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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
강 문 숙
문 닫힌 미술광장
천지간 고요 속에 흰빛을 끌고 오는 그림자만 가득하다
그저 자박자박 발걸음 옮기다가 멈춰서는 사뿐한 발치에
소소한 비명소리, 달개비꽃 그림자가 반쯤 발등 덮을 뿐이다
조용한 산책이 끝나고 오래된 벚나무 아래, 구름의자 당겨놓고 앉는다
자꾸 달아나는 마음 한쪽을 다스리는 중인지, 그 여자
지척을 바라보면서도 눈빛부터 멀어지는 참 애잔한 모습
해질녘, 노을 걸어놓고서야
또 가야할 먼 길 생각난 듯 손수건을 접고 일어선다
마음의 집은 늘 흰빛이다
하루
하루가 참 짧다, 생각하다가도
돌이켜보면 꽤 길다
해 뜨고 해 지는 일 어디 만만한 순례길인가
꽃잎을 여느라, 모란은
한 나절 얼마나 용 써댔을 테고, 구름은 또
동에서 서으로 발이 부르트도록 건넜을 것이었다
그대에게로 가는 길
손 끝 닿을 듯 지척이다 싶다가도
아직 너무 멀어 반도 못 왔다
하루 해 저리도 중천인데
사람들은 자꾸만
짧다, 짧다, 헛꽃 피우듯 중얼거린다
동백, 조문
모가지가 툭, 떨어지자
난데없이 해파랑 둘레길 환해진다
바닷바람이 서녘을 짠 혓바닥으로 핥는 동안
종종걸음으로 다가와. 어느새
부은 내 발등을 덮는 저녁는개
동백꽃 앞을 서성이며 조문하는 사람들
둘레길을 걷는다는 건
죽음의 언저리를 맴돈다는 걸 몰랐다
꽃 피기 직전의 떨림 오래 붙잡지 못하고
끝내 떨어지면서
그 습습한 生의 짠맛을 풍기고야 말 것이지만
오늘은 징하게 붉다, 저 동백
뉘엿뉘엿
해 떨어지는 저녁
마을은 모퉁이에서부터 눈꺼풀 닫는다
우두커니 마당가에 서 있던 늙은 감나무
막 주황색 노을 받아들이기 시작하는 열매들에게
가만가만 속삭이고 있다
괜찮아, 곧 어둠이 올거야
저문다는 것은 제 속의 불 켤 시간이 되었다는 거야
진짜 환한 빛은 가슴속에서부터 켜지는 불이지
천천히 기차가 지나가는 소리
조금씩 흔들리던 가지들 달래며
그제서야 오래된 나무는 팔을 내려놓는다
내 생이 그러했다
눈앞이 캄캄해질 때마다 가만가만 다독여주던
안 보이는 그 손
내 뒤에 누가 있었나
그가 내 등을 만진다, 따스하다
신비한 저녁이 오다
저녁이 수상하다
설레거나 절망적인 것도 아니다
구석마다 적막의 아우라가 펼쳐지는
저 풍경은 낯설지만 익숙하다
신비한 저녁이다 아이들의 목소리와 길고양이의 울음소리가 뒤섞여 가는 해를 주춤거리게 한다. 간혹 신생의 울음이 창문으로 새어나올 뿐, 이곳에서 늙은 죽음이란 대개 가려지고 만다.
신도시의 어둠은 애매모호하게 내린다. 해가 지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얕은 소름이 돋는다. 울타리 너머 옥수수가 시퍼렇게 자라고 있는 맞은편엔 밤이 되어도 어둡지 않은, 도무지 사람 냄새라고는 나지 않는 오피스텔이 무표정하게 서있다.
저마다 개를 데리고 나와 알 수 없는 언어가 뒤섞이며 저녁의 무늬를 만든다. 모자이크 처리가 된 화면을 보는 것 같다. 젊은 여자가 대부분이지만 간혹 불혹을 바라보는 남자의 까칠한 수염도 보인다. 두 마리의 개를 끌고서.
그들은 경우에 따라서는 갑이기도 하고 을이기도 하다. 자유로운 듯하지만 무엇엔가 쫒기는 닥터 라비크를 닮아 있다. 정체성이 모호한 이 도시의 사람들은 무엇으로 살까. 곧 어둠이 내릴 것이 분명한데 포켓공원은 점점 사람들로 붐빈다. 공원의 나무들은 서로의 등을 쓰다듬으며 일몰이 겹쳐지는 때를 기다린다.
