온 2,300년 뒤 지금에 연구자들은
다시 벼 직파재배로 눈을 돌리게 되었다.
내가 34년 전 ‘론스타’라는 제초제를 만나면서 벼 담수직파재배 피 문제를 해결하였다.
하지만 이 담수직파재배는
한반도에 5,900년 동안 깊숙이 자리하고 있었던 잡초성벼의 유전자 때문에,
정착하지 못하고
결국에 ‘론스타’도 퇴출되었다.
나는 직파재배를 해결한 그 공로로 ‘론스타’를 애지중지했는데,
‘론스타’ 먹튀 이야기를 듣고 나또한 아예 그 이용성을 접어버렸다.
《일본 사람이 뭐 한다고 해도 조선 사람 가운데 조조 간신이 있어서 그놈들이 좌지우지하지, 일본 사람이 이 조선에 대해 무엇을 아느냐? (5:52:6)》
벼농사에서
론스타를 퇴출시킨 게 5,900년 동안 깊숙이 자리하고 있었던 잡초성벼이다.
남을 이롭게 하는 것들은 우리 본래의 것으로 퇴치한다.
잡초성벼는 론스타를 제어하는 「상극相克」 화火기운의 역할을 하였다.
낙서를 받은 우임금에서 생성된 유전자DNA로 시작된 새로운 「상극相剋」 화火기운이 반만년을 지배하였다.
조조 간신이 되어 지금까지도 이성을 잃고 날뛰는 것도 DNA가 있어서 그러하다.
불火은 열을 내면서 빛을 발한다.
이 상극相剋 화火기운으로부터 빛을 모아 이용하는 자가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빛은 처음 시작이다.
빛은 참이다.
빛과 함께하는 참眞이 바로 삼신일체 상제님·태모님·태허령님 일곱성령님들이시다.
빛은 수행으로 하단에 정단으로 모은다.
2,500년전 북방 마고할머니麻姑大成로부터 출발하는 삼신수행법이다.
과학자들은 인류문명이 열대지방으로부터 시작한다고 한다.
그건 잘못이다.
열대지방은 식량(곡물) 생산성 및 저장성이 떨어진다. 그리고 병해충 피해가 너무도 심각하다. 아무것도 없이 도구라고는 손밖에 없이 이 땅에 내려온 인간에게, 처음 가장 중요한 식량문제와 병해충 문제 때문에 빈손에서 인류문명을 시작할 수가 없게 한다.
인류문명은 북방坎방에서 시작한다. 어로·유목문화로부터 인류문명은 시작한다. 북방은 맨손으로 식량을 구할 수 있다. 식량 저장성이 뛰어나다. 병해충이 거의 없다. 유목문화와 함께 시작한 농경으로 인해 문명이 발전하기 시작한다. 소위 과학자들이 말하는 농사혁명이다.
이어 기후변화로 남쪽 백두산辰方으로 내려오는 것이다. 여기서 농경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문명이 크게 발전하게 되는 것이다.
여름과 가을이 바뀌는 하추교역기에 간방艮方동북방 한반도로 내려와 새로운 문명을 준비한다.
그게 지금의 상황이다.
9월 2일(금)
대통령 비서관실에서 선물이 왔다.
막내가 그곳에 근무하는 바람에 가족들에게 선물을 보낸 모양이다.
나는 내용물을 보고 선물이 감동을 주지 못한다고 하시하였다.
그런데 같은 선물을 받은 시골의 어머니는
내용물이 별거 없지만
봉황무늬가 새겨진 그 곽을 보고 감동을 하신다.
그 봉황기운을 좀 받으라고 나의 세 식구 사진 아래에다가 놓으셨다고 하신다.
나는 그 선물의 기운을 보지 못했다.
어머니는 기운을 보신 것이다.
역시 세월을 살아가면서 쌓아가는 연륜은 무시하지 못한다.
경험이 그만큼 중요하다.
9월 10일(토)
이 아름다운 강산!
막조선 땅.
