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三國志(번역) - 790[6 ~ 05]
< 전 체 번 역 >
잠시 후 공명이 주유를 만나러 영채로 들어갔다.
주유가 장막에서 나와 맞이하면서 칭찬하며 부러워했다. : “선생의 신묘한 계산은 사람들 을 경복케 하였습니다.”
공명 : “약간의 변변찮은 속임수가 기이할 게 뭐 있습니까?”
주유는 공명을 장막으로 맞아들여 같이 술잔을 나누었다.
주유 : “어제 우리 주공께서 사람을 보내 진군을 재촉 하셨는데 이 주유에게는 기묘한 계책이 없어 선생의 가르침을 받고자 합니다.”
공명 : “저는 변변찮은 보통 사람인데 제게 무슨 묘계가 있겠습니까?”
주유 : “제가 전에 조조의 수상 영채를 관찰해 본 적이 있는데 극히 엄정하고 법도가 있어 서 일반적인 평범한 전술로는 공격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한 가지 계교를 생각해 냈는 데 괜찮은 전술인지 알 수가 없는데 선생께서 저를 위해 한번 결단을 내려주시기 바랍니 다.”
공명 : “도독께서 잠시 말씀을 멈추시지요. 우리 각자가 손 안에 글을 쓴 후 생각이 같은 지 다른지 보기로 합시다.”
주유는 대단히 기뻐 붓과 벼루를 가져오게 하여 먼저 자기가 남모르게 글자를 적고 공명에게 붓과 벼루를 넘겨주었다. 공명역시 남모르게 글자를 적고 두 사람이 의자를 바짝 가까이 당겨 앉은 후 각기 손바닥에 적은 글자를 펼쳐서 서로 드려다 보고 다 같이 크게 웃었다. 원래 주유의 손바닥 안에 있던 글자는 ‘火’ 한 자인데 공명 손바닥 안에 적혀 있던 글자도 역시 ‘火’한 자였다.
주유 : “이미 우리 두 사람의 생각이 같으니 이제 또 무엇을 의심하여 망설이겠습니까? 부디 누설치 마십시오.”
공명 : “양가의 공적인 일을 어찌 누설할 이[理]가 있겠습니까? 저는 조조가 비록 두 번 이나 저의 그 계략[화공]을 겪었지만 그래도 틀림없이 대비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하니 도독께서는 안심하고 맘껏 그것[화공]을 실행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어 자리가 끝나 서로 헤어졌으며 다른 여러 장수들은 그 일이 무슨 일인지 알지 못했다.
한편 조조는 눈 뻔히 뜨고 화살 십오륙 만 개를 도적맞고 마음이 울적했다.
순유가 나와 계책을 드렸다. : “강동에는 주유와 제갈량 두 사람이 계책을 세우고 있어 급히 깨뜨리기는 어렵습니다. 사람을 골라 강동으로
보내어 거짓 항복하게 하여 간첩이 되게 하여 내응토록 하여 소식을 통한 후에 그 때 비로소 도모해야 할 줄 압니다.”
조조 : “그 말은 내 마음과 같네. 자네는 우리 군 중에 누가 이 계책을 행할 수 있다 고 생각하는가?”
순유 : “채모가 주살 당하고 지금 채씨 종족들이 전부 우리 군 안에 있습니다. 채모의 동생 채중과 채화가 현재 부장으로 있으니 승상께서
그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그들을 임명하여 강동으로 보내어 거짓 항복을 시키면 동오에서는 틀림없이 의심치 않을 것입니 다.”
조조는 그 말을 받아들여 그날 밤 은밀히 두 사람을 막사로 불러 부탁했다. : “너희 두 사람은 약간의 군사를 이끌고 동오로 가서 거짓
투항해라. 단 특별한 동정이 있으면 사람을 시켜 은밀히 보고해라. 일이 성사 된 후에는 다시 더 상을 내리겠다. 두 마음을 품어서는 안
된다.”
채중과 채화 : “저희들은 처자가 다 형주에 있는데 어찌 감히 두 마음을 품겠습니까? 승상 께서는 의심치 마십시오. 저희 두 사람은 반드시 주유와 제갈량의 머리를 잘라 승상 의 휘하에 바치겠나이다.”
