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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골산 봉서방 원문보기 글쓴이: 김민호 목사
주일설교.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빌립보서 4장 6,7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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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은 “호국보훈(護國報勳)”의 달입니다. 날짜별로 보면, 6일에 현충일이 지났고, 10일은 민주 항쟁(1987)이 있었던 날이고, 13일에는 지방선거, 25일에는 한국전쟁(1950)이 있었던 날입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 희생당하신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을 기리고 감사하는 달이 되기를 바랍니다. 특히 우리 국민들은 6월 12일에 있을 역사적인 북·미 정상 회담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외신들은 이 회담을 일컬어 세계에서 가장 예측 불가능한 두 사람이 만나는 역사적인 사건이라고 평가하면서, 어떠한 일도 일어날 수 있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수 있다는 입장을 내고 있습니다. 분단된 우리 조국을 생각할 때 어렵게 성사된 대화인 만큼 온 국민이 기대하는 좋은 성과가 나오기를 바래봅니다.
북·미 회담을 주도할 ‘트럼프(Donald Trump)’ 대통령은 자신의 인생에서 성경 말씀이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이야기 하면서,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성경 구절이 있다고 밝혔습니다. 자신에게 가장 영향을 미친 구절이,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구절이라고 했습니다. 이 구절은 자신에게 상해(피해)를 입힌 사람에게 받은 만큼 돌려주라(보복하라)는 구절입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깜짝 놀랄만한 기행적인 언행을 일삼는 트럼프다운 구절입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이 구절에 대해 예수님이 말씀 하신 진정한의미의 해석을 잘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이 말씀 하시기를, “너희가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거것을 들었으되~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자만)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와 같이 하느니라”(마 5:38,44,46) 아멘. “눈에는 눈으로” 라는 구절을 복수하라는 것으로 생각했던 율법 해석은 잘못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화해 방법은 처음부터 끝까지 “사랑”입니다. 죽을 때까지 절대로 화해 못할 철 천지 원수였던 사이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다 사랑의 힘으로 관계의 개선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인간들이 죄를 많이 지어서, 하나님도 우리와 원수로 지낸 적이 있습니다. 북한과 미국이 이념적,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과 인간은 ‘죄’의 장벽에 가로막혀서 아주 오랜 기간 동안 냉전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으로 인해 우리는 하나님과 화목(화평)을 이루었습니다. 북·미간에도 예수님의 사랑의 정신으로 대화 하면 반드시 평화는 우리의 것이 될 것입니다.
트럼프가 “눈에는 눈” 구절을 가장 영향 있는 구절이라고 했는데, 우리 한국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고, 가장 많이 암송하고 있는 구절이 바로 오늘 말씀입니다. 우리 교회의 6월의 암송 말씀이기도 합니다. 1~5월 암송 말씀도 잘 외워 오셨지만, 특히 이 말씀은 꼭 외우세요. 장담하건대 이 말씀 하나만 있어도, 삶에서 힘을 얻으시고, 많은 위로를 받으실 수 있습니다. 본문 말씀이 담고 있는 내용들을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6절에,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라” 라고 시작하는데, “아무것도”라는 말을 반어적으로 생각해 보면, 그 만큼 우리 인생이 염려거리가 차고 넘친 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염려하다”는 말(헬, 메림나테, anxious)은, 어떠한 일을 문젯거리로 인식하고 근심에 빠지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입장에서 염려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쓸데없는 걱정을 하고 있는 겁니다. 다른 사람이 보았을 때는 정말 큰 문제가 생겨서 염려하는 것 같아 보이지만,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사서 고생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머리 싸매고 걱정해봐야 되지도 않는 일을 혼자서 끌어안고 끙끙 거리는 상황이 염려입니다. 여러분들, 다 염려 거리가 많으시죠. 저도 염려, 걱정, 불안에 대한 마음들이 이것저것 많습니다. 염려는 마음의 고통만 가중 시키고, 화병만 나게 하고, 아무런 해결책을 얻어낼 수 없습니다. 오늘 말씀 듣고 저와 여러분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모든 염려를 속 시원하게 다 버리든지, 맡기든지 결판을 내야 합니다.
