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만이 교만이 되지 않는 공동체
오늘은 이런 질문을 받았다.
“자신이 교만하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나요? 저는 교만하지 않은데 말이죠.”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 마태복음 11:29
누군가에게 교만하다는 말을 들으면 아무리 내가 교만하지 않다라고 생각해도 교만한 것이다.(누군가에게 교만하다고 말하기도 쉽지는 않다)
왜냐하면 교만은 상대적인것으로서 타인이 느끼는 것이기 때문이다.
질문에 대한 결론부터 말하자면 타인과 나를 ‘같은 선상 즉 수평적 관계‘로 두면 교만하지 않을 수 있다. 교만이라는 상태 자체가 나를 타인과 수직적 관계로 두고 나를 타인보다 높게(낫게) 여김으로써 건방지게 굴고 게으름을 피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 야고보서 4:6(잠언 3:34)
참고로 필자는 스스로 교만하다고 공동체에 선언하는 것을 즐겨한다. 그렇게함으로써 공동체에게 나라는 사람은 당신들보다 못한 보잘 것 없는 사람임을 일러두게 된다. 나 스스로는 겸손해질 수 없음을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참고로 필자만의 방법임을 분명히 하는 바이다) 이렇게하면 공동체 속에서 한결 나답게 관계할 수 있다. 겸손하려고 포장하지 않아도 된다. 되려 건방지거나 게으르지 않으려고 단도리도 칠 수 있다. 만약 건방지거나 게으른 태도를 보이면 진짜 교만한 것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교만한 것보다 포장된 겸손을 더 싫어한다. 그것이 오히려 그를 제대로 보지 못하게 만드는 원인이 되기 십상임으로.
교만한 자는 예수에게 배우면 겸손해 질 수 있다.
이유는 간단하지 않는가!
그 어느 누가 예수보다 높은 곳을 차지할 수 있겠느냔 말이다.
낮은 자리로 내려오면 참 편한데…수평적 관계에서는 어깨동무를 할 수도 있고,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어줄 수도 있다. 쉼이다. 힘이다. 위로다.
예수는 그 시작이 구유였다. 가장 낮은 자리인 바로 그 ‘Incarnation - 성육신’ 참 신이자 참 인간이신 ’예수’
그런데 인간은 하나님에게도 교만한 존재이다.
하나님보다 높아지려고 하는 교만을 넘어 아예 하나님이 없다라고까지 하는 죄를 짓는단 말이지.
악인은 그의 교만한 얼굴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이를 감찰하지 아니하신다 하며 그의 모든 사상에 하나님이 없다 하나이다 - 시편 10:4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 그들은 부패하고 그 행실이 가증하니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 시편 14:1
교회란 교만이 교만이 되지 않는 희한한 공동체이다.
오히려 교만이 실력이 되고 섬김이 되며 희생이 되어야 하는 공동체여야 한다는 말이다.
그들이 잠잠하니 이는 길에서 서로 누가 크냐 하고 쟁론하였음이라 예수께서 앉으사 열두 제자를 불러서 이르시되 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 사람의 끝이 되며 뭇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하시고 - 마가복음 9:34~35
예수의 제자들은 십자가의 죽음과 무덤의 부활을 경험하기전 서로에게 교만했다. 네가 크냐? 내가 크다!로 서로 주저 앉히고, 끌어 내리고, 그러다 예수님께 혼나고...
서로 마음을 같이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하지 말라 - 로마서 12:16
그러나 그들이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성령의 사람들이 되었을 땐 어떠했는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 마가복음 10:43~45
그들에게서 예수가 보였다. 죄인의 구원을 위하여 예수처럼(하나님의 형상과 모양 = 사랑, 로마서 5:8) 자신의 목숨까지 내어주는!
있는 모습 그대로도 서로에게 쉼이 되고, 힘이 되고, 위로가 되는 그런 공동체(교회)에서는 교만이, 교만이 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