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고흐는 네덜란드에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는데, 그의 초기 작품 중 하나인 '감자 먹는 사람들' 같은 그림은 어둡고 침울한 분위기를 띠고 있으며, 가난한 네덜란드 농민들의 고된 삶에 대한 화가의 연민을 드러낸다. 그러나 파리로의 이주, 이후 프랑스 남부로의 이동은 그의 화풍에 극적인 변화를 가져온다. 어둠은 사라지고 강렬한 빛이 작품을 채우기 시작했다. 이 시기를 대표하는 가장 유명한 그림인 '해바라기'는 눈부신 노란색이 폭발하듯 펼쳐진 작품이다.
사람들은 이러한 빛과 색채의 변화가 단순히 프랑스 남부의 햇빛이 기분을 좋게 만들었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라고 말한다. 반 고흐는 정신병 발작을 겪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는데, 당시에는 이것이 간질에서 비롯된 것으로 여겼으며, 치료에 디기탈리스라는 약물을 사용했다. 그런데 이 약은 영국 의사 윌리엄 위더링이 발견한 '심장병' 치료제였다.
연구자들은 반 고흐가 이 부적절한 약물로 치료를 받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가 자신의 주치의였던 폴 가셰 박사를 그린 초상화에서 의사가 디기탈리스의 원료 식물인 여우장갑꽃foxglove 줄기를 들고 있기 때문이다.
디기탈리스를 과다 복용하면 구토, 현기증, 시각 장애가 나타난다. 반 고흐의 후기 작품들에는 노란색이 아주 많이 사용되었는데, ‘해바라기’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오베르에 있는 자신의 집도 노란색으로 그렸다. 디기탈리스 사용과 관련하여 사물이 노란색 후광을 두른 것처럼 보이는 색채 인식 이상이 실제로 보고된 바 있다. 반 고흐의 의학적 문제를 디기탈리스 중독으로 설명하는 가설은 흥미롭지만 다소 상상력이 가미된 것일 수도 있다.
또 다른 가능성은 메니에르병Ménière's disease라는 중이中耳 질환이다. 반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800여 통의 편지를 살펴보면, 그는 현기증과 구토가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발작을 겪었으며 감각적 환각도 경험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발작은 움직임이나 큰 소리를 견디지 못하는 증상과 함께 나타났다. 그러나 반 고흐가 ‘발작’이라고 부른 이런 증상 사이에는 긴 무증상 기간이 있었는데, 이는 메니에르병에서 흔히 나타나는 특징이다.
또한 청각 환각이나 이명도 흔히 나타난다. 일부 환자들은 그 고통을 덜기 위해 '귀를 잘라버리고 싶다'거나 '송곳으로 구멍을 내고 싶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런 점에서 반 고흐가 겪은 증상은 메니에르병의 증상과 상당히 일치하며, 1888년 그 운명의 날에 그가 자해를 한 이유에 대한 설득력 있는 설명이 될 수 있다.
반 고흐의 기이한 행동을 설명하는 또 다른 가능성도 있다. 그것은 당시 매우 인기 있던 술 압생트Absinthe에 의한 중독이다. 압생트의 기본 성분은 알코올, 쓴쑥苦艾의 정유wormwood oil, 아니스, 회향, 주니퍼, 육두구 등이다. 이 가운데 쓴쑥의 정유가 특히 중요하다. 쓴쑥의 활성 성분은 투존thujone인데, 이 물질은 신경계를 흥분시켜 의식 상실과 경련을 유발할 수 있다. 실제로 투존이 유발하는 상태는 간질 연구의 모델로 사용되기도 했다.
압생트가 많은 문제를 일으켰기 때문에 프랑스 정부는 20세기 초 이 술을 금지했다. 그러나 그 후손격인 페르노Pernod는 여전히 판매되고 있다. 페르노는 물을 섞으면 압생트처럼 녹색에서 흰색으로 변하는 특징이 있어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데, 알코올에는 녹지만 물에는 녹지 않는 화합물들이 물을 넣으면 침전되는 루슈Louche효과 때문이다.
반 고흐가 프랑스 남부에서 지내던 시절 압생트를 과도하게 마셨다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폴 고갱이 그를 방문할 때면 두 사람은 함께 압생트를 폭음하곤 했고, 빈센트는 거의 항상 매춘부를 찾아 갔다고 한다. 어느 날 밤, 그는 고갱과 크게 다투었고 압생트 잔을 그에게 던진 뒤 면도칼로 위협했다. 그 후 죄책감에 괴로워하며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 결국 자신의 귀를 자르는 행동을 하게 된다.
1890년 반 고흐가 자살한 이유가 간질 때문인지, 메니에르병 때문인지, 투존 중독 때문인지, 다른 요인 때문인지는 결코 알 수 없을 것이다. 일부 미술사가들은 그가 출생 당시 뇌 손상을 입었을 가능성을 제기하며 이것이 그의 이상 행동의 주요 원인이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가 마지막 그림에서 묘사했던 바로 그 밀밭 근처, 거름더미 뒤에서 스스로 총을 쏜 이유는 영원한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그 마지막 그림에는 노란 야생 밀밭 한가운데에서 갑자기 끝나버리는 길이 그려져 있는데, 어떤 이들은 그 길이 반 고흐의 짧은 삶을 상징한다고 해석한다.
고흐가 죽은 뒤, 그의 주치의였던 가셰 박사는 그의 무덤 위에 나무 한 그루를 심었다. 동생 테오도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나 다른 곳에 묻혔는데, 23년 후 가족들은 생전에 매우 가까웠던 두 형제가 죽어서도 함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같은 묘지에 합장하기로 했다. 빈센트의 무덤을 파보니 그의 관은 가셰 박사가 심은 나무의 뿌리에 완전히 감겨 있었다. 놀랍게도 그 나무는 바로 투존의 원천인 쓴쑥 나무였다. 빈센트 반 고흐는 이승에서도, 저승에서도 투존의 손아귀에 붙잡혀 있었던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