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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왕의 믿음의 처음과 나중
성경본문: 역대기하 14: 9-14, 16: 7-13
14:9-14
9 이스라엘의 왕 요아스가 유다의 왕 아마샤에게 사람을 보내 이르되 레바논 가시나무가 레바논 백향목에게 전갈을 보내어 이르기를 네 딸을 내 아들에게 주어 아내로 삼게 하라 하였더니 레바논 들짐승이 지나가다가 그 가시나무를 짓밟았느니라
10 네가 에돔을 쳐서 파하였으므로 마음이 교만하였으니 스스로 영광을 삼아 왕궁에나 네 집으로 돌아가라 어찌하여 화를 자취하여 너와 유다가 함께 망하고자 하느냐 하나
11 아마샤가 듣지 아니하므로 이스라엘의 왕 요아스가 올라와서 그와 유다의 왕 아마샤가 유다의 벧세메스에서 대면하였더니
12 유다가 이스라엘 앞에서 패하여 각기 장막으로 도망한지라
13 이스라엘 왕 요아스가 벧세메스에서 아하시야의 손자 요아스의 아들 유다 왕 아마샤를 사로잡고 예루살렘에 이르러 예루살렘 성벽을 에브라임 문에서부터 성 모퉁이 문까지 사백 규빗을 헐고
14 또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 곳간에 있는 금 은과 모든 기명을 탈취하고 또 사람을 볼모로 잡고서 사마리아로 돌아갔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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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13
7 아하스가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에게 사자를 보내 이르되 나는 왕의 신복이요 왕의 아들이라 이제 아람 왕과 이스라엘 왕이 나를 치니 청하건대 올라와 그 손에서 나를 구원하소서 하고
8 아하스가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 곳간에 있는 은금을 내어다가 앗수르 왕에게 예물로 보냈더니
9 앗수르 왕이 그 청을 듣고 곧 올라와서 다메섹을 쳐서 점령하여 그 백성을 사로잡아 기르로 옮기고 또 르신을 죽였더라
10 아하스 왕이 앗수르의 왕 디글랏 빌레셀을 만나러 다메섹에 갔다가 거기 있는 제단을 보고 아하스 왕이 그 제단의 모든 구조와 제도의 양식을 그려 제사장 우리야에게 보냈더니
11 아하스 왕이 다메섹에서 돌아오기 전에 제사장 우리야가 아하스 왕이 다메섹에서 보낸 대로 모두 행하여 제사장 우리야가 제단을 만든지라
12 왕이 다메섹에서 돌아와 제단을 보고 제단 앞에 나아가 그 위에 제사를 드리되
13 자기의 번제물과 소제물을 불사르고 또 전제물을 붓고 수은제 짐승의 피를 제단에 뿌리고
14 또 여호와의 앞 곧 성전 앞에 있던 놋 제단을 새 제단과 여호와의 성전 사이에서 옮겨다가 그 제단 북쪽에 그것을 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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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저는 여러분에게 <아사 왕의 믿음의 처음과 나중>이란 제목으로 말씀을 증거 하겠습니다.
위대한 이스라엘의 왕 솔로몬이 죽었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의 마지막 생애 속에 보면 그가 그의 많은 아내들의 잘못된 말을 듣고 우상과 사신을 섬겼습니다.
그 결과로 하나님께서 진노하셔서 그 자손 대에 나라가 나뉘어지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북방 이스라엘과 남방 유다로 나라가 갈라지게 되고 만 것입니다.
그런데 이와 같이 나라가 분리되고 난 다음에 유다에서 제 3대 왕의 아사라는 훌륭한 임금님이 즉위하게 되었습니다.
아사 왕은 여호와를 섬기는 신앙부흥을 적극적으로 추진한 임금님이었습니다.
그는 먼저 그 온 전국에 다 사람을 보내어서 이방제단과 산당을 없이하고 주상을 회피하며 아세라신을 다 찍어 없앴습니다.
그 나라 전체 우상과 사신을 섬기는 큰집이 없도록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그 뿐 아니라 온 전국에 임금이 직접 동행해서 나님 여호와를 구하며 율법과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행하도록 강조를 했습니다.
