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 전 강릉바우길이 생겼다는 소식을 듣고 언제가 모든 코스를
완주해 보겠다는 원대한(?)한 계획을 마음속에 품게 되었다.
하지만 몸은 서울에 떨어져 있고 마음만 늘 동해바닷가에 자리잡고 있어
그저 마음속에 그리는 동경의 대상이었다. 그러다가 지난 3월30일 헌화로길에서
첫 발걸음을 시작했다. 새벽5시 서울 집을 출발해 9시에 강릉고속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강릉에서 수십년간 살았기에 시내 지리와 바우길 대부분의 코스에
대한 지리는 비교적 잘 알고 있지만 혼자 걷기보다는 많은 사람들과 함께
걸으면서 고향의 냄새를 맡아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터미널 사거리를 지나 교동사거리를 지나 강릉역까지 터벅터벅 걸으면서
아침의 강릉시내 거리를 함께 덤으로 구경했다. 늘 자동차로 다니면서
주변의 풍경을 제대로 볼 수 없었는데 두 발로 걷다보니 미쳐 보지 못한
새로운 풍경들이 참 많이 들어왔다.
강릉역에 도착하자 배낭에 바우길 패넌트와 뱃지를 단 많은 분들이 모여있었다.
출발지인 정동진역까지는 무궁화열차를 타고 이동해야 한단다. 어린시절에는
비둘기열차로 하시동역과 안인역을 거쳐 정동진역까지 400원 요금을 내고 다닌
기억이 있는데....무궁화 열차는 2,600원. 세월이 많이 흘러구나!
열차에 오르자 마자 귀에 들리는익숙한 고향의 말들이 반갑다.
고향마을에 도착한 기분이다. 차장밖으로 스쳐가는 풍경들은 더 정겹다.
내가 나고 자란 고향의 집 모습을 열차에서 바라보니 가슴이 아련하다.
바우길 걷기에 함께 하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전 세계에서 바닷가와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정동진역에서 열차는 많은 사람들을
내려놓는다. 코끝을 훅 스치는 동해바다 냄새, 아! 정말 좋다. 내가 서울에서 늘 그리는
냄새가 바로 이것이다.
역 광장에서 에어로빅을 하시는 여성분들의 안내로 부드럽게 스트레칭을 하고
바우길 페넌트와 뱃지로 받았다. 이제 제대로 바우길 식구가 된 기분이다.
광장에서 강릉 친구를 만나 함께 걷기로했다.
정동진 바닷가 백사장을 지나 모래시계 광장을 한 바퀴 돌아 본격적으로 산행을 시작한다.
바닷가에서 바라본 정동진의 해안가 모습이 조금은 낯설다. 해가 떠오르는 방향에
커다란 배 모양의 인공구조물이 방파제 위에 자리잡고 있다. 상업용 시설임에 틀림없는 듯 한데
수많은 사람들이 바라보는 일출 방향에 그런 시설이 떡하니 차지하고 있다는게 조금은 화가 났다.
등산로 입구에 다다르자 바우길 이정표와 해파랑길 이정표가 동시에 길을 안내한다.
함께 가는 친구가 해파랑길은 문광부에서 설치한 것이란다. 똑 같은 길을 두고 서로
다른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니...참 우리나라 공무원들...안타깝다. 실적위주의 행정편의주의가
이런 산길에도 살아 있다니..
산길을 조금 오르자 시원한 동해바다가 한 눈에 들어온다. 길가에는 진달래가 이제
막 꽃망울을 터뜨릴 준비를 하고 성급한 녀석은 이미 제 모습을 오롯하게 드러냈다.
작은 산의 정상부근에서 모두가 쉬어간다. 이름모를 묘지도 보인다. 이곳에서 바우길 사무국장께서
재치와 위트로 모두에게 웃음을 선물하시고 바우길 입양을 추진하신다고 한다.
입양사업에 함께 하고 싶지만 몸이 너무 멀리 떨어져 있기에 마음만 함께 하기로 한다.
심곡마을,
옛부터 미역과 돌김이 유명한 곳이다. 내가 태어날때 어머니는 이곳에서 생산된
미역을 드셨다고 하고 아내가 아이를 낳았을 때도 어머니는 이곳 미역을 사주셨다.
이 마을은 한국전쟁때는 전쟁이 일어난 줄도 몰랐다고 할 정도로 옛날에는 골이 깊은 오지였지만
지금은 남으로는 옥계 금진과 북으로는 정동진과 길이 잘 연결돼 있는 곳이다.
곰두리수련원 입구에서 마을로 향하는 길,
땅의 기운이 샘솟는 계절답게 부지런한 농부는 밭갈이를 한다.
내리막길의 작은 길은 온통 시멘트로 덮여 있다. 산속의 작은 오솔길을 시멘트로
덮어놔 뭔가 어울리지 않는 풍경이다. 차라리 작은 돌계단으로 만들었으면 얼마나
운치가 있고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감자옹심이 식당이 두 곳 있다. 한곳은 원조라고 하고 다른 곳은 원조집이 장사가 잘 되자
나중에 문을 열었다고 한다. 나와 친구 일행은 원조집에서 맛 있는 감자옹심이와
수수부꾸미를 먹었다. 친구 일행은 배낭에 숨겨온(?) 막거리를 주인 아주머니의 눈치(?)를
살피면서 두 병을 비웠다. 한꺼번에 많은 사람들이 몰린 탓인지 종업원 아주머니가 아주
힘들어하는 표정이다. 음식 나오는 시간도 하염없이 흘러가고...그래도 난 이런 시간이 좋다.
