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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행 지 : 안산시 성태산, 너구리산, 꼬깔봉, 슬기봉, 무성봉, 우래봉, 퇴미산, 치및산
산 행 일 : 2021. 11. 27.(토)
산행코스 : 상록수역~북고개삼거리~한국가스공사 안산지사 정문~성태산(166m)~여덟미산/깃대봉(155m)~반월봉(196.8m)~너구리산/서래봉~바람고개~수리산 꼬깔봉~수리산 슬기봉~임도오거리~무성봉~덕고개~덕고개봉~우래봉(산불감시초소)~둔대봉~안골 정류장~굴다리~반월호수둘레길~군포 대야 물말끔터~퇴미산~절개지 철계단~굴다리~삼천리마을 정류장~치및산~정자 전망대~반달공원~반월도서관~반월역 (22km, 7시간 반 소요)
산행참석 : 2백두.
<산행지도>
지난 주년 산행 때 함께 9기맥 산행을 이어가던 송 사장님이 '다음 산행을 어떻게 되냐?'는 물음에 아마도 정상적으로 진양기맥 산행을 하게 될 것이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골프 약속이 있다는 김 전무와 개인적 사정으로 어렵다는 손 총무님이 빠지게 되어 부득이 기맥 산행을 연기하게 되면서 송 사장님께 미안한 생각도 들고 안산에 터를 잡고 있는 분들이 많아서 혹여 동참하는 분들이 있지나 않을까 하는 마음에 안산시에서 출발하는 산행을 계획했다. 카페와 카톡에 기맥 산행이 연기되었음과 상록수역에서 출발하는 수리산 산행으로 대체되었음을 공지하고 1주가 지났음에도 동참을 희망하는 분이 아무도 없는지라, 다른 곳으로 산행을 가려던 예비백두 한 분을 설득하여 함께 상록수역에서 반월역까지의 산길 걷기에 나서기로 한다.
산행을 공지한 후 코스를 살펴보니, 상록수역에서 너구리산 거쳐 슬기봉울 찍고, 무성봉을 경유하여 덕고개까지는 일반 근교 산행 등산로가 이어지며 이정표도 잘 갖추어져 있지만, 덕고개 이후 우래봉, 둔대봉, 퇴미산 구간은 산행 관련 자료가 아예 전무하다시피 하고, 일부 단일 봉우리를 등산한 자료가 어렵게 검색되기는 했지만 등로에 대한 정보가 미약하고 일부 구간은 등로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 구간도 있음을 알고는 내심 걱정이 앞선다. 하지만 '뭐 홀로 가는 산행인데 못 가면 그만두면 되지 뭐!'라는 심정으로 일단 산행을 속행 하기로 한다.
안산시의 전철 4호선 상록수역에 약속 시각보다 20여분 일찍 도착하여 가져간 커피도 한잔 마시며 좀 늦는다는 일행을 기다리는데,
<상록수역(常綠樹驛)>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본오동에 위치한 안산선 상 수도권 전철 4호선의 전철역으로 인근에 안산대학교가 있다. 역명은 심훈의 장편소설 “상록수”의 무대로 주인공 채영신의 실제 모델인 최용신 선생이 1930년대 항일운동과 농촌 계몽운동에 헌신한 터전으로, '상록수'란 소설의 제목을 빌어 상록수역이라 하였다.
상록수역 인근의 상록공원에는 소설 상록수의 실제 모델 최용신 선생의 기념관이 있는데, 기념관은 선생의 얼과 정신이 담긴 ‘샘골강습소’가 있던 안산시 상록구 해빛나길 56번지(본오동 879-4) 상록수공원 내에 2007년 11월 20일 개관하였다. 연면적 545.46㎡에 지상 1층에 교육실과 사무실, 지층에 전시실, 영상실이 있다.
상록수역 앞 광장에는 이곳 샘골이 작가 심훈의 장편소설 "상록수"의 무대 청석골로, 주인공 채영신의 모델인 최용신이 1930년대 항일과 농촌개몽에 헌신한 터전이었음을 알리는 비석이 세워져 있다.
<상록수(常綠樹)>
심훈(沈熏, 1901~36)이 지은 장편소설로, 1935년 동아일보사의 ‘창간15주년기념 장편소설 특별공모’에 당선되었고, 같은 해 9월 10일부터 1936년 2월 15일까지 『동아일보』에 연재되었다. 1930년대 우리 농촌은 일제의 극악한 식민지 수탈로 인하여 극도로 피폐해졌고, 이것이 심각한 국내문제로 대두되자 관에서 농촌 문제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이를 계기로 언론기관에서도 대대적인 농촌계몽운동을 전개하였는데, 『조선일보』의 문맹퇴치 운동과 『동아일보』의 브나로드(Vnarod: '민중 속으로'의 뜻임)운동이 바로 그것이다. 이 운동들에서 취재되고, 또 이 운동들을 고무한 대표적인 작품이 이광수(李光洙)의 「흙」과 심훈의 「상록수」이다.
농촌계몽운동을 하던 젊은 학생 채영신과 박동혁은 어느날 모 신문사가 주최한 농촌계몽운동 집회에서 발표자로 마주치며 뜻을 함께하는 동지임을 확인하는 만남을 갖는다. 두 사람은 의논 끝에 가난한 부모만 더 고생시킬 뿐 의미없는 학업을 그만두고, 식민치하 조선의 젊은 지식분자로서의 사명을 다하자는 결론을 내린 뒤 각각 청석골과 한곡리로 내려간다. 농촌계몽운동에 매진하는 한편 편지를 주고받으며 사랑을 키우고 3년간 계몽사업의 토대를 닦은 후에 결혼하기로 약속한다.