그와 함께 국방을 튼튼히 해서 헐어진 성벽들을 다시 재건하고 또 새롭고 튼튼한 성벽들을 쌓았었습니다.
이렇기 때문에 아사 왕은 크게 유다 나라를 부흥케하고 하나님께서도 아사 왕의 일에 만족하게 여기셔서 주님께서 축복을 주고 은총을 주었습니다.
바로 그때였었습니다.
에티오피아의 대왕 세라가 백만 대군을 거느리고 병거 삼백 승을 가지고서 유다를 침략해 들어왔었습니다.
이래서 아사 왕은 군대를 거느리고 이 에티오피아 세라의 백만 대군을 맞이하여 싸우러 나갈 때 도저히 인간적인 계산으로서는 싸워서 이길 승산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 에티오피아의 백만 대군 앞에서 소리를 높여 하나님께 외쳐 기도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역대하 14장 11절에 보면 그의 기도가 기록돼 있습니다.
"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 여호와여 강한 자와 약한 자 사이에는 주밖에 도와줄 이가 없사오니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를 도우소서.우리가 주를 의지하오니 주의 이름을 의탁하옵고 이 많은 무리를 치러 왔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우리 하나님이시오니 원컨대 사람으로 주를 이기지 못하게 하옵소서"
이와 같이 간절히 부르짖어 기도한 결과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으시고 주께서 에티오피아의 군대를 치매 이 유다왕 아사는 에티오피아의 백만 대군을 쳐서 한사람도 고향으로 살아서 돌아가지 못하게 다 진멸하고 병거 삼백 승을 파괴했습니다.
대 승리를 얻어서 그 전리품은 산을 쌓아 놓은 것처럼 그렇게 많았었습니다.
이래서 대 승전을 하여 영광을 돌리고 나팔 불고 북 치고 춤추며 그들은 유다로 돌아왔습니다.
온 국민이 함께 모여서 하나님께 감격하고 감사하여 무려 소 700마리와 양 7천 마리를 가지고서 여호와 하나님께 거대한 제사를 드렸었습니다.
그리고 전 국민이 합쳐서 진심으로 여호와를 찾기로 일대 결단을 내리고 누구든지 여호와를 경외하지 않은 사람은 죽이기로 작정했습니다.
어느 정도 아사 왕이 결심하고 여호와를 섬기기로 적정했던지 그 어머니 태후가 이날 이후에 아세라상을 만들었습니다.
그러자 그 어머니 태후의 위를 폐하고 아세라상을 찍어서 기드론 시냇가에 가서 물에 떠내려보냈었습니다.
이와 같이 하매 하나님께서 하늘 문을 여시옵시고 축복을 해주셔서 그 나라가 태평성대하고 국민들이 잘 살고 하는 일마다 잘 되었었습니다.
그래서 무려 20년 동안 어떠한 이웃나라도 감히 유다를 넘나보지 못하고 20년 태평성쇠를 누렸습니다.
여기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20년 동안 아무 일이 없이 나라가 부강하고 태평성세하니 그만 아사가 신앙이 시들해버리고 만 것입니다.
20년이 지나고 난 다음에 그 북방인 이스라엘 왕 바아사가 군대를 가지고서 유다를 침략하니까 이제는 옛날에 에티오피아의 군대에 비교하면 아무 것도 아닌데도 불구하고 마음속에 두려움이 들어와서 여호와께 부르짖거나 기도하지 아니하고 그는 곧장 뛰어가서 성전에 있는 금과 은, 왕궁에 있는 금, 은을 취하여 가지고서 이것을 아람 왕에게 보내서 아람 왕 벤하닷의 군대를 고용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을 치기 위해서 그래서 이스라엘이 그 벤하닷과 싸운다고 해서 유다 치는 것을 그치고 만 것입니다.
그러자 그 나라에 선지자가 와서 왕을 꾸짖었습니다.