예수님이 산상 수훈 중에 염려에 대해 결론으로 말씀 하시기를,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마 6:25)고 하셨습니다. 사람들은 늘 미래를 걱정하고, 염려하고, 불안해합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걱정과 염려가 주권자인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저하되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진단해 주셨습니다. 이러한 걱정과 염려는 이방인들, 즉,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세상 사람들(우상숭배자나 무신론자들)이나 하는 형편없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염려를 싸안고 살아가는 것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을 끌어 않고 사는 것과 같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베드로전서 5:7) 라고 했습니다. 말씀대로 다 주께 맡기면 간단하게 해결 됩니다. 그런데, 염려가 웬 말입니까? 예수님은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을 우리 마음에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런데, 걱정이 웬 말입니까? 성령 하나님은 우리인생의 걸음걸음과 동행하시며, 상담해 주시고, 위로와 용기를 계속 공급해 주십니다. 그런데 왜 근심하고 낙담에 빠져 살아갑니까? 믿음이 바닥이기 때문입니다. 문제의 해결책을 자꾸 세상에서 찾으려고 기웃거리기 때문입니다. 자기 생각으로 해결 할 수 있다는 만용을 부리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염려에 빠져 있는 사람들에게 말씀 하시기를, “믿음이 작은 자들아!, 너희가 염려 하는 것으로 너희 키를 한자라도 크게 할 수 있느냐? 들에 있는 백합화와, 내일 아궁이에 들어갈 들풀도 입히시는데, 하물며 너희들을 굶기고, 헐벗게 만들겠느냐?” (마 6:28-31) 따끔한 말씀입니다. 믿음과 염려는 상대적입니다. 한쪽이 많아지고, 쎄지면 다른 한 쪽은 적어지고, 약화됩니다. 우리 신앙의 무게추가 믿음에 머물러 있다면 염려는 자연스럽게 줄어들게 됩니다. 사탄은 우리를 염려에 빠트리려고 끊임없는 시험과 유혹을 합니다. 예수님도 이 땅에 육체로 사시는 동안에는 지속적인 유혹들을 이겨 내셔야만 했습니다. 예수님은 어떤 방법으로 광야의 시험부터 겟세마네 동산의 유혹까지 전부 이겨내실 수 있었을까요?
사도 바울은 이러한 염려의 해결 방법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오직 모든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아멘. 오직 기도와 간구가 염려와 모든 문제와 근심의 해결책입니다. 바울은 이 해결책을 확신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실제 경험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에 이런 말을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겁니다. 여러분들도 염려 많으시죠? 건강문제, 직장 문제, 공부, 자녀교육, 노후, 불화와 분쟁, 채무, 각종 시험 준비 등등, 많은 문제들이 우리 앞에 있습니다. 그럼 여러분들은 염려가 찾아오면 기도로 해결하고 계십니까? 아니면 스스로 해결 해보려고 좌추우돌 하고 계십니까?
염려를 대하는 성도의 자세는 오직 기도 뿐 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먹을 것, 입을 것을 염려 하지 말고)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먹을 것, 입을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고 하셨습니다. 기도하는 것은 주권자를 온전하게 신뢰하는 행동입니다. 믿음으로 주인에게 나아가면, 주인은 모든 좋은 것을 내어 주시려고 하시기 때문에 모든 염려는 자연스럽게 해결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입술로만 예수님을 주인으로 고백하면서, 정작 염려와 고민은 주인과 상의를 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문제죠. 털어놔야, 상담해야, 답이 나옵니다. 하나님은 염려거리를 빨리빨리 끄집어내는 사람을 귀찮아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그렇게 하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하나님 아버지에게는 한 마디도 안 하며 사는 사람은 정말 바보 같은 사람입니다.