영신은 극빈한 청석골에 파견되어 비좁은 교회당 건물을 빌려 야학과 여성협동조합(부인친목계)을 운영하는 중인데, 넘쳐드는 아이들로 인해 학당을 지을 일로 절치부심한다. 한편, 고향 한곡리에서 청년들을 조직해 농우회를 꾸리고 계몽운동을 하는 동혁은 일단 자기 고향인데다, 함께 일할 젊은 장정 친구들이 많다는 유리한 조건하에 영신보다 먼저 농우회관을 완공한다.
영신은 이에 자극받아 온갖 노고 끝에 청석학원을 건축하고 동혁을 초대하는 감격을 맛보았으나 낙성연에서 연설을 하다 그만 기절하고 만다. 동혁의 재빠른 대처로 맹장염 수술을 무사히 받았으나 이미 건강이 극도로 상해 있음이 밝혀진다. 동혁이 영신을 간호하느라 자리를 비운 틈에 한곡리에서는 마을 지주요 고리대금업자인 강기천이 수작을 부려 농우회장 자리를 꿰차고 회관도 차지한다.
이에 격분한 동혁의 남동생 동화가 회관에 불을 지른 후 도주하고, 동혁은 이 때문에 긴급 체포되어 옥살이를 하게 된다. 영신은 정양을 겸하여 일본 유학길에 오르며 가까스로 동혁을 면회하고 이것이 마지막 만남이 되었다. 유학생활은 오히려 건강에 해가 되었고 맹장염이 재발하는 등 빈사상태에 가까워진다. 인생을 바친 일터에서 죽을 것을 결심하고 귀국하여 결국 청석골에서 모두의 오열 속에 절명한다. 동혁은 출옥해서 영신의 관이 떠나기 직전에야 겨우 도착하여 마지막 길을 전송한다. 영신의 무덤가에서 실존적인 허무감에 깊이 빠지나 영신의 뜻을 계승하고 살아있는 한 나아가는 것만이 의미있는 일이라는 결론에 이르고 한곡리로 돌아가 새로운 시작을 다짐한다. 덤으로 강기천이 그답게 더러운 사연으로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늘 궁금했던 '상록수역'의 명칭 유래에 대한 확인과 옛날 초팅시절 뜻 모르고 읽었던 소설 '상록수'의 기억을 더듬는 사이에, 함께 걷기로 한 분이 10여분 늦는 9시 10분을 넘어 도착하여 도로를 가로질러 산책길로 들어서며 산행을 시작하니,
싸늘한 겨울 한기에도 푸르름을 그대로 간직한 향나무가 도열한 산책길이 이어지고,
4호선 철길을 따라 반월역 방향으로 600여 미터 진행 후 용신로에 접속하여 좌틀하여 잠시 도로를 따르면,
'수인산업도로'라고도 부르는 39번 국도가 지나는 북고개 삼거리에 도착하여, 도로를 건너 산길 들머리가 있는 한국가스공사 안산지사 정문 방향으로 진행하는데,
<북고개삼거리>
북고개는 안산시 상록구 일동 상록수역에서 팔곡1동 건너말로 넘어가는 고개로, 옛날 이 고개에서 호랑이에게 많은 피해를 입었던 까닭에 여행자들이 여러 명 뭉쳐서 일시에 통과했다고 하는 이야기가 전한다. 수인산업도로의 상습정체 구간이다.
도로 건너편 제일장례식장 입구 옆에도 산길 들머리가 있지만, 이정표가 있는 들머리를 찾아 100여 미터를 진행하면 성태산, 수암봉 방향 이정표가 있는 들머리가 나오는데, 이정표에는 '팔곡산 등산로'라 표시하고 있다.
팔곡산(八谷山, 108.7m)은 39번 국도 남쪽 본오동과 팔곡동에 위치한 산인데, '왜 이곳 성태산 방향 등산로 입구에 팔곡산 등산로 표시가 되어 있지?'라는 궁금증을 안고 산행 들머리로 들어서며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한다.
한국가스공사 안산지사 철울타리를 따르다가,
철울타리를 두고 우측 산길로 접어들어 북고개삼거리에서 올라오는 등로와 합쳐 작은 봉우리를 지나고,
평탄한 안부 숲길을 지나 앞쪽 봉우리 오름길 초입에 좌측으로 우회길이 있지만 그냥 능선길을 따르면,
능선 우측이 벌목되어 시야가 트인 지점이 나타나며,
좌측으로 오늘 산행 종착지인 반월역이 있는 상록구 건건동쯤이 가늠되고,
우후방으로는 상록구 팔곡1동 덕골쯤이 내려다 보인다.
노오란 갈비가 푹신하게 깔린 능선길을 따라 송전탑을 지나면,
우측 반월저수지 방향 갈림길을 지나게 되고,
잠시 후 우측 선학낚시터 방향 갈림길이 있는 능선 갈림길에서 좌틀하여 내려서면,
잠시 전에 헤어졌던 봉우리 우횟길과 다시 만나게 되고,
이내 돌무더기와 송전탑이 있는 밋밋한 봉우리를 지나는데, 네이버 지도에는 이곳을 성태산으로 표시하고 있지만 실제 성태산은 이곳에서 300여 미터를 더 가야 나온다.
