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록 제6권 13장
지금 네 앞에 호화로운 밥상이 차려져 있다. 그 밥상에 차려져 있는 음식물은 어떤 것들인가? 결국 그것들은 물고기의 시체, 새나 소, 돼지의 시체가 아닌가? 팔레르니우스(Palernius)산 포도주는 포도의 부패된 즙액이며, 네가 입고 있는 자주빛 옷은 양털을 물들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성교(性交) 역시 성기와 성기의 마찰, 그리고 점액의 사출(射出)일 뿐이다. 이와 같이 어떤 사물을 대하는 경우, 밑바닥까지 들어가 그 사물의 본질을 통찰하라.
이 세상 모든 것에도 위와 같은 방법을 적용하라. 가장 칭찬받을 만한 것으로 보이는 사물에 대해서도 일단 그것을 벌거벗겨 놓은 후 그 실체를 파악하라. 결코 맹목적인 찬사에 현혹되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이성을 교란시키는 것은 언제나 허세와 외관이기 때문이며, 따라서 네가 하고 있는 일이 가장 훌륭한 것이라고 생각할 때보다 더 속기 쉬운 때는 없다. 그리하여 크라테스(Crates)가 크세노크라테스(Xenocrates)에게 한 말을 늘 명심하라.
◇ 크라테스(Crates)는 BC 4세기말에 활동한 견유학파(犬儒學派)의 철학자이며 디오게네스(Diogenes)의 제자이다. 자기 재산을 버리고 악덕과 허위를 고발하는 것을 사명으로 삼았다. 부유한 트리키아 가문의 딸이자 철학자 메트로클레스의 여동생인 히파르키아는 부모를 졸라댄 끝에 크라테스의 금욕적이고 사명에 충실한 생활의 동반자로 나섰다. 크라테스는 심각한 시를 익살스럽게 개작하는 재능이 있었다. 그는 이 수법을 이용해 다른 철학자들을 조롱했으며 견유학파의 생활 방식을 찬미했다. 과거에는 철학적 희곡과 시의 저자로 유명했지만 사실 그의 이름으로 현존하는 시들은 가짜이다. 그의 역사적 중요성은 스토아 학파의 제논에게 끼친 영향에 있으며 제논은 그를 매우 찬미했다. 플루타르코스가 쓴 그의 전기가 남아 있다. 크세노크라테스(Xenocrates)는 그리스의 철학자이다. 아테네로 가서 플라톤의 제자가 되었으며, 스승의 학설의 충실한 후계자였으며 존재론(存在論)에 입각하여 이데아론을 파악하였다. 또 피타고라스학파의 영향으로 지식과 감각의 중개를 수학적으로 나타내 보려고 하였다. 그러나 크라테스가 크세노크라테스에게 했다는 말은 알려져 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