제가 여러분의 마음 상태를 속속들이 다 알 수 없습니다. “목사님! 저한테 이런 저런 일이 있습니다. 기도해 주 세요”라고 말하지 않으면 제가 어찌 알겠습니까? 하지만, 하나님은 말 안 해도 여러분의 어렵고 힘든 상황을 다 아십니다. 아프고 쓰린 상처들을 기억하고 계십니다. 답답하고 꽉 막힌 황을 안타까워하십니다. 남 몰래 흘리는 눈물을 지켜보고 계십니다. 우리가 처해 있는 상황을 그 누구보다도 다 아시고, 이해해 주시는 분이 하나님 이십니다. 그러면, 하나님께 우리의 사정을 아뢰어야죠. 사람들 상대로 상담하고 방법을 찾아봐야 평안을 찾을 수 없습니다. 기도하십시오. 간구, 간절하게 매달려 보십시오. 막힌 것이 뻥 뚫리고 답답했던 가슴이 시원해지실 겁니다.
제가 수요일 새벽에 기도하는데 기도가 잘 안되더군요. 그래서 찬양을 듣자, 찬양을 들으면 마음이 평안해지고 기도가 열릴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유튜브’에서 찬양을 듣는데, “나의 가는 길 주님 인도 하시네, 그는 보이지 않아도 날 위해 일 하시네, 주 나의 인도자 항상 함께 하시네 사랑과 힘 베푸시며 인도하시네~” 라는 찬양을 듣는 중에 머리가 쭈뼛 해 지더라구요. 은혜가 되고 성령의 감동이 일어날 때 저 만의 반응입니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날 인도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큰 파도와 같이 밀려오면서 눈물이 주룩주룩 흘러내렸습니다. 주님은, 내가 주님을 많이 사랑하지 않아도, 주님을 온전하게 신뢰하지 못해도, 삶 속에서 고집과 망상으로 실망을 시켜 드려도, 여전히 나를 포기하지 않으시는구나. 감사하고 또 감사했습니다. 감동이 오자 바로 기도로 이어졌고, 주님의 충만하신 채워 주심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오늘 말씀처럼, 주님은 감사함으로 구할 것을 구하는 자에게 반드시 평안을 채워 주시는 분입니다.
여러분, 우리 앞에 쌓여있는 수많은 염려, 걱정, 근심, 불안, 상처, 그리고 불안한 미래에 먹을 걱정, 입을 걱정, 앞으로 발생할 인생의 헤아릴 수 없는 문제, 문제들, 다 어떻게 하시렵니까? 지금처럼 그냥 마음 닫고, 입 닫고 가슴에돌 덩어리처럼 달고 다니시렵니까? 한 번에 해결하십시오. 오직 기도와 간구 뿐 입니다. 기도할 대상인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알고 있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을 배웠고, 성령님이 기도하는 것을 도와주시는 분임을 믿고 있습니다. 이미 다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무릎을 꿇고, 입을 열기만 하면 됩니다. 기도하며 평안을 얻으시겠습니까? 염려하며 하나님과 단절된 삶을 살아가시겠습니까? 아무것도 염려하지 않고, 오직 기도와 간구로 하나님께 모든 염려를 맡기고, 믿음 안에서 승리와 평안을 삶을 살아가는 00교회 성도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7절은 “그리하면” 으로 시작합니다. 기도하고 간구하면 7절이 되고, 그렇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우리들은 모든 일에 기도하고, 간구한다고, “아멘”으로 화답 했으니, 7절의 말씀을 얻고, 취할 수 있습니다. 7절을 큰 소리로 읽어 보겠습니다.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아멘. 그런데 바울은, 하나님이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계시는 상황을, “지각이 뛰어나시다”라고 표현했습니다.
여기서, “지각(헬, 눈, understanding)”이라는 말은, “냉정하고 침착하고 편견 없이 생각하며 판단하는 능력”(옥스포드 원어성경대전 해석)이라는 뜻입니다.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 기도하면 무조건 들어 주시지 않습니다. 무분별하고, 욕심으로, 그리고 믿음 없이 건성으로 드려지는 기도는 일체 받지 않으십니다. 진심으로, 감사함으로, 그리고 간절함으로 드리는 기도만 걸러 내셔서 들으시고, 응답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만이 분별하실 수 있는 지각능력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도와 간구를 받으실 만하다고 판단하시면, ‘평강’이라는 선물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평강은, 안정적인 심리상태를 말하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하나님과 기도자 간에 이루어지는 관계적인 평강( 화목=좋은 만남, 좋은 교제)을 말합니다. 우리에게 평강이 사라지면,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는 틈이 벌어집니다. 그 틈 사이로 죄가 스며들어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는 점점 멀어집니다. 급기야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평강이 깨지고, 불화가 일어나서, 원수처럼 지내는 사이가 되어 버립니다.
