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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조주가 선물한 세상 원문보기 글쓴이: 박종태목사
이영훈목사/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 (막 1:2-8)
침례 요한은 사가랴 제사장의 아들로서, 대를 이어 제사장 직을 승계하던 당시의 법도에 따라 제사장이 될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뭇 사람의 존경을 받으며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는 제사장 직을 마다하고, 광야에 나가 ‘주의 길을 준비하라!’고 외치는 자가 됐습니다. 침례 요한은 주의 사자가 되어 예수님께서 오실 길을 미리 닦고 예수님을 맞을 준비를 했던 것입니다.
교회력에 따르면 성탄 전(前) 4주간을 대림절(待臨節) 또는 대강절(待降節)이라고 합니다. 4세기부터 교회는 대림절을 절기로 지키며 예수님께서 이 땅에 육신으로 오심을 기억하고, 동시에 주님께서 다시 오실 날을 기다리고 준비하는 기간으로 삼았습니다. 대림절을 맞아, 우리들도 다시 오실 예수님을 맞을 준비를 하며 거룩하게 이 절기를 보내야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주님 맞을 준비를 해야 할까요?
1. 주의 길을 준비하라
서양에서는 귀빈을 융숭하게 대접할 때 ‘빨간 카펫을 깔아주다(Roll out the red carpet)’라는 표현을 씁니다. 이는 예전에 왕이 어떤 곳을 방문하게 되면, 왕의 선발대가 붉은색 카펫을 깔아 왕도(王道)를 만들었던 황실 법도에서 유래한 말입니다. 이뿐 아니라, 왕의 선발대는 왕이 행차할 길을 먼저 살피고 왕이 탄 마차가 잘 갈 수 있도록 고르지 않은 부분이 있으면 높아진 곳은 낮추고 움푹 파인 곳은 매우는 등 길을 단장하여 왕을 맞을 준비를 했습니다.
성경에는 선지자들이 왕이 되시는 예수님을 맞이하기 위해 왕도를 준비할 것을 말씀하는 본문이 여러 군데에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사야 40장 3절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야훼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고 말했습니다. 말라기 선지자 역시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준비할 것”(말 3:1)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침례 요한은 선지자들의 예언대로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고 주의 길을 예비하는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그는 먼저 ‘죄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침례’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베풀고, 그의 뒤에 오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능력으로 띠 띄우고 오셔서 성령으로 침례를 베푸실 예수님에 대해 전파했습니다. 광야에서 주의 길을 예비하며 예수님을 맞을 준비를 하라고 소리쳤던 침례 요한의 외침은 오늘날 우리의 마음속에서도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그의 소리는 공명이 되어 이 땅에 평화의 왕이요, 인류의 구세주로 오신 예수님을 맞을 준비를 하라고 우리를 재촉합니다.
예수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기 위해서는 먼저 예수님께서 오시는 길목에 놓여 있는 모든 장애물을 거둬내야 합니다. 우리 마음속의 교만과 탐욕의 산들은 낮추고, 미움과 원망과 불평의 골짜기는 메우고, 거친 성격, 과격한 성격은 잘 다듬어서 온유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내 마음에 모시는 것처럼 큰 축복은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 안에만 희망이 있고, 예수님 안에만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일본 동경에서 사역할 때, 어떤 집사님 댁을 심방한 적이 있습니다. 예배를 마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그 집사님께서 ‘목사님이 심방오신다고 하여 온 집안을 깨끗이 청소하고 커튼을 새 것으로 바꿔 달았다’고 말했습니다. 이 말을 듣고 집사님에게서 예수님을 맞을 준비를 하는 마음의 자세가 느껴져 얼마나 감동을 받았는지 모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언제 다시 오셔도 맞이할 수 있도록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의 주인이 되어 살아갑니다. 자신의 유익을 좇으며, 자신의 판단 기준에 입각해 모든 것을 스스로 결정하며 살아갑니다. 때로는 문제에 사로잡혀 고민하다가, 헤어나올 수 없다는 절망감을 느끼고 좌절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절망의 구름이 가득하여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을 때, 우리는 자신을 바라보던 눈을 들어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우리 삶의 주인으로 초청하고, 예수님께서 우리 삶 속에 들어오실 수 있도록 왕도를 마련해야 합니다. 그럴 때, 절망의 구름은 즉시 걷히고 소망의 빛이 우리 삶에 비취게 됩니다.