“ 왕이여, 어떻게 그렇게 망령한 일을 하느냐?20년 전에 에티오피아의 백만 대군이 왔을 때 당신이 군대가 많아서 이겼느냐?무장이 많아서 이겼느냐? 여호와를 의지했기 때문에 여호와께서 돌봐주셔서 이겼지 않느냐?그런데 이제 와서 어찌하여 망령되게 성전의 금과 은, 왕궁의 근과 은을 취하여서 믿지 아니하는 저 아람 왕을 돈주고 사서 이스라엘을 치게 해서 이 난국을 모면하려고 하느냐"
그러자 아사는 대노해서 이 선지자를 잡아 가지고서 옥에 가두고 백성들 중에 몇 사람을 학대했습니다.
그런 일이 있고 난 다음에 3년 후에 아사의 발에 병이 났는데 이 병이 굉장히 심했습니다. 아마 요사이 제가 추측 건데 발에서 생긴 암인가 봅니다. 백방으로 의사를 불러서 치료해도 낫지를 않았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 2년 후에 아사는 쓸쓸히 죽었습니다.
성경은 그 상황을 역대하 16장 12절에 기록해 놓았습니다.
"아사가 왕이 된 지 삼십 구 년에 그 발이 병들어 심히 중하나 병이 있을 때에 저가 여호와께 구하지 아니하고 의원들에게 구하였더라" 이 정도로 신앙이 그만 타락해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찾는 이 믿음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그에게 정죄해서 말하기를 “발에 병이 났었을 때 여호와를 찾지 아니하고 의원만 찾다가 그는 죽어버리고 말았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면 왜? 이렇게 위대한 아사 왕의 신앙이 그 나중에 가서 이렇게 비참하게 신앙이 타락되고 신앙을 잃어버리고 비참하게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는가?
그 이유를 우리가 알아보고 우리 스스로의 마음에 경계를 가지는 것이 필요한 것입니다.
첫째로, 아사 왕의 신앙이 타락했던 이유는 20년 태평 세월에 하나님을 찾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여러분 우리들의 신앙생활에 중대한 문제인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늘 축복을 간구합니다.
“주님이여 평안을 주시옵소서, 마음의 평안, 가정의 평안, 생활의 평안, 그리고 부귀영화를 주시옵소서.
이런 기도를 간구합니다.
그러나 실상은 하나님께서 하늘 문을 열고 축복을 부어주면 그래서 가내가 평안하고 생활에 부요하게 되면 사람들은 의례히 하나님을 떠나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를 지나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땅에 들어가서 태평성세하게 잘 살 때 그들은 여호와를 버리고 이방 신을 따라가 버리고 만 것입니다.
오늘날도 여러분 세계 정황을 보십시오.
어느 나라, 어느 민족 치고 어려울 때는 있는 힘을 다하여 여호와를 찾다가 어려움이 지나가고 나락 k평안하고 백성들이 잘 살게되면 사람들은 하나님 섬기는 것을 그치고 그만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 세상의 자랑을 따라 줄달음질을 치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옛날에 그렇게 복음이 성황 하던 구라파를 보십시오.
그 나라가 잘 살게 되고 평안하게 되자 예수 그리스도는 버리고 하나님은 떠나버리고 하나님의 성전들은 텅텅 비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이것이 옛날이나 오늘이나 우리가 떨어질 가장 무서운 함정인 것입니다.
사람이 괴롭고 고통스러울 때 하나님을 저버리지 않습니다.
평안하고 좋은 환경에서 사람들은 하나님을 버리고 세상으로 흘러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여러분 우리에게 다가오는 고난은 신앙의 밥이라는 것을 알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밥을 먹지 아니하고 건강을 유지할 수 없는 것처럼 신앙에는 종종 고난의 밥을 먹고 괴로움의 물을 마셔야 사람들이 회개하고 깨어지고 하나님을 찾아서 그래서 신앙이 튼튼해진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반드시 우리 예수 믿는 신앙생활 가운데 우리의 환경에 다가오는 고난이 우리에게 늘 손해만 나는 것이 아닙니다.
이러므로 하나님께서는 한편으로 우리에게 은총과 축복을 주시면서 참으로 사랑하는 자녀는 한편으로 고난과 괴로움을 허락하여 주시므로 말미암아 이 고난과 괴로움을 통하여 자기가 깨어지고 하나님께서 부르짖어 하나님을 찾도록 만들어주시는 것입니다.