신권臣權 천년 억음존양시대
선비仙秘라는 이름을 거창하게 도용하면서 즐길 줄만 알았지 백성들을 보호할 줄은 몰랐다.
모든 문명은 태고적 문명개창자 선비들이 전한 천부경에서 나왔다.
천부경에서 하도낙서가 나오고 지금의 문명이 열린 것이다.
삼신상제문화를 들고
백두산으로 내려오신 한민족의 제1선비
거발환환웅천황께서 웅족을 교화하시고 새 선비들을 키우시면서 새문명이 열렸다.
그런데 삼신상제문화를 거부한 호족은 사방으로 흩어졌다.
사방으로 흩어진 호족의 피가 득세하면서 지금의 억음존양시대가 되었다.
이들도 선비는 부러웠던지
공자를 위시한 그 후예들이 선비를 도용해갔다.
사대부士大夫들이 十一成道 인류문명을 완성할 선비士를 뜻도 잘 모르면서 자기들 말로 만들면서,
선비들의 생활문화 삼신일체 상제문화를 미신 치부하고 저급종교로 매도하였다.
삼신상제문화는 미신도 아니고 저급 종교도 아니다.
상고창세 동양에는 오직 道가 있었을 뿐이다.
학자들이 샤머니즘이라고 하는 그 말이 바로 도이고 화이트샤먼이 선비인 것이다.
삼신상제문화가 바로 도인 것이다.
오늘 추석,
20세기 후반 들어와서 제사 모시는 것 때문에 가정에 분쟁이 수시로 일어났습니다.
몰라서 그렇습니다.
신도세계를 알면 어찌 제사때문에 불평줄이 일까?
사실 신도를 잘 알더라도
억음존양시대 며느리 입장에서 제사 모시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아는 것만으로 다 해결되는 게 아닙니다.
각성하고 몸으로 깨쳐야 합니다.
저 또한
평생 삼신일체 상제님을 받들고 도를 닦으면서도 제사음식 만들고 준비하는 등등의 일을 하기 싫어했습니다.
도장 천도식때 제대로 봉사를 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에서야
제가 몸이 좋아지면 제 조상님 제사 음식은 제가 직접 준비해야겠다는 마음의 자각自覺이 일어났습니다.
선지후각先知後覺 (5:355:4)
말은 이처럼 쉽지만 신도를 몸으로 깨치기가 참으로 어렵습니다.
진리를 알고도 36년이 지나서야 이런 생각을 겨우 하고 이렇게 기록합니다.
삼신일체상제님을 위시한 일곱성령님들이시여!
감사하옵나이다.
보은!
9월 13일(화)
환단고기에 탁장군이 세운 마한을 중마한이라 칭하고 있다
단군조선 마한(막조선)에 이어 중마한이라 한 것이다
왜 중마한인지를 알지 못했다.
세월이 지나면서 중마한의 中의실체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고
그렇다면 역사 속에 후마한이 있었다는 뜻이다? 라는 사실 또한 깨닫게 되었다.
한반도 왜가 일본으로 건너가 세운 연방국 야마토倭가 귀환하고, 북방에서 흉노족이 내려와 함께 세운 옹관고분세력이 바로 후마한이다
중국사서에서는 동이마한신미제국이라 칭하고 있다
지금까지 후마한이라 생각하고 있었지만
‘진짜 이게 후마한이다’
이렇게 확신하지는 못했다
오늘 STB상생방송 개벽뉴스 유튜브를 검색하다가 함께 올라온 나주중심의 대형옹관고분세력의 마한을 이야기하는 어떤 유튜브의 제목을 보고
이제 대형옹관고분세력의 정체를 밝혀주어야겠다는 생각으로 후마한으로 확신하게 되었다.
이제 옹관고분세력이 한민족의 한갈래 마한의 정통성을 이는 우리역사에서 일부를 차지하는 나라였다는 사실을 공식화하고 싶어 오늘 또 ‘일본은 어떤나라인가’ 의 재수정을 마련하였다.
들어가는 말과 함께 못다한 이야기에 실으연서...
