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me 숨겨졌던 소식 Date 2014.12.25
Text Lk 2,8-20
(8)그 지역에 목자들이 밤에 밖에서 자기 양 떼를 지키더니 (9)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그들을 두루 비추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10)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11)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12)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13)홀연히 수많은 천군이 그 천사들과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14)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15)천사들이 떠나 하늘로 올라가니 목자가 서로 말하되 이제 베들레헴으로 가서 주께서 우리에게 알리신 바 이 이루어진 일을 보자 하고 (16)빨리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인 아기를 찾아서 (17)보고 천사가 자기들에게 이 아기에 대하여 말한 것을 전하니 (18)듣는 자가 다 목자들이 그들에게 말한 것들을 놀랍게 여기되 (19)마리아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새기어 생각하니라 (20)목자들은 자기들에게 이르던 바와 같이 듣고 본 그 모든 것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며 돌아가니라
1. 메~리 크리스마스! 성탄절은 믿음이 있건 없건, 믿음이 좋거나 나쁘거나 간에 하여간 이차저차 여러 가지 면에서 즐거운 날입니다. 이 예배, 특히 설교시간도 여러분 모두에게 즐거운 일 중의 하나이기를 소망합니다. 좀 더 욕심을 낸다면 설교가 가장 기쁘게 하는 일이 되었으면 바램을 갖습니다. 특히 오늘 성탄절예배는 특별순서가 많아서 설교를 짧게 준비했는데, 정신 차리고 듣지 않으면 즐거운 성탄절이 되기 위해 주어진 최고의 기회를 놓치실 수도 있습니다. 말씀에서 은혜 받으십시다.
2. 한 밤 중에 양들을 지키고 있던 목자들이 깜짝 놀랄 일을 경험합니다. 세상의 그 어떤 것으로도 흉내 낼 수 없는 하나님의 영광이 두루 비추는 가운데, 천사가 나타나 구주가 탄생하였다고 말해주는 체험을 한 것입니다. 즉시로 천사들이 말하는 장소에 가서 태어난 아기를 봅니다. 또한 거기 있는 사람들에게 자신들이 겪은 천사체험담을 들려줍니다. 거기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놀랍게 여기며 신기해했습니다. 그렇게 거기에서 한참 있다가 ‘자 자 갑시다.’하고 일어나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며 돌아갔습니다. ‘The End’ 거기에서 그렇게 Ending’이 되었습니다. 그 뒤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세월이 많이 지나가자 차츰 차츰 그 일도 잊혀지고 맙니다. 역사상 전무후무했던 그 신비한 일은 그렇게 요즘 식으로 말한다면 신문 한 면에 실리는 정도로, ‘참 신기한 일도 다 잊제?’ 정도로 시끌벅적한 다른 여러 세상 뉴스들에 파묻혔던 것입니다. 오직 한 사람 마리아는 이 모든 일들과 얘기들을 ‘마음에 새기며 생각하였더라’(19절)
사실 그렇게 묻혔던 예수님의 이런 탄생 이야기가 오늘 우리에게 이렇게 전해진 것은 목자들을 통해서도, 마굿간 주인에 의해서도, 요셉을 통해서도, 동방박사들을 통해서도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엄청난 일이 일어난 정확한 날짜도 장소도 모릅니다. 이나마 전해진 것은 약 7-80년이 지난 후에, 이 일에 관심을 가지고 조사를 하던 한 사람 ‘누가’에 의해, 당시 이미 작고한 마리아의 입을 통해 주변의 사람들에게 알려진 기억의 편린들이 채집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지요.
요1,5은 이 일에 대하여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여러분, 어떻게 어둠을 환하게 밝히고 있는 빛을 모를 수 있습니까? 그런데 모른다는 것입니다. 고후4,4에서 사도 바울은 그 이유를 이렇게 밝히고 있습니다. “(4)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마음이 혼미한 상태에 있으니, 즉 몽롱한 상태에 있으니 어둠에 비치는 빛조차 알아채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얘기는 그 때 그 시절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지금 오늘 우리들 얘기 옳습니다. 비록 성탄트리의 등이 불야성을 이루고 있지만, 심지어는 마리아와 아기 예수의 이야기를 자기 입으로 하면서도 그 빛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제 밤 우리가 성탄행진을 하고 광복동 거리를 지나는데 많은 사람들이 ‘저것 봐~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안고 있어.’라며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데리고 나온 아이들에게 ‘가까이 가서 봐. 저건 동방박사들이야’라고 친절하게 설명까지 해주면서도, 그냥 그게 전부였습니다. 사진을 찍는게 전부였습니다. 제발 나중에라도 그 어린 아이들이 추억의 앨범을 넘기다가 그 사진을 볼 때 참 빛이 그 심령에 비추어져서 지옥으로 가던 발걸음이 천국을 향하게 되기를 바랄뿐입니다.
