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달 키워드는 '느'.
데려간 그림책은 '구덩이'입니다.
느리게 구덩이를 팠던 지난 몇년이 떠올라 데려갔어요.
집에 있던 책을 가져갔던지라 찍어둔 사진이 없네요^^;
구덩이 안은 조용했다. 흙에선 좋은 냄새가 났다.
히로는 구덩이벽에 생긴 삽 자국을 손으로 만져보았다.
'이건 내 구덩이야' 히로는 생각했다.
예전 같으면 몰랐을,
구덩이벽의 삽 자국이 몸으로 느껴졌어요.
그 울퉁불퉁함이. 그 축축함이.
그리고 말할수 있게 되었죠.
그래.. 이건 내 구덩이지..
제주도에는 출장과 가족여행으로 여러번 왔었지만
결혼 10년만에, 아니 몇박 몇일로 혼자
여행을 온 것은 처음이었어요.
이 소중한 여행에 제게 와준 모든 그림책을 들고 갔어요
첫 그림책 (고래가 보고 싶거든),
두번째 (밤을 켜는 아이),
세번째 (내안에 내가 있다),
네번째 그림책까지 (몸그림책 The Hole).
하루에 한 두권씩 천천히 읽어보았어요.
몸그림책의 한 장면을 보다가 첫 그림책이 연상되었고
첫 그림책에서 조금 앞으로 나아간 저를 보았습니다.
하나의 틀(관념)에서, 아주 힘겹게 한걸음씩.
느리게 구덩이를 파며..
첫 그림책 '고래가 보고 싶거든'은 고래를 보기 위한
여정을 담은 그림책입니다.
그런데 계속 같은 문구가 반복돼요.
고래가 보고 싶니,
그럼 --를 하지마, --에 눈길을 주지마.
저는 이 그림책이 편안하면서 불편했습니다.
모든 것에 조건을 다는 저와 닮아있어서.
이번 여행은 여러 상황을 고려했다면
예전의 저라면 절대로 할수 없는 여행이었습니다.
저는 저의 마음을 존중해주기로 했죠.
그리고 그렇게 살기로 했습니다.
수년간 그림을 못그렸던 나,
정작 필요할때 중요한 말을 하지 못했던 나,
나에게 조건을 걸은 만큼 남에게도 조건을 걸었던 나.
그런데 지금 하고 있었습니다.
조건을 걸지 않고 하고 있었어요.
다시 틀로 돌아가더라도 한번 넘어봤으니까 괜찮아...
그리고 내곁의 사람들,
그림책 길을 걷다로 잠시 만난 인연들.
모두 소중하게 느껴졌어요.
처음으로... 수년간 관계가 좋지 않았던 부모님이
제 삶의 귀인으로 다가왔습니다.
아주 미세하게 균열이 나고 있었어요.
무언가 애쓰지 않아도..
'내가 있다'
'내가 지금 이곳에 존재한다' 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빛을 내고 있구나.
나도 그들도.
그림책과 함께 한 뜻깊은 여행이었습니다.
ps. 제 닉네임은 어제부로 '가볍게 빛나는'으로 바꼈어요 ㅎ 데헷님이 주신 '강' 그림책도 천천히 음미하고 있습니다.
몸그림책의 한장면처럼 발가락 사이로 차가운 물방울을 느끼며..
첫댓글 가볍게 빛나는님이라고 사뿐하게 불러드리고 싶어요. 내안에 빛을 다른 이들의 빛을 보신것 축하드려요. 저도 조만간 제 빛을 보고 싶네요~
사뿐하게 불러주셔서 감사해요 ^^ 저도 조금 찾은걸요... 이미 지니고 있는 산들님의 빛도 보게 되시길 간절히 바랄께요!
@가볍게 빛나는 간절히~에 마음이 찡합니다. 보게 되길요.
오마이^^ 가볍게 빛나는 천천히님~~축하추카!!! 꼭 껴안아드립니다^^
곰이 강을 따라 갔을때처럼 흘러 흘러 여기까지 왔네요. 오묘하게.
게다가 엄청난 저항을 뚫고 후기를 쓰고여ㅎ
제 한걸음이란걸 알게 되서 그런걸까요..
축하 감사히 받을께요 ^^
@가볍게 빛나는 오, 그 엄청난 저항을 뚫고^^한걸음! 내딛으심~~
p.s. 또 다시 엄청난 저항이 느껴질때
후~호흡고르고
안.녕.인사 건네기
그런데 지금 하고 있었습니다
조건을 걸지 않고 하고 있었어요
다시 틀로 돌아가더라도 한번 넘어봤으니까 괜찮아..
내가 지금 이곳에 존재하니까
발가락 사이로 차가운 물방울을 느끼며
차가운 물방울을 느끼는 저 발이, 시원하면서도 홀가분하게 느껴지네요. '애쓰지 않아도.내가 있다. 존재한다. 빛을 내고 있다' 여기에 눈도 마음도 계속 가 있게 돼요. 감사해요~
쿨쿨~
내가 있다.
내가 지금 이곳에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빛을 내고 있구나.
가볍게빛나는 님의 이 말씀. 제게 큰 위로를건넵니다. 잃어버리면 어쩌나 마음 졸이며 나를 애써 쪼그라뜨리고 맞추려 애쓰는 저에게 내가있다라고 말해주시네요. 추워하는 저에게 가볍게 빛나는 님의 옷을 건네주셨을 때처럼. 선명해지고 따뜻해집니다. 고마워요. 구덩이가 괜히 저에게 온 게 아니었네요.^^
그길에 뚜벅이님이 계셔서 얼마나 든든했는지..^^
뚜벅이님의 존재 자체가 제겐 빛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