평탄한 능선 등로를 잠시 더 진행하면 우측으로 해피승마장 방향 갈림길을 지나게 되고,
제법 가파른 오름길을 잠시 오르면,
'성태산 연정'이란 현판이 걸린 사각정자 기둥에는 '성태산 정상 166m' 표시판이 걸려있다.
<성태산(166m)>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에 위치한 야트막한 산으로, 성태산이란 이름은 청룡사 비석의 기록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최근의 실태조사로 그 실체가 드러난 성태산성은 왜구에 시달리던 강화도를 피해 이곳 안산읍성을 통해 중국과 남방국가로 나가는 해양루트의 길목이었기에 그만큼 왜와 청의 침범이 빈번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성태산 정상 이정표.
(성태산 정상 직전까지의 이정표에는 '팔곡산 등산로'라 표시되어 있다가, 성태산 정상의 이정표에 갑자기 '성태산 등산로'로 표시가 바뀌었다. 무슨 연유가 있는 것인지 궁금하기 짝이 없지만 연유를 찾기가 어럽다)
성태산을 뒤로하자 이내 송전탑과 오래된 삼각점이 있는 여덜미산/깃대봉(155m)에서 우측 반월천 방향 지능선갈림길을 두고 좌틀하여 내려서면,
우전방으로 가야 할 너구리산과 바람재쯤이 나뭇가지 사이로 가늠되고,
이내 십자 안부인 점성고개를 지나게 된다.
다시 우측으로 반월저수지 방향 갈림길이 있는 지능선 분기봉을 지나고,
제법 가파른 오름길을 잠시 오르면 체육시설과 전망데크가 있는 봉우리에 올라서는데, 좌측 점성공원에서 오르는 등로와 만나는 봉우리다.
전망데크에서 본 서쪽 노적봉과 광덕산 방향.
전망대 봉우리부터는 좌측에 제일 CC 울타리 역할을 하는 원형철조망을 두고 걷게 되는데,
좌측 제일 CC 방향으로 샛길이 있는 쉼터 봉우리를 지나고,
좌측 제일CC 방향은 막혀있고 우측 샘골 방향은 희미한 등로가 나 있는 안부를 지나,
작은 봉우리를 우측으로 우회하여 지나면,
다시 송전탑이 있는 능선에 접속하는데, 이 부근 능선 아래로 서해안고속도로 순산터널이 지나는 지점이다.
네이버 지도 상 너구리봉 안산(195m)으로 표시된 봉우리를 우회하는 우측 우회길로 들어서고,
다시 능선에 접속하여 평탄한 능선을 잠시 따르다가,
제법 가파른 내림길을 내려서면,
좌측 부곡동 반월정수장에서 이어온 등로와 합류하는 안부를 지나게 되는데 아래로는 영동고속도로 반월터널이 지나는 지점이다. 차를 타고 지날 때는 몰랐는데 잠시 전에 지나온 서해안고속도로 순산터널과 이렇게 가깝게 있었나 하는 생각도 든다.
안부를 지나며 등로는 두 갈래로 갈라지는데, 좌측의 등로는 좌전방으로 보이는 반월봉을 좌회하는 등로이고, 우측의 직진방향 등로는 반월봉 능선을 바로 넘는 등로이다. 오늘은 돌아갈 여유가 없는 긴 산행이 예정된 날이라 직진의 짧은 코스로 들어선다.
암호 같은 이정표.
따르는 직진의 등로도 좌측의 반월봉으로는 오르지 않고 우측으로 살짝 비껴서 지나게 되고,
이내 반월봉을 좌회하여 오는 등로와 만나,
살짝 부담스러워 보이는 또다른 봉우리를 우회하는 길로 들어서,
완만하게 이어지는 등로는 너구리산을 향하는데,
우측으로 산행 막바지에 오를 우래봉이 무척이나 우람해 보여 살짝 걱정이 앞선다.
한국가스공사 안산지사에서 이곳 너구리산 직전까지의 등로는 그야말로 두런두런 옛 이야기 나누며 걸을 수 있는 완만한 숲길로, 등로를 따라 나타나는 작은 봉우리들은 거의 대부분 높지 않고 야트막하지만 그나마도 대부분 우횟길을 가지고 있어서 한마디로 산객들이 말하는 비단길 같다는 느낌이다. 하지만 지금부터 걷게 되는 너구리산 오름길부터는 보통의 기맥산행에서 볼 수 있는 꾀나 오르내림이 있는 능선길이 이어지게 된다.
본격적인 너구리산 오름길은 급사면을 따라 비스듬히 오르게 되는데,
우측 능선에는 날카로운 암릉이 병풍인 듯 펼쳐져 있고,
삐죽삐죽 솟아오른 암릉들이 너구리산을 왜 서래봉('써레'라는 농기구를 닮았다고 그리 불림)이라고도 부르게 되었는지를 설명해 주고,
사람들이 가득 모여 있어서 너구리봉 정상으로 착각하여 오르니 그냥 능선일 뿐이다.
능선을 따라 커다란 바위 암릉을 우회하여 지나기도 하고,
자연이 만든 작품과 인간이 만든 작품의 조화를 논하기도 하는데,
눈길을 끄는 두마리의 고양이를 위한 저택이 있는 좌측의 전망바위에 올라 잠시 차를 마시며 쉼을 하기로 한다.
