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통영 바다와 딸의 시간...최미자 작가
박경아 기자
최미자 작가 프로필
2020년 《에세이스트》 수필등단
2025년 《에세이스트》 올해의 작품상 수상
진등재문학회
에세이스트작가회의
마산문인협회 회원
최미자 작가의 에세이 '통영 바다와 딸의 시간' [그림 제공=최신뉴스 박경아 기자]
통영 바다와 딸의 시간
소금기가 있는 것에는 신비가 있다던가. 눈물에도 바다에도. 짜디짠 통영 바다는 어떨까. 바람에 실린 소금기와 파도의 노래는 아름답고 신비로운 알갱이를 만들어 품고 있을 것이다.
그 알갱이를 건져 올려 화가 전혁림은 고향 바다의 색, 코발트블루를 만들었고, 윤이상은 바다의 숨결로 음악을 빚었다. 박경리는 항구 가득 정박한 작은 배들과 휘황찬란한 불빛이 경이로운 신천지라 표현했고, 백 석은 자다가도 뛰어나가고 싶은 통영 바다라고 했다. 그들에게는 통영은 예술을 넘어선 뿌리였으리라.
나 역시 통영이라는 도시에 반했다. 반한다는 건, 상대가 성실하게 자신의 일을 해내는 모습을 볼 때 가능한 일이다. 통영 바다는 신비한 비밀을 품고 있으면서도 누구에게나 보여 주고, 욕심부리지 않고 아낌없이 내어준다.
내가 통영에 대하여 알고 있던 것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임진왜란, 이순신 장군, 그의 시호를 따라 충무라 불렀던 옛 이름 정도였다, 딸이 통영으로 발령 받으며 나와 인연이 시작되었다.
최미자 작가의 에세이 '통영 바다와 딸의 시간[그림 제공=최신뉴스 박경아 기자]
딸이 태어났을 때, 나는 공무원이었다. 당시에는 산전, 산후를 합친 60일의 출산휴가가 전부였다. 아이를 하루라도 더 품에 안고 싶어 산전휴가는 쓰지 않았다. 많이 움직인 탓인지 딸은 예정일보다 보름 빨리, 2.6kg이라는 작은 모습으로 우리 곁으로 왔다. 갓난아이의 손을 내 손에 쥐었을 때, 세상이 멈추는 듯했다. 그 작은 생명이 나의 마음을 가득 채우고 내가 사는 세상의 전부가 되었다.
딸은 쑥쑥 자라지 않았다. 키와 몸무게는 평균에 못 미쳤다. 뱃속에서 충분히 자라지 못한 탓이라 생각했다. 미안함이 늘 마음속에 얹혀 있었다. 이제 이십 대 후반이 된 딸이 미륵산 자락에 있는 관사에서 살게 되었다. 나는 간단한 생활용품을 준비해 주었다. 다음 인사 때 마산으로 신청해서, 집에서 함께 지내자며 잡은 손을 꼭 쥐었다. 주말이면 집으로 오고 일요일 밤이면 통영으로 돌아갔다. 몇 달이 흘렀다.
최미자 작가의 에세이 '통영 바다와 딸의 시간'[그림 제공=최신뉴스 박경아 기자]
어느 주말, 딸이 이번엔 우리가 통영으로 오라고 했다. 반가웠다. 새로운 곳에 적응되었다는 말로 들렸기 때문이다. 딸이 이끈 곳은 봉수 골이었다. 당산나무가 자리한, 나지막한 낡고 작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동네였다. 골목과 오래된 담벼락이 나누는 이야기를 들으며 들어선 곳은 ‘봄날의 책방’이었다. 낮은 클래식 음악이 흐르고 있었고, 서점이라기보다 작은 서재 같았다. 폐가를 지역의 출판사와 건축가가 힘을 합쳐 독립 서점으로 만든 곳이었다. 단순한 동네 책방이 아니었다. 통영의 문화 예술적 감성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으면서, 지역의 예술인을 사랑하는 향기를 느낄 수 있었다. 가슴이 뛰었다. 책과 사람의 향기를 오래 간직하고 싶었다.
주방을 개조한 ‘책 읽는 부엌’에서 타일 아트와 도자기를 만났다. 골목에 나란히 있는 전혁림 미술관에도 들렀다. 오래된 낮은 집과 새로 들어서는 카페들이 조화롭게 모여 있는 호젓한 골목에 미술관이 있다니 놀라웠다. 생활공간을 넘어 예술과 작업의 일부로 존재하고 있었다. 고향 바다와 예술을 사랑한 혼과 일상이 바람처럼 내 마음을 스쳤다.
봄날의 책방과 미술관을 여행지로 선택한 딸이 대견했다. 고마움을 넘어 감동이었다. 늘 안타까워해야 했던 아이가 아니었다. 딸에 대한 마음이 가벼워지기 시작하면서 미안함을 조금씩 덜어낼 수 있게 되었다.
최미자 작가의 에세이'통영 바다와 딸의 시간'[그림 제공=최신뉴스 박경아 기자]
여수와 부산 사이를 내왕하는 항로의 중간지점인 조촐한 어항, 동양의 나폴리라 부르는 곳, 내 딸의 삶이 성장하고 있는 통영을 더 많이 알고 싶어졌다. 딸이 근무하는 사무실은 윤이상 기념관의 길 건너편에 있다. 그의 음악 세계가 궁금해졌고, 소설 『김 약국의 딸들』을 다시 읽으며, 서피랑 99계단을 걸었다. 국제 음악당의 공연 일정에 따라 발길을 옮기기도 했다.
강구항에는 한 집 걸러 김밥집과 꿀 빵집이 있다. 생김에 흰밥을 돌돌 만 충무 김밥은 거칠지만, 따뜻한 바다를 닮았다. 서호 시장에는 새벽에 일하는 뱃사람들과 시장 상인들의 몸을 데워주는 시락국 집이 즐비하다. 부두의 노동문화와 서민들의 맛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예술인을, 맛을, 명소를 알아가면서 통영 사람 다 된 듯한 착각이 들었다.
통영 바다는 김춘수, 이중섭, 유치환 등 이름난 사람들만 키웠겠는가. 바다를 생활 터전으로 삼은 어부도, 해풍 맞으며 논밭을 일구는 농부도 모두 끌어안았다. 잠시 스쳐 지나가는 곳이라 생각했던 딸의 삶도 바꾸었다. 결혼하고 아이 엄마가 되었다. 코로나 팬데믹 때는 밤낮없이 바이러스와 사투를 벌였고, 검역관으로서 역량을 키워 중간 관리자가 되었다.
오래전 대부분의 생물은 바다에 살았다고 한다. 그중의 일부가 뭍으로 올라와서 살게 되었다. 그래서 바다는 모든 존재의 고향이자 그리움이라고 했던가. 내 고향 마산 바다에 대한 그리움을 깊은 곳에 안은 채, 아침 녘의 통영 바다를 보며 딸의 삶이 더욱 풍성해지기를 소망하고, 저녁녘의 바다를 곁에 두고 지금으로도 충분하다며 욕심을 덜어낸다.
(경남대학교 백남오 수필교실: 010-2314-50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