고후4,5-6 “(5)우리는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 (6)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라는 말씀처럼 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아는 은혜가 있었기에 저도 여러분도 이 성탄축하감사예배에 나와 있습니다. ‘주님, 감사해요.’ 이 영광의 빛을 깨달아 아신 분들 다 같이 ‘주님, 감사합니다.’
오늘 이 성탄축하감사예배에 함께 하고 계신 여러분, 어제 밤 성탄행진을 하는 동안 ‘기쁘다 구주 오셨네’를 노래하는 성도들 얼굴에서 빛나는 빛을 봤습니다. 정확히 몇 명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만 그 빛을 본 분들이 저 말고도 꽤 있을 겁니다. 2014년 성탄절 에 하고 있는 모든 사역들을 통하여 어둠을 밝히는 참 빛을 심령 속 더 깊은 곳까지 비추게 하시어서 묻혔던 소식이 우리 자신에게와 우리의 이웃들에게 알려지기를 소망합니다.
3. 한 가지만 더 말씀드립니다. 묻혔던 소식의 내용에 관한 것입니다. 누가가 채집한 바에 의하면 천사들이 그날 목자들에게 말했던 내용의 핵심은 “(11)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였습니다. 그리고 그 소식의 성격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10절)이었고, ‘오늘을 사는 너희를 위한 소식’이었습니다. “(10)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11)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12)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라는 본문이 그것을 가르쳐 줍니다.
예수님의 이야기는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입니다. 롬1,1-4에서 사도 바울께서는 자신을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다고 소개하면서 복음이란 ‘구약 성경에서 미리 약속되었던 아들, 곧 예수에 관한 이야기’라고 하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복음이란 예수님 이야기라는 것이지요. 예수님 이야기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성탄과 십자가와 부활과 승천과 재림 등 다섯 가지입니다. 어째서 그 이야기가 큰 기쁨의 좋은 소식입니까? 죄악의 어두운 늪에서 빠져나와 거룩한 빛의 나라로 옮겨주기 때문입니다.(골1,13)
하지만 여러분, 아무리 좋은 것이라 하더라도 나와 무관한 것이라면 별 소용이 없습니다. 그림 속 떡이 아무리 먹음직스러운들 그 그림만으로는 아무 것도 아니지요. 그림을 보고 그림처럼 만들어서 내 입에 넣고 네 입에 넣어줘야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이 묻혔던 빅뉴스는 당연히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지만, 그날 거기에 있던 목자들에게도 기쁨의 좋은 소식이었습니다. 오늘 여기 있는 나에게도 ‘the Joyful Great News’입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성탄절은 그 누구를 위한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의 처지와 형편에 있는 바로 나를 위한 날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 때문에 나를 구원하시려고 높고 높은 하늘 보좌 영광을 뒤로 하시고 낮고 천한 이 땅에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셨습니다. 때문에 여러분을 권면합니다. 이 예수님 이야기에 좀 더 깊은 관심을 가지시고, 좀 더 진지한 자세로 임하시며, 좀 더 높은 차원에서 생각하십시오. 그래서 더 갈급한 마음으로 예수님을 구하고 찾으십시오.
어제 성탄 행진을 준비하고 출발하려는데 마리아를 맡은 소은이가 아기 인형을 안 가지고 내려갔습니다. 뒤에 내려가던 분들이 물론 챙겨갔습니다만, 제가 주차장에 갔더니 소은이가 차에 가서야 인형을 가지고 오지 않은 것을 깨닫고 바삐 다시 3층으로 올라가려고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했습니다. 제가 웃으며, “예수님 두고 왔지. 가지고 내려올거야.” 했습니다. 마침 계단으로 걸어 내려오는 분이 인형을 가지고 오는 것을 발견하고는 소은이 마리아가 웃으며, “예수님 주세요.”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예수님 주세요.”라는 말이 제게 예사롭게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성탄절에 우리 모두는 “내게도 예수님을 주세요.”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옛날 그 시대의 그 사람들이나, 먼 훗날 주님 나라가 도래할 때 특정한 몇몇 사람들에게만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 되는 분이 아니라 지금 얘기를 듣고 있는 목자들 너희에게, 지금의 형편 처지에 있는 지금의 나에게, 우리 가정에도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 되는 분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간곡히 부탁해야 합니다. 진지하게 요청해야 합니다.
“나에게 예수님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