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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촌놈의 귀농 성공담
김동관
(귀농학교 10기 - 전북 부안)
귀농 과정
귀농한 지 1년이 넘었다. 스스로 정착에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귀농지는 여러 곳을 돌다가 가장 마음에 드는 부안을 선택했다.
부안은 산과 바다와 들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천혜의 고장으로 옛부터 십승지지(十勝之地)로 불리울 만큼
난리가 나도 다치지 않는 곳,
물산이 풍부하고 마음이 넉넉한 사람들이 사는 곳으로 알고 있고,
겪어보니까 기후조건도 좋은 편이다.
다른 지역에 비해 큰 비가 온다거나 가뭄이 심하다거나 하지도 않는다.
부안에서도 변산을 꼽고 있었는데
살기가 좋은 만큼 정착할 만한 곳은 찾지 못했다.
이미 사람이 들어가 있는 경우다.
그러다가 변산반도 남단에 있는 진서면 백포라는
마을에 자리를 잡았다.
연고를 통한 것이 아니고 다니다가 마음에 드는 마을에
무작 정 들어가 동네 할아버지들과 이야기를 나누어 보면 마을 사정을 대략 알게 되고,
농사짓고 살만한 집과 임대할 땅이 있는지 물어보다가 여기에 이르게 된 것이다.
이곳에는 빈집과 묵은 땅이 있는 편이며
주민들도 젊은 사람이 농사지으러 오는 것을 환영하는 분위기다.
귀농의 주객관적인 조건
작년 귀농 당시에 수중에 돈이라곤 거의 없었고,
귀농의 뜨거운 열망만이 밑천이었다.
마침 동네에 집을 새로 짓는 곳이 있어 여기서 날일을 해서 일당을 받아 버텼다.
하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어 한 후배에게 20만원을 빌렸다.
내가 정착한 집은 할머니 한 분이 몇 달 전까지 사시다가 양로원으로 들어가시는 바람에
비게 된 집으로 약 120년 된 옛날 집이고 사랑채도 100년이 넘는, 제법 규모가 큰 집이다.
본채에는 수세식 화장실과 기름보일러가 설치된 개조된 집이라 별다른 수리비용은 들지
않았다. 게다가 밭도 3천평 넘게 무상으로 임대할 수 있었다. 운이 좋았던 것이다.
동네 사람들과는 매우 친숙하게 지낸다. 때로는 일해주고 삯으로 곡식이나 먹을거리
를 받거나 혹은 계산을 하지 않는다. 수시로 반찬도 얻어다 먹고 때로는 밥이나 참을
얻어먹기도 한다. 인심이 후한 작은 공동체라 불러도 좋을 시골 마을이다.
마을 주민들로부터 신뢰 얻기
'서울촌놈'이 농사지으러 왔다고 하니까 마을 사람들은 별로 믿기지가 않는
모양이었다. 젊은 사람이 동네에 들어오는 것까지는 환영하지만 아마도 오래 버티지
못하고 나갈 것이라 예상하였고 심지어는 미친 짓이라는 이야기도 있었다. 아닌게
아니라 농촌의 사정이 너무나 뻔하고 모두 도시로 떠나지 못해서 안달인데 오히려
돌아온다니, 아무튼 '미쳤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면 성공이라고 하는 말에 희망을
걸었다.
울고 싶은데 뺨 때린다고, 농사를 배워야만 하는 입장인데 여기 저기서 일해달라고
주문이 들어오는데 내가 되려 미안할 지경이다. 농사를 잘 모르니 최선을 다하되
모르는 것은 물어서 하는 수밖에. 참으로 부지런히 일하였다. 해 뜨기 전에 일어나
해 지고 어두워지도록 일을 했다. 요즘엔 꾀가 생겨 뜨거운 한낮에는 낮잠도
즐기지만. 이런 나를 두고 "이런 복덩어리가 어떻게 여기까지 굴러왔을까?" 하기도
한다.