고향음식으로 배를 채우고 다시 길을 나선다. 마을 뒷산의 돌 계단을 오르면 마을의
전경과 심곡항이 한 눈에 들어온다. 내리막길 중간쯤에는 정자가 보인다.
이제 본격적으로 헌화로길 탐방이다. 자동차로는 몇 번 다녀봤지만 걷기는 처음이다.
거북바위로 기억되는 모퉁이의 큰 바위를 돌아 햇살 가득한 봄 바다를 마음껏 구경하고
냄새 맡으면서 띄엄띄엄 낚시하는 사람들에게 고기는 잘 잡히냐고 괜히 물어보기도 하고..
항구가 이쁘기로 전국에 소문난 금진항을 돌아 여성수련원으로 향하는 길,
군부대 철망사이로 몽돌구르는 소리가 귀를 맑게 해 준다. 한참이나 서서 몽돌에 부딪치는
파도의 모습과 소리에 정신을 팔았다. 청아한 그 소리는 내 가슴속에 꽤 오랫동안 기억될 듯 싶다.
바우길이 아니었더라면 이런 행복을 느낄 수 없었으리라.
마을 입구에는 주말에만 장사를 하신다는 어묵파는 포장마차가 보인다.
그 모습도 참 정겹다. 꽤 많은 바우꾼들이 이곳에서 허기를 달래고 추억도 쌓는다.
이곳에서 앞 사람들의 뒷 모습을 쫓아 공동묘지를 지난다. 길은 아닌 듯하다.
아마도 누군가 맨 앞서 가신 분이 이 길을 택한 듯 싶다. 수련원 정문에 도착하자
녹색의 시내버스가 바우꾼들을 기다리고 있다. 강릉 향토기업인 동진버스에서
매주마다 바우길 종점에서 출발지점까지 무료로 리무진(?)을 운행하고 있다.
참 감사한 일이다.
도착지점에서 옥계면장님께서 맛 있는 부침개와 옥계막거리를 준비해
일행을 기다리고 계셨다. 아! 이런 맛이 내고향 강원도 인심이고 사람이구나!
가슴이 참 따뜻해지는 순간이었다.
이렇게 나의 첫 바우길 순례(?)는 끝이 났다. 언제 또 다시 두 번째 길을 나설지는
나의 시간이 알겠지만 나는 그 두번째 빨리 찾아오길 기대한다.
정겨운 풍경과 맛깔나는 훈훈한 인심이 함께 하는 바우길,
전국 제일의 명소가 되길 기대하며 나의 작은 힘도 보태길 스스로 다짐한다.
첫댓글 아.. 차분하게 마치 그 길 그 곳을 막 걷고 있는 착각이 드네요.
길 위에서 고향의 정을 느끼셨다니 고맙고 감사한 마음입니다.
두 번째 걸음도 넉넉하고 편안하기를 함께 소망하며...
후기 잘 보았습니다.^^
정겨운 글을
헌화로길을 걷듯이 봅니다
심곡과 관계 있는 분이라니 더욱 반갑습니다
다음 걸을 수 있는 시간이 빨리 마련되기를 빕니다...!
안녕하세요... 기차역에서 인사드렸던... ㅎㅎㅎ 그날이 첫 걸음이셨군요.
서울에서 오신지라 오래된 바우길님인줄 알았더니만요...
앞으로 자주 뵙길 고대해봅니다.
건강하세요^^
강릉의 수십년의 공백을... 그리움으로 사셨으리라 생각됩니다 .
지금부터 그리웠던 고향의 진정한 맛을 다시금 느껴보시길 바라며.
앞으로 명품바우길에서 자주뵙길 바랍니다~~
진작에 알고 뵙었으면 막걸리라도 한잔 드렸어야 하는데...
고향 냄새를 느끼시는데 바우길이 조금이나마 도움을 드린 것 같아서 뿌듯하기만 합니다.
더욱 열심히 해서 찾아오시는 많은 분들에게 불편함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저두 그날 쏠다님을 뵙지 못해서 아쉽습니다..
글에서 느껴지듯이..강릉이 고향이시라 저희랑은 또 다른 느낌이라 생각됩니다..
먼길이지만 이젠 한번 발걸음 하셨으니 자주 오실것같은데요^^
반갑습니다.
그리고 고향길을 함께하셔서 고맙습니다.
향리를 그리는 아련한 마음은 겪어본 자만의 아름다운 병이죠.
건강한 모습으로 또 뵙길 기대합니다.
후기의 글 너무 잘 읽고갑니다....
4월13일 10시 경포호수광장에서 만나뵙기를 바랍니다.......
그날 오시기를 기대하면서.....
저 은실이에요, 추억이 듬뿍 서린 글인데요? 그날 가시는데 인사도 못드려서 아쉬웠습니다. 저도 바우꾼 초보지만, 같이 걸어서 즐거운 길에 나중에도 꼭 동참하세요. 건강하세요.
와~ 잘 읽었습니다.
마치 마음의 음성으로 낭독하시는 듯 했습니다.
귓가에 쏠다님의 음성이 울리는 듯해요.
그 음성으로 헌화로길 걸었습니다.^^*~
님의 얼굴에 내 나이를 보는 듯...ㅎㅎ
함께 걸으면서 몇마디 못 나누었소
담엔 많은 대화 기대하겠소 ^^
저의 졸필에 많은 분들께서 격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냥 걸으면서 이런 저런 생각하고 며칠후에도
기억이 많이 나기에 생각없이 두런두런 적었습니다.
좋은 하루 되시길 빕니다.