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건반처럼
원준연
교육도시 충남 공주는 내가 태어나고 자란 정다운 고향이다. 1960년대, 인구 3만의 작은 읍에 대학이 셋이나 있었으니, 교육도시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다. 그 덕분인지 읍내에는 종종 외국인이 눈에 띄었는데, 대개는 평화봉사단(Peace Corps)으로 온 미국인들이었다. 피스 코는 개발도 상국가의 기술·농업·교육 등의 분야에서 봉사하는 미국의 정부지원 단체를 말한다.
초등학교 취학 전후에, 나는 동네 또래들의 무리에 섞여서, 나와 다른 외모를 가진 그들의 뒤를 뜬금없이 졸졸 쫓아다닌 적이 있다. 특히 하얀 피부의 금발머리를 한 여성이 우리의 인기를 독차지하였다. 어린 우리의 눈에는 흑인보다 백인이 더 예뻐 보였던 모양이다. 처음 본 인종인데도 왜 백인을 더 가까이하고 싶어 했는지는 모를이다. 검은색은 다른 색으로 물들지 않듯이, 흑색에서 느껴지는 강인한 이미지가 부드러움보다는 거친 이미지로 은연중에 각인 된 탓은 아닐까.
대학생이 되어서, 생활영어 학원에 다닐 때의 일이다. 백인 원어민의 클래스인데, 어느 날에는 특별히 흑인 원어민이 초대되었다. 수강생들과 거리감을 느꼈던 탓인지, 수업이 끝나갈 즈음에 그 흑인 선생은 자신의 피부를 터치해 보라고 하였다. 대개는 주뼛주뼛하고 쉽게 다가가질 않았다. 그가 나의 앞으로 왔을 때, 살짝 만져보니 의외로 상당히 보드라웠다. 아기의 피부처럼 느껴졌다고나 할까. 나의 놀라는 표정에 그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벌레 건드리듯 한 것이 지금도 미안하다. 피부의 부드러움만큼이나 그는 착한 심성을 지닌 사람임에 틀림이 없을 것 같은데 말이다. 그런데도 흑인은 모두 강인하고 거칠고 무지할 것이라는 잘못 형성된 편견에는, 미국에서 만들어진 영화가 한 몫을 하였을 것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할리우드 영화가 흑인이나 인디언들을 모두 나쁘게만 묘사하지는 않았다. 흑인 배우 시드니 포이티어의 명연기로 더욱 뭉클한 감동을 선사한 영화 「언제나 마음은 태양(To Sir, With Love)」은, 아직도 나의 마음속에서 태양처럼 빛나고 있다. 영화 속에 나오는 학생들의 나이 때에 보아서 그런지 그 흑인 교사의 헌신적인 사랑의 감동이 더 진하게 느껴지고, 그 감동이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자전적 소설을 영화화한 것이라서 더욱 깊은 잔향을 풍기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두어 달 전쯤에는 「그린 북(Green Book) 」이라는 영화를 추천받아서 보았다. 이 영화도 흑인 배우가 주연인데, 1960년 전후의 미국 사회의 흑백 인종의 갈등을 잘 묘사하고 있는 수작이었다.
교양과 우아함을 겸비한 천재 피아니스트 돈 셜리는 흑인인데, 입담과 주먹을 믿고 거칠게 살아가던 백인 토니 발레롱가를 운전기사로 영입하여,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미국 남부의 콘서트 여행을 떠나게 된다. 8주간의 여행을 함께 다니며, 서로 다른 성격과 취향을 뛰어넘는 우정을 쌓아간다는 내용이 아주 감동적이다. 이 역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인데, 여행안내 책자인 '그린'에서 영화의 제목을 따왔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선친을 떠올렸다. 아버지는 1960년 전후로 미국 국무부 조청 국비 유학생으로 테네시주 내슈빌에 있는 피바디사범대학에서 1년간 유학을 하셨다. 지도교수와 숙소의 주인은 모두 백인이었는데, 참 친절하게 잘 대해주어서 인종차별 같은 것은 생각지도 못하고 지내신 것으로 알고 있다. 특히 지도교수는 동양의 작은 나라에서 온 아버지에게 모처럼의 좋은 기회라고 하며, 과제를 내서 미국의 많은 지역을 여행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셨다. 물론 경비도 지원해 주시고 참 후덕한 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덕분에 아버지는 뉴욕, 워싱턴을 비롯해서 남부의 플로리다까지 두루 다니셨는데, 바로 그 당시의 모습이 영화 속에는 고스란히 담겨 있다. 물론 아버지가 찍어 오신 사진이나 슬라이드로 여러 번 당시의 모습을 보기는 하였지만, 더욱 감개가 무량하였다. 영화는 끝이 났지만, 눈물 어린 눈에는 아버지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어서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하였다.
오늘 아침에는 「그린 북」이 영화계 최고의 영광으로 여겨지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수상하였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더럼이 잘 타는 흰옷보다는 쉽게 때가 타지 않는 검정 옷 계열을 좋아하면서도, 유독 사람은 흑인보다 백인에게 더 호감이 가니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서글픈 일이지만, 지구촌에는 여전히 흑백 갈등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그런데 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 피아노의 건반처럼 흑백이 어울려야 심금을 울리는 아름다운 음악이 탄생하듯이, 흑백이 어울려야 격조 있고 창의적인 사회가 만들어진다는 것을⋯.
(수필문학 2019. 6월호)
첫댓글 원준연 회장님
피아노 건반처럼 출간을
축하드립니다
흑백이 어울려 아름다운 사회를
기대합니다
영화는 끝이 났지만, 눈물 어린 눈에는 아버지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어서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하였다...더럼이 잘 타는 흰옷보다는 쉽게 때가 타지 않는 검정 옷 계열을 좋아하면서도, 유독 사람은 흑인보다 백인에게 더 호감이 가니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서글픈 일이지만, 지구촌에는 여전히 흑백 갈등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그런데 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 피아노의 건반처럼 흑백이 어울려야 심금을 울리는 아름다운 음악이 탄생하듯이, 흑백이 어울려야 격조 있고 창의적인 사회가 만들어진다는 것을⋯..(본문 부분 발췌)
피아노 건반처럼 흑백이 어울려야 심금을 울리는... 피아노 건반을 바라보면서도 흑백의 어울림을 자세히 셍각해보지 않은 듯 해요.
모든 것에 있어서 '조화'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게하는 글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