하우스 농사에서 배우기
이 동네엔 하우스 농사를 하는 농가가 세 곳이 있다. 그 중에 300평 규모의 하우스는
놀다시피 하고 2,500평 규모의 하우스는 농사를 계속하고 있으나 과다한 시설 투자와
농산물 가격의 불안정으로 말미암아 거의 부도가 날 지경이다. 10여년 전에는 하우스
농사가 좋았다는데 지금은 전혀 아니다. 빚에 채여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내가 하고 있는 1,700평 규모의 하우스는 부자간에 농사를 짓다가 무슨 일인지 아들
이 도시로 나가버리는 바람에 농사는 엄두도 못 내고 있던 것이다. 그 하우스의 주인
은 집 짓는 잡일을 하던 나를 주목했던 모양이다. 어느 날 그 양반이 날더러
"자네, 하우스 한 번 해보지 않으려나?" 하고 물었다. 나는 생각하고 말 것도 없이
비닐 쓰는 농사는 안 하려는 생각을 갖고 있었기에 "안 해라우"라고 일거에
거절했다. 이 양반은 "하우스는 잘하면 일년에 네 번은 지을 수 있다"면서
그 하우스를 연 600만원에 세를 내면 된다고 한다. 아이고, 60만원도 많다!
하지만 이 양반은 끈질기게도 그 권유를 한 달이 넘게 계속했다. 동네 사람들은
절대 하우스 농사는 하지 말라고 한다. 하지만 60이 넘은 양반이 그 농사를 짓는다는
것은 무리임이 분명하고 따라서 그 하우스는 놀리게 된다. 시설투자 한 것에 대한
이자만 매년 600만원에 육박한다는데 그 심정이 오죽하랴 싶었다. 그래서 고민 끝에
농사도 배울 겸 같이 짓자고 제안했다. 그리하여 하우스 농사까지 짓게 되었다.
거기엔 다섯평 정도의 냉장창고가 있고 22마력짜리 트랙터가 있어 유용하게 쓰고
있다. 태풍으로 날아가고 부서진 것을 수리하느라 두어 달을 보내고 본격적인 농사는
11월에야 하게 되었는데 쥬키니호박, 상추, 알타리무, 감자, 수박 등을 했다.
하우스 농사는 노지 농사와는 좀 다르다. 연료를 태워 가온을 하고 지하수로
물을 주고 전기 등의 시설을 이용한다. 지난겨울에 우리는 연료를 태우지 않았다.
지금은 하우스를 나누어 각자가 짓는데 나는 700평 짜리 연동하우스를 맡았다.
일손이 덜 가거나 식량이 될 만한 작물만을 하기로 하고 올해 벼를 직파했으나
물을 잠시 동안 대지 못하는 바람에 피가 너무나 많아 갈아엎었고 가을 감자를
심었다. 가을 감자는 노지에서 하는 것이지만 거름이 많이 필요한 이 감자를 할만큼
만들어 낸 땅이 아직 없으므로 하우스에 심게 되었다. 해마다 겨울에는 감자를, 여름
에는 벼를 재배할 생각이다.
벼는 못줄을 대고 직파한 뒤 물을 대고 오리를 넣으면 풀을 잡을 수 있을 것 같다.
경작 및 경영상태
작년 11월에 1,500평 밭에 보리를 심었다. 마을 사람들은 보리가 안 되는 곳이라
했지만 식량난 극복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까봐 찰보리를 심었다. 그런데 우려와는
달리 거름도 별로 안 했고 풀 한번 안 맸는데도 잘 자라주어서 찰보리 40㎏짜리 25가
마를 수확했고, 그 중 20가마는 55,000원씩에 팔았다. 감자는 20㎏짜리 150여 상자를
수확하여 각 2만원씩 받았다. 기타 쥬키니호박이나 상추 등은 인건비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그래도 하우스에 연료를 전혀 때지 않았으니 비용이 적게 들었고
그것이나마 푼돈이 들어오니 생활이 순조롭다.
논은 약 600평인데 다랭이논 50평 정도가 천수답이다.
못자리는 조파식으로 했지만 이앙기를 사용하지 않고 '서울촌놈' 여나믄 명을 불러
손으로 심었는데 모를 두 개씩 잡았다. 동네 사람들은 모를 너무 적게 잡았다고
최소한 대여섯 개는 잡아야 한다며 수확이 적을 것이라는 우려를 금치 못했다.