2. 회개하라
예수님을 맞을 왕도는 회개를 통해 마련됩니다. 침례 요한은 광야에서 회개의 메시지를 선포하고, 회개하는 유대인들에게 침례를 베풀어 메시야를 맞이할 준비를 시켰습니다(마 3:1~2). 예수님께서도 공생애를 시작하시며 첫 메시지로 회개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4:17).
복음은 ‘회개하고 구세주 예수님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회개하지 않고서는 예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 나아오는 길이 곧 회개입니다. 헬라어로 회개를 ‘메타노이아’라고 하는데, 이는 ‘방향을 180도 바꾸다’라는 뜻입니다. 사람이 동(東)으로 가다가 뒤돌아서 서(西)로 가는 것 같이 방향을 완전히 바꾸는 것 즉, 잘못을 뉘우치고 죄를 끊어버리고 잘못된 행실에서 완전히 되돌아서는 것이 진정한 회개입니다. 진정한 회개는 생활양식이 변하는 것이며, 이것이 주의 길을 예비하는 삶입니다. 잠시 잘못했다고 느낀 후 다시 반복해서 죄 짓는 것은 회개가 아닙니다. 그것은 후회 혹은 뉘우침일 뿐이며, 거기에는 구원이 없습니다.
손원일 제독은 해군을 창설하신 분으로 국방부장관과 독일 대사를 역임하셨습니다. 손 제독의 아버지인 손정도 목사님은 독립운동에 앞장서신 분으로, 나라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큰 은혜를 끼친 분이었습니다. 손 제독은 노년에 간암이 발병하여 생명이 위급한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식구들은 손 제독을 위해 성결교회의 박태희 목사님을 모시고 가정에서 집회를 열었습니다. 그런데 박태희 목사님께서 설교 중에 갑자기 손 제독에게 ‘회개하라!’고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갑자기 손 제독은 어린 시절, 신학교에 입학해 목회자가 되라고 하신 아버지 손정도 목사님의 말씀을 어기고 만주로 도망쳐 군인의 길을 간 것이 생각났습니다. 그는 울고불고 하면서 주님 앞에 회개하였습니다. 한참을 회개하고 나자 복수(腹水)로 차올랐던 배가 가라앉으며 병이 깨끗하게 나았습니다. 이후 그는 남은 생애를 전적으로 하나님께 충성하면서 전도에 힘쓰는 자가 되었습니다. 아내 홍은혜 권사님과 함께 모든 해군부대에 교회를 건립하며 해군복음화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진정한 천국을 누릴 수 있는 방법은 회개밖에 없습니다. 주님은 이 세상에 오셔서 천국 문을 열어 주셨습니다. 이 천국을 누릴 수 있는 비결은 오직 회개입니다. 회개하지 않는 한 천국은 없습니다.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천국을 누릴 수 없습니다.
다윗은 시편 32편 3~5절에서 죄를 고백하지 않을 때의 고통을 ‘뼈가 쇠하고 진액이 빠져 여름 가뭄에 마름같이 되는’ 것에 비유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 죄를 고백했을 때 구원의 즐거움이 회복된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의 근본적인 문제는 회개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문제가 많은 교회들의 문제는 회개가 사라지고 서로 상대방의 탓만 하는데 있습니다. 한국교회는 가슴을 찢고 통회자복하며 하나님께 엎드려 회개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성도들은 자신의 신앙생활을 돌아보고 잘못된 신앙의 모습에서 돌아서서 엎드려 통곡하며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안타깝게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사 1:18). 그리고 우리에게 “스스로 씻어 깨끗이 하고 내 목전에서 선을 행하고 정의를 구현하라”고 말씀하십니다(사 1:16~17). 그러므로 죄와 타협하며 살아온 것, 힘써 기도하지 않은 것, 열심히 주님을 섬기지 못한 것, 첫 사랑을 잃어버린 것(계 2:4), 원망 불평하며 살아온 것을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다시 첫 사랑을 회복하고 주님께 돌아오십시오. 그럴 때, 하나님의 계획과 축복이 우리 삶 속에 이루어지며, 이웃이 변화되고, 교회가 살아나며, 나라가 발전하는 역사가 있을 것입니다.