육신의 환경의 평안은 하나님을 찾을 필요를 느끼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도 현실적인 생활 가운데 등 따스하고 배부르고 아무런 고난도 체험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누가복음 6장 24절로 26절에 보면 "그러나 화 있을찐저 너희 부유한 자여 너희는 너희 위로를 이미 받았도다 화 있을찐저 너 이제 배부른 자여 너희는 주리리로다 화 있을찐저 너희 이제 웃는 자여 너희가 애통하며 울리로다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화가 있도다 저희 조상들이 거짓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
여기에서 예수님께서는 지금 벌써 부유하고 지금 벌써 배부르고 지금 좋다고 웃고 지금 모든 사람들이 다 와서 칭찬을 받고 그래서 현실에 만족하는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
고 말씀하십니다.
왜? 이런 사람은 현실은 만족하고 집착해서 그만 아사 왕처럼 20년 태평세월에 하나님을 잃어버리고 기도하는 법을 잃어버리고 영적으로 죽어버린 이런 위험 속에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 오늘날 우리의 환경 가운데 비오는 날 있고 바람 부는 날 있고 추운 날 다가오고 그래서 슬픔이 다가올 때 반드시 하나님께서 우리를 버렸기 때문에 우리가 이런 고난 당한다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사랑하는 자를 불러서 채찍하고 징계하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의 생활 가운데 반드시 좋은 일만 계속 다가오면 안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라”고 말했는데 영혼이 잘되려면 우리에게 햇빛 비치는 날만 있어서는 안됩니다.
평안한 날만 있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영혼이 잘되기 위해서는 비오는 날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바람 부는 날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시험과 환난이 다가와서 우리가 눈물 흘리며 금식하며 주님께 몸부림치며 부르짖어 기도하는 이러한 날이 우리에게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고난은 여러분과 나를 멸하기 위해서 오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의 나의 삶의 밥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아사 왕이 타락한 이유는 20년 동안 너무 태평세월을 지나는 동안에 그만 그들은 아침에 늦게 일어나며 저녁에 늦게까지 연락을 취하고 그리고 이 세상에 취해서 너무 세상만 즐기다가 신앙을 잃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둘째로, 또 아사 왕이 타락한 이유는 문제에 부딪쳤을 때 인간적인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신앙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기도하는 법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이제 문제가 오니까 하나님의 신령한 믿음의 방법을 취하지 아니하고 인간적인 욕심의 방법을 취하였습니다.
갑자기 유다왕이 쳐들어오니까 하나님 앞에 나와서 부르짖어 기도할 것을 잊어버리고 허둥지둥하여서 자기의 명철을 이용했었습니다.
인간의 수단으로서는 내 힘으로 유다를 지킬 수가 없었기 때문에 이웃인 아람 왕 벤하닷에게 성전에 있는 하나님께서 요된 헌금도 가리지 아니하고 왕국에 있는 헌금도 가리지 아니하고 이것을 취하다가 벤하닷에게 주어서 "당신의 아버지와 우리의 아버지가 서로 한 동맹을 하고 화친한 것처럼 당신과 나도 화친하자. 그러므로 이 은, 금을 드릴 테니 이걸 받아서 이스라엘의 병정을 쳐다오. 그래서 군대가 철수하게 해다오."
이렇게 인간적인 간청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선지자 하나니가 와서 엄격하게 꾸짖었습니다.
역대하 16장 7절로 9절에 보면 "때에 선견자 하나니가 유다 왕 아사에게 나아와서 이르되 왕이 아람 왕을 의지하고 왕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지 아니한 고로 아람 왕의 군대가 왕의 손에서 벗어났나이다. 구스 사람과 룹 사람의 군대가 크지 아니하며 말과 병거가 심히 많지 아니하더이까? 그러나 왕이 여호와를 의지한 고로 여호와께서 왕의 손에 붙이셨나이다.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를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 이 일은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은즉 이후부터는 왕에게 전쟁이 있으리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아사 왕이 신앙이 타락해서 문제를 당하였을 때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께 의지하지 아니하고 인간적인 수단과 방법을 쓴 것에 대해서 엄히 경고한 것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세상 사람과 다릅니다.