조조는 후히 상을 내렸다. 다음 날 두 사람은 오백 명의 군사를 이끌고 수척의 배를 타고 순풍에 돛을 달고 남쪽 기슭을 향해 나갔다.
< 原 文 >
少頃,孔明入寨見周瑜。瑜下帳迎之,稱羨曰:「先生神算,使人敬服。」孔明曰:「詭譎小計,何足爲奇?」瑜邀孔明入帳共飲。瑜曰:「昨吾主遣使來催督進軍,瑜未有奇計,願先生教我。」孔明曰:「亮乃碌碌庸才,安有妙計?」瑜曰:「某昨觀曹操水寨,極其嚴整有法,非等閒可攻。思得一計,不知可否,先生幸爲我一決之。」孔明曰:「都督且休言。各自寫於手內,看同也不同。」
瑜大喜,教取筆硯來,先自暗寫了,却送與孔明。孔明亦暗寫了,兩個移近坐榻,各出掌中之字,互相觀看,皆大笑。原來周瑜掌中字,乃一『火』字,孔明掌中,亦一『火』字。瑜曰:「既我兩人所見相同,更無疑矣。幸勿漏泄。」孔明曰:「兩家公事,豈有漏泄之理?吾料曹操雖兩番經我這條計,然必不爲備。今都督儘行之可也。」飲罷分散,諸將皆不知其事。
却說曹操平白折了十五六萬箭,心中氣悶。荀攸進計曰:「江東有周瑜、諸葛亮二人用計,急切難破;可差人去東吳詐降,爲奸細內應,以通消息,方可圖也。」操曰:「此言正合吾意。汝料軍中誰可行此計?」攸曰:「蔡瑁被誅,蔡氏宗族,皆在軍中。瑁之族弟蔡中,蔡和,現爲副將。丞相可以恩結之,差往詐降,東吳必不見疑。」
操從之,當夜密喚二人入帳囑付曰:「汝二人可引些少軍士,去東吳詐降。但有動靜,使人密報。事成之後,重加封賞。休懷二心!」二人曰:「吾等妻子俱在荊州,安敢懷二心,丞相勿疑。某二人必取周瑜,諸葛亮之首,獻於麾下。」操厚賞之。次日,二人帶五百軍士,駕船數隻,順風望著南岸來。
< 文 段 解 說 >
(1)少頃,孔明入寨見周瑜。瑜下帳迎之,稱羨曰:「先生神算,使人敬服。」孔明曰:「詭譎小計,何足爲奇?」瑜邀孔明入帳共飲。瑜曰:「昨吾主遣使來催督進軍,瑜未有奇計,願先生教我。」孔明曰:「亮乃碌碌庸才,安有妙計?」瑜曰:「某昨觀曹操水寨,極其嚴整有法,非等閒可攻。思得一計,不知可否,先生幸爲我一決之。」孔明曰:「都督且休言。各自寫於手內,看同也不同。」
소경,공명입채견주유。유하장영지,칭선왈:「선생신산,사인경복。」공명왈:「궤휼소계,하족위기?」유요공명입장공음。유왈:「작오주견사래최독진군,유미유기계,원선생교아。」공명왈:「양내녹록용재,안유묘계?」유왈:「모작관조조수채,극기엄정유법,비등한가공。사득일계,부지가부,선생행위아일결지。」공명왈:「도독차휴언。각자사어수내,간동야불동。」
羨 부러워 할 선, 탐내다. 稱羨 칭찬하며 부러워하다. 敬服 경복하다,
존경하여 심복하다. 詭 속일 궤. 譎 속일 휼. 詭譎 간사스럽고 교묘함. 邀 맞을 요, 초대하다. 碌 돌 모양 녹[록], 평범하다. 碌碌 평범한 모양, 보잘 것 없는 모양. 庸才 용재, 범재. 等閒 등한하다. 예사롭다. 보통이다. 쉽다.
< 해 석 >
잠시 후 공명이 주유를 만나러 영채로 들어갔다.
주유가 장막에서 나와 맞이하면서 칭찬하며 부러워했다. : “선생의 신묘한 계산은 사람들 을 경복케 하였습니다.”
공명 : “약간의 변변찮은 속임수가 기이할 게 뭐 있습니까?”
주유는 공명을 장막으로 맞아들여 같이 술잔을 나누었다.