대형옹관고분세력의 마한 정통성을 드러내어주고 싶다.
10월 24일(월)
인문시조 태호복희, 농경과 동양의학의 시조 염제신농, 무신의 시조 치우천황.
이법은 인간이 살아가는 푯대가 되는 것이다.
농경과 의학은 인간실생활에 꼭 필요한 요소들이다.
상무정신은 인간이 조직생활을 보호하는 필수조건이다.
밝달국은 이들 세분이 나오는 대역사과정이었다.
이로써 선천 상극지리로 마지막 과학물질 황금문명이 열린 것이다.
《선천은 기계선경(機械仙境)이요, 후천은 조화선경(造化仙境)이니라. (7:8:3)》
삼신일체상제님의 이상을 곤도坤道세상 현실세계에 구현할 수 있도록 보좌할 수 있는 물질문명의 최고봉 황금문명이 열린 것이다.
다만 이 물질문명은 상극지운이 잘못 가르친 가르침 때문에 너무도 많은 죄업을 쌓아놓은 부작용이 있다.
그 부작용으로 이렇게 어렵게 가고 있는 것이다.
여하튼
이분들의 이상을 종합하여 체계를 세워 동북아의 명실공이 비조가 된 이가 소호씨이다.
소호는 태호의 법을 이었다 하여 소호라 하였고,
신농국의 신하로 있다가, 제후의 하나였던 헌원의 반란으로 치우천황에게로 의탁한다.
그리하여 소호의 후손중에 주 시조 후직은 농사의 맥을, 상나라는 신농의 상도의 맥을 이어 신농의 이상을 이었고, 주나라는 치우천황의 영생불멸의 仙도와 무신의 맥을 강태공을 통해 이었다.
그리고 이분의 후손이 동북아 대다수 혈통을 차지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최대성씨인 김씨가 이분의 후손이고,
일본은 소호금천의 후손 흉노의 가야가 첫 시발로 문명을 열었다. 그 후 고구려·백제·신라·가야 4국이 이주하면서 형성한 우리한민족의 아류이다.
중국은 중화역사시작을 알리는 하은주의 은나라, 주나라가 이분의 후손이니 중국의 2/3가 이분의 후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국은 지나支那China라는 이름 그대로 우리민족의 지류支流이다.
6국을 통일한 진시왕은 ‘진나라는 소호의 제사를 주관한다.’ 하면서 그들의 신원을 언급하고 있다.
봉조鳳鳥를 기틀로 한 이분의 혈통과 법맥에서 송골매와 독수리가 동시에 나왔다.
동북아 창세 설화說話에 온갖 알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정통 진법맥이 벋어 나오면서 천도를 부정하는 난법맥이 함께 생겨나왔다.
이 분열난법의 火기운을 금화교역 수기로 포장包藏해야 한다.
11월 9일(수)
9:50
위만이 왕검성 탈취 3대를 내려갔지만, 번조선의 오가들은 항복하지 않고 독립전쟁을 86년간 벌이고 있었다. 그 정황자료가 ‘조선 4군’이라는 글귀에 있다.
왕검성은 위만이 장악했지만 이전부터 자치에 가까운 정치를 해온 주위의 오가가 장악한 4군이 내부적으로 독립전쟁을 벌이고 있었던 것이다.
한무제가 위만을 무너뜨리려고 왔을 때 번조선 오가 4군의 독립전쟁이 표면화되고 그리고 동명천제의 출세로 한사군을 설치하려던 한무제의 욕망이 완전 좌절된 것이다.
동명천제는 한무제가 빼앗았던 유목민의 근거지에서 쫒아내고 그들의 땅으로 몰아내었다.
더불어 번조선의 유민들은 황하하류를 점령함으로서 한족의 본래 그들의 땅으로 완전히 몰아낸 것이다.
한무제의 평생사업이 동명천제의 출세와 번조선 유민들의 독립전쟁으로 물거품이 된 것이다.
그 수치를 감추기 위해 사마천을 시켜 동방 인류창세상고역사를 왜곡한 교본 사기를 편찬케 한 것이다.