전망바위에서 본 남서쪽 안산시 노적봉 방향.
서쪽 안산 JC와 서해안고속도로 조망.
살짝 당겨본 안산 JC 방향.
안산 JC가 시원스레 조망되는 전망대 전경.
제법 날카로운 암릉을 우회하여 지나고 '큰바위'라는 표지판이 걸린 커다란 바위를 우회하여 오르면,
최근에 설치한 듯 보이는 오석의 '서래봉' 정상석이 있는 너구리산 정상에 도착한다.
<너구리산/서래봉(308m)>
경기 안산시 장상동과 군포시 속달동의 경계에 위치한 산으로, 예전에 너구리가 많이 살았다고 하여 이름붙여진 산이다. 예전에는 주로 너구리산이라 불렀으나, 지금은 서래봉으로 명명되어 정상석이 서 있다. 연이어지는 암릉이 마치 써레 같다고 해서 서래봉이란 이름을 얻은 모양이다.
2009년에 도립공원이 되었다는데, 통보도 없이 수리산이 도립공원이 되었네!
너구리산 정상에서 본 남서쪽 안산시의 노적봉 방향.
서쪽 서서울 TG 방향.
안산 JC 방향.
조남 JC 방향.
수리산 방향.
너구리산 정상에서 본 서쪽 방향 파노라마.
서래봉/너구리산 정상 인증.
너구리산/서래봉 정상 전경.
너구리산을 뒤로하고 수리산 꼬깔봉을 향해 급경사의 데크목 계단길을 길게 내려서면,
완만한 능선 안부로 내려서게 되고,
이내 십자 안부인 바람재를 지나 꼬깔봉을 향한 오름길로 들어선다.
<바람고개>
안산시 안산동 장상저수지와 군포시 속달동 납다골 사이에 있는 고개로 해발은 196m이다.
바람고개 이정표.
바람고개를 지나 한바탕 가파른 오름길을 오르면,
지능선 위로 올라서며 다소 평탄한 봉우리 우회길이 이어지더니,
다시 꼬깔봉을 향한 가파른 오름길이 시작되는 초입에 우측 사면으로 수리사 방향 갈림길 이정표를 지나게 되고,
가드 로프가 설치된 가파른 오름길을 치고 오르면,
또 수리사 방향 갈림길을 지나게 되고,
우측으로 군부대가 차지한 수리산 슬기봉 정상부를 조망하며 완만한 오름길을 계속 이어가면.
능선 좌측으로는 군부대 울타리가 처져있고, 수암동 방향 능선 갈림길이 분기하는 능선 갈림길에 도착한다.
좌측 수암봉 방향.
<수암봉(秀巖峰, 398m)>
수리산 북쪽에 위치하는 봉우리이다. 본래의 산명은 독수리와 같아 보인다고 하여 독수리봉(鷲岩)이라 불렀는데, 조선 말엽에 산봉우리가 수려하므로 수암봉(秀巖峰)이라 하였다고 전해진다. 넓은 평야에 솟아 있는 산이라 보기에는 높아 보인다. 세종실록지리지에 (안산의) 진산(鎭山)은 취암(鷲岩)이라 기록되어 있는데, 울창한 숲이 안산의 그 어느 산 보다 더 수려한 경관을 자랑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좌측에 군부대 울타리를 두고 능선을 따라 꼬깔봉 방향으로 진행하면,
등로는 능선 우측 사면으로 이어지기도 하다가,
수암봉 방향 갈림길 이정표에서 우측 슬기봉 방향으로 진행하면,
이내 수리산 주능선 위로 올라서게 되고,
<수리산>
수리산은 수리산괴(塊) 전체를 말하는 이름이고, 보통 수리산이라 쓰인 봉우리(474.8m) 이름은 거룡봉이라고 한다. 수리산의 지명유래를 『시흥군지』에서 찾아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는 신라 진흥왕대(539~575) 창건된 것으로 신심(信心)을 닦는 성지의 절이라 하여 수리사라 불렀다. 그 후 사명(寺名)을 따 수리산이라 하였다. 둘째는 조선시대 안산군의 진산인 취암을 독수리봉이라 불렀는데, 독수리봉의 수리에서 산명이 유래되었다고도 한다. 셋째는 아주 오랜 옛날 천지개벽이 있을 때 서해안 바닷물이 이곳까지 들어왔는데, 이 산 정상에 수리가 앉을 만큼을 제외하고 전역이 물에 수장되었다고 해서 '수리산'이라 불려지게 되었다. 넷째는 조선의 어느 왕족이 이 산에서 수도하였으므로 수리산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위의 4가지 설 중에서 둘째의 설은 『대동지지』(1864) 안산군편의 산수에서 “수리산은 읍치에서 동쪽 5리에 있는 산을 태을산 또는 견불산이라고도 이른다. 자못 크고 높은 취암봉(수암봉)이 있는데, '독수리 취' 자를 일컬어 수리라고 한다"라고 유래를 알려주고 있다. 이상에서 1914년 이전에는 안산의 진산인 취암봉(395m)을 '수리산'이라 하였고, 1914년 이후는 과천 태을산의 거룡봉을 수리산이라 하여 현재에 이르는 듯하다.