신비함이란, 불안과 두려움이 뒤섞인
모호한 평화의 저녁과 같은 말이다
환한 막간
곡우 근처, 여러 날 비 내린다
꽃이 가고, 이제 열매 오려나보다
간혹 햇살이 얼굴 내밀다 말고
담장에 걸려 곤두박질 칠 때는 환한 幕間이다
나무의 존재이유는 꽃 피우기 위함이 아니라
결국, 열매의 입으로 말하는 것이라면
비야, 내려라
온몸으로 젖어주마
세상에 젖지 않는 나무란 없다
잠시라도 화관을 얹어 달콤했으니
드디어 생살 찢어 열매 앉힐 생각으로
겨드랑이 안쪽부터 팽팽하게, 부풀기도 한다
모두 다 초록이지만 전부 초록은 아닌데
나무는 다만 작은 잎새마다 살뜰한 우주를 담고 골똘해진다
이른 아침 수목원에는
비가 오는데도 자꾸 비가 내려 더 젖으라 한다
초록 문중에 들다
그 숲에는 초록이 초록을 안고 달린다
달리다가 머뭇거리는 지점에 자욱하게 장맛비 쏟아진다
온통 빽빽한 초록의
사계절 깊은 초록의 곡진함으로 소나무는 굽은 등 편다
그 곁에서 감히 상수리나무 초록은 들뜨지 않으면서 짙어간다
은초록을 입고 있는 자작나무 잎들 먼 손짓은 높은 허공을 향해
작은 바람에도 개별적으로 흔들린다
그 흔들림의 중심에는 초록이 있어 에 휘갈겨 쓴 붓질장서다
내리꽂히는 바늘을 피해 초록은 몰려가도 제자리다
여름비를 라 불렀던 이유가 분명해진다
몰래 날개 털며 우기를 견디는 숲새들
내 속에 빽빽하던 말들도 바깥으로 나오려는지 신열 앓던 지난 밤
저 숲의 나무들에게 무슨 형용사가 필요하겠나
그저 초록초록 일가를 이루고 있다가 내리꽂히는 빗줄기에 젖다가
반짝, 햇살 쏟아질 때면 몸 뒤틀어 물기를 터는
저, 초록
땡볕寺院
참 빽빽하다, 이 여름
가로수들 비장한 녹색 숨결이 그렇고
나뭇가지에 붙어서 악을 써대는
매미들의 가쁜 울음소리가 그렇다.
바람은 불지 않았고, 촘촘한 햇살이
피라미 한 마리도 놓칠 수 없다는 듯
완강하게 그물을 드리우고 있다.
천천히
길을 걷는 저 등뼈에 내리꽂히는
따가운 말들의 세례
여름 땡볕은 차라리 고행이다.
제 몸의 물기마저 다 내어주고
한 점 그늘이 되려는 생애의 刹那,
희고 커다란 손이
투명한 성채 하나 들어올린다.
달팽이, 길고도 느린 길이 풀린다.
여러 날 비 내리고
멀리서도 가까이서도
아득하다.
여러 날 비 내리는 척포
지붕 끝에서 먼저 젖고 있던 낚시점 간판
저 혼자 골똘하다.
바다낚시꾼과 비진도 지는 해 보러온 사람들 몇몇, 뼈 없는 말들만 오고 간다. 주인인지 객인지 경계가 없다. 커다란 항아리에 가득 채워놓은 냉커피는 공짜다. 얼음 띄운 종이컵이 흘리는 땀은 바다로 스며든다.
희멀끔한 낚싯배 타이슨 피싱 클럽과 해녀민박집 돌담아래 물봉선화 마주 보고 키득거린다. 해무가 내려와 방죽 끄트머리를 지울 무렵, 민박집 창문 꽃무늬 커튼이 바다를 덮는다.
모르는 척, 척포는 눅눅한 이불 끌어당긴다.
비는 한 사흘 더 올 것이라는 일기예보에도 딱히 서두르지 않는다. 언제든 와서 젖은 발 쑤욱 들이밀어도 받아줄 거 같은 비진도 사랑방엔 모두가 낯익고 모두 낯설다. 토박이 가게 주인도 섞여 앉으면 영락없는 손님이다.
