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운 너는 개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고
강민영
파란시선 0147
2024년 9월 5일 발간
정가 12,000원
B6(128×208㎜)
146쪽
ISBN 979-11-91897-85-2 03810
(주)함께하는출판그룹파란
•― 신간 소개
아이들은 엄마가 있어도 언제나 울음을 터트리지
[외로운 너는 개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고]는 강민영 시인의 두 번째 신작 시집으로, 「닫힌 문 안에 닫힌 문이」 「자궁이 쓰라리다」 「스테판 하우저의 알비노니 아다지오」 등 58편이 실려 있다.
강민영 시인은 2015년 [내일을 여는 작가]를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다. 시집 [아무도 달이 계속 자란다고 생각 안 하지] [외로운 너는 개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고], 산문집 [우리 사이의 낡고 녹슨 철조망] [아들이 군대 갔다] 등을 썼다.
부정의한 세계에서 부정된 존재로의 자각과 그로부터 맺는 관계의 지향을 [외로운 너는 개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고]에 깃든 강민영 시인의 삶의 태도라고 할 수 있을 듯하다. 이를 숭고한 사랑의 가능성이라 말하고 싶다. 그 가능성을 위해 강민영 시인은 순례를 하듯 “끝이 보이지 않는 퍽퍽한 길”을 삶의 여정으로 삼은 것이 아닐까(「순례길」). “이름 지워진 것들을 가진 모래언덕”을 지나(「모래바람」) “삼억 년 동안의 고독을 견디”는 모허 절벽을 거쳐(「모허 절벽」) “행복한 날과/불행한 날이 교차하는 오늘”에 닿는 시인의 마음(「하르마탄」). 그것은 “단단한 것들이 깨져야 열리는 길”을(「태양, 바람, 눈」) 우리에게 제시하며 그곳에서 얼비치는 존재의 불안을 응시함으로써 이를 존재의 다른 가능성으로 펼쳐 보인다. (이상 이병국 문학평론가의 해설 중에서)
•― 추천사
정련된 혐오의 시대가 우리의 눈앞에 있다. 부정적 감정은 반드시 피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가득하다. 내 안에서 태어나 외부와 내부를 찌르는 지독한 힘이 공기 중에 떠돈다. 그러한 상황에서 탄생한 강민영의 시는 ‘나’로부터 주변에 만연한 불화의 순간들을 응시하며 기록한다. 언제나 승리와 이득만을 조명하는 시대에서 고통과 불화를 기록하는 것은 그 부정적 감정을 외부로 터뜨리지 않으려는 시인의 안간힘이다. 이것이 시집이라는 결정(結晶)이 되는 것이라 믿는다. “빠져나오려 발버둥 쳤던/미세한 기포가 있으면/진짜,라는 인증”을 받는 ‘호박(琥珀)’처럼 이 투명하고 단단한 고통은 “천 년 후”를 건너갈 것이다(「호박(琥珀)」). 시인은 죽은 화분을 내다 버리면서, 다시 새 화분을 들일 것이다. 우리의 삶에 “아무것도 하지 않아야/좋아지는 게 있다”고 시인은 말한다(「교신」). 지리멸렬한 삶과 고난뿐인 세상에서 시인은 “늑대를 기다리며 해안을 서성거리는 물개/거북이의 눈물을 마시는 나비” 같은 풍경만을 발견한다(「이상한 일」). 이토록 싫고 답답한 세계를 기밀한 눈으로 관찰하는 시인의 눈에는 고통에 앞선 사랑이 도사리고 있다. 모두가 달려가느라 인성이 마모되고 있는 세계를 살아 내면서, 시인은 우리에게 전언을 준다. “빨리 달릴 때는 풀뿌리도 덫”이 되는 세계이다(「졸음운전」). 기울어진 세상을 온전히 보려고 몸을 비틀어야 하는 시인은 고통과 가까울 수밖에 없다. “나이테 일부를 도려낸 나”는 그럼에도 세계의 아픔을 제 것처럼 품는 것이다(「자궁이 쓰라리다」). “한쪽 문이 닫히면/다른 쪽 문이 열린다는 말은 거짓”임을 시인은 체험을 통해 알고 있다(「닫힌 문 안에 닫힌 문이」). 그럼에도 시인은 자신의 허물까지 닦아 세운다. “잘못한 수십 가지 목록을/낱낱이 조회하는 중이다”(「회초리」). 이 고통의 육화가 바로 시인의 존재다. 이렇게 제 고통으로, 존재로 세상의 멸망을 연착시키는 시인이 있다. 시의 고통과 현실의 고통을 오가는 시인의 “겉울음”과 “속울음”이(「매미」) 여기 있다.
―김건영 시인
•― 시인의 말
창조할 힘은 없지만 파괴할 힘은 조금 더 남아 있다. 쇠퇴하는 것들은 파괴를 일삼는다. 그때 내 눈동자에서 초원을 돌아 나온 바람을 보았다고 너는 말했다. 나의 갈증과 욕심이 닿는 곳에는 언제나 부서지고 떠나는 것들이 있었다. 황금을 너무 사랑해서 만지는 것마다 황금으로 변하게 해 달라는 소원을 빌었던 남자의 불행처럼, 평형저울 위에 내가 창조한 것과 파괴한 것이 놓여 있다. 지금 불고 있는 이 모래바람처럼 진실한 대답이 또 있을까. 쾌락의 끝에 이르면 평형저울 위에 그 무게만큼 놓인다는 어둠, 나는 다만 그 쾌락의 극에 네가 도달하지 않길 바랄 뿐이다.
•― 저자 소개
강민영
2015년 [내일을 여는 작가]를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다.