우리는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어 하나님의 사랑의 하늘 나라로 옮겨졌습니다.
성경에 예수께서 말씀하기를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고 하였었으며 성경에 말씀하기를 "나의 의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는 세상 사람과 다릅니다.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런 지혜와 지식이나 경험을 따라서 살아서는 안됩니다.
그런 것을 참작은 할지 몰라도 우리가 최후의 문제의 결단을 내릴 때는 하나님께 나아와서 말씀과 성령으로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말씀을 따라 살아야 되고 우리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말씀과 함께 믿음으로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세상 속에 우리가 파묻혀 사니까 우리의 환경에는 역사적인 변천 그리고 국가 제도적인 변천 경제적인 흐름과 변천 이런 것이 우리에게 심각한 영향력을 미칩니다.
우리의 사고에 영향력을 안 미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런 것에 빠져 들어가서 그만 이 세상과 이 세상이 가는 그런 길로 생각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과 나는 매일같이 성경을 읽고 매일같이 기도하고 성령의 인도를 받아서 말씀으로 살고 믿음으로 사는 결단에 이를 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쉽지 않습니다.
말씀으로 살고 믿음으로 살면 여러분의 가장 가까운 사람들까지라도 여러분을 비난하고 조소하고 손가락질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이러한 비난과 조소를 두려워하지 말고 단호하게 하나님의 말씀 위에 서서 결단을 내려야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와 같은 하나님의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잠언서 3장 5절로 7절에 보면 "너희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찌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찌어다"
이것이 여러분 우리 믿는 사람하고 믿지 않는 사람과 삶을 살아가는 다른 방향인 것입니다. 안 믿는 사람이야 자기를 의지하고 자기 명철과 지혜와 지식을 의지하지 그리고 자기 스스로 지혜롭게 결정해서 나갑니다.
그러나 믿는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과 나는 하나님의 지혜와 하나님의 지식과 판단력과 명철을 가지고서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내 마음대로 하지 말고 범사에 여호와를 인정하고 그 발 앞에 엎드려 기도하고 여호와께서 여러분과 내 마음속에 말씀하도록 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과 인생을 동업합니다.
성경은 말씀하기를 "돈을 탐하지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 알아라. 내가 네게 말하노니 과연 내가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고 과연 내가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인생을 동업하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의 생활 가운데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가 다가오더라도 아사와 같이 그만 황망히 미처 하나님께 기도하고 의지하지도 아니하고 인간의 수단과 방법을 취하여 인간적인 일로써 문제를 해결하면 오늘날도 하나님은 그 사람을 미워하십니다.
하나님은 슬퍼하십니다.
그러한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떠나고 저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 여러분께서는 하나님 입으로 나오는 말씀으로 살고 하나님을 의인으로서 믿음으로 살아서 여러분의 길을 항상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의 명철로써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로, 아사 왕이 타락한 것은 아사 왕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타락했습니다.
여러분 역대하 16장 10절에 보면 “아사가 노하여 선견자를 옥에 가두었으니 그는 그 말에 크게 노하였음이라 그때 아사가 또 몇 백성을 학대했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못하면 하나님 성령께서 선지자 입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혹은 여러분이 기도할 때 성령이 고요하고 잠잠하게 여러분 영속에 말씀하십니다.
하나님 말씀을 읽을 때 말씀이 두날 가진 금같이 여러분 속에 들어가서 심장과 골수를 쪼개면서 말씀하고 여러분께서 교회 출석할 때 강단에서 설교하는 목사의 입을 통해서 갑자기 여러분에게 마치 벌거벗은 것처럼 여러분의 잘못을 드러내놓는 것입니다.
이럴 때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올 때 괴롭지마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회개할 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할 때 언제나 좋은 것만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잘못된 것은 잘못되었다고 말합니다.