살구나무 아래서
바람이 차갑다, 立冬
푸른방송 별관 지혜의 숲 한 귀퉁이를
지그시 누르고 있는 살구나무 옅은 그림자
오래전, 가만히 살구를 쥐어주던 손바닥 같은
쟁강쟁강, 얇은 놋쇠종소리 같은
작은 잎들 가만히 흔들어댄다
살구나무 아래로 세상 모든 저녁이 다 내려앉는다
살구나무는 저녁 불빛처럼, 고요히
환해지다가 닫히기를 반복한다
살구나무 아래 서면, 누구나 아스라해지는지
방금도 어떤 남자 둘이서 소소한 발걸음 풀어놓다가
그냥 한참씩 나무의 우듬지 눈으로 더듬다가
괜히 어깨를 으쓱거려보는 것이었다
살구나무 잎들은 살색이다
살구색은 아득한 거리에서 손짓하는
마음으로 읽어내는 소리다
저녁에 부르다
저녁에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는 일은 애처롭고도 따뜻하다
새들도 제 식구의 이름 부르는지 젖은 갈대숲이 수런거린다
가만히 불러내어 내 마음의 숨을 깊이 그에게 불어 넣어
탱탱해지며, 어스름 깃든 숲처럼 부풀고 싶다는 거다
그 숲에서 잠 든 벌레들과 어깨 내려놓은 작은 들꽃 만나
알 수없는 벅참으로 정지했던 행간, 오래 유지하고 싶다는 거다
어두워질 때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는 일은
등불을 켤 시간이 오듯이 그가 내게로 와서 등불이 된다는 거다
문득 저녁에 낯선 별이 뜨는 것은, 어디선가
글썽이며 내 마음 더듬던 그가 눈물 흘리고 있다는 전언이다
고요한 그릇
의자는 그릇이다, 흔들리면서 누군가의 몸을 담는다
그저 겸손히 받아들이면서 그의 생을 한순간 안아보는 것인데
설레임보다는 예고 없이 쿵, 떨어지는 심장 같은 것일 때가 많다
한 생이 담겨진다는 것은 희로애락의 지난한 은유일 뿐
오랜 시간 흘러왔을 내밀한 그리움과 고독, 또는
숨 가쁘게 걸어왔던 순간들이 버무려져 의자는 보이지 않게 우묵해진다
삐걱삐걱삐걱, 그래그래그래, (여자도 오랫동안 그릇이었으니)
저 소리는 한 생의 무게를 다 읽어낸 흐느낌이 배어 있는 그릇이
마음의 흔들림을 빙자하여 제 속에 고인 울음을 다스리려는 이 아닐까
저녁이 되는 것도 모르는 채 흔들의자와 여자는 오롯이 한 몸이다
한 생을 다한다는 것의 숭고함이란 누군가의 몸을 담아 보아야 안다
한 때 아이를 담고 있던 그 여자의 자궁처럼, 의자는
거실 한 귀퉁이에서 비스듬한 자세로 고요하게 어두워진다
고드름
한밤중에 느닷없는 통증, 필시 심장 근처에 있던 나의 혈관을 그에게 내어주었기에, 한 번씩 그 피가 뜨거워질 때의 생리주기가 돌아오는 모양이다
내 안을 흐르다가, 어느 겨울 아침 창을 열었을 때
하늘의 기울기로 단호하게 빗금 치며 배반을 꿈꾸는 물의
내 몸은 글썽이며 빗금 따라 뜨겁게 꿈틀대다가 급기야 천 길 낭떠러지로 곤두박질치며
급,강,하!
어쩌랴, 그 지극함으로 얼어붙은 몸이 잘게 부서져 저리 투명하게 매달리다니!