주유 : “어제 우리 주공께서 사람을 보내 진군을 재촉 하셨는데 이 주유에게는 기묘한 계책이 없어 선생의 가르침을 받고자 합니다.”
공명 : “저는 변변찮은 보통 사람인데 제게 무슨 묘계가 있겠습니까?”
주유 : “제가 전에 조조의 수상 영채를 관찰해 본 적이 있는데 극히 엄정하고 법도가 있어 서 일반적인 평범한 전술로는 공격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한 가지 계교를 생각해 냈는 데 괜찮은 전술인지 알 수가 없는데 선생께서 저를 위해 한번 결단을 내려주시기 바랍니 다.”
공명 : “도독께서 잠시 말씀을 멈추시지요. 우리 각자가 손 안에 글을 쓴 후 생각이 같은 지 다른지 보기로 합시다.”
(2)瑜大喜,教取筆硯來,先自暗寫了,却送與孔明。孔明亦暗寫了,兩個移近坐榻,各出掌中之字,互相觀看,皆大笑。原來周瑜掌中字,乃一『火』字,孔明掌中,亦一『火』字。瑜曰:「既我兩人所見相同,更無疑矣。幸勿漏泄。」孔明曰:「兩家公事,豈有漏泄之理?吾料曹操雖兩番經我這條計,然必不爲備。今都督儘行之可也。」飲罷分散,諸將皆不知其事。
유대희,교취필연래,선자암사료,각송여공명。공명역암사료,양개이근좌탑,각출장중지자,호상관간,개대소。원래주유장중자,내일『화』자,공명장중,역일『화』자。유왈:「기아양인소견상동,경무의의。행물누설。」공명왈:「양가공사,기유누설지리?오료조조수양번경아저조계,연필불위비。금도독진행지가야。」음파분산,제장개부지기사。
硯 벼루 연. 榻 걸상 탑, 길고 좁게 만든 평상. 坐榻 일종의 의자. 掌 손바닥 장. 漏 샐 루[누]. 泄 샐 설. 經 날 경, 경험하다. 겪다. 체험하다. 曹操雖兩番經我這條計 조조는 비록 두 번이나 나의 그 계책[화공, 박망파와 신야의 화공]을 겪다[경험하다]. 여기서 ‘我’는 ‘나의’라고 봐야지 ‘우리의’라고 보면 안 될 것 같다. 然 그러할 연, 그러나. 儘 다할 진, 멋대로.
< 해 석 >
주유는 대단히 기뻐 붓과 벼루를 가져오게 하여 먼저 자기가 남모르게 글자를 적고 공명에게 붓과 벼루를 넘겨주었다. 공명역시 남모르게 글자를 적고 두 사람이 의자를 바짝 가까이 당겨 앉은 후 각기 손바닥에 적은 글자를 펼쳐서 서로 드려다 보고 다 같이 크게 웃었다. 원래 주유의 손바닥 안에 있던 글자는 ‘火’ 한 자인데 공명 손바닥 안에 적혀 있던 글자도 역시 ‘火’한 자였다.
주유 : “이미 우리 두 사람의 생각이 같으니 이제 또 무엇을 의심하여 망설이겠습니까? 부디 누설치 마십시오.”
공명 : “양가의 공적인 일을 어찌 누설할 이[理]가 있겠습니까? 저는 조조가 비록 두 번 이나 저의 그 계략[화공]을 겪었지만 그래도 틀림없이 대비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하니 도독께서는 안심하고 맘껏 그것[화공]을 실행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어 자리가 끝나 서로 헤어졌으며 다른 여러 장수들은 그 일이 무슨 일인지 알지 못했다.
(3)却說曹操平白折了十五六萬箭,心中氣悶。荀攸進計曰:「江東有周瑜、諸葛亮二人用計,急切難破;可差人去東吳詐降,爲奸細內應,以通消息,方可圖也。」操曰:「此言正合吾意。汝料軍中誰可行此計?」攸曰:「蔡瑁被誅,蔡氏宗族,皆在軍中。瑁之族弟蔡中,蔡和,現爲副將。丞相可以恩結之,差往詐降,東吳必不見疑。」
각설조조평백절료십오륙만전,심중기민。순유진계왈:「강동유주유、제갈량이인용계,급절난파;가차인거동오사항,위간세내응,이통소식,방가도야。」조왈:「차언정합오의。여료군중수가행차계?」유왈:「채모피주,채씨종족,개재군중。모지족제채중,채화,현위부장。승상가이은결지,차왕사항,동오필불견의。」
平白 공연히, 까닭 없이, 뻔히 보면서, 뻔하게 알면서. 折 꺽을 절, 손해보다. 悶 번민할 민. 氣悶 기분이 언짢다, 찌무룩하다, 음울하다. 切 결코, 부디, 제발, 끊을 절.
