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흥 - 윤선도
산수간 바위 아래에 띠풀로 이은 집을 짓고 살려고 하니, 나의 뜻을 모르는 사람들은 비웃고들 있지만, 나같이 어리석은 시골뜨기의 마음에는 이것이 분수에 맞는 것이라 생각하노라.
보리밥과 풋나물을 알맞게 먹은 뒤에, 바위 끝이나 물가에서 실컷 노니노라. 그 밖에 다른 일이야 부러워할 것이 있으랴.
술잔을 들고 혼자 앉아서 산을 바라보니 그리워하던 임이 찾아온다고 한들 반가움이 이보다 더하겠는가 산이 말씀하거나 웃지 아니하여도 나는 그를 한없이 좋아하노라.
누군가가 상공보다 낫다고 하지마는 만승천자라고 한들 이만큼 좋겠는가 이제 생각해보니 소부와 허유가 영악했도다. 아마도 자연속에서 노니는 즐거움은 비길 데가 없어라.
내 천성이 게으른 것을 하늘이 아시고서, 인간 만사를 하나도 맡기지 않으시고, 다만 한 가지 다툴 것이 없는 강산(江山)을 지키라 하시도다.
강산이 좋다고 한들 내 분수로 이렇게 편안히 누워 있겠는가 이 모두가 임금님의 은혜인 것을 이제야 더욱 알겠노라. 하지만 아무리 갚고자 하여도 내가 해드릴 일이 없구나.
[요점 정리]
연대 : 조선인조 때 갈래 : 연시조 성격 : 한정가 제재 : 자연을 벗하는 생활 주제 : 자연에 묻혀 사는 은사의 한정
[내용 연구]
1연 : 안분지족의 삶 2연 : 안빈 낙도의 삶 3연 : 강산과의 혼연 일체 4연 : 강호 한정의 삶 5연 : 자연 귀의의 삶 6연 : 임금의 은혜 찬양
그 모른 : 그 뜻을 모르는 욷는다 한다마는 : 비웃는다고 한다마는 햐암 : 향암, 시골에서 자라 온갖 사리에 어둡고, 어리석은 사람. 여기서는 자기 자신을 겸손하게 일컫는 말 알마초 : 알맞게 슬카지 : 실컷, 마음껏 오다 : 온다고 한들 몯내 됴하 하노라 : 못내 좋아하노라. 삼공 :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을 말하는 삼정승 소부허유 : 고대 중국의 전설상의 인물들(?~?). 허유는 자는 무중(武仲). 요임금이 왕위를 물려주려 하였으나 받지 않고 도리어 자신의 귀가 더러워졌다고 하여 잉수이(潁水) 강 물에 귀를 씻고 지산(箕山) 산에 들어가서 숨었다고 하고, 소부는 그 물을 소에게 먹일 수 없다고 한 전설상의 인물들 임천한흥 : 자연 속에 살아가는 즐거움 성이 : 천성이 아르실샤 : 아셔서 인간만사 : 세상의 모든 일 한일도 : 한 가지 일도 아노이다 : 알겠도다. 해올 일이 : 할 수 있는 일이
[이해와 감상]
1연은 혼란한 정계에서 벗어나 인간을 멀리하여 심산유곡에 들어가 자연과 생활하고 있는 것을 보고, 나의 고매한 진의를 모르는 세인은 이러니 저러니 비웃고 떠들지만, 내 우직한 성격으로 판단하면 이것이 나다운 생활의 본령이라는 것이다. 곧 이 시조의 이면에는, 사회의 현실상과 자기의 이상이 도저히 융화되지 못함을 알 때에는 고인의 도를 밟아 깨끗이 명리를 버리고 거짓과 속임이 없는 자연을 찾아서 정신적으로 평화로운 생활을 하는 것이 좋다는 도피 사상과 결백성이 깃들여 있다.
2연은 유인이 되어 검소하고 담박한 의식에 만족하며, 자연을 마음껏 완상하는 생활의 진취를 갖게 되었다. 그러니 부귀와 공명 따위는 부러워할 것이 없다는 것이다. 극히 평범한 사상을 솔직하게 표현하였다. 그리고 '보리밥, 풋나물'은 한시나 다른 시조에서 보기 드문 말로서, 향토적인 미각을 나타냈을 뿐만 아니라, 고산이 아니면 가능성이 없는 순한국적 감촉을 가진 말이다. 한학자인 고산이 이런 말을 그의 시조 창작상에서 구사하여 그 효과를 십이분 나타내었다는 것은 그가 얼마나 시조에 능수 능란하였던가를 엿볼 수 있게 한다.
3연은 작자가 울적한 마음을 풀고자 혼자 술잔을 기울이고 있다가 우연히 먼 산의 아름다운 경치를 바라보았을 때 경(景)과 의(意)가 융합되는 순간 즉흥적으로 나타난 시상을 노래한 것이다. 대자연에 도취되어 손에 잡고 있던 술잔마저 잊어 버리고 있던 작자의 모습을 상상하게 한다. 여기에서는 자신이 자연 속에 녹아드는 순간 무념 무상의 경지에 이르렀을 뿐만 아니라, 자신도 먼 산과 같이 태연부동하여 만사에 초연 자약할 수 있는 자신을 얻은 심경이라고 보고 싶다. 현세로부터 도피하여 인간과의 교섭을 끊고자 한 고산이었지만, 혼자서 술을 마시고 있을 때에 뜻밖에 사모하던 임이 찾아온다면 반가움이 말할 수 없으리라. 그러나 고산은 말과 웃음을 주고, 받을 수 있는, 인간중에서 가장 사랑하며 그리던 임보다도 말도 웃음도 없는 자연이 좋다고 구가한 것이다. 고산 자신의 말과 같이 그가 자연을 유달리 사랑하는 버릇과 염세기인의 사상이 깃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4연은 자기의 성품이 나태하다고 말하고 인간 만사 중에 무엇이나 이루지 못했다고 자기의 무능 무위를 솔직히 말한 곳에 겸양의 미덕이 숨어 있고, 또 조화의 명수를 좇으면서 조금도 세정을 원망하는 것이 보이지 않는다. 숙명론자인 약점은 다소 있으나, 확고한 신념 아래 사는 사람의 체관적 태도가 엿보인다. 조화의 명수를 좇아 아무도 다툴이 가 없는 자연을 마음껏 완상하고 자연을 지키고 있으리라는 천명의 당위성을 자각하고 있는 모습은 고산같은 인격에게나 있을 법한 뜻깊은 말이라 할 것이다. (이재수의 윤고산 연구에서)
만흥(漫興)은 작자가 병자호란 때(1642년, 56세) , 왕을 호종(扈從:임금이 탄 수레를 호위하여 따르던 일. 또는 그런 사람)하지 않았다 하여 영덕에 유배되었다가 풀려나 해남 금쇄동에 은거하고 있을 때 지은 것인데, 산중 신곡(山中新曲) 속에 있는 전 6수로 된 연시조로서, 귀양살이에서 풀려나 산중생활을 흐뭇하게 즐기는 심정을 읊으면서도 임금님의 은혜를 잊지 않는 지극한 충심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고, 그것을 모두 성은으로 돌리고 있음은 조선 시대 선비들의 공통된 의식 구조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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