십이월의 하늘을 처마 밑으로 끌어당겨 한 땀 한 땀 꿰맨 후에야, 안심한 듯
겨울은 두툼한 솜이불 덮고 천천히 깊어간다
그런 밤에 누군가 그립다,그립다, 되뇌어 보면서 결빙의 고요 속으로 아득해지다가
끝내, 가슴 한복판을 찔린 적 있다
떨어지려는 힘과 솟아오르려는 의지가 결탁하여 빚어낸 저 단호한 말들 사이,
얼어붙은 손가락으로 하늘은 깍지 끼고 있다
아, 저 무너지는 것들
무너지는 것들은 아름답다
이윽고 태양이 서쪽으로 무너질 때 노을은 절정이다
언젠가 내가 가만히, 당신에게로 무너질 때 그 사랑이 절정이었던 것처럼
끌고 왔던 제 무게에 겨워 무너지는 물결은 파도의 끝없는 노래
연인들은 모래톱에 발자국 찍으며 밤 깊도록 걷다가, 기어이
낮은 지붕 아래서 뜨겁게 무너지고
오래된 나무의 꼿꼿하던 자세가 무너지기 직전에 드리우는
그늘 속으로, 겨우 발을 들이미는 사람들
생의 가파른 길 위에서 무너지지 않으려 애쓴 흔적 역력하다
를 넘어가던 바람이 비로소 무너지는 평원에
파르르, 일제히 쏟아지는 별처럼 흔들리는 풀꽃들
글썽이는, 우주의 저 속눈썹 하나
그 눈짓의 의미를 읽어내기 위해 시인은, 기꺼이 무너지는 사람이다
모든 무너지는 것들의 목소리는 간절함으로 이루어지는 것이어서
그 음계는 다만, 낮은음자리에 한다
노래란 그런 것
가톨릭대학병원 라파엘관 영상의학 검사실 길다란 복도엔 찰강찰강 링거병 흔들리는 소리,
교대하는 간호사들 가벼운 단화소리, 가끔 수녀님과 보호자들 낮은 탄식 도드라지는 저녁 여섯시의 무늬는, 단조로운 양각이다
라파엘라 라파엘라...복도 끄트머리에서 들리는 성가, 마흔 후반쯤의 헐렁한 저 여자, 필시 대장암 수술환자인거라, 소변 비닐주머니 덜렁덜렁 장바구니처럼 들고 오는
그녀는 지금 저녁 장보러 가는 중일까, 저리도 천연덕스럽다니... 마음의 팔 길게 뻗어 그 곡진함을 어루만진다, 이럴 때 희망고통은 객관적으로 잔인한 축복에 속한다
자박자박 소심하게 내 앞을 지나간다, 나는 옆집 여자처럼 웃어준다, 비닐주머니 슬쩍 들어 올리며 그녀도 따라 웃는다, 말려 올라간 카디건 소맷자락 끝에 구차한 생의 보푸라기들 뭉쳐있다
이제 함부로 희망을 노래하지 않겠다, 죽음의 그림자를 떨쳐버릴 수 있기까지 천 번은 울었을 그녀처럼, 자정이 넘은 골목에서 한 남자가 부르던 만만하고도 막막한 단조의 고성방가도, 하루치의 생을 꾸역꾸역 집어 삼켰다가 배설하는 중이었을 터
노래란 그런 것, 무수한 절망과 희망으로 버무려지다가, 엇박자 사이사이 쑤셔 넣은 독한 추임새까지 발효되고 나서야, 이윽고 온 생을 들어 올리며 달팽이관에 도달하는 눈물
그, 뜨거운, 환유다
나무의 장엄미사
한사코 침묵으로 일관하던 저 직립의 수도사
나무들, 하나씩 하나씩 잎을 버리며 자신의 몸에다 을 새기는 중이다
푸른빛 내려놓자 붉은 물 담긴 잎들은 낮은 곳으로, 더 낮은 곳으로
돌아가는 길 환하다, 뜨겁다, 그래서 더 아프다
떨어지는 꽃에게도 이 있다면 숨소리조차 가뿐한 이 소멸의 따뜻함이여
11월의 숲을 만나면 실오라기 하나도 걸치지 않은 채 홀로 서서
나무들이 집전하는 의 소리 들어보라,
한 점 살갗조차 무거워 울음 복받친다면 이미 제물의 반열에 든 것
바람도 기꺼이 제 발로 걸어 들어와 늑골 안쪽에서부터 을 건드리는데
그 소리 계면조에 가까워서 숲은, 온전히 두근거리며 적막한 성전이다
나무에 깃들었던 새들이 제 발자국 지우며 더 높고 먼 곳으로 날아갈 채비를 한다
쉿! 지금 그곳에서는 나무의 장엄미사 중이다
사랑에 관한 짧은 고찰
여자가 한 남자를 번역한다
그 남자는 여자와, 여자의 문장을 동시에 번역한다
그들의 공통점은 내 마음을 너에게로 보내고
네 몸이 내게로 오게 하는 일이다
단어가 제 궤도를 이탈해 오역할 때도 빈번하다
한 여름인데 눈이 내리고 하늘이 닫힌다. 끝이야!