急切 단박. 창졸(간). 단시간. 몹시 절박하다, 절실하다. 詐 속일 사.
< 해 석 >
한편 조조는 뻔히 눈 뜨고 화살 십오륙만 개를 도적맞고 마음이 울적했다.
순유가 나와 계책을 드렸다. : “강동에는 주유와 제갈량 두 사람이 계책을 세우고 있어 급히 깨뜨리기는 어렵습니다. 사람을 골라 강동으로 보내어 거짓 항복하게 하여 간첩이 되게 하여 내응토록 하여 소식을 통한 후에 그 때 비로소 도모해야할 줄 압니다.”
조조 : “그 말은 내 마음에 꼭 드네. 자네는 우리 군 중에 누가 이 계책을 행할 수 있다 고 생각하는가?”
순유 : “채모가 주살 당하고 지금 채씨 종족들이 전부 우리 군 안에 있습니다. 채모의 동생 채중과 채화가 현재 부장으로 있으니 승상께서
그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그들을 임명하여 강동으로 보내어 거짓 항복을 시키면 동오에서는 틀림없이 의심치 않을 것입니 다.”
(4)操從之,當夜密喚二人入帳囑付曰:「汝二人可引些少軍士,去東吳詐降。但有動靜,使人密報。事成之後,重加封賞。休懷二心!」二人曰:「吾等妻子俱在荊州,安敢懷二心,丞相勿疑。某二人必取周瑜,諸葛亮之首,獻於麾下。」操厚賞之。次日,二人帶五百軍士,駕船數隻,順風望著南岸來。
조종지,당야밀환이인입장촉부왈:「여이인가인사소군사,거동오사항。단유동정,사인밀보。사성지후,중가봉상。휴회이심!」이인왈:「오등처자구재형주,안감회이심,승상물의。모이인필취주유,제갈량지수,헌어휘하。」조후상지。차일,이인대오백군사,가선수척,순풍망착남안래。
囑 부탁할 촉. 些 적을 사. 懷 품을 회. 俱 함께 구. 麾 대장기 휘. 厚 두터울 후. 駕 멍에 가, 타다.
著 드러날 저, 저축할 저, 붙일 착. 이 문장에서 著는 나타내다, 저술하다라는 본래의 한자 뜻이 아니고 백화문(옛 구어체 중국어) 및 현대 중국어에는 동사 뒤에 붙는 조사(어미)로 사용되었습니다. 여기서 著자는 동사 뒤에 붙어 ---하고 있다, --한채로 라는 의미입니다. 望著는 ---‘바라보면서’, ‘바라본 채’ 라는 뜻이 되며 望着으로 혼용하며 현대 중국어에서는 반드시 망착으로 사용하며 望著나 望着 두 단어 다 망착으로 읽습니다. 때로 현대 중국어 회화나 발음을 기준으로 할 때는 왕저(wang zhe)라고 읽으면 됩니다.
< 해 석 >
조조는 그 말을 받아드려 그날 밤 은밀히 두 사람을 막사로 불러 부탁했다. : “너희 두 사람은 약간의 군사를 이끌고 동오로 가서 거짓
투항해라. 단 특별한 동정이 있으면 사람을 시켜 은밀히 보고해라. 일이 성사 된 후에는 다시 더 상을 내리겠다. 두 마음을 품어서는 안
된다.”
채중과 채화 : “저희들은 처자가 다 형주에 있는데 어찌 감히 두 마음을 품겠습니까? 승상 께서는 의심치 마십시오. 저희 두 사람은 반드시
주유와 제갈량의 머리를 잘라 승상 의 휘하에 바치겠나이다.”
조조는 후히 상을 내렸다. 다음 날 두 사람은 오백 명의 군사를 이끌고 수척의 배를 타고 순풍에 돛을 달고 남쪽 기슭을 향해 나갔다.
2026년 6월 30일
이 종 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