비료도 쓰지 않고 농약도 안 쓰니 참으로 해괴한 일이다. 여기에 오리를 풀어 농사를
지으니 텔레비전에서나 나오는 이야기인 줄 아는 사람들은 정말로 결실이 있을 것인
지 못미더운 눈치다.
하지만 신기해 하기도 하고 관심을 갖는 사람들도 있다.
오가는 길에 유심히 관찰하기도 하며 "자네 농사가 잘되면 내년에는 나도 따라
하겠네"라는 말도 한다. 벼는 대체로 잘 자라고 있다. 이런 저런 병이 왔다가 그냥
가버린다. 거름은 생선내장 효소를 웃거름, 이삭거름으로 뿌렸다. 생각보다 잘된다.
보리를 갈았던 밭은 거름기가 적은데 거름 준비가 안 되었으니 콩, 팥, 녹두를
심었다. 씨앗을 뿌리자마자 꿩, 비둘기, 까치 등이 와서 파먹어 버려 듬성듬성
났는데 이번엔 풀이 많이 나서 동네 사람들까지 야단이 났다. 하지만 그 방대한
터의 풀을 어떻게 한단 말인가. 놔두는 수밖에! 그래도 녹두는 까맣게 익어가고 있다.
고구마는 빨간 밤고구마 순을 75,000원어치 사다가 300평 정도 심었는데 멀칭을
하지 않아서 풀이 어찌나 잘 자라는지, 마을 할머니들의 애를 태웠다. 고구마순이
어느 정도 뻗었을 때 풀을 매주었더니 이젠 풀이 나도 고구마순에 치어 자라지 못한
다. 수확 시기가 훨씬 지났으나 판로를 확보하지 못해 그대로 방치하고 있다. 먹고
남는 것은 내년에 순을 길러 팔기도 하고 많은 양을 심어 본격적으로 출하할 생각이
다. 고추는 모종을 1,000주 정도 얻어서 심었다. 비료와 농약을 안 쓰고도 상당한
양을 따니 모두가 부러워한다. 숯을 넣고 심는 게 비결이랑게!
동네 사람들은 비료도 안하고 농약도 안 쓰고 풀도 안 매고…. 그렇게 농사짓는
것을 보고 처음에는 한심한 눈으로 바라보더니 요즘엔 조금씩 관심을 갖는다.
내가 짓는 농작물엔 '냅둬'란 말이 붙는다. 냅둬고추, 냅둬벼, 냅둬고구마…
이참에 '냅둬'라는 상표를 달아?
시험적으로 20여평의 밭에 볍씨를 직파했는데 볍씨가 올라오지 않았다.
싹을 틔워 심은 것이 문제인데, 게다가 가뭄이 길어져서 실패한 것 같다.
내년에는 넓은 밭에 줄뿌림 직파를 해볼 생각이다. 줄뿌림을 하는 이유는 풀을
쉽게 매주기 위함이다. 여기는 논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 논농사는 할머니도 지을
수 있으니 나에게 돌아오는 여분이 거의 없다. 그래서 쌀은 밭에서 얻기로 하였는데
벼는 밭에서도 잘 자란다고 한다.
매실은 잘 열었는데 주인이 다른 사람에게 팔아버렸다. 허준 덕분에 매실 값이
엄청 올랐다는데… 이의를 제기하지 않기로 하였다. 감도 익어 가는데 그것은
어찌하려나, 두고 봐야지.
봄에 토종돼지 새끼 네 마리를 40만원에 구입하였다. 주로 갈치대가리를 먹이면서
풀과 사료를 조금씩 주고 숯과 목초액을 먹이고 있다. 좁은 우리에 사는데, 방목할
계획이었지만 시간이 없어서 늦가을에나 시도할 예정이다. 역시 봄에 우연히 얻은
토종닭 15마리는 마당에서 큰다. 알을 낳고 새끼를 쳐서 새끼가 100여 마리나 되는데
야산에 그물망을 치고 기른다.
하지만 그물망이 소용없다. 꿩만큼 날아다니면서 넘나든다. 암탉들은 30도를 넘는
더운 날에도, 둥우리에 앉아 알을 품고 있다. 병아리는 계속 나온다.