소리치는 순간이 와도 번역은 아직 유효하다
그들만의 얼굴가린 언어에 갇히다가, 때로
오역인줄도 모르고 그 향기에 도취되기도 한다
하지만 침묵은 참을 수 없이 난해한 기호
그 빈혈의 시간을 견딜 수 없어
서로의 무게중심을 고민하는 행간이다, 위험하다
번역하는 동안만이 그들의 시간일 뿐
끝장을 내고서야 암묵적인 유효기간을 산출해내는 아이러니
완벽한 번역은 불가능에 가깝다
사랑은 번역이다
제각각 우레 속의 뇌파로 번역한 눈먼 문장이
툭, 가슴 어디쯤에서 끊어지며 반역할 때까지
서로에게 절벽 같은 꽃을 달아준다
생활의 발견
어렴풋이, 벽지의 꽃무늬가 드러나기 시작하고
벽에 걸린 그림이나 사물들 서서히 윤곽이 잡혀가는
그 순간의 모호함은 薄明을 닮아 푸르다.
꼼짝할 수가 없다, 아직 기척 없는 그러나 분명히 존재하는 그 무엇
살아 있다는 게 다행이기도 하다가 또 불행이기도 한
죽음직전의 순간이 이러하리라
그 평온함과 불온함이 소리 없이 몸 뒤집으며 딱 붙어 있는 늪
창문을 여는 순간, 확 밀려온 햇살들 쨍그랑 빛나고
가만히 내 깊은 우물은 일렁거린다
분명해지던 사물들의 찬란함이 스스로 제 몸의 윤곽을 지울 때까지가
생활이다
그것은 늘 가만히, 라는 말의 모호함으로부터 시작된다
생활은 이런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서
소소한 것들의 소리를 귀담아 듣는 일이다.
왕버드나무에게 길을 묻다
짙은 안개를 뚫고, 주산지 검은 수면 위를 솟아오른 왕버드나무
죽은 시간의 냄새마저 향기롭게 피워 올리는 그 뿌리의 체온 뜨겁다
붉은 전언처럼, 잎들이 떨어진다
귀를 세운 나무가 듣고 있는 소리는 금방 과거가 되어버리는
지금, 우리의 이 허망한 애착이 아닐까
잔손금 가득한 손바닥을 대본다
반 백년도 채 못산 철없는 손바닥이 닿자, 가지는 움찔한다
나무에게도 영혼이 있다고 했던가
그때 내가 만진 것은
검은 팔뚝의 딱딱한 껍질이 아니라 오랜 시간의 결이었다
햇볕과 바람, 떨어지는 빗줄기를 한 오백년 받아먹은 왕버드나무
지금 제 속으로 길을 내고 있는 중이다
먼 길 더듬어 시큰거리는 발목들 저수지 둑 가에 오래 서성거린다
독도에서는 갈매기도 모국어로 운다
독도에서는 갈매기도 모국어로 운다
가갸거겨 뱃전에서 모음과 자음으로 끼룩대다가
ㅅㅅㅅ 커다란 날개 저으며 저희들끼리 대오를 이룬다
동쪽에서 떠오른 해가 맨 먼저 어루만지는 한반도의 등대
독도의 깨진 정강이를 쓰다듬는 파도의 울음 하도 간절하여
빳빳하게, 조선의 팔뚝 힘으로 흔들리는 풀잎들
섬의 젖꼭지를 물고 있던 섬말나리꽃 다홍색 입술이 짜다
새들이 죽을 때 제 고향으로 머릴 두는 것처럼
그리운 것들을 향해 제 그늘을 내어주는 해송처럼
저녁이 오고
독도는 바람의 결이 빚어낸 바위의 모진 角을
지긋이 한반도 쪽으로 기울이다가, 분연히
다시금 홀로 일어서는 것이다
첫댓글 시 한편 안고
출근합니다
회장님 고맙습니다 ^^
아침이 피어오는 초록의
시간에 강문숙 선생님의
시어에 푹 빠져봅니다!
회장님 올려주셔 고맙습니다^^
저녁에 부르다
낭독하겠습니다
왕버드나무에게 길을 묻다
신청합니다
노래란 그런 것
하겠습니다.
수고많으시네요
뉘엿뉘엿 낭송하겠습니다
좋은날되세요~^^
신비한 저녁이 오다로 신청합니다..대기네요...ㅎ
아~~출근 바빠 시 선택하려다 늦었네요^^ㅎ
낭송 잘하시는 분들이라
만족합니다^^
열화와 같은 성원에 힘입어
이태희 회원님의 신청을 포함해서
마감합니데이~~
목시때 뵐께요~~
마카다 예쁘게 하고 오시이소~~♥♥♥
역시 모두 최고이십니다
하루가 짧은 게 아니라는 거 또 알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