등로는 꼬깔봉을 앞두고 군부대가 차지한 능선을 두고 좌측 아래로 우회하여 이어지게 된다. 오늘 꼬깔봉을 와 보니, 옛날 10여 년 전 슬기봉을 차지한 군부대 우회 등로가 만들어지기 전에는 정상부를 차지한 군부대를 우회하여 등로도 없는 가파르고 위험한 절벽이 있는 남쪽으로 돌아서 이곳으로 왔었는데 그때의 기억이 새삼스럽다.
<꼬낄봉(451.5m)>
거룡봉(슬기봉) 서쪽 약 750m 거리에 거룡봉과 나란히 솟아 수리산 H자형의 중심축을 이루는 봉우리로, 안산시·안양시·군포시 등 3개 시의 경계에 있다. 슬기봉 정상은 군부대가 위치하고 그 서쪽으로 솟아 있는 봉우리인데 슬기봉과 너구리산으로 갈라지는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정상은 쉬어갈 정도의 공산이 있으며, 6.25 때 수리산 전투로 많은 사망자를 낸 곳으로 여기도 유해발굴 처가 있다.(산행기에서는 잠시 전 산꾼 한분이 앉아있던 곳을 꼬깔봉이라 하고 있지만, 네이버 지도의 꼬깔봉을 그곳에서 슬기봉 방향으로 100여 미터 떨어져 있는 암봉을 꼬깔봉이라 표시하고 있다.)
좌측으로 멀어져 가는 수암봉을 바라보며,
능선을 차지한 군부대를 우회하여 슬기봉 방향 사면 길을 따르면,
앞쪽으로 슬기봉이 우뚝해 보이며 등로는 데크목 계단길을 따라 정자 쉼터로 이어지고,
장자 쉼터로 내려선 등로는 군부대로 이어지는 임도에 접속하여 우측 오름길로 이어가는데,
군부대 정문으로 이어지는 임도를 따라 오르며 좌측 안양시 방향으로 보이는 병목안 골짜기가 무척이나 깊어 보인다.
수리산 주능선에 의해 둘러싸인 골짜기는 조선 후기 헌종 때 천주교 신자들이 기해박해를 피해 숨어 들어와서 담배를 재배하며 살던 담배촌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 신부인 최양업의 어린 동생들은 당고개에서 죽임을 당한 많은 신자 중 어머니의 주검은 찾지 못하고 아버지 최경환의 주검만 거두어 그들이 살던 수리산 골짜기에 묻었다. 그 무덤 자리는 지금도 남아 있으며 성당도 세워져 천주교 신자들의 성지 순례지가 되었다.
군부대 정문 직전에 좌측으로 태을봉 가는 등로 들머리가 있고,
숲길로 들어서서 잠시 진행하면 슬기봉을 좌회하는 데크목 우회길이 길게 이어지며,
좌측으로는 점시 전에 지나온 꼬깔봉쯤도 조망되고,
이내 슬기봉을 좌회하는 데크목길 정상에 도착하는데 오늘 예정된 산행의 딱 중간 지점이다.
<수리산 슬기봉(469.3m)>
수리산은 가장 높은 태을봉(489m)을 중심으로 남서쪽으로 슬기봉(469m), 동북쪽의 관모봉(426m)과 북서쪽의 수암봉(395m)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수리산’이라는 이름은 산본이나 군포에서 바라볼 때 산세가 비상하는 독수리 형상으로 보이는 데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수리산은 2009년, 남한산성(1971년)과 연인산(2005년)에 이어 경기도의 세 번째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1951년 한국전쟁 때는 수리산전투가 이곳에서 벌어졌고 시흥~안양~수원의 방어선 역할을 하였다. 평지에서 갑자기 솟아 오른 듯한 산계 덕분에 여러 개의 봉우리 정상에서 바라보는 빼어난 조망이 많은 등산객들의 발길을 정상으로 이끌어 등정(登頂)의 등산로도 무척이나 많은 산이다. 수리산은 ‘군포 수리산’과 ‘안양 수리산’으로 대별되며, 도립공원측에서는 년간 탐방객이 200만 명으로 집계가 된다고 한다.
북서쪽 지나온 꼬깔봉과 수암봉 방향.
북쪽 광명 방향.
북동쪽 태을봉 방향.
잠시의 쉼을 뒤로하고 슬기봉을 우회하는 데크길을 따라 나가면,
수리산 능선을 따라 태을봉으로 이어지는 능선 등로와 임도5거리 방향으로 이어는 갈림길이 나오는데,
태을봉 방향의 능선길을 두고 우측 임도5거리 방향 등로로 들어서서,
급경사의 데크목 계단 내림길로 들어서면,
앞쪽으로 가야 할 무성봉과 우래봉이 조망되고,
가드 로프가 설치된 급경사의 내림길을 잠시 더 진행하면,
산본신도시가 조망되는 전망대가 나온다.
전망대에서 본 산본신도시와 군포 방향 조망.
군포 방향으로 이어진 한남정맥 능선 조망.
다시 한남정맥 무성봉 방향 능선길을 따라 내려서면 임도에 접속하게 되고,
돌아본 슬기봉 방향.
슬기정이란 정자를 지나 내려서면,
수리산 임도가 지나는 임도5거리에 도착하여 임도 옆 벤치에서 늦은 점심 식사를 한다.