한무제는 삼한관경제의 실체를 파악하지 못했다. 관경과 함께 화백·책화제도의 실체를 파악하지 못했다.
중국이나 일본이 그들이 종통이 되지 못하는 것은 이 제도들의 정점에 있는 홍익인간 이념을 몰랐거나 간과했다.
그래서 그들은 가을개벽기 씨종자도 못 추리는 상황으로 내몰리는 것이다.
11월 11일(금)
8:30
물질과학문명은 어머니문명,
밝달국 거발환천황께서 전수하신 무병장수 仙수행으로 웅熊족 영성이 개발되면서 모든 물질과학문명이 체계화되어 발전되어 나온 것이다.
이것을 가능케 한 DNA가 웅족에게 존재했던 것이다.
지금의 물질과학문명은 밝달국 웅족에 의해 본격 시작되었다.
다만 억음존양의 부유들이
남자는 바깥일 여자는 집안에서 안일해야 한다고 고정시킨 것이다.
참 잘못된 생각을 우리 조상님들이 천년동안 하셨다.
11월 20일(일)
오후3:00
카톡방에 역사바로세우기 방법으로 ‘뭇 성씨 원뿌리를 정리하는 것이다’ 제언한 학자님의 이야기를 보고 크게 마음에 와 닿아 나 나름대로 간략히 정리해본다.
나는 항상 근본을 추구했다.
핵이 어딘가?
근본이 어딘가?
농과대학 2학년 올라갈 때, 농학과를 택한 것도 가장 뿌리였기 때문이다.
아마도 내 전생에 한민족을 벗어나지 않았을 것이고, 유도에 몸을 담았든 불도에 몸을 담았든 선도에 몸을 담았든 이단아로 시천주 신앙하였을 것이다.
현 인류 성씨의 뿌리 원조는 풍씨로부터 시작한다. 그러나 전해오지 못하고 있다. 풍씨는 환국으로부터 내려온 환족의 혈통이다.
전해오는 현 인류 성씨의 처음은 강씨이다.
강씨의 시조는 신농씨이므로 배달국 주곡 고시례로부터 시작한다.
고시씨가 환족의 일파인지 웅족인지는 정확히 잘 모르겠으나, 환족의 일파일 가능성이 더 높다.
풍씨, 강씨 다음으로 역사상 중요한 성씨가 있다.
그게 김씨다.
김씨는 소호로부터 시작한다.
사마천은 소호를 중국의 뿌리조상이라 일컫는 헌원의 맏아들로 엮어 놨는데, 이는 심각한 역사왜곡이다. 소호는 혈통적으로 헌원과 아무 관련이 없다.
소호는 고시씨의 또 다른 방계 후손이다.
여하튼
한민족은 복희씨, 신농씨, 소호씨 세분을 먼 조상으로 두고 내려오고 있다.
이분들은 모두 중국 대륙에서 그 이름을 떨치고 뿌리를 내렸다.
그러니 지금 한민족의 원조상은 거의 대부분 중국대륙에서 출발하고,
4,700년 이전으로 돌아간다.
11월 23일(수)
오후4:40
단군조선시절 사가작구四家作區의 밭 田자는 화전농법의 소산이다.
사가작구는 환국시절부터 시작된 것이다.
화전농법을 하려면 장정 최소한 네 사람은 필요하다.
배달시절로 와서 구정邱井법이 발달하였다.
이는 수리를 필요로 하는 건답직파와 관련이 있는듯하다
8-9가족이 두레형식으로 협업을 해야 한다.
논농사가 그만큼 힘들다.
단군조선시대 조세를 보면 1/20이다.
20세기 이후 우리나라가 가장 잘살던 시절 2000년대 공무원에게서 떼어 가는 세금이 1/20이었다.
내가 퇴직할 무렵 10년 전쯤 계산해보니 1/10로 무지하게 많이 떼어 가기 시작했다.
여하튼 중국은 그 시절 1/10이었다.
배달국의 구정법이 중국 주나라의 정전법에 영향을 끼친 것이다.