좋은 의사는 여러분 진실로 우리가 병들었을 때 병들었다고 가르쳐 주는 것이 좋은 의사인 것입니다. 병이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건강하다. 당신은 괜찮다. 당신은 산다"고 거짓말을 해서 그 사람으로 하여금 거짓을 믿고 준비 없이 죽어가도록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귀에 듣기 좋은 소리만 하지 않습니다.
잘못된 것은 예리하게 하나님께서 우리 심령에 말씀의 금을 넣어서 찢을 건 찢고 수술할 건 수술하는 것입니다.
아프기 때문에 그러므로 사람들은 하나님 말씀을 듣지 않으려고 말씀의 귀를 막고 등을 돌릴 때가 있는 것입니다.
바로 아사 왕이 기회가 있었는데 그는 기회를 저버린 사람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선견자가 와서 아사 왕을 꾸짖을 때 아사 왕은 만일 다윗과 같은 사람이었다면 보좌에서 내려와서 무릎을 꿇고 통곡하고 자복하고 "하나님이여 내가 범죄 하였나이다"라고 했으면 하나님께서 그를 복구해 주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꾸짖을 때는 여러분을 버리려고 꾸짖지 않습니다.
여러분을 돌이키려고 꾸짖는 것입니다.
아예 버린 사람은 하나님께서 절대로 꾸짖지 않습니다.
꾸짖음이 있을 때는 아직 버림받지 않았다는 증거인 것입니다.
그러나 꾸짖음이 있을 때 이를 듣기가 괴로워서 하나님을 저버리면 그는 하나님께 저버림을 받습니다.
여러분 하나님 말씀을 왜 우리가 늘 듣고 보고 읽어야 되냐하면 말씀이 들어오면 우리의 생활 속에 회개가 되는 것입니다.
말씀 안 읽고는 여러분 마음에 회개 안됩니다.
그만 세상에 먼지 묻고 티끌 묻고 세상에 취하는데 자기 스스로가 아나요?
자기 얼굴에 때가 묻은 것 여러분 자기 스스로 모릅니다.
거울을 들여다봐야 아는 것처럼 말씀의 거울을 들여다볼 때 자기의 잘못된 것이 드러나기 때문에 항상 회개하여 새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과 나는 한번 믿었다고 해서 완성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매일같이 우리의 두루마기를 빨아야 됩니다.
매일같이 회개하여 거룩함에 이르도록 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러기 위해서는 말씀의 거울을 들여다보고 말씀으로 내 자신을 살펴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또 말씀을 여러분 듣거나 읽지 아니하고 마음속에 믿음이 생겨나요?
어림없습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습니다.
말씀 없이 여러분 인간적으로 아무리 믿습니다 고함쳐도 그런 믿음은 헛 믿음인 것입니다.
여러분 밥을 먹지 않고 “나는 기운이 있습니다. 나는 기운이 있습니다”하고 외쳐본들 그에게 기운이 있을 리가 만무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은 여러분의 영의 양식이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먹지 아니하고 영의 양식을 취하지 아니하고 신앙의 힘을 얻은 사람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말씀을 꼭 귀를 기울이고 그것을 받아들이면 신앙에 힘이 생기고 하나님 앞에 가차히 나갈 수 있는 자리에 들어서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끊임없이 말씀을 듣고 읽음으로 우리의 영적인 양식을 받아들여서 영혼이 영양실조에 걸리는 일이 없어야됩니다.
또 우리가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말씀을 읽어야 우리의 생활이 헌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자꾸 취합니다.
세상의 세속이 와서 우리를 자꾸 점령합니다.
이런 생활 가운데서 우리 자신을 끊임없이 주님 가까이 또 더 가까이, 또 더 가까이 성령의 인도함을 받기 위해서는 말씀을 읽어야 되는 것입니다.
왜? 말씀은 여러분 흡입력이 있어서 여러분과 나의 심령을 부여잡아서 예수 그리스도안으로 끌어들이는 위대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말씀을 읽어서 그 말씀에 붙잡히어서 하나님의 깊은 은혜 속에 들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또 말씀이 들어와야 은혜의 기쁨이 우리 마음속에 생겨나는 것입니다.
사람이 이 세상에 살면서 마음에 기쁨이 없으면 삶에 동기가 사라지고 마는 것입니다.
