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해어 / 박형식
공중에 세 들어 사는 새들은 알까
수화처럼 무겁게 꾹꾹 눌러 담은 어둠을
깃털처럼 가벼운 소문은 절대 가라앉지 않지
물에 빠져 죽은 물고기들
그리고 사체를 유령처럼 뜯어먹고 사는
눈이 사라진 어류들
폐를 선물로 받은 생명체는 결코 가 볼 수 없는 곳
심해
원시의 밑그림
해조차 속 시원히 들어가 보지 못한 곳
한여름 계곡의 시원한 물소리도
노랗게 물든 잎사귀를 훑어줄 따스한 바람도 없고
한적한 구름도 머물지 못하는 곳
갑작스런 소나기 피할 수 있는 따스한 둥지도 없어
어미는 그 새끼를 애써 품어본 적이 없지
이빨이 피부를 뚫고 가시처럼 박힌
무시무시한 겉모습을 가진 괴물들과
이마에 등을 앞세우고 다니는 심해어
그리고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투명한 생명체들
걔네는 아마 모를 거야
자신들의 그 끔찍한 몰골들을
목마른 옹달샘에 얼굴 비춰 본 적 없으니
어디 한 번 꽃단장이나 제대로 해 봤을까
햇살을 피해
천적을 피해
세상을 피해
어둠을 찾아
바위틈 한적한 은신처를 찾아
경쟁하듯 끝없이 파고 들어간 어둠의 헤픈 끝자락
어느새 머리부터 흐물흐물해져 몸은
가족조차 못 알아볼 정도로 볼썽사납게 납작해졌지만
감당할 수 없는 수압에 고막마저 터져버려
알아들을 수 없는 네 목소리의 떨림도
더듬더듬 나는 알아
네가 정녕 어둠을 사랑한 적이 없다는 것
[당선소감]
시인은 번역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일종의 통역사지요. 처음부터 입이 없거나 비록 입은 있지만 자신의 언어로 옮겨놓을 수 없는 것들을 굳이 언어로 바꾸어주는 것이지요. 물론 그 과정에서 오역이나 오해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통역사는 어쩔 수 없이 입맛에 맞는 언어들을 주로 선별하게 됩니다.
어쩌면 그 오역이나 오해가 시이자 예술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시와 예술에는 그것이 필요 이상으로 고집스럽게 들어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어느 순간 오역이나 오해가 일방적이고 헐벗은 강요가 아닌 소통과 공감의 공간으로 환유 되는 장면을 종종 목격하게 되는데, 여러 감정의 과잉과 결핍의 아슬아슬한 곡예의 외줄 위에 시와 예술이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실 그 고된 번역 작업은 보기엔 무뚝뚝한 무인에 가깝고, 더구나 공감 능력까지 좋지 못한 저에게는 처음부터 과분한 영역이었습니다. 사실 저는 시인이 되기보다 안될 이유가 더 많은 사람이지요. 그 예로 저와 시를 관련지으면 주변으로부터 대부분 안 어울린다는 말을 주로 듣는데, 아무래도 시라는 장르가 스스로 저와 거리두기를 하거나 제가 시에 몰입하는 시간이 짧고 얕음을 뼈아프게 지적하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매번 이런저런 이유로 스스로 시와 문학에 대한 의문과 진로에 답을 찾지 못할 때, 당선 전화를 받고 제 스스로도 이제 시인이 된 거냐고 되물었던 것도 앞으로 제가 시인의 의미를 온전히 감당할 수 있는지 의문에 대한 해답을 아직 찾지 못해서일 것입니다. 어쩌면 사금을 캐는 외로운 노동자처럼 더욱 바지런하게 움직여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상을 마련해주신 용인문학회와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에 익숙해 잔뜩 주눅이 든 저의 부족한 글을 성장으로 선택해 주신 김윤배 선생님, 이경철 선생님, 손택수 선생님께도 이 자리를 빌려 큰 감사 인사드립니다. 늘 곁에 있어 주는 아내와 아이들과 이 소식을 함께 할 수 있어 더욱 감사드립니다.
[심사평] 불만을 잠재우는 파토스와 원형적인 에너지
제7회 남구만신인문학상은 올해도 여느 신인상의 평균을 웃도는 수준 높은 작품들이 본심을 통과하였다. 그만큼 치열한 본심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뜻이다. 심사위원들은 현실과 자아를 직시하거나 응시하면서 공허한 상상력을 뛰어넘는 육화를 기준으로 본심 진출작을 결정했다.
본심에 오른 작품은 다음과 같다. 김병숙(「상식의 힘에 대하여」외 9편), 박형식(「청이 인당수에 가다」외 7편), 박홍관(「그릇」외 6편), 윤보섭(「갈라파고스」외 7편), 최정민(「붉은 소금」외 10편). 이중 김병숙과 윤보섭의 가능성에 대한 진지한 검토 끝에 응모작들의 편차에 대한 아쉬움을 공유한 뒤 심사위원들의 기호가 두루 겹치는 박형식과 최정민이 최종심에 남았다.
최정민의 시는 사물과 인간의 익숙한 관계 설정을 재구성하는 시선의 새로움이 돋보였다. “그것은 작고 연약했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끈이었다. 그 끝에서 몇 번이고 튕겨 나갈 그가 운동장 너머를 꿈꾼다”고 노래한「그의 공」은 산문적 진술의 느슨한 나열을 아연 긴장케 하는 매혹으로 뭉쳐져 있다. 시와 산문의 경계를 자유자재하게 건너뛰는 활달한 솜씨에 기시감이 있는 비유들을 삼가면서 언어 경제의 더 날카로운 응축이 더해지길 기다려본다. 박형식의 시는 장황한 수사와 절제되지 못한 이미지 그리고 사유의 경직성으로 인해 선뜻 손이 가질 않는데도 불구하고 불만을 잠재우는 파토스와 원형적인 에너지를 쉬 떨쳐버리지 못하게 했다. 당선작「심해어」는 육지와 심해의 이분법적 구조, 다큐멘터리적 구성에 기대면서도 일상의 평균적 인식을 파고들어 깊이감을 주는 하강의 선 굵은 상상력을 펼쳐 보인다. 무엇보다 그의 시는 기성 시단의 흐름으로부터 거리를 둔 예외적 개성의 탄생을 예감케 하는 창조적 카오스로 가득 차 있다. 이 모험에 누군들 함께 하고 싶지 않을까.
장고 끝에 미끈하게 잘 빚어진 항아리보다 항아리에 찍힌 도공의 고유한 지문을 선택하기로 했다. 지문에 담긴 심장 박동음이야말로 항아리의 형식을 살아 있게 하는 우리 시의 미래에 더 가까이 있다는 판단이다. 시의 무의식 지대를 돌파할 심해어의 출현에 한껏 기대가 크다.
- 심사위원 : 김윤배, 손택수, 이경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