3.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우리가 죄를 회개한 후에는 성령 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의 은혜의 강물 속에 푹 잠기는 성령 침례의 체험을 해야 합니다.
성령 침례는 중생한 자가 주의 사역을 감당하고 승리하는 삶을 살기 위해 성령에 사로잡히는 영적 체험의 출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시기 전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 곧 성령의 침례를 받으라”고 분부하셨습니다(행 1:4~5). 제자들이 이 말씀을 붙잡고 10일 간 간절히 기도하자, 오순절 날 성령이 임했습니다(행 2:1~4).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제자들이 나가서 말씀을 전하자 하루에 3000명, 5000명이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는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예루살렘의 다락방에서 두려움에 떨고 있던 제자들의 마음은 기쁨과 평안으로 충만했습니다.
성령 침례를 받으면 복음을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게 됩니다. 성령은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심어줍니다. 성령은 주님께 충성하게 합니다. 성령은 교회를 사랑하고 섬기게 해줍니다. 성도로 하여금 전도하고 봉사하게 합니다. 성령의 역사가 없이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으며 끝까지 충성할 수도 없습니다.
이렇게 성령 침례로 임하신 성령으로 지속적으로 충만한 상태가 바로 성령 충만입니다. 성령 충만은 주의 일을 능력 있게 감당하도록 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인 성령의 은사와, 신앙이 성숙되어가면서 우리의 내적 성품이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게 하는 성령의 열매가 계속적으로 나타나는 상태입니다. 다시 말해, 성령 충만은 성령의 은사와 성령의 열매로 충만한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을 받으려면, 먼저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성령님을 간절히 사모하며 성령 충만을 주시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날마다 성령님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 들여야 합니다. 또한 우리 심령이 말씀을 사모하며 늘 깨어 기도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그리고 성령의 충만함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성령님께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성령으로 충만할 때 무기력한 생활에서 벗어나 능력 있고 적극적이며 창조적인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오순절 운동의 전 세계적인 확산에 기여한 분으로 윌리엄 시무어 목사님이 계십니다. 흑인으로 성결교 목사였던 시무어 목사님은 1906년 4월 9일 한 가정집에서 집회를 가졌는데, 그곳에 사도행전에 기록된 것과 같은 강력한 성령의 임재가 나타났습니다. 당시 로스앤젤레스 타임즈(Los Angels Times)는 1906년 4월 19일자 기사에서 그 집회가 ‘마치 지진과 같았다’고 표현했을 정도였습니다. 소문은 삽시간에 퍼져 많은 사람들이 몰려왔고, 시무어 목사님은 아주사(Azusa) 거리의 한 교회 건물을 빌려 집회를 계속했습니다. 매 집회에 엄청난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 귀신이 떠나가고 병을 고침 받으며, 방언을 말하고 예언하며 방언과 예언을 통역하는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찬양하고 기도하고 설교했던 집회는 매일 아침 10시부터 밤 12까지 이어졌고, 7년 동안이나 계속됐습니다. 미국 전역과 캐나다, 세계 각국에서 온 5억 명 이상의 사람들이 아주사 거리의 집회에 참석하였습니다. 이들은 이후 자기 고향으로 돌아가 오순절 성령 운동을 전파했고, 그로인해 오순절 성령 운동은 1세기 만에 전 세계 삼분의 일에 해당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영향을 미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성령 시대입니다. 21세기의 소망은 성령 운동입니다. 우리는 성령 없이 어떤 일도 능력 있게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 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초대교회에 임했던 성령의 역사가 아주사 거리에 임했고 여의도순복음교회에도 임했습니다. 그 결과 우리 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과 살아계심이 나타났습니다. 이러한 성령의 역사가 멈춰서는 안 됩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까지 성령의 불은 활활 타올라야 합니다. “주여! 날마다 우리를 성령으로 충만케 하여 주옵소서. 성령의 능력으로 교회가 큰 부흥의 역사를 이루게 하옵소서!”
우리는 모두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첫째도 성령 충만, 둘째도 성령 충만, 마지막도 성령 충만입니다. 여러분 모두 예수님의 오심을 준비하면서 철저히 죄를 회개하고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하나님 앞에 귀하게 쓰임 받는 일꾼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