마음이 기뻐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 믿고 기뻐야지 예수 믿고 기쁘지 않고 슬퍼하면 그 사람은 예수 잘못 믿은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의 상표는 기쁨입니다.
“너희가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고 성경은 말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뻐할 수 없는 슬픈 일이 종종 다가오는 것입니다.
이러할 때 우리가 말씀을 읽고 기도해서 다시 은혜의 파도가 우리 마음속에 오면 은혜의 파도가 슬픈 것을 다 제껴버리고 마음 속에 기쁨을 심어 주는 것입니다.
은혜의 파도 이것 없이 이 세상 슬픔을 물리치고 마음속에 들어오도록 기쁨을 복구해주는 이는 없는 것입니다.
은혜는 말씀을 통해서 여러분 마음속에 다가오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는 말씀을 듣고 마음에 은혜를 받아서 그래서 슬픔이 다 씻겨나가고 기쁨이 넘쳐 나서 그래서 언제나 기쁨을 재생시켜야 됩니다.
예수 믿어서 한번 기뻤다고 해서 계속 기쁘지는 않습니다 여러분.
계속 세상에서 우리 기쁨을 죽이려고 하는 마귀의 그 역사가 끊임없이 독을 품어서 오는 것입니다.
이것을 계속 은혜로써 씻어내야지 인간의 힘으로 씻어내 지지 않습니다. 은혜는 하나님 말씀을 읽고 듣고 기도할 때 마음속에 채워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말씀을 통하여 회개하고 믿음을 얻고 더욱 헌신하고 은혜로 말미암아 마음속에 넘쳐나면 그러면 우리가 타락하지 아니하고 믿음 속에 굳세게 설 수 있는데 그만 아사 왕은 이와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을 거역해버리고 만 것입니다.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등을 돌리고 말씀을 해주는 사람을 감옥에 가두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재기할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넷째로, 아사 왕은 기도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발에 병이 들어서 병이 점점 심해졌습니다.
그런데 그가 의사들을 불러서 열심히 치료했습니다.
여러분 성경에 의사에게 치료받지 말란 말은 없습니다.
왜? 건강한 자에겐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는 슬데 있다고 성경은 말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의원이 쓸데없단 말 안 했습니다.
우리 사람이 병들면 의원으로부터 치료받을 수 있는 것은 최대한도로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하기를 의원에게만 의지하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병든 자에게는 의원이 쓸 데 있지마는 그러나 의원의 치료를 받으면서도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 무슨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얻으리라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구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명령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사는 발에 병이 들어 병이 점점 심해지는데 의원에게만 의지하고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역대하 16장 12절의 말씀대로 "아사가 왕이 된지 삼십 구 년에 그 발이 병들어 심히 중하나 병이 있을 때 저가 여호와께 구하지 아니하고 의원들에게 구하였더라" 이것이 그가 죽은 이유인 것입니다.
그가 의원들에게 치료받은 것이 나쁜 것이 아닙니다.
의원만 구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께 구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축복해주지 아니하므로 의원의 힘으로 못 고쳤습니다.
오늘날 의사들에게 여러분 다 물어보십시오.
병을 의사가 고치냐고 물어보십시오.
한 사람의 의사도 병은 내가 고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나는 최선을 다하여 병이 낫도록 도와만 주지 고치는 것은 하나님께서 고친다고 다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아사가 기도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죽고 만 것입니다.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육체로 마치는 이유는 평안에 빠져 하나님을 찾지 않고 문제 부딪쳐 믿음으로 해결치 않고 인간의 방법을 쓰고 하나님의 말씀을 멀리하고 기도하지 않으므로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육체로 마치는 아사와 같은 비극적인 상황 속에 떨어지는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이 오늘 이 시간에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성령으로 열매맺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살아 계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
오늘 이 시간에 우리는 위대한 신앙의 선각자로서 시작한 아사 왕이 나중에 축복을 받고 난 다음에 올무에 빠져서 신앙을 잃어버리고 처참하게 죽은 사항을 가지고서 교훈을 배우고자 하오니 아버지 하나님이여 우리의 마음속에 깨달음이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 받들어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