임도5거리에서 단촐한 점심을 먹고는, 한남정맥 능선을 따라 10여분 진행하면 무성봉에 도착하게 되고,
무성봉에서 따르던 한남정맥 능선길을 두고 우측 덕고개 방향 능선으로 접어들어,
완만하고 호젓한 등로를 따라 내려서면,
덕고개 직전의 수리산임도에 접속하게 되고,
바로 2차선의 포장도로가 지나는 덕고개에 도착하게 된다.
<덕고개>
군포시 속달동 납덕골에서 장정들과 대야미 방향으로 이어지는 2차선의 도로가 지나는 고개다.
덕고개에서 바라본 수리산 방향.
덕고개에서 우래봉 방향 들머리는 수리산 임도를 따라 10여 미터 진행하다가 좌측 숲으로 들게 되고,
별다른 표식이 없는 우래봉 방향 들머리 모습.
숲길로 들어서면 노오란 갈비가 수북이 깔린 소나무 숲으로 희미한 족적이 이어지며,
일명 덕고개봉이라고도 부르는 작은 봉우리를 좌회하여 지나게 되고,
송전탑이 자리한 곳에서 능선에 합류하여,
안부를 지나 그림 같은 숲길을 쉬엄쉬엄 오르면,
우래봉 전위봉쯤에 올라 좌측으로 휘어지며 진행하고,
완만한 능선을 따라 우래봉으로 향하는데,
우후방으로 오전에 지나온 너구리산과 슬기봉이 나뭇가지 사이로 가늠되더니,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우래봉 정상에 도착하니 조망이 사방으로 막힘없이 트여있다.
<우래봉 (267m)>
경기 군포시 속달동과 둔대동의 경계에 자리한 봉우리로, 수리산 슬기봉에서 줄기를 내려 남쪽 반월저수지로 뻗어있는 능선에 우뚝 솟아 돌기를 튼 봉우리다. 작지만 전망이 좋아 군포시 산불감시초소가 자리하고 있다.
우래봉 정상 산불감시초소에서 본 360도 파노라마.
남쪽 반월호수와 팔곡 JC 방향.
남서쪽 안산시 방향.
북쪽 수리산 방향.
동쪽 백운산과 광교산 방향.
우래봉은 제대로 된 등로 표시도 없고 산행기록도 찾아보기 어려워서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았지만, 그동안 수리산 산행을 하면서 우뚝 솟은 모습에 한번쯤 가 봐야지 생각만 하던 차에 마침내 이번에 올라보니 가히 조망이 막힘 없이 펼쳐져 있다. 역시나 방송국 중계소가 있거나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봉우리에 오르면 멋진 조망을 선사받는다는 사실을 한 번 더 확인하는 순간이다.
군포시 속달동과 수리산 조망.
무성봉과 모락산 방향 조망.
수원시 방향 조망.
우래봉 정상 인증.
우래봉 정상을 뒤로하면 이내 헬기장이 자리하고 있고,
남쪽 반월호수 방향으로 이어진 능선에도 희미하지만 뚜렷한 등로의 흔적이 이어지며,
가끔씩 날카로운 바위들이 뒹구는 능선길을 더듬어 진행하면,
나뭇가지에 걸린 표지기에 207봉이라 표시된 봉우리에 도착하는데,
봉우리의 바위에는 낯익은 서래야님의 '둔대봉(207.3m)' 표지기가 놓여 있다.
둔대봉에서 돌아본 우래봉 방향.
둔대봉을 뒤로하면 제법 가파른 내림길이 이어지며,
날카로운 바위들이 솟아난 암릉들도 지나게 되고,
좌측으로 영동고도로 반월터널 방향이 조망되며,
낙엽이 두텁게 덮여 있어서 무척이나 미끄러운 급경사 내림길을 조심조심 내려서면,
청송심씨 가족묘지가 나오며 묘지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내려서면,
영동고속도로가 내려다 보이는 절개지 위 수로에 내려서서 좌측 대야미역 방향으로 진행하는데,
영동고속도로 건너편으로 가야 할 퇴미산이 우뚝하다.
반월호수와 대야미를 잇는 호수로 절개지 상단의 수로를 따라 진행하면,
<대야미>
한배미 또는 큰 배미라고도 하며, 본래 광주군 북방면의 지역으로 큰 논배미가 있었으므로 한배미, 큰배미 또는 대야미, 대야머리라고 하였는데, 고종32년(1895년) 안산군에 편입되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통폐합에 따라 갈티 뒷뱅이를 병합하여 대야미리라 해서 수원(화성)군 반월면에 편입되었다. 그 후 1994년 12월 26일 행정구역 조정으로 군포시에 편입되어 대야동이 되었다.
안골마을 정류장이 있는 호수로를 횡단하여,
안골 정류장 복개마을 방향 정류장 옆에 세워진 '물말끔터' 표지판 옆 도로로 좌틀하여 진향하다가,
영동고속도로 아래로 지나는 굴다리 직전에서 산길에서는 해결 못한 것을 해결하며 쉼을 한다.
고팠던 민생고?를 해결하고 굴다리를 통과하면 좌측으로 가야 할 물말끔터가 보이지만 우틀하여,
반월호수 둘레길로 들어서서,
'언제 또 이곳에 와 보겠냐'며 반월호수둘레길을 조금이나마 맛보기로 걸어보기로 한다.