하나님께서 기도자에게 평강을 선물로 주시는 이유가, 오늘 말씀의 마지막에서와 같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마음’이라는 단어는(헬, 카르디아스)는 사람의 몸의 중심 기관인 심장(heart)을 뜻하는 단어로, 사람이 느끼는 감정의 가장 깊은 지점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 하면서, 감동 되었다(은혜 받았다)라고 표현하는 것은 여기서 말하는 마음이 작동 되었다는 것으로 이해하시면 됩니다.
그 다음에 ‘생각’ 이라는 단어는(헬, 노에마타) 앞서 마음의 움직임이 일어난 후에 그 후속 조치를 말합니다. 이성적인 판단을 하고, 도덕적인 의지를 발휘하여 세상에 나가 올바르게 행동하는 것을 말합니다. 즉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 직접적으로 개입하셔서 어떠한 판단과 행동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주시겠다는 의도입니다. 그런데, 마음과 생각 앞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라는 말이 붙어 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뜨거운 감동을 마음에 받았어도, 아무리 강철 같은 굳은 생각(의지)로 어떤 일을 행하려고 한다 하여도, 예수님 이름으로, 예수님이 주신 능력으로 움직이지 않는다면, 실패하고 말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마음과 생각을 지켜 주시지 않는다면, 하나님이 주신 평강의 선물도 아무 쓸모가 없게 됩니다.
왜 예수님이 이토록 중요 합니까? 오늘 말씀 드리고 있는 가장 중요한 핵심 포인트가 아무것도 염려 하지 않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 기도와 간구라고 했습니다. 그 기도와 간구를 누가 하나님께 전해주느냐면, 바로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가 중보자로서 그 역할을 해 주십니다. 7절에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가 빠지면, 이 문장은 아무런 효력이 없게 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를 마무리하는 이유가, 예수님이 우리의 기도를 하나님께 전해 주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기 때문입니다. 기도와 간구가 하나님께 전달이 안 되면, 평강의 선물도 없고, 우리의 마음과 생각도 지켜지지도 않습니다.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가는 핵심적인 안심 키워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 무엇이겠습니까? 그리스도인답게, 예수님의 이름을 더럽히지 않고 살아가는 일입니다. 이렇게 사는 모습이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사는 것입니다. 신앙과 삶이 전혀 매치되지 않는, ‘언행불일치’, 나아가서 ‘신행불일치’의 삶을 살아간다면, 아무리 진리의 성경 말씀을 갖다 붙이고, 거룩한 기도의 모습을 보이고, 화려한 예배 예복을 입고 찬송가를 부른다고 할지라도, 시끄러운 소음만 내는 꽹과리에 불과 합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라”는 말씀에서 보듯, 문제보다 크신 하나님, 상황 보다 크신 하나님을 바라볼 때 염려는 사라지는 겁니다.
우리 각자(교회)는 신랑 되신 예수님과 결혼한 몸입니다. 한 몸이 되었으니, 칭찬을 들어도 같이 듣고, 욕을 먹어도 같이 먹는 겁니다. 내가 마음과 생각을 지키지 못하고 음란과 유흥과 부정한 일, 판단과 정죄하는 일에 빠져 살아가면, 나만 망가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이름도 더럽힌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염려 없이 살 수는 없지만, “기도와 간구”라는 해법을 찾았습니다. 평강을 얻기 위해서 많이 기도하시고, 마음과 생각을 지키는 언행을 하기 위해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생활 하도록 힘쓰고 노력하십시오. 6월 달에는 빌립보서 4장, 6,7절 암송 말씀으로, 지친 육신이 강건하게 되고,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믿음으로 승리하는 복된 시간을 보내시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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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아무것도 염려 하지 않는 평강의 은혜를 내려 주옵소서. 기도와 간구가 일어날 수 있도록 기도의 불을 붙여 주옵소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만 마음과 생각을 움직일 수 있도록 성령 하나님 동행하시고 보호하여 주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