주나라의 강태공이 정전법이라는 이름하에 부국강병을 위해 1/9로 강화를 한다.
밭구획을 정井자 모양으로 하고 중앙은 공동경작하여 나라에 바치고 사전은 개인이 가져가는 것이다.
개인이 보기에 자신의 경작구 수확은 몽땅 자신의 것이 되므로 세금을 내지 않은 느낌을 받는다. 하지만 실제 공동경작구를 생각하면 세금은 1/9이다.
국가가 엄청나게 많이 가져간다. 백성들은 그만큼 힘들다.
서토西土땅은 그만큼 상극지리가 심하게 작동하였다.
이 힘든 백성들의 나라 상극의 땅을 우리네 유학자들은 왜 동경을 하였을까?
참으로 의아스럽다.
오후5:00
중국드라마 풍등제에 가면이 나온다.
이 중국의 가면 풍등제는
치우천황의 동두철액 투구에서 비롯된 것으로 판단된다.
11월 29일(화)
오후7:50
대한민국이 무역대국이 된 DNA는 가야狗耶가 개척했던 해외경략 뱃길에 있다.
12월 6일(화)
4:00
지금 중국은 온통 우리한민족의 짝퉁이다.
그러면서 지들이 원조라 한다.
짝퉁이 어딜 가겠나?
시진핑은 한민족의 역사를 왜곡하면서까지 지들이 중심이라 한다.
9:50 후천농사는 농토에 농기구를 맞추는 게 아니라,
농기구에 농토를 맞추는 것이다.
농사의 역사는 재배지 논밭(田·水田)을 발전시켜가는 과정이고 벼 품종 육성과정이다.
가장 기본적인 먹거리역사를 내가 알고 있는데 무슨 모든 게 중국에서 시작되었나?
기본 먹거리에서 우리네 한정식을 결코 중국8진미가 당해내지 못한다.
12:00
한정식은 천지의 기를 조화롭게 섭취할 수 있는 총괄식품체계이다.
K-food(식품)는 천지의 자연의 기를 조화롭게 하나로 하아모니하게 아우르는 종합음식체계이다.
중국 그들의 역사가 너무 얕고, 왜곡이 너무 되어 있다.
우리의 전통한정식이 우리네 백성들의 식생활에서 점점 객군 취급받으면서 그 보답으로 정신이 삭막해지고 피폐해져가는 것이다.
식습관은 정신에 영향을 미친다.
우리의 K-food식품을 반드시 주인으로 복권해야 하는 이유이다.
12:10 내가 지금 누굴 원망하나?
현재 내가 아직 살아있다는 자체에 감사할 따름이다.
이 조그만 삶의 종자돈으로 시작할 수 있다는 자체가 나의 존재를 위해 존재했던 모든 존재에 감사할 따름이다.
내가 살아야 비틀어진 역사를 바로 잡을 수 있다!
12:20 오늘 혈압이 최고가 100을 넘어간다.
조혈모세포 이식이후 3년만 처음이다.
좋은 소식이길 바라자.
12:40 나는 천지부모가 애지중지하는 자식의 하나다.
하나님 아버지·어머니 감사드립니다.
보은!
12월 14일(수)
11:00
BCE 4-5세기 만번한 지역이 연에 일시 들어간 이후, 이곳은 우리 손이 오로지 미치지 못하는 그런 지대로 남았다.
일시 전국시대 6국의 하나인 연이 점유하면서, 서토의 독수리들이 지금까지 끝없이 희망을 갖고, 진시왕이 만리장성의 터를 닦았다. 만리장성은 진조연이 흉노족의 침입을 막으로고 쌓았던 장성을 이은 것이다. BCE 3세기 진시왕이 한족이라는 다민족 족속을 하나로 만들면서 독립을 꾀했다. 그리고 지들 땅으로 굳히려고 그 장성들을 연결한 것이다.
2023.6.14. 성기영(010-9534-7766 jsdrice@naver.com)
문의사항이 있으시면 게시판 혹은 문자나 카톡을 이용하시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