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그릇 心椀과
함께 배우는 불교
제 1247편
* 불교(佛敎)
역대 선사(歷代 禪師(祖師))
오도송(悟道頌) 및
선시(禪詩)
오도송(悟道頌)이란 무엇인가 ?
불교(佛敎)를
공부(功夫)하는
수행자(修行者)가
자신의 깨달음을 읊은
선승(禪僧)의 게송(偈頌)
가운데(中) 하나를
오도송(悟道頌)
이라고 한다.
오도송(悟道頌)과
열반송(涅槃頌)은
게송(偈頌)의 하나로써
구체적으로
비교해서 설명하면
고승(高僧)이
자신만의 깨달음(覺)을
노래(歌, 句)한 것이
바로
오도송(悟道頌)이며
고승(高僧)이
자신의 임종(臨終) 전에
남겨놓고 가는 노래(歌, 句)를
열반송(涅槃頌)이라고
한다.
게송(偈頌)이란
불교의 가르침(敎義)을
함축(含縮 집약)하여
표현(表現)하는
운문체(韻文體)의
짧은 시구(詩句 문자)를
말하는데
곧 선시(禪詩) 내지
또는 선어(禪語 문장)를
이르는 말이다.
본래(本來)
게(偈)와 송(頌)은
같은 의미로
《게(偈)》
라는 글자(字)는
산스크리트어(梵語)
《가타(gatha)》의
음을 빌려와(音借) 따서
만든 말이고
《송(頌)》
이라는 글자(字)는
《가타(gatha)》를
한문(漢文)으로 번역한
것이다.
이렇듯
자신의 깨달음(正等覺)을 읊은
선승(禪僧)의 게송(偈頌)
역대(歷代)
조사(佛祖師 선사)
스님(高僧)들의
게송(偈頌)
즉,
오도송(悟道頌)과
열반송(涅槃頌)은
오랫동안
수련과정(修練過程)을
통해 함축된 의미로
세속(사바세계)의
사람(大衆)들에게
무엇인가를 전(傳)하고
말(說法 이야기)하고저
하는 것이며
후세(후학)들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역사적(歷史的)
문헌 기록상(文獻記錄上)
오도송(悟道頌)을
가장 먼저 남긴 이(僧侶)는
조동종을 일으킨
동산 양개(洞山良价,
807∼869) 선사(禪師)
이다.
생사일여(生死一如)의
구분이 부질없는 일임에야
사람들은
태어남을 기뻐하고
헤어짐은 슬퍼한다.
오랜 세월
훌륭한 선승(禪僧)이나
선사(禪師) 스님들의
깨달음의 길(佛道行)이
매우 힘들고 어려우며
지난(至難)하듯이
역대(歷代)
조사(佛祖師 선사)
스님(高僧)들의 남겨진
오도송(悟道頌)과
열반송(涅槃頌)은
일반인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이렇듯
깨달음의 노래는
다시 한번
자신(수행자)의 삶(人生)을
돌이켜보게 하고
느슨해졌던 마음을
추스리게 한다.
여기
역대(歷代)
조사(佛祖師 선사)
스님(高僧)들의
오도송(悟道頌)과
열반송(涅槃頌)을
올려놓으니
그 깊은 뜻이야
어찌 우리가 모두 다 헤아려
알 수 있겠는가마는
행간(行間)의
곳곳(處處)에 숨겨져 있는
깊고 깊은 심오(深奧)한 뜻을
함께 발견(發見)하고
공부(功夫)하며
오늘을 사는
지혜(반야 보리 광명 智慧)를
찾아보시기 바램해 본다.
본론(本論)
불교(佛敎)
역대 선사(歷代 禪師, 祖師)
선시(禪詩)와
임종게(臨終偈) 및
오도송(悟道頌) 설해(說解)
"
임종게(臨終偈)
열당 조은(悅堂祖誾) 선사
緣會而來 연회이래
緣散而去 연산이거
撞倒須彌 당도수미
虛空獨露 허공독로
인연(因緣)이 되니 왔다가
인연이 다하여 돌아 간다네.
수미산 후려쳐 꺽어 버리니
허공이 저홀로 드러난다.
"
출전(出典) :
남송원명선림승보전 8 권
(南宋元明禪林僧寶傳) 8卷
위(上記)의
시(詩, 게송, 禪詩)를
지은 사람(作者)은
열당 조은(悅堂祖誾) 선사
스님(僧 沙門)이다.
얼당 선사(悅堂禪師)
조은(祖誾, 1234-1308)
스님(僧 沙門)은
강서성에서 태어났다.
중국 불교
임제종(臨濟宗)의
선승(禪僧, 大禪師)으로서
13세에 출가(出家)하여
개석지붕(介石智朋) 선사의
법(法脈)을 이었다.
※
임제종(臨濟宗)은
9세기
중국 당(唐) 나라의
임제 의현(臨濟義玄) 스님에
의해서 창시(創始)된
중국 불교
선종 5가(禪宗五家)의
한 종파(宗派)이다.
임제(臨濟義玄) 스님이
만든 종파(宗派)라고 하여
《임제종(臨濟宗)》이다.