시집 [아무도 달이 계속 자란다고 생각 안 하지] [외로운 너는 개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고], 산문집 [우리 사이의 낡고 녹슨 철조망] [아들이 군대 갔다] 등을 썼다.
•― 차례
시인의 말
제1부
벵갈고무나무 화분 – 11
봄 산 – 12
그늘 – 13
질주 본능 – 14
졸음운전 – 16
사랑 – 18
벽이 벽을 긁는다 – 20
바람만 불면 – 22
자궁이 쓰라리다 – 24
나귀가죽 – 26
닫힌 문 안에 닫힌 문이 – 28
이명 – 30
박동성 이명 – 31
목련 – 32
제2부
빛이 퍼붓는 날개 – 37
엔트로피 – 40
어떤 범람 – 42
습관처럼 – 44
장미에게 – 46
교신 – 48
너, 내 그림자 – 50
내시경 – 52
꼬리 – 53
권태에 대한 소묘 – 54
우리의 소원은 – 56
여름에 만난 슬픔 – 58
매미 – 60
상처는 밤에 – 62
제3부
이상한 일 – 67
전봇대는 안녕, 하고 – 68
이별은 영화처럼 – 70
이해 – 71
낙마 – 72
물거미 – 74
거미줄에 걸린 골목 – 76
스테판 하우저의 알비노니 아다지오 – 78
변검 – 80
호박(琥珀) – 82
너를 들으려고 – 84
샥스핀을 위하여 – 88
거기, 그 길 – 90
극점이 아프다 – 92
제4부
인공위성 – 97
천국의 날 – 98
순례길 – 100
늑대 사냥 – 102
모래바람 – 104
하르마탄 – 106
모허 절벽 – 108
회초리 – 110
부당거래 – 112
선 긋기 – 114
희망 고문 – 116
태양, 바람, 눈 – 118
베르니나의 심연 – 120
북극곰의 바깥 – 122
멈춤, 그다음은 – 124
전쟁놀이 – 126
해설 이병국 생의 불안을 가로지르는 삶의 지평 – 129
•― 시집 속의 시 세 편
닫힌 문 안에 닫힌 문이
뿌리의 물관을 열어
그 안에 빛을 밀어 넣은 것은 땅이 한 일
작고 푸른 투명한 색이
나뭇가지를 찢고 나온다
나무초리를 뻗어 너를 더듬는다
짐승에는 꼬리
새에는 꽁지
나뭇가지에는 나무초리
너에게는 눈초리
촉수가 닿은 자리
나는 어제 내가 내린 결정이
기쁘지 않다
한쪽 문이 닫히면
다른 쪽 문이 열린다는 말은 거짓이다
다른 쪽 문을 열면 그곳에도
닫힌 문이 있었다
닫힌 문이 들어 있는 닫힌 문
그 안에 또 닫힌 문
숨바꼭질은 하기 싫어
미로를 헤매는 것도 이제는 신나지 않아
네 눈에 비친 나는
네가 찾던 내가 아니다
내 눈에 비친 너도
내가 갖고 싶은 네가 아니다
푹 꺼진 그 눈동자에는
없는 것들이 가득하다 ■
자궁이 쓰라리다
너의 불길이 번진다면
주기가 끝난 내 몸에는
무엇이 만들어질까
강 건너 마을의 후미진 길 끝
금 간 축대 위의 작은 교회가
발꿈치를 들고 위태롭게 서 있다
부흥이 이루어지지 않아
걸핏하면 부흥회 벽보가 나풀거리는
빈집이 늘어 가는 동네
밤새도록 떠 있는 십자가가
아테네와 폼페이 사이에서
붉은 눈을 껌뻑이며 호객한다
교미 후에 먹히고 싶지 않은 사람은
서둘러 모텔 밖으로 튀어 나가고
골목에는 아이들이 서럽게 울면서 지나간다
그 아이들을 낳지도 않았는데
자궁이 쓰라리다
아이들은 엄마가 있어도
언제나 울음을 터트리지
이제는 울음도 튕겨 내는 이 차가운 자리에
봄빛은 어떻게 새순을 틔우려고 했을까
고목 위에 앉은 새 둥지에서
나이테 켜는 날갯소리가 숲을 흔든다
그 안의 꿈틀거림이 얼마나 크기에
사방 이처럼 환하게 파닥거리는 것일까
나이테 일부를 도려낸 나는
젖은 몸을 탁탁 털어 볕에 널고 있다 ■
스테판 하우저의 알비노니 아다지오
네 눈은 차갑고
내 가슴은 쿵쾅거린다
브리지 사이로 빠져나가는 살모사
집요한 활의 움직임이
등줄기를 타고 올라와
목덜미를 휘감는다
나는 이미 세상의 다른 쪽 길로 들어섰다
고통 속 몸부림이 찾아올 때에야
우리는 비로소 사랑을 깨닫는다
활이 가파르게 움직이고
멍든 버튼이 눌릴 때마다
토막 난 기억이 울부짖는다
불안과 우울이 팽창하자
낮은 탄성은 순식간에 미궁을 헤매고
나는 네 활에 묶여 끌려다닌다
더더 더,
감질나는 갈증
우주 어디에선가 대폭발과 섬광이
있었다고 한다
참았던 숨을 토하자
폭죽이 소멸하며
모공 하나하나에 긴 떨림으로 맺힌다
가까스로,
빠져나왔다
활털 몇 개 끊어진 활이
허공을 긋고 내려오자
과열된 공간이 일제히 일어나
출렁거린다
직립 사이로 터지는 박수
나는 방금
치열하게 사냥을 끝낸
맹수를 보았다
*스테판 하우저(Stjepan Hauser): 크로아티아 출신 첼리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