<반월호수공원 둘레길>
1957년 농업용수 공급용 저수지로 조성된 반월호수는 저수량 118만6천800㎥의 저수지인데, 호수를 연상시키는 모습에 저수지이면서 호수라고도 불렸다. ‘반월호수 둘레길’은 2017년 8월에 완공된 반월호수 전체를 둘러싸는 총길이 3.4km의 친환경 순환산책로이다. 한편에는 호수를 가로지르는 다리가 설치되고, 다리 위에는 전망대도 조성되어 있어서 멋진 풍경 감상의 기회를 제공한다.
반월호수공원 방향의 둘레길을 두고 좌틀하여 호수를 가로지르는 데크길로 들어서면,
앞쪽으로 올라야 할 퇴미산이 지친 산꾼에게 위압적으로 다가오고,
가야 할 물말끔터를 배경으로.
반월호수둘레길 퇴미산 아래에서 공사로 막혀있는 우측 둘레길을 두고 좌틀하여 물말끔터로 진행하면,
까만 물새가 평화로이 떠 있는 반월호수도 보고,
저 멀리로 보이는 수리산이 어느새 멀어져 있음을 새삼 깨달으며,
반월호수둘레길 물말끔터 방향으로 진행하여,
둘레길을 두고 우측의 물말끔터로 올라서면,
군포시에서 마련한 물말끔터에 도착한다.
<군포 대야 물말끔터>
경기도 군포시 둔대동에 있는 군포시의 생활하수가 어떻게 처리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는 전시체험시설이다. 1층에는 군포 8경 갤러리와 수족관이 있고, 2층에는 아이들이 다양한 체험과 관람을 할 수 있는 물누리체험관이다.
상록수역에서 이곳 물말끔터까지는 근교산행 등산로와 연결도로가 잘 이어져 있지만, 이곳 물말끔터에서 퇴미산 능선으로 오르는 100여 미터는 산길이 없는 구간이다. 퇴미산은 능선 반대쪽에서 올라야 하지만 반대쪽으로 접근하는 길이 없는 상태이므로 그냥 무작정 능선으로 치고 오르기로 한다.
물말끔터 앞마당을 가로질러 우측으로 진행하다가 도로가 끝나는 지점에서 좌측 숲으로 들면,
더 이상 등로는 보이지 않는 숲이 나오는데 길 없는 숲을 10여 미터 진행하면,
청송심씨 가족묘지가 나오는데 바로 능선으로 치고 올라도 되겠지만 우측으로 비스듬히 치고 오르면,
벌목된 나무더미가 진행을 방해하는 비탈이 잠시 이어지더니,
이내 능선 위로 올라서게 되는데,
능선 위로는 제법 뚜렷한 등로가 이어져 있다.
제법 뚜렷한 능선길을 따라 퇴미산 정상으로 향하면 송전탑을 지나게 되고,
아프리카 초원의 바오밥나무를 닮은 고사목이 눈길을 끌고,
가팔라지는 능선길을 잠시 더 진행하여 남쪽 삼천리마을 방향 능선 갈림길이 나오는데, 우측의 퇴미산 정상 방향으로 진행하면,
능선 갈림길에서 100여 미터 떨어져 있는 퇴미산 정상에 도착하는데 주변은 숲으로 둘러싸여 조망이 없고,
<퇴미산>
경기도의 군포시와 안산시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퇴미산은 반월호수를 가장 가까이에서 내려다볼 수 있는 나지막한 산봉우리다. 높이가 낮아 아담해 보이면서도 좌우가 균형 잡힌 세모꼴을 하고 있어 안정감이 느껴지는 산이다.
퇴미산 정상 북측의 묘터에 서면 오늘 걸은 수리산 능선이 저녁 햇살을 받아 밝게 조망된다.
다시 능선 갈림길로 돌아나와 우측의 삼천리마을 방향 능선으로 접어들면,
완만한 소나무숲 능선길이 이어지다가,
전방의 밋밋한 봉우리 직전에 직진의 능선 방향으로는 족적의 흔적이 보이지 않아 좌측 사면으로 이어진 희미한 등로의 흔적을 따르면,
영동고속도로와 서해안고속도로를 잇는 연결도로 절개지의 관리용 철사다리가 나오고,
상부 절개지 철사다리를 따라 내려서서,
절개지 중간의 통로 우측으로 조금 이동하면,
이내 하부 절개지를 내려서는 철계단이 나오고,
하부 절개지를 내려서서 영동고속도로와 서해안고속도로를 잇는 연결도로 옆 임도에서 좌틀하여,
영동고속도로와 서해안고속도로를 잇는 연결도로와 나란히 이어지는 임도를 따라 진행하면,
도로 남쪽 편에 자리한 삼천리 마을로 이어진 삼천리5길에 접속하게 되고,
영동고속도로와 서해안고속도로를 잇는 연결도로 아래로 통과하는 굴다리를 통과하여,
도로를 따라 안산시 상록구 건건동 삼천리마을로 진행하면,
아직도 붉은 단풍이 남아있는 마을길을 지나게 되고,
삼천리마을로 들어서면 마을 건너편으로 오늘 마지막으로 오를 치및산이 보인다.
삼천리마을 정류장에서 도로를 건너 반월역 방향 도로로 들어서고,
삼천천을 건너는 삼천2교를 지나 반월역 방향으로 진행한다.
삼천2교에서 돌아본 수리산 방향.