닭에게는 방앗간에서 구한 쌀겨와 쌀찌꺼기, 생선 삶은 것이나 생선에서 나오는
구더기를 숯과 섞여 먹이고 있고 물에 목초액을 타준다.
영계백숙을 해서 먹어봤는데 기름이 찬물에 씻겨진다. 물론 맛도 좋고. 닭에 대한
판로는 내년에 확보할 것이로되 알이나 고기 중 어디에 주력할지는 미정이다.
오리는 90마리 중에서 올빼미, 도둑고양이, 살쾡이 등에게 먹히고 31마리가 남았다.
벼이삭이 영글어 가고 있어 오리를 빼서 닭장에 함께 키운다. 동네 사람들은 다리
아픈 데 효과가 좋은 것으로 알고 있어 필요한 사람들에게 그냥 주기로 하였다.
토끼도 풀 뜯어 먹이는 게 만만치 않은 일이라 닭장에 넣어버렸다. 그곳엔 풀과
나무가 많다. 겨울에나 말린 칡순을 넣어주면 된다.
보리를 베다가 낫 끝에서 까투리가 날아가는데 그곳에 꿩알이 11개나 있었다.
닭에게 품게 하였더니 열 마리가 부화하여 한 마리는 어미닭에게 밟혀 죽고 나머지
알 한 개는 썩어버렸다. 꿩 우리를 지어 어미닭이 키웠다. 그새 제법 많이 자랐다.
얼마 후면 자태가 아름다운 장끼를 매일 보게 될 것이라 흐뭇해 했는데 그만 쥐가
구멍을 내는 바람에 다 도망쳐버렸다.
이 많은 일을 나 혼자 한다. 벅차다. 그래서 귀농자 세 가족 영입했는데, 한 가족은
꽤 먼 곳에 집을 사서 이사해버렸고 한 가족은 신혼인데 도통 일을 하려들지 않더니
두어 달 살다가 말도 없이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실망이 크다. 다른 한 가족은
헌 집을 고쳐 살면서 함께 농사짓고 있다. 함께 1년 정도는 농사를 같이 짓고 그 뒤로
는 독자적으로 지을 수 있게 할 생각이다.
가을에는 2,000여평의 억새와 잡목이 무성한 묵은 밭을 개간하여 김장배추를 하려고
하였으나 비가 워낙 자주 내리는 바람에 보리를 심는 쪽으로 생각하고 있다.
하우스 주인은 나에게 대부 노릇을 마다하지 않는데 이번에 트랙터 세대에 해당하는
39마력짜리 구형 트랙터를 얻어주었다. 수리비용이 180만원이나 된다. 그 중에 로타
리 기계 수리비가 110만원이나 하여 그것은 나중에 돈 생기면 고치기로 하고
70만원주고 트랙터 본체와 쟁기를 수리하였고 트레일러는 10여만원이면 수리가 될
듯싶다. 돌아가신 사촌형님이 쓰던 관리기를 얻어다 처음에는 유용하게 썼으나
요즘엔 방치하고 있다. 가을부터 다시 사용하게 될 것이다.
거름은 농사의 절반이라 할만큼 농사에 매우 중요한 것이다. 거름을 확보하지 못하여
심고 싶은 작물을 심지 못했다. 인근 목장에서 쇠똥을 가져오는데, 톱밥이나 왕겨를
넣어주면 가져가라고 한다. 5톤의 톱밥이 35만원이나 하는데 그 비용을 무엇으로
감당한단 말인가. 작년에 얻어 둔 짚을 썰어 넣어 준다. 가진 건 몸으로 때우는
거다. 그래도 그 많은 경작지에 다 넣기는 턱없이 부족하다.
인근 곰소항에는 생선대가리와 내장이 지천으로 남아돌아 바다를 오염시키고 쓰레기
처리비용을 낭비케 한다. 이를 활용하여 거름을 만들었는데 날이 더워지면서 지독한
냄새 때문에 일시 중단했다. 하지만 그 아까운 것이 버려지고 있다니 가슴이 아파
냄새 안 나게 처리하는 방법을 연구 실험 중이다. 이 실험이 성공한다면 하루에
300㎏ 이상 나오는 생선 폐기물을 처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기가 막힌 거름을
무진장 얻게 되는 것이다. 생선대가리를 땅에 묻어 두면 이삼 주 후면 작물을
심어도 별다른 문제가 없고 대체로 잘 자란다.