한국으로 전파되어
신라(新羅)
시대 후기(後期)에
선종(禪宗)이 전래되면서
개창되기 시작하여
고려高麗) 초(初)에
이르는 시간 동안에 성립한
9개의 선문(禪門)
즉,
구산선문(九山禪門)으로
발전(發全)하였고
일본(日本)으로 전파되어
일본 임제종(臨濟宗)의 성립에
영향을 주었다.
※
각설(恪說)하고
열당 조은(悅堂祖誾)이
출가(出家)를 한 후에
개석 지붕(介石智朋) 선사를
만나게 되었는데
"
그대는 어디에서 왔으며
그 곳의 불교는 어떠한가 ?
"
물었다.
열당 조은(悅堂祖誾)이
대답(對答)했다.
"
긴 다리가
울퉁불퉁한 호숫가를 나누고
기둥이 호수 한가운데까지
들어 올립니다.
개석 지붕(介石智朋) 선사가
다시 물었다.
"
하늘과 구름이 만나면
그 흔적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가 ?
"
열당 조은(悅堂祖誾)이
대답(對答)했다.
"
황금시계가 움직이자
눈 앞의 모든 것(諸法)이
훤히 드러나 있습니다.
"
개석 지붕(介石智朋) 선사가
말했다.
"
지혜로운 자(賢者)의
침묵(沈默)에 대한 의견은
되도록
빨리 표현하는 것이
좋은 것이니라.
"
열당 조은(悅堂祖誾)이
다시 대답(對答)하려고 할 때
개석 지붕(介石智朋) 선사가
그(열당 조은)를 때렸다.
이러한
빈번한 만남과 접촉 후
열당 조은(悅堂祖誾)은
개석 지붕(介石智朋) 선사를
매우 존경(尊敬)하게 되었고
감히 올려다 보지 않았다.
참고적으로
개석 지붕(介石智朋) 선사는
진계(秦溪) 사람으로
성품(性品)이
매우 고매(高魅)하고
간결하였다.
어느 날 한 스님이 물었다.
"
보검(寶劍)이
칼집에서 나오기 전엔
어떻습니까 ?
"
"
소쩍새 우는 곳에
꽃망울 널려있다.
"
"
칼집에서 나온 뒤에는
어떻습니까 ?
"
"
사람으로 하여금
길이 이광(李廣) 장군을
생각케 한다.
"
"
칼집에서
나왔을 때와
나오지 않았을 때는
어떻습니까 ?
"
"
보검(寶劍)은
너의 손에서 떠난 지
이미 오래 되었는데
너는
이제서야 뱃전에다
잃은 곳을 새기는구나.
"
여름 결제(夏安居)가
끝나는 날 야참(夜參)법문을
하였다.
"
90일 동안 꼼짝하지 않으니
그물 속 둥지에 잠든 새요
석달 동안의 안거는
무덤을 지키는 여우로다.
삶과 죽음이
이르지 않는 곳에서
머리 셋
(불.법.승, 삼보)에
팔뚝 여섯개(육바라밀)인
귀신(魔軍 마구니)이
원각(圓覺 깨달음)의
가람(寺刹, 절집, 승가람마)을
뒤엎은 일을 본다해도
그 것은 말뚝을 안고
헤엄(방황)을 치는 격이다.
운황산 앞,
두 그루 나무 아래
90일 동안에
알맞게 바람 불고
알맞게 비가 내려
하루 스물네 시간
적어도 더할 수 없고
많아도 뺄 수 없는
일년 365일(三百六十五日)을
날마다 안거하고
때때로 자자(自恣)하여
둥근 건 둥글고
네모난 건 네모나며
긴 것은 길고
짧은 것은 짧다.
그렇다해도
깨끗한 땅에 먼지를 일으킴을
면치 못하리니
결국 어찌해야 하겠는가 ?
붕조(鵬鳥)가
나래(날개 翼)를 펴니
하늘이 아득하고
큰 자라(거북)가 몸을 돌리니
바다(大慈大悲海)가 비좁도다.
"
개석 지붕(介石智朋) 선사의
대중법문은 대개 이와 같았다.
노년(老年)에는
항주 냉천사(冷泉寺)에
머물면서
그의 암자에
《청산외인(靑山外人)¤
이라는 편액을 걸었으며
경정(景定,
1260~1264) 연간에
승상(丞相)
추학 가공(秋壑賈公)이
더욱 부처님의 법(佛法)을
믿고 따르며 숭상(崇上)하여
개석 지붕(介石智朋) 스님을
정자사(淨慈寺)의
주지에 임명하도록 주선하였고
그 후
백장 회해(淮海原肇) 스님이
법석(法席)을 이었다.
두 분 모두
간동(澗東)에서 일어난
분(人物)들이다.
ㅡㅡㅡㅡㅡㅡㅡㅡ
※
원문을
해석함에 있어서
지극히 개인적인 견해(見解)와
해석(解釋)으로
오역(誤譯)
오판(誤判)한 부분도
분명하게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선후배(先後輩)
제현(諸賢)님들 께서는
언제든지
글 내용 가운데
잘못 된 부분은 옳고 바르게
지적(指摘)해 주시고
새로운 가르침을 주시기를
간절히 바램해 본다.
- 마음그릇 心椀 드림 -
ㅡㅡㅡㅡㅡㅡㅡㅡ
마음그릇 心椀과
함께 배우는 불교
《== 다음편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