도로를 따르다가 4호선 철로를 건너 반월역으로 이어지는 육교 직전에서,
우측 치및산으로 오르는 들머리로 들어서면,
청주한씨 가족묘지를 지나 능선으로 오르게 되고,
잠시 뚜렷한 능선길이 이어지다가,
이내 네이버 지도에 치및산 정상으로 표시된 능선 삼거리쯤에 도착하는데, 이정표에는 매직 글씨로 치및산 정상이라 표시되어 있지만 이정표의 정상 표시는 좌측으로 되어 있다. (지도상 이곳이 치및산 정상이 맞음)
<치및산/치미산(鴟尾山)>
반월초등학교와 반월동 주민자치센터 뒤에서 아랫삼천이 건너편과 창말 반월전쳘역에 이르기끼지 넓게 자리한 산으로, 큰 건물 지붕의 대마루 양끝에 얹는 매(鴟) 머리 모양의 기와를 '치미(鴟尾)라고 하는데, 산의 생김새가 그와 같아서 치미산(鴟尾山)이라고 부른다. 한편 아랫삼천이(장촌)에서는 마을 건너편에 있다고 해서 '건너치미'라고도 부른다. 조선시대 유명한 학자로 해동악부(海東樂府)의 저자인 이복휴(李福休) 선생의 묘역이 있으며 현재 반달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우측의 정상 방향으로 가 보았자 별다른 게 없을 듯하고, 지도상 이곳이 가장 높은 곳으로 표시되어 있어서 이곳에서 치및산 정상 인증을 남기기로 한다.
치및산 정상 인증을 남기고 바로 반월초등학교 방향으로 진행하면 멋진 소나무숲길이 이어지고,
아래로 4호선 철로가 지나는 터널이 있는 안부 갈림길에서 직진의 능선길을 따르면,
우측 4호선 철로 상록수역 방향의 석양 조망.
정자 전망대 방향 능선길이 저녁노을에 붉게 물들어 있고,
이내 체육시설이 있는 정자 전망대에 도착한다.
정자 전망대에서 본 석양.
정자 전망대를 뒤로하고 반월초교 방향으로 내려서다가,
좌틀하여 '반달공원' 방향 산책길로 들어서면,
가로등까지 불밝힌 산책길이 이어지더니,
반달 모양의 공원이라 그런 이름이 붙었는지 아니면 반월의 월(月)자를 달(月)로 한 글자만 바꾸어 부르게 되었는지 모를 반달공원이라는 소공원에 도착하여,
길고 긴 산행에서 묻은 먼지까지 털어내는데, 아뿔싸 반월역은 아직도 조금 더 걸어야 한다.
이제 가로등까지 밝혀진 산책로를 따라 반월역 방향으로 진행하면,
반월도서관을 지나게 되는데,
도서관 뒤편 산책로에는 책도 비치되어 있고,
불 밝힌 도서관에는 공부하는 젊은이들이 부럽기만 하다.
잠시 더 산책길을 따르니 아까 치및산 들머리에서 보았던 4호선 철길을 넘는 육교가 나오고,
조각품들이 설치되어 있는 철로 옆길을 따르니,
마침내 반월역에 도착하여 짧지 않은 근교 산행을 마감한다.
<반월동>
반월동은 안산에 있는 동네다. 1977년에 안산 지역에 공단을 조성하며 이름을 반월공단이라고 명명하고 그 지역 이름도 안산이라기보다는 '반월'이라는 명칭이 더 익숙했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 안산의 반월동은 반월공단과는 전혀 무관한 지역의 법정동명으로만 불리고 있다. 반월이라는 지명은 경기도뿐만 아니라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반월동과 충청남도 논산시 반월동도 있다. 이들 지명 대부분이 반달을 닮은 지형이라고 해서 반월이란 이름이 붙었을 뿐 상호 연관성은 전혀 없다.
안산시 반월동의 지명 유래는 마을 한가운데 수리산 줄기를 속칭 반월산이라고 불렀는데, 동네 이름은 그 이름을 따서 반월이라고 불렀다. 예전에는 화성군 반월면 관내에서 팔곡동 담너머 큰 반월이라 하였고, 담너머보다 호수가 적은 곳이라 하여 작은 반월이라 불렀다. 그런데 반월산의 정확한 위치는 분명치 않다. 이곳은 1906년 안산군 북방면 관할이 되었다가, 1914년에 다시 수원군 반월면 관할로 바뀌었다. 해방 후 화성군 반월면 관할이었다가, 신도시 개발로 1986년에 팔곡 2동이, 그리고 1994년에 팔곡 1동이 각각 안산시로 편입되었다.
반월역 앞 식당에서,
서울보다 훨씬 싸고 푸짐한 먹거리로 저녁을 해결하고,
반월역에서 전철로 귀갓길에 오른다.
완만한 숲길과 적당한 오르내림이 혼재하고, 군데군데 나타나는 전망바위뿐만 아니라 사방으로 탁 트인 조망이 있는 산꼭대기가 있는 산행코스, 한참을 걸어도 나 홀로임에 외로움이 밀려오다가도 이내 북쩍이는 산객들로 지체되기도 하는 산행코스, 거기에다가 호수 둘레길도 살짝 곁들여진 참으로 근교에서 찾기 쉽지 않은 코스를 걸었다. 수리산을 산행을 수없이 했음에도 별다른 관심을 갖지 못했던 지능선에 이렇게 아기자기한 코스가 숨어 있을 줄은 미처 몰랐다. 다만 20km를 살짝 넘는 거리가 근교 산행지로는 조금 부담스러기는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