동네에서 인심을 얻어서 볏짚도 구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볏짚은 땅에 되돌려
주는 것이 좋을 듯 싶고 그보다는 지천에 깔린 갈대를 활용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갈대는 거름으로도 좋지만 땅의 산소를 붙잡아 매는 역할도 한다. 이삭이 패기 전에
1톤 차로 4대분을 하우스에 깔았다. 잦은 비만 아니었다면 그 작업을 계속할 수
있었는데….
귀농한 지 1년이 지났다. 소득은 변변치 않다. 하지만 나는 굶주리지도 않고 더욱
강건하다. 풍요롭지는 않지만 즐거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노동의 즐거움뿐만 아니라
인생의 또 다른 의미를 느끼며 살고 있다.
이후의 계획
장기적으로 이 마을과 인근 마을을 유기농 단지로 만들려고 한다. 농민도 궁핍하지
않고 여유를 가질 권리, 농약과 비료의 피해로부터 안전할 권리, 건전한 먹을거리의
생산으로 자부심을 가질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유기농은 "돈이 안 되는 농사"라고
주민들은 말한다. 그 생각을 바꾸고 싶다. 하지만 어려움이 너무 많다. 주민들은
나와 사회에 대한 인식이나 생산자와 소비자간의 관계 등등에 대한 고민이 없다.
오직 생존을 위한 돈 문제로 귀결된다. 환경에 대한 인식도 마찬가지. 비닐이나
오염물질을 아무렇게나 버리고 방치하는가 하면 태워버린다. 농약의 과다한 살포,
특히 제초제의 남용은 소름이 끼칠 지경이다. 비닐이나 플라스틱 폐기물 등을 태우지
말고 비료 농약병도 함부로 버리지 말자고 가슴앓이를 해도 별로 달라지지는 않는다.
단기적인 계획은 "유기농이야말로 돈 되는 농사"임을 현실로 입증해야만 한다.
물론 나도 삶을 이어가자면 돈이 필요하다. 더불어 새롭게 제기되는 농법을 익히고
연구하여 보급하는 일도 중요한 문제가 된다. 귀농 그 자체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운동'으로 바라보기를 요구받고 있다. 나 혼자만의 즐거움이 아닌 생산자 전체로
확대할 때 더 큰 즐거움이 있지 않겠는가.
누구든 오세요
사랑채는 틈나는 대로 수리 중이다. 온돌바닥에 오랫동안 비닐장판을 깔아놔서 흙이
썩어버렸다. 이를 긁어내고 황토를 넣어 다지고 돗자리나 대나무자리를 깔면 된다.
벽은 나무를 드러나게, 도배는 소박한 한지로 흙도 은은히 드러나게 할 생각이다.
누구든지 와서 며칠이고 묵으면서 놀다 가든, 관광을 하든, 농사 체험을 하든
환영한다. 그것이 귀농에 도움이 된다면 무조건 좋은 일이고 귀농 운동에 동참하는
한 방법이다.
"오는 사람 막지 않고 가는 사람 잡지 않는 열린 집." 사는 집이나 부치는 땅도 내
것이 아닐진대, 거의 거저 사용하니 나도 필요한 사람에게 눈꼽만큼이라도 나누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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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일일히 경험으로 느낀글 잘읽었습니다.
몸으로 손수 경험하신 님의 귀농에 경의를 표합니다.
대단하십니다.
가까우면 주말에 도움이 되고 싶은데...^^
박수를 보냅니다. 땀 흘린 일에는 반드시 보답이 있을 것입니다.
진정한 전원생활을 즐기고 계십니다.
정말대단하십니다..직접몸으로일구고사느용기가부럽네요,,
현명하신 방법들을 구사하시는군요 부럽습니다
저도 그러고 싶습니다.ㅠㅠ
도시에서 마음만인 저로서는 정말 부럽게 느껴집니다.
생각을 실천으로 옮겨 열심히 살아가는 당신이 부럽네요...
대단하십니다 행동으로 실천하기가 쉽지않은